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교회, 하나 되어야 할 이유 있습니다. 전4:9-12 2013.6.9

//우리교회, 하나 되어야 할 이유 있습니다. 전4:9-12 2013.6.9
우리교회, 하나 되어야 할 이유 있습니다. 전4:9-12 2013.6.92018-12-03T20:31:46+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우리교회, 하나 되어야 할 이유 있습니다. 전4:9-12 2013.6.9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64

     

      우리가 살아가는 이 사회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세 가지 모습으로 존재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밀림형 사회입니다. 밀림은 생존 경쟁이 치열한 곳입니다. 먹느냐 먹히느냐,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로 투쟁이 살벌합니다. 서로 살아남기 위해서 폭력과 투쟁, 그 어떤 방법도 가리지 않습니다. 힘 있는 자만이 판을 치는 무법천지의 사회입니다. 둘째로, 스포츠형 사회입니다. 스포츠형 사회가 서로 경쟁을 한다는 점에서는 밀림형의 사회와 같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차이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싸우지만 규칙의 범위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법칙 안에서 정정당당하게 싸워도 승자와 패자가 있기 때문에 승자는 기쁘고 자랑스럽지만 패자는 슬프고 괴로울 수밖에 없습니다. 셋째로, 교향악형 사회입니다. 교향악에서는 다양한 악기가 연주를 하지만 절제된 자기의 소리로 협동과 조화를 창조해 내듯이 교향악형 사회에서는 각기 나름대로 개성이 있고 독특성이 있을 뿐 투쟁도 없고 승자와 패자도 없습니다. 서로 하나가 되어 아름다움을 창조해 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교회는 위 공동체 중에서 어떠한 형이 되어야 할까요? 마땅히 교향악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는 절대로 밀림형이나 스포츠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내가 이기기 위해서 남을 밟거나 내가 살기 위해서 다른 사람을 죽이는 냉혹함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선의의 경쟁을 한다는 미명하에 자신은 일등이고 다른 사람은 이등이라는 구조를 만들어 놓고 그것을 즐기는 마음을 가지면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교회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그 몸의 지체이므로 서로 소중한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으로 인하여 세워진 생명공동체이므로 서로가 자신을 희생하고 뜻을 모아 연합해야 합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앞두고 대제사장으로서 어떤 기도를 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기도하신 내용은 크게 세 가지인데, 첫째는 자신을 위해 기도하셨고, 둘째는 제자들을 위한 기도하셨고, 셋째는 교회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위해 기도하신 내용의 핵심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요 17:21). 무엇을 위해 기도하셨습니까?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께서 하나 되신 것같이,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 특별히 교회의 하나 됨을 위하여 기도하셨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신앙생활에 연합과 하나 됨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을 통해서 우리가 왜 하나가 되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즉 하나가 되어야 할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무엇보다도, 좋은 열매를 맺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4장 9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저희가 수고함으로 좋은 상을 얻을 것임이라.” 이 말씀은 두 사람이 수고하는 것이 한 사람이 수고하는 것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혼자보다는 둘이서 함께 일할 때에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는 것은 지극히 당연합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넘어야 할 장벽이 있습니다. 그것은 서로 마음이 하나 되어야 합니다. 그것은 서로 마음이 하나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 되지 않으면 함께 일을 해도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오히려 갈등이 생기고 불협화음이 생겨서 오히려 공동체에 부작용을 낳습니다. 대부분 교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어떤 일을 결정할 때에 마음이 하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우리 민족이 ‘장독 안의 게’에 비유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우리 민족을 ‘장독안의 게’에 비유할까요? 그것은 우리 민족이 지극히 개인주의적이고 비협동적이기 때문입니다. 게는 모두 독 밖으로 기어 나올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마리 게가 독 속에 빠지면 기어 나오지 못하고 모두 죽는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게 한 마리가 기어나가려고 하면 다른 게가 뒷다리를 물고 늘어지기 때문입니다. 한 마디로 게들의 생존방식은 “나 살고 너 죽자”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결코 게들의 생존방식을 본받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가 성장을 하다가 멈추거나 점점 쇠퇴하는 것은 밀림형 사회와 스포츠형 사회를 본받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개미의 생존방식을 본받아 서로 협력하고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한 마음을 품고 주의 일을 할 수 있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하면 됩니다. 첫째로, 주의 일을 하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인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라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자신을 드러내려고 할 때가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이 싸움에서 이기지 못하면 결코 다른 사람과 함께 일을 하여 좋은 열매를 거둘 수 없습니다. 우리는 주방에서 일을 하든, 청소를 하든, 안내를 하든 재정을 보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사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상대방을 함께 일하라고 붙여주셨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파트너로 인식하고 경쟁자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함께 일할 사람을 경쟁자로 생각하기 때문에 마음이 하나 되지 못하고 오히려 상대방의 약점을 발견하고 그것을 부각시켜 왕따를 시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새가족이 등록해도 우리가 그분들을 파트너로 생각하지 않고 경쟁자로 생각하면 이 교회에 정착할 수 없고 함께 일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보내주시는 새가족들을 경쟁자로 생각하지 말고 파트너로 생각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옆에 계신 성도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습니까? 경쟁자로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협력자로 생각하십니까?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마음을 품어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빌 2:2-3). 그렇습니다. 옆에 계신 분은 경쟁자가 아니라 주안에서 한 가족입니다. 가족 간에는 자신이 누구보다 낫다는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자신처럼 소중하게 생각하고 아껴줍니다. 우리가 상대방에게 이런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이런 마음을 품을 때에 교회 안에 다툼이 사라지고 하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미국 인디애나 주의 어떤 시골마을에 브라이언이라는 소년이 브레인 튜머(brain tumor)라는 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이 병은 뇌종양과 비슷해서 수술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아야만 했습니다. 수술 후 방사선 치료 때문에 브라이언의 머리가 다 빠졌지만 조금씩 회복되어 학교에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한 학급에 20명 정도 되는 시골학교였는데 반 친구들은 그가 머리털이 하나도 없이 학교에 오리라는 것을 알고서는 그가 자존심을 상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반 아이들 모두가 머리를 밀었습니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와 브라이언 뿐만 아니라 반 학생들 모두가 머리를 밀고 앉아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학생들이 왜 머리를 깎았는지를 알아채고 교단에 서서 울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모든 친구들도 함께 덩달아 울었습니다. 얼마나 멋있는 학급입니까? 우리가 서로 한 가족이라는 것을 안다면 우리도 이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다른 성도의 아픔을 함께 느껴야 합니다. 우는 자와 함께 울고 웃는 자와 함께 웃어야 합니다. 우리 동신교회가 이런 공동체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시험을 받을 때에 이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10절을 보시겠습니다. “혹시 그들이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홀로 있어 넘어지고 붙들어 일으킬 자가 없는 자에게는 화가 있으리라.” 이 말은 둘이 하나 되지 못하면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경우 큰 화를 입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한 상황에서 큰 문제가 생기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됩니다. 교회가 네편 내편으로 갈라진 상황에서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더 큰 어려움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가 되어 있을 경우는 혹 큰 시험이 닥쳐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요즘 교회들마다 하나 됨이 깨어져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언제 치명적인 화를 당해 교회의 문을 닫게 될지 모르는 교회들이 부지기수입니다. 노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노회도 지금 분립의 문제를 놓고 노회에서 재판을 했고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상황에 처해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노회에 또 다른 문제가 생기면 치명적인 손상을 입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초대교회가 어떤 시험을 당했는지 알고 있습니다. 헤롯이 야고보를 죽이자 백성들이 좋아하는 것을 보고서는 베드로마저 죽이려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몇 시간만 지나면 베드로가 죽임을 당할 위기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그토록 어려운 시험을 어떻게 이길 수 있었습니까? 그들이 한 마음이 되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한 마음을 갖지 않았다면 함께 기도할 수 없었고 또 베드로가 극적으로 옥에서 구출되는 기적도 경험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우리 교회가 몇 해 전부터 시작된 시험으로 다년간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이 때에 모든 성도가 똘똘 뭉쳤더라면 교회는 치명적인 손상을 입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 되지 못한 상황에서 그런 시험을 맞이했기 때문에 치명적인 소상을 입고 비틀거렸던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앞으로 또 어떤 시험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만 되어 있으면 됩니다. 그렇습니다. 언제 닥칠지 모르는 시험을 준비하는 최고의 비법은 평소 하나가 되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시험은 우리가 원하지 않는다고 안 받는 것이 아니지만 우리가 하나 되어 있으면 그 어떤 시험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셋째로, 시너지 효과를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4장 11절을 보십시오.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거니와 한 사람이면 어찌 따뜻하랴” 이 말은 한 사람이 누우면 따뜻하지 않지만 두 사람이 함께 누우면 따뜻하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일에 두 사람이 함께 하면 시너지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시너지 효과에 대하여 자주 들었을 것입니다. ‘시너지 효과’란 종합효과 또는 상승효과라고 하는데, 구성요소 전체가 가져오는 효과가 그 요소 각 부문들의 효과들을 단순히 합한 것보다 큰 것을 가리킵니다. 즉 1+1은 숫자상으로는 둘이지만 실제로 그 이상의 효과를 나타내는 것을 뜻합니다. 예를들어 어느 청년이 무거운 짐을 혼자서 낑낑거리며 운반하고 있다가 혼자서는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친한 친구에게 도움을 요청하자 친구가 와서 재미난 이야기를 하면서 무거운 짐을 같이 들었다고 합시다. 이때에 친구가 와서 도와줌으로 단지 힘이 절반으로 줄어드는 것만이 아닙니다. 서로 대화를 통하여 위로를 받고 새로운 힘을 공급을 받아 세 사람 이상의 힘을 발휘하여 힘을 들이지 않고도 무거운 짐을 잘 운반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 혼자서 하지 않고 여럿이 함께 하면 이렇게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음식을 먹을 때에도 시너지 효과를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먹을 때, 궁합이 맞는 음식을 먹으면 음식을 각각 따로 먹는 것보다 더 몸에 유익합니다. 예를 들어 국수와 콩국을 각각 따로 먹는 것보다는 섞어 먹으면 몸에 더 좋습니다. 또 된장과 부추를 각각 따로 먹는 것보다는 같이 먹으면 좋습니다. 또 딸기와 우유를 가각 먹는 것보다 같이 먹으면 좋습니다. 그래서 딸기 우유가 나온 것입니다.

    미국의 어떤 양로원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마거린’이라는 흑인 할머니는 4년 전에 중풍을 맞아 오른쪽 몸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고 ‘루스’라는 유대인 할머니는 5년 전에 중풍으로 왼쪽을 사용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의 공통점은 서로 유머 감각이 있고 평생 피아노를 가르쳤을 정도로 피아노를 잘 다루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흑인 할머니가 피아노 앞에 앉아 그의 왼손으로 낮은 음을 내는 건반을 두드리자, 바로 그때 유대인 할머니가 휠체어를 타고 피아노 앞으로 다가와서는 오른 쪽의 높은 소리를 내는 건반을 쳤습니다. 그러자 환상적인 화음이 울려퍼졌습니다.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한 마음이 되어 ‘쇼팽의 왈츠’를 쳤습니다. 혼자서 할 수 없는 피아노 연주를 두 사람이 힘을 합하자 놀라운 반주가 이루어졌던 것입니다. 양로원 노인들이 그 소리를 듣고 큰 감동을 받았을 뿐 아니라 그 후로 다른 양로원에 다니며 피아노를 연주하여 노인들에게 희망과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상이군인 휴양소 병원을 방문하고, TV쇼에도 출연하여 수많은 노인들에게 영감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 하나가 되면 예상할 수 없는 시너지 효과를 창출해 낼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생활을 하면서 시너지 효과를 쉽게 경험할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합심기도입니다. 우리가 합심기도를 할 때에 돈이 들지 않습니다. 마음만 하나로 묶어 주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예수께서 “진실로 다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중의 두 사람이 땅에서 합심하여 무엇이든지 구하면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을 위하여 이루게 하시리라(마 18: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혼자 기도할 때에도 응답을 받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합심하여 기도하는 곳에 더 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초대교회가 120명이 모여 합심으로 기도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오순절이 이르자 성령께서 그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는 곳에 임하셨고 그곳에 교회가 탄생되었습니다. 지금도 우리가 마음이 하나 되어 기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심으로 시너지 효과가 일어납니다. 우리가 매일 밤마다 함께 모여 중보기도를 하고, 수요일 저녁기도회와 금요성령집회 때에 기도제목을 내놓고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넷째로,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본문 12절을 보십시오. “한 사람이면 패하겠거니와 두 사람이면 맞설 수 있나니 세 겹 줄은 쉽게 끊어지지 아니 하느니라”(전 4:12). 이 말씀은 한 사람보다는 여러 사람이 힘을 합쳐야 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많아도 힘을 합하지 않으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본문의 ‘세 겹 줄’은 단지 세 겹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에서 ‘3’이라는 숫자는 완전수로서 ‘연합의 완전함, 견고함’을 상징합니다. 즉 세 겹줄이 쉽게 끊어지지 않는다는 말은 연합할 때에 공동체가 견고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가 될 때에 견고합니다. 아무리 숫자가 많아도 뿔뿔히 흩어지면 결국 한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에 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중동의 인구가 이스라엘의 인구보다 50배나 더 많습니다. 그러나 중동 사람이 아무리 많아도 이스라엘을 이길 수 없는 것은 중동은 숫자가 많아도 하나가 되지 않는데 이스라엘은 숫자가 적어도 하나가 되기 때문입니다. 한 동안 고 이승만 대통령이 즐겨 쓰던 말이 있습니다.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가 되어야 적과 싸워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혼자 있으면 패합니다. 따라서 우리가 영적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다른 사람과 연합해야 합니다. 서로 한 마음이 되어 기도해 주고 섬길 때에 승리할 수 있습니다. 감리교 창시자인 존 웨슬레는 영적으로 어두운 시대에 영적각성 운동을 전개하여 성공했습니다. 그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옥스퍼드대학의 친구들과 함께 소그룹 운동을 벌여 서로 영적으로 격려해 줄 뿐만 아니라 죄에 물들지 않도록 서로 영적으로 감시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아담의 가정을 유혹할 때에 두 사람이 함께 있을 때에 하지 않고 먼저 하와를 유혹한 후에 아담을 넘어지게 하였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둘을 한꺼번에 공격하면 그들을 넘어뜨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적과 싸워서 이기려면 하나 된 힘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를 범하게 된 것은 다른 군사들은 전쟁터에 나아가 싸움을 하고 있는데 왕궁에 홀로 남아 한가하게 있었기 때문입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가면 ‘금문교’라는 아름다운 다리를 볼 수 있는데 그 다리를 버텨 주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바로 케이블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케이블이 이토록 엄청난 무게의 힘을 지탱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수많은 철사들이 모여 하나의 굵은 케이블을 이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케이블 하나의 굵기가 무려 92.4cm나 됩니다. 어지간한 나무보다 더 굵어 어른이 한 아름에 안기도 힘들 정도인데 케이블 하나를 만들기 위해 27,572개의 가는 철사가 하나로 묶여 있기 때문에 결코 쉽게 끊어지지 않고 차량의 무게를 버티고 있는 것입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을 드렸지만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악한 영들을 상대하는 것입니다. 즉 마귀와 싸우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와의 싸움은 마음이 하나 되지 않고서는 결코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한마음을 품지 못하고 사분오열이 되면 마귀가 교회를 장악하기 때문에 건강하게 성장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에 참 만족과 기쁨을 누리지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 되는 것은 말처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원수 마귀가 우리의 하나 됨을 목숨 걸고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제일 잘하는 짓은 서로 이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우리를 이간하고, 목회자와 성도사이를 이간하고, 성도와 성도를 이간합니다. 그래서 마귀를 헬라어로 ‘디아볼로스’라고 하는데 그 뜻이 이간자인 것입니다. 따라서 누군가가 이간할 때는 마귀의 역사인 줄 알고 그런 일에 동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교회는 ‘교향악’과 같기 때문에 서로를 인정하고 세워주면서 조화를 이루어야 합니다. 북이 소리를 아주 크게 낼 수 있지만 다른 악기의 소리에 맞추지 않으면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없고, 바이올린이 아주 소리를 여리게 내지만 다른 악기들이 조화를 맞추어 주기 때문에 아주 아름다운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입니다. 여성 찬양대원의 숫자가 많다고 소프라노 소리만 크게 낸다든지, 남성 대원이 많다고 테너소리를 크게 내면 아름다운 찬양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부자나 가난한 자나 많이 배운 자나 못 배운 자나 다 같이 어우러져 하나의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좋은 열매를 맺게 하시고, 시험이 닥칠 때에 능히 이기게 하시고, 시너지의 효과를 얻게 하시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우리 동신교회에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