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도 계속해서 나가야 합니다. 빌 3:11-16 2014.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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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계속해서 나가야 합니다. 빌 3:11-16 2014.1.52018-12-03T21:10:0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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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는 신년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예배를 신념감사예배라고 하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어느 누구도 살아보지 못한 새로운 해를 선물로 주신 것이 너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감사하는 마음과 더불어 또 다른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설레임입니다. 제가 어느 날 새해를 맞이하면서 이런 질문을 주님께 던졌습니다. “주님! 왜 저에게 새해와 새날을 주십니까?” 그 때에 주님께서 저에게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내가 너에게 새해와 새 날을 주는 것은 희망을 주기 위해서다. 네가 잘못한 것이 있어도 다 용서하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네게 손을 내미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해를 주신 것은 과거를 잊고 새롭게 시작하자고 손을 내미신 것입니다. 그러니 설레임이 있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도 새해에 대한 설레임이 있기를 바랍니다. 저는 오늘 읽은 말씀을 중심으로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 선물로 받은 새해를 성공적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거룩한 불만족을 갖고 있어야 합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3:12). 바울은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만 보고서는 바울이 무엇을 얻지 않았는지, 또 무엇을 이루지 못했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앞부분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울은 그리스도 때문에 다른 것들은 다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겼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과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했습니다. 그리스도만을 알기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했더라도 다 이룬 것도 아니고 다 얻은 것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겠다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아무리 주님과 동행하고 주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쳤다할지라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든 완전해질 수 없습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다 얻을 수 없습니다. 아무리 거룩해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점과 흠이 있게 마련입니다. 사도 바울을 보십시오. 얼마나 대단한 사람입니까? 억울하게 감옥에 갇혀 있는데도 빌립보 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또한 자신을 시기하는 자들이 있었지만 복음만 전파된다면 아무런 상관이 없다며 그들과 싸우지 않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성숙한 신앙인격을 가진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요?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얻은 것도 아니고 온전히 이룬 것도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은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주님을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에 완성이 있을 수 없습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다른 사람들보다 다소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고 자신처럼만 신앙생활을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분이 있습니까? 그렇게 생각하고 계시다면 정말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혹 평생 주일성수를 하고, 매일 새벽예배에 빠지지 않고, 수요예배와 금요성령집회에 참석한다고 해도 다 이루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다 이루었다고 말할 사람이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은 어느 누구도 완전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거룩한 불만족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리 주님을 잘 믿어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리 기도를 많이 해도 부족하고, 아무리 말씀을 많이 알아도 부족하고, 아무리 찬양을 뜨겁게 해도 부족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날마다 거룩한 불만족이 없으면 앞으로 전진 할 수 없습니다. 거룩한 불만족 때문에 바울처럼 더욱 더 그리스도께 잡힌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뒷일은 모두 다 잊어버려야 합니다. 13절을 읽겠습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우리의 과거에는 크게 잘한 과거와 잘못한 과거가 있습니다. 한 번 2013년을 회상해 보십시오. 잘한 것도 있고 잘못한 것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한 것이든 못한 것이든 잊어버려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잘못한 것을 떨쳐버려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잘못한 것을 떨쳐 버릴 수 있을까요? 회개하면 됩니다. 우리가 잘못을 회개하면 하나님께서 용서하시고 더 이상 기억하지 아니 하시기 때문에 과거를 잊을 수 있습니다. 이미 송구영신예배를 통하여 우리의 잘못을 회개하였기 때문에 과거를 잊어버렸습니다. 그렇습니다. 회개보다 과거의 잘못을 잊어버리는 방법은 없습니다. 회개하면 어떤 과거와도 단절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실패한 과거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전에는 비방자였고 박해자였고 폭행자였다고 고백했습니다(딤후 1:3). 그러나 바울은 그런 과거를 조금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과감히 잊어버렸습니다. 그가 자신이 범한 과거의 잘못을 완전히 잊었기 때문에 주님께 크게 쓰임을 받을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회개만 하면 과거와 완전히 결별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회개한 후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듯이 우리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어도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과거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습니다. 참으로 안타까운 사실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회개를 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 받았음에도 과거를 잊지 못하고 과거에 붙잡혀 살고 있습니다. 본인 스스로 악몽 같은 과거를 미워하지만 여전히 과거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심리학적으로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성인아이라고 부릅니다. 통계에 의하면 부모가 알콜 중독자가 되면 자식 중에 부모같이 답습할 확률이 70%라고 합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그것은 부모가 그렇게 하는 것을 싫어하면서도 자기가 미워했던 과거에서 나오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제 친한 친구 목사 중에 규장이라는 출판사에서 출간한 위장된 분노의 치유라는 책의 저자가 있습니다. 그 친구는 어렸을 때에 부친이 술만 마시면 어머니를 때리는 것을 보고 자랐습니다. 그는 자라면서 자신은 그렇게 살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장성하여 아내와 결혼하고 목회자가 되었지만 아내를 때렸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까? 주님께서 자신을 용서한 것 같이 자기의 아버지를 용서하고 과거에서 벗어났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잘한 것도 잊어야 합니다. 그러나 잘한 것을 잊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잘한 것은 눈에 보이는 열매가 있을 뿐만 아니라 칭찬이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단한 성공을 이루었을지라도 과거의 성공에 묶여 있으면 안 됩니다. 과거의 성공에 묶여 있는 한 절대로 지속적인 성공을 이룰 수 없습니다. 바울은 다메섹에서 주님을 만나 회심한 이후로 줄곧 복음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습니다. 안디옥에서 출발해서 소아시아 여러 지역과 마게도냐와 그리스, 로마, 스페인에 이르는 광활한 지역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를 세웠습니다. 그러는 동안 그는 숱한 고난을 받았습니다. 굶기를 밥 먹듯이 했고, 수없이 매를 맞았고, 옥에 갇히기도 했고, 심지어는 돌에 맞아 죽었다가 살아난 적도 있었습니다. 이처럼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도록 충성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난날의 모든 일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이룬 업적을 의도적으로 기억에서 지워버렸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상에 오르지만 그 자리를 지키지 못하는 이유는 과거의 영광을 잊어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0년 전, 세계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린 기업 중에 지금도 100대 기업에 이름을 올리는 회사가 몇 개나 되는지 아십니까? 통계에 의하면 20개도 안 된다고 합니다. 영원할 것 같았던 ‘GM’도 무너지고, ‘엔론도 무너지고, 디카를 처음 개발한 코닥도 무너지고, 게임왕국 닌텐도도 무너지고, 세계 최고의 가전 소니도 무너지고, 세계 최고의 모바일 노키아도 쇠퇴하였습니다. 왜 세계의 최고가 무너지고 쇠퇴합니까? 이런저런 이유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과거의 영광에 묶여서 시대의 요구를 무시하고 앞으로 나아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앞으로 계속 성장하기 위해서는 과거를 잊어야 합니다. 과거에 매여서 사역을 결정하면 절대로 부흥할 수 없습니다. 과거에 매이지 않고 변화하는 시대에 빨리 적응하는 교회만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왜 김경일박사가 1999년에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책을 출간했습니까? 유교가 전통을 지니치게 중시하여 시대에 뒤지는 것을 비판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가 세계적인 나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전통에 매이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2013년도에는 잘못한 것이나 잘한 것이나 모두 완전히 잊어버리고 오직 앞을 향해 전전하시기 바랍니다

     

        셋째로, 푯대를 바라보고 달려가야 합니다. 14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바울은 그가 예수를 만난 후, 바라보고 달려가야 할 푯대가 있었습니다. ‘푯대가 무엇입니까? 헬라어 원어로는 스코포스’(σκοπός)라고 하는데 눈을 고정하여 바라보는 표적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바울은 무엇을 푯대로 삼았습니까? 그것은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입니다. 즉 썩지 않는 면류관입니다. 성경은 생명의 면류관(1:12)과 의의 면류관(딤후 4:8)이 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장차 이 면류관을 쓸 것을 바라보고 앞으로 나가야 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푯대로 삼고 달려가고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주실 상입니까? 아니면 세상의 재물과 부귀와 영광입니까? 요즘은 밭을 기경할 때 트랙터나 경운기로 일하지만, 고대에는 사람들이 손에 쟁기를 잡고 밭에 이랑을 냈습니다. 이 때 손에 쟁기를 잡은 사람은 앞을 똑바로 바라보고 나아가야 곧게 이랑을 낼 수 있지 뒤를 돌아보면서 갈면 이랑이 삐뚤삐뚤해 질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상을 목표로 삼고 달려가다가도 뒤를 돌아보면 목표를 향해 제대로 나갈 수 없습니다. 즉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치 아니하니라”(9:62)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우리는 뒤로 물러가 멸망할 자가 아니요 오직 영혼을 구원함에 이르는 믿음을 가진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11:39). 우리가 사는 세상은 점점 다원화되어가고 있기 때문에 우리의 관심을 끄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푯대를 분명하게 정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푯대를 정하지 않으면 성공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눈길을 끄는 것들이 많을수록 푯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세상이 복잡해질수록 원칙에 충실해야 합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지만 삶의 변화가 없고 생기가 없는 것은 신앙의 푯대가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한 연구기관에서 미국 북동부의 8개 명문대학인 아이비리그 출신들의 장래 희망과 목표를 조사했습니다. 모두 꿈이 있었지만 단 2%만 구체적인 목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10년 뒤에 조사해 보니 그때 꿈과 구체적인 목표가 있었던 사람들 2%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나머지 98%의 사람들의 수입의 합계보다 더 많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목표라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목표가 있어야 성공할 수 있는 것입니다. 강철 왕 카네기는 사업에 실패하는 이유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집중력의 부족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힘이 세어도 에너지가 분산된다면 꿈을 이룰 수 없습니다. 물방울이 집중적으로 한곳에 떨어져야 돌을 뚫을 수 있습니다. 미약해도 계속 한곳을 목표로 집중해서 뚫으면 구멍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이 드릴의 원리입니다. 모세가 이스라엘백성들을 애굽에서 해방시켜 광야길로 인도하는 것이 어려운 일이었지만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가나안을 유일한 목표로 삼았기 때문입니다. 갈렙도 85세의 노인이 되었지만 헤브론 산지를 정복하겠다는 분명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난공불락의 산지를 정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상을 목표로 세운다고 상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상을 받기 위해서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천국의 상을 목표로 삼아도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결코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상에서 할 일 다 하고, 놀 것 다 놀고, 남는 시간으로 주의 일을 해서는 상을 받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라톤 선수들이 승리의 월계관을 얻기 위해 절제하고 혼신의 힘을 다해 달리듯이 상을 얻기 위하여 전력질주 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4-2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얻는 상은 모두 썩어질 것입니다. 없어질 것입니다. 그러함에도 그것을 얻으려고 땀을 흘립니다. 목숨을 겁니다. 하물며 썩지 않는 면류관을 얻기 위하여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올해 한 해 무엇을 푯대로 삼고 달려가려고 하십니까? 다른 것을 푯대로 삼으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푯대로 삼아야 합니다. 이것을 푯대로 삼지 않으면 신앙의 경주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넷째로, 잘한 것은 계속해야 합니다. 16절을 읽겠습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라우리는 구원 받은 후 계속해서 천국의 상을 바라보고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저런 이유로 그 길을 멈추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늙었다고, 병들었다고, 사업에 실패했다고, 영적지도자에게 실망을 했다고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가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목표를 향해서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한동안 베스트셀러에 올랐던 책 중에 소명이 있습니다. 오스키니스라는 사람이 쓴 책인데 내용을 보면 항해 선박의 길을 처음으로 열었던 위대한 모험가 마젤란의 생애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마젤란이 위대한 역사를 이루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시련과 난관을 돌파했는지를 알려주고 있습니다. 우선, 항해지도의 잘못 판독을 하여 2년 동안 계획했던 항해를 3년 이상이나 걸렸습니다. 식량이 고갈되었고, 그들이 쓰고 있든 모든 배의 장비가 마모되기 시작했습니다. 배의 일부가 파손되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스페인 사람 몇몇이 선상에서 반란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숱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마젤란 함장은 배에서 일하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한 가지 단어만 되풀이 합니다. “계속 항해하라! 계속해서 항해하라! 계속해서 항해하라!” 우리가 부르심의 상을 바라보고 천국을 향하여 가는데 어떤 일은 만나지 않겠습니까? 세상의 인생길에서도 불행한 일을 다반사로 만나는데 하물며 천성을 행하여 가는 길에 어떤 장애인들 없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계속 앞으로 전진을 해야 합니다.

    성경을 보면 바울의 동역자 중에 데마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한 때 사도 바울을 도와서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사도 바울의 서신에 그의 이름이 여러 번 나오는 것을 보면 그가 얼마나 바울의 신임을 받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자신을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다(딤후 4:10)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그토록 바울에게 신임을 받았던 데마가 세상을 사랑하여 바울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을까요? 그가 바라보던 푯대를 계속해서 바라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하던 성공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야 합니다. 우리가 계속하지 않고 얻을 수 있는 성공은 전혀 없습니다. 유명한 아프리카의 선교사 데이빗 리빙스톤의 전기를 읽어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그가 노년에 잠시 안식년을 얻어서 영국으로 돌아오자 누군가가 리빙스톤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박사님, 이제 어디로 가시는 겁니까?” 그때 그는 매우 의미심장하게 이렇게 대답했다고 합니다. 앞으로 나아가는 곳이면 어디든 갈 것입니다.” 그는 결코 하던 일을 멈추지 않고 계속해서 선교했습니다.

    여러해 전, 영국의 탐험대가 세계에서 제일 높은 산인 에베레스트의 정복을 시도했습니다. 그들은 최정상에서 약 700미터 아래에 거점을 마련하고, 그 중 말론얼바인이라는 산악대원 두 사람이 정상에 깃발을 꽂기 위해 출발을 했습니다. 그들은 열여섯 시간 정도 올라가면 정복한다는 확신을 갖고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사고 후 런던 타임즈에 이런 기사가 실렸습니다. 마지막으로 본 그들은 정상을 향해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 그들의 마지막 모습은 등반 중에 죽은 것이 아니라, 눈앞에 있는 정상을 향해 담대히 전진하는 모습이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천국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천국에 이르기 전 어디선가 죽음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가 어떤 평가를 받아야 하겠습니까? 마지막으로 본 아무 아무개는 천국을 향해 계속 전진하고 있었다라는 평가를 받아야 하지 않을까요? “아무개는 여전히 복음을 전하고 있었다”, “아무개는 여전히 말씀을 가르치고 있었다”, “아무개는 여전히 금요성령집회에 참석하여 뜨겁게 기도하고 있었다.”, “아무개는 여전히 새벽마다 기도하고 있었다.” 여러분 모두에게 계속해서 천국으로 전진하는 모습이 보여 지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아무도 걸어보지 못한 2014년을 주신 것은 하나님 나라를 위해 일할 기회를 새롭게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이런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합니다. 거룩한 불만족을 갖고, 과거의 실패와 성공을 다 잊어버리고, 푯대를 향하여 계속해서 전진함으로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고 평가받는 한해가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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