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를 말한다. 누가복음 16장 1-13절 2017.7.23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를 말한다. 누가복음 16장 1-13절 2017.7.23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를 말한다. 누가복음 16장 1-13절 2017.7.232018-12-03T23:30: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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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6장 1-13절 옳지 않은 청지기를 통해서 주님의 음성을 듣는다 2017.7.23.(토)
    오늘 읽은 말씀은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한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고 있었습니다. 이를 알게 된 주인이 청지기 일을 정리하라고 하자 실직하면 삶이 힘들어질 것을 알고 하나의 꾀를 생각해 냈습니다. 그는 빚진 자들의 빚을 탕감해 주면 실직 후 그들이 자신을 잘 영접할 것이라는 생각에 빚진 자들을 불러다가 기름 백말을 빚진 자에게는 오십으로, 밀 백석을 빚진 자에게는 팔 십으로 채무증서를 바꿔주었습니다. 그런데 주인이 이렇게 한 것을 보고서 청지기를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과연 청지기가 이렇게 한 것이 칭찬받을 일인가요? 우리의 상식으로 잘 이해가 되지 않기 때문에 가장 난해한 성경 구절로 인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살펴보면 난해한 구절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몇 가지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를 설명해드리겠습니다.

    첫째로, 과연 본문에 등장하는 청지기가 옳지 않은 자인가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본문에 등장하는 청지기가 옳지 않는 자라고 하지만 혹자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들은 청지기가 주인에게 묻지도 않고 빚을 탕감해준 것은 잘못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근동 지방의 경우 주인의 재산을 책임 맡고 있는 청지기들은 월급을 받지 않고 이자와 보험료를 위한 수수료를 받았는데 그것을 자신이 취하지 않고 탕감해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청지기가 자기 마음대로 주인에게 진 빚을 탕감해 주었어도 이는 주인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끼치지 않은 것이라 잘못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당시 상황을 볼 때에 얼마든지 가능한 해석입니다.
    그런데 누가복음 16장 1절과 8절을 보면 그렇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먼저 1절을 읽겠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또 8절을 읽겠습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라.”
    예수께서 이 비유를 이야기 하시면서 이 청지기를 어떻게 소개하셨습니까?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하는 말이 주인에게 들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청지기가 주인의 재물을 낭비한다는 것은 그가 옳지 않은 자라는 뜻입니다. 즉 그가 불의한 청지기라는 뜻입니다. 더군다나 예수께서 8절에서 그를 가리켜 분명히 “옳지 않은 청지기”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청지기가 옳지 않은 청지기가 아니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그들에게 이해가 되지 않으니까 억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그들의 수준으로 끌어내려 이해하려고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의 이해를 돕기 위해 기록된 책이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의 고정관념과 상식을 깨뜨리기 위해 기록된 책입니다. 성경은 한마디로 이 세상이 말씀 한마디로 만들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시퍼런 바닷물이 갑자기 갈라져 그 가운데로 사람들이 걸어갈 수 있는 길이 생겼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처녀가 아이를 낳고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디 이뿐입니까? 성경에는 우리의 머리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성경에 이런 기적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우리의 이해를 초월하여 역시하시는 하나님을 믿으라고 기록한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을 이해시키기 위해서 성경을 해석하지 말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기 위해 성경을 해석해야 합니다.

    둘째로, 예수께서 누구에게 이 비유를 말씀하셨느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이 비유의 청중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절을 읽겠습니다.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낭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성경은 분명히 이 비유의 청중이 제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14절을 읽겠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성경은 이 비유의 청중이 바리새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바리새인에게 하셨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일반적으로는 바리새인이라고 말합니다.
    과연 예수께서 이 비유를 누구에게 말씀하신 것일까요? 제자들일까요? 바리새인일까요? 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 둘 모두에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할까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실 때에 곁에 바리새인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 뿐 아니라 바리새인들에게도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한 번에 두 마리 토끼를 잡으시기 위해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제자들에게는 각자에게 재물의 청지기적 사명이 있다는 것을 가르치신 것이고, 바리새인에게는 재물의 청지기적 사명을 온전히 감당하지 않은 것을 책망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비유를 제자와 바리새인의 입장에서 각각 들어야 합니다. 즉 우리에게 재물의 청지기적 사명이 있음을 새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재물의 청기기적 사명을 올바로 감당하고 있는지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하고 싶은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누군가의 통제를 받기 싫어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께만큼은 간섭을 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의 청지기이기 때문입니다. 시간과 물질과 몸과 재능이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왜 주인이 청지기의 행동을 칭찬했느냐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읽어서 아시겠지만 옳지 않은 청지기가 주인의 허락도 없이 채무증서를 바꾸어서 주인에게 재산상의 손실을 끼쳤는데 주인이 옳지 않은 청지기를 칭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인의 칭찬을 납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이렇게 난해한 것을 해결하기 위해 이런 주장을 내놓습니다. 당시 부재지주들은 물건을 담보로 돈을 빌려주고는 고리로 계산해서 이자를 챙겼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비 호감이었는데, 청지기가 빚을 탕감해 준 일로 주인에게 찾아가 호의를 칭찬하고 감사하므로 둘 사이의 관계를 회복시켰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즉 청지기가 채무자들과 지주의 관계를 좋게 만들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주장은 매우 설득력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해석하면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여기 주인은 하나님을 비유한 것인데 이렇게 해석하면 하나님께서 일시적으로 악한 자가 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주인이 이 청지기를 칭찬한 이유를 다른데서 찾아야 합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그의 삶에 변화가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이전까지는 지금만 생각하고 물질을 허비했는데 이제는 미래를 생각하고 그 물질을 다른 사람을 위하여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즉 주인이 청지기를 칭찬한 것은 그가 자신의 미래를 준비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자가 미련한 자입니까? 당장 눈앞엣 것만 보고 행동하는 자입니다. 어떤 자가 지혜로운 자입니까? 당장은 힘들고 어려워도 먼 미래를 위해서 준비하는 자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미래를 준비하는 자를 지혜롭다고 칭찬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들을 미래를 위해 사용할 때에 지혜롭다고 칭찬하십니다.
    여기서 우리는 이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낭비하는 불의한 종이었지만 그가 지혜롭게 행동한 그것 때문에 칭찬을 받았다는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족한 것이 많아도 이 세상에 것에 관심을 두지 않고 믿음으로 천국을 향하여 나가면 칭찬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중에 누가 돌에 맞지 않을 자가 있겠습니까? 다 허물투성이입니다. 우리의 의로 하나님 앞에 설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을 행할 자격이 없음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의인은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넷째로,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핵심이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9절의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면 알 수 있습니다. 9절을 다시 한번 읽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그 재물이 없어질 때에 그들이 너희를 영주할 처소로 영접하리라.” 예수께서 이 말씀을 어떤 상황에서 하셨습니까?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를 끝내시면서 결론 부분에서 하셨습니다. 즉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불의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씀을 정확히 이해하면 이 비유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먼저 ‘불의한 재물’은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다른 번역본을 찾아보면 예수께서 ‘불의한 재물’이라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공동번역에는 ‘세속재물’이라고 번역하고, 현대인의 성경은 ‘세상재물’로 번역하고, 영어성경 NIV에서는 ‘worldly wealth’로 번역하고 있듯이, 이 세상에서 우리가 사용하는 재물을 가리킵니다. 즉 우리가 가지고 있는 재물을 사용해서 친구를 사귀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는 말은 재물을 나눔으로써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장차 천국에서 상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즉 재물의 청지기적 사명을 잘 감당하는 자에게 장차 천국에서 큰 상이 있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것을 말씀하시기 위해 ‘옳지 않은 청지기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런 사실은 바로 이어지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와 관련하여 볼 때 더욱 분명해 집니다. 부자는 살아생전에 자신의 재물로 가난한 나사로를 구제하지 않고 혼자서만 호의호식하였고, 반면에 거지는 헌데 투성이로 부자의 대문 앞에 버려진 채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연명했지만 죽은 후에는 상황이 역전되었습니다. 즉 부자는 음부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당하게 되었지만 거지는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서 안식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사후의 세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자신을 위해서 재물을 사용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므로 장차 천국에서 큰 상을 받아야 합니다.

    다섯째로,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이렇게 결단한 동기가 무엇이었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왜 이 질문을 던질까요? 이것을 알아야 우리도 옳지 않은 청지기처럼 지혜롭게 행하므로 주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읽어서 알고 있듯이 주인이 자신의 재산을 청지기가 낭비한다는 것을 알고 그를 불러서 해고를 통보하자, 그가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모아서 빚을 탕감해주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청지기가 그렇게 결단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3-4절을 읽겠습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까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사람들이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그가 이렇게 행동에 변화가 일어나게 된 것은 자신이 지금 누리고 있는 청지기의 주인이 아닌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가 청지기의 주인이라면 자신의 자리를 빼앗길 이유가 없습니다. 그는 청지기직분을 정리하라는 말을 듣는 순간 청지기의 주인이 자신이 아님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탕감해주고 그들에게 도움 받을 생각을 하도록 만든 것입니다.
    왜 우리가 자기의 것이 아닌데도 불구하고 자신의 것이라고 착각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직도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제대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머리로는 알고 있지만 실제로 인생의 주인이 자신이라고 착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과연 우리가 인생의 진짜 주인일까요? 만일 우리가 인생의 진짜 주인이라면 왜 우리가 마음 먹은대로 되지 않습니까? 왜 우리가 원치 않는 불행을 당합니까? 겉으로는 우리가 주인인 것 같지만 실제로는 주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삶의 변화는 자신의 진짜 주인이 누구인지를 철저히 깨닫는 데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것을 깨닫지 못하면 계속해서 착각 속에 자신이 인생의 주인인 것처럼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변화가 없는 것입니다.
    제가 지금 전 세계를 다니면서 제자훈련을 할 때에 강조하고 있는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사도행전 5장 42절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왜 제가 이 말씀을 강조할까요? 사도들이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는 것을 반복하자 그들이 세상에 나가 담대히 복음을 전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당시 복음을 전하면 죽임을 당하는 상황이었음에도 평신도들이 성전 안에 있지 안하고 담대히 세상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할 수 있었을까요? 사도들이 반복해서 ‘예수가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하는 것을 훈련하자 예수께서 정말 구원자이심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라고 말하지만 그것의 의미는 사람마다 다릅니다. 단순히 구원받는 선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있는 자가 있는가 하면 삶 속에서 예수께서 구원자이심을 누리는 자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정말 그리스도이심을 깨달은 자만이 삶속에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누릴 수 있고 변화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진짜 주인은 오직 주님 한 분이심을 온전히 깨닫고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주님의 뜻대로 사용해서 천국에서 큰 상을 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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