우리도 예수님처럼 사역해야 합니다. 마 4:23-25 2013.8.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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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도 예수님처럼 사역해야 합니다. 마 4:23-25 2013.8.182018-12-03T20:37:4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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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께서 말씀을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신 것을 ‘예수님의 3대사역’ 또는 ‘삼중사역’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을 보면 예수께서 세 가지 사역을 하신 것이 이곳에만 기록되어 있지 않고 여러 곳에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마 9:35). 이처럼 세 가지 사역이 반복적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예수님의 삼대사역, 즉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치유하신 것은 예수님의 본질적인 사역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 가지 사역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시고 친히 이 사역을 하셨고, 제자들이 이렇게 사역하도록 훈련하셨습니다. 저는 오늘 세 가지 사역이 각각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말씀 드리고, 우리가 이 세 가지 사역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랍비로서 가르치는 사역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를 구별하시지 않고 기회만 나면 가르치셨습니다. 회당에서 가르치셨고, 산 위에서 팔복을 가르치셨고, 배 위에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가르치셨고, 에서 간음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힌 여인과 그녀를 둘러싼 군중들을 가르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가르치시는 대상을 구분하지 않으셨습니다. 먹을 것을 얻기 위해 따르는 수많은 무리를 가르치셨고, 자주 자신을 공격하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가르치셨고, 병 고침을 받기 위해 찾아오는 환자들을 가르치셨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가르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은 당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의 가르침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가르침은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무거운 짐과 고통만 안겨주었지만, 예수님의 가르침은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고 삶을 변화시켰습니다. 무엇이 그런 차이를 가져왔을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입니다. 첫째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그들의 지혜로 가르쳤지만, 예수께서는 성령으로 가르치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가르침이 탁월해지느냐 아니냐는 성령으로 가르치느냐 그렇지 아니하냐에 달려 있습니다. 둘째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말로만 가르쳤지만 예수께서는 가르치신 대로 사셨기 때문입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열심히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단지 가르침으로 끝나고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그들이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그들이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그들은 말만 하고 행하지 아니하며 또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한 손가락으로도 움직이려 하지 아니하며”(마 23:3-4)라고 책망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친히 가르치는 삶을 사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자신과 동일한 삶을 살도록 명령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라고 명령하셨을까요? 첫째로, 가르친 만큼 사람은 변화되기 때문입니다.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믿음도 자라지 않고 삶도 변하지 않습니다. 각 나라마다 교육을 중요시 하는 것은 교육만큼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가르치는 일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이러저런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런데 모이는 동기가 다양합니다. 혹자는 은혜를 받기위해서 나오기도 하고, 혹자는 물질의 복을 받기 위해서 나오기도 하고, 혹자는 병든 몸을 고치기 위해서 나오기도 하고, 혹자는 사람을 보기위해서 나오기도 합니다. 우리 교회에는 소위 연예인이 없어서 누군가를 보기위해서 오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그러나 연예인들이 많은 교회는 그들을 구경하기위해서 찾아가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런 이유로 교회를 찾는 자들은 언제라도 변할 수 있는 자들입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옆에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자들이 바로 예수님을 쫓아 다녔던 무리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교회는 이들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말씀으로 가르칠 때에 그들이 변하여 주님의 제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교회에 모여드는 다양한 사람들을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가르칠 때에 믿음이 없던 자들이 믿음이 생기게 되고, 육신적인 믿음만을 가진 자들이 영적인 믿음을 가진 자로, 미성숙한 자들이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둘째로, 다른 사람을 가르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제자를 삼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가르침을 단순히 상대방의 믿음을 성장시키고 삶의 변화를 가져오는 것에서 멈추게 해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단계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즉 가르침의 목표는 재생산입니다. 가르침을 받은 사람이 또 다른 사람을 가르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되 제자를 만들지 않으면 그 가르침은 우리를 변화시키지 못하고 교만하게 만들 뿐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회당 안에서만 말씀을 가르치시지 않고 온 갈릴리를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셨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시기 위해 건물 짓지 않으시고 기존의 ‘회당’을 이용하셨습니다. Synagogue(쉬나고게)는 유대인들이 BC 586년 멸망 이후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서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연구하기 위해서 만든 곳으로 신약 교회의 모판이 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흩어진 곳에서 회당을 예배의 장소로, 재판소로, 학교와 신학교로 사용했습니다. 사도 바울도 1, 2, 3차 전도여행을 할 때에 회당을 찾아가서 가르치며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그러나 회당에서만 말씀을 가르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가르침이 필요한 곳은 어느 곳이나 찾아가셔서 말씀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기 위해 세상 사람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사람들을 찾아가서 말씀을 가르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말씀으로 무장하고 스스로 직장이나 학교에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자신을 무장하기 위해서는 말씀 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이왕 신앙생활을 할 바에야 말씀을 잘 알고 해야 합니다. 동신교우들은 모두 훈련을 받아 누구를 만나든지 복음을 전하고 말씀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합니다. 전통적인 목회자사역형교회는 이 일을 할 수 없습니다. 모든 평신도가 사역하는 평신도사역형교회가 되어야 할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한 사람 한 사람 말씀훈련을 받아 누구를 만나든지 말씀을 가르칠 수 있기를 원하십니다.

     

      둘째로, 천국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공생애 동안 가시는 곳마다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이 직접 복음을 전파하셨을 뿐 아니라, 12사도와 70제자들을 훈련시키셔서 그들로 하여금 전도하게 하셨고,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와 같이 자신이 친히 복음을 전파하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을 훈련시켜 복음을 전파하게 하신 것은 복음전도를 자신의 가장 큰 사명으로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전도에 얼마나 충실하시고 복음 전도의 절박성을 느끼셨던지 식사하시는 것조차 잊으실 정도였습니다(요 4:32-34). 우리도 예수님처럼 가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그런데 복음이 무엇입니까? 문자 뜻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나가서 이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막 16:15).

      그런데 왜 예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을까요? 우리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아무도 들을 수 없고, 듣지 않으면 아무도 복음을 믿을 수 없고, 믿지 않으면 아무도 구원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롬 10:13-15)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해야 하는 이유는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전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복음을 말로만 전파하시지 않았습니다. 병든 자를 만나면 병을 치료해주셨고, 귀신들린 자를 만나면 귀신을 쫓아주셨습니다. 이와 같이 말로만 복음을 전하지 않고 전도 현장에서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쫓아내고, 각종 상담을 통하여 문제를 해결해주는 전도를 ‘능력전도’라고 합니다. 그런데 능력전도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기 때문에 우리가 능력전도를 하기위해서는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 1:8)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예수님처럼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복음을 성령의 능력으로 전파해야 할까요? 그렇게 하지 않으면 말씀을 확실히 증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약속하셨습니다. “믿는 자들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그들이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뱀을 집어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병든 사람에게 손을 앉은즉 나으리라 하시니라”(막 16:17-18)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제자들이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복음을 전할 때에 이런 표적이 따르자 어떤 결과가 나타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제자들이 그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믿는 자들에게 따르는 표적은 호기심과 구경꺼리의 대상이 아닙니다. 복음이 확실히 증거 되기 위한 가장 소중한 수단입니다.

     

      셋째로, 병든 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예수께서 각종 기적을 행하시자 소문이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병자들과 귀신 들린 자들이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모든 앓는 자 곧 각종 병에 걸려서 고통당하는 자, 귀신 들린 자, 간질하는 자, 중풍병자들을 데려오니 고치시더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복음서에는 예수께서 치유하신 사례들이 41곳이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복음서의 총 3,774구절 중 484구절이 예수님의 전인(全人)치유사역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마가복음의 2/3가 치유와 관련될 정도로 예수께서 치유사역을 중요하게 여기셨고 수많은 치유를 행하셨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도 이 사역을 하도록 치유의 권능을 주시고, 치유사역을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마 10:8, 참조 마 10:1).

      그런데 왜 예수께서 치유사역을 하셨을까요? 여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을 하나님으로 계시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종종 우리가 ‘여호와 라파’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사용하기도 하는데 이는 ‘여호와는 치료자’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5장 26절에 보면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출 15:26)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각종 질병을 치유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등 치유사역을 행하신 것은 자신이 곧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육신의 몸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치유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계시하신 것입니다.

    둘은, 자신이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 세상에 오신 메시아이심을 증언하시기 위해서 입니다. 세(침)례요한이 자기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어 “오실 메시아가 당신입니까?”라고 묻자, 예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이 자신의 치유사역을 통해 성취되었다고 말씀하심으로 예수님 자신이 메시아임을 증언하셨습니다(마 11:4-5)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치유사역을 통하여 자신이 이스라엘백성들이 그토록 대망하는 메시아이심을 알리신 것입니다.  셋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 입니다(마 12:22-28; 눅 4:40-41). 예수께서 귀신 들려 보지 못하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주시자, 바리새인들은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쫓아내는 것이라 하며 예수님을 비난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내가 하나님의 성령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마 12:28)라고 하심으로 자신의 치유사역과 하나님의 나라가 서로 관계가 있음을 말씀하셨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들을 고치시는 치유사역을 통하여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것을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치유사역을 통하여 이 세상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고 있음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한 가지 방법으로만 치유하시지 않고 다양한 방법들을 사용하셨습니다. 베드로의 장모는 손을 만지시며 말씀으로 고치셨고(마 8:14-15), 거라사 지방의 귀신들린 자는 오직 말씀으로 내쫓으셨고(막 5:1-15), 혈루증을 앓던 여인은 겉옷만 만져도 나을 것이라는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고쳐주셨습니다(막 5:25-34). 따라서 예수께서 어떻게 치유하실지 모르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대로 치유가 일어나기를 기도하면 안 됩니다.

      일반적으로 환자를 위하여 기도할 때, 즉각 병이 낫게 되는 경우가 10퍼센트, 기도를 받고나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낫는 경우가 50퍼센트이고, 전혀 기미가 없는 경우가 40퍼센트라 합니다. 즉 기도하면 60퍼센트의 사람들에게 변화와 치유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병든 자를 보면 기도부터 해야 되지 않겠습니까? 설사 낫지 않더라도 그것 때문에 부끄러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낫고 안 낫고는 하나님께서 결정하시기 때문입니다. 이번에 필리핀 집회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전도집회 둘째 날이었습니다. 어느 청년 하나가 한쪽 다리가 잘려서 목발을 집고 집회를 기웃거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아주 어린 꼬마 아이가 이경옥 권사에게 와서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해 달라고 끌고 갔습니다. 그래서 저와 필리핀 선교사님이 함께 그를 위해 기도했습니다. 잘려진 발이 새롭게 나왔으면 얼마나 좋았겠습니까? 그러나 그런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그를 위해 기도하면서 하나님께서 믿음을 보시고 기뻐하신다는 확신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기적이 일어나지 않아도 우리는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가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가 잘 알지 못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병든 자를 보면 기도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치유는 말씀을 효과적으로 잘 전달하기 위한 수단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가르침이나 전도보다 치유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치유의 기적이 일어나도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한 도구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세 가지 사역을 하신 것과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예수께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파하시고 귀신을 쫓아내신 것과 자신은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제자란 수업 시간에 배우기 위하여만 앉아 있는 자들이 아닙니다. 스승으로부터 무언가 배워서 그대로 남을 또 가르칠 수 있는 자가 제자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닮아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세 가지 사역을 하신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처럼 사역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비신자들에게 가르치지 않고 있습니다. 전도를 해도 복음전도를 제대로 하지 못합니다. 병든 자를 보거나 귀신들린 자를 보아도 기도해줄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이런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처럼 사역을 할 수 있도록 만든 시스템이 바로 ‘D3왕의사역’입니다. 제가 이번에 필리핀에 다녀온 것도 이것을 알리기 위해서였습니다. 목회자들이 이것을 알아야 하기 때문에 첫날에는 선교사들에게 ‘D3왕의사역’으로 제자 삼는 노하우에 대하여 가르쳤고, 이틀과 삼일 째날에는 밤마다 치유전도집회를 열었습니다. 수백 명의 사람들이 모였는데 이틀 동안 복음을 전하고 안수를 하였습니다. 매회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한 자가 40-50명이나 되었고 마지막에는 10여명의 장년들이 교회에 등록카드를 제출해서 8월 18일부터 그곳에서 새 교회가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은 선교사에 획을 그을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한 사건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복음을 전파하고, 치유하는 것은 목회자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이 해야 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 모두 훈련을 받아 세 가지 사역을 잘 감당하는 동신교회 성도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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