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셉을 통해 세 가지 질문에 답하다 창 37:1-4, 8-28 201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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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셉을 통해 세 가지 질문에 답하다 창 37:1-4, 8-28 2013.10.272018-12-03T20:57:37+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오셉을 통해 세 가지 질문에 답하다 창 37:1-4, 8-28 2013.10.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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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도 지난 주에 이어 요셉과 관련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경은 요셉의 이야기를 37장에서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아버지와의 관계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12아들 중에서 요셉을 가장 사랑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증거로 다른 자식들에게는 채색옷을 입히지 않고 요셉에게만 입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채색옷이 어떤 옷인지에 대하여 크게 두 가지로 나뉩니다. 하나는 전혀 칼라에 대한 의미는 없고 단지 발까지 내려오는 긴 옷이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하나는 성경의 번역대로 여러 색깔의 무늬 줄이 있는 옷이라고 주장합니다. 어떻든 야곱은 요셉을 그 어떤 아들보다 사랑한다는 증표로 채색옷을 지어서 입혀주었습니다. 이렇게 야곱이 요셉에게만 채색옷을 입혀주자 그의 형제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채색옷은 단지 자신들보다 요셉을 더 사랑한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갖는 특별한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당시 채색옷을 입는 자는 족장의 후계자가 된다는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요셉이 어느 날 자신이 꿈을 꾼 이야기를 했습니다. 밭에서 곡식 단을 묶는데 자신의 단은 일어서고 형제들의 단이 자기의 단을 둘러서 절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또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열한 별이 자기에게 절을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형제들은 그 꿈이 결국 자신들이 동생 요셉에게 절을 한다는 이야기로 알고서 더욱 더 미워하였습니다. 그래서 형제들의 마음은 시기와 분노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 야곱이 요셉에게 형들이 도단에서 양떼를 치고 있으니 그들과 양떼의 안부를 알아오라고 보냅니다. 그래서 요셉은 형들이 있는 도단까지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형제들은요셉이 멀리서 오는 것을 보고서는 그를 죽이기로 합의를 합니다. 그러나 장남인 르우벤이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기 위해 그를 구덩이에 던지자고 제안하자 그 말에 따라 그를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동생이 가지고 온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식사 도중에 눈을 들어 보니 이스마엘 상인이 약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유다가 나서서 그는 우리의 형제니 그를 죽이지 말고 이스마엘 상인에게 팔자고 제안합니다. 그래서 형제들이 유다의 말을 듣고 구덩이에서 요셉을 끌어올려서 은 이십 개에 그를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셉이 애굽으로 가게 되었다는 것이 우리가 읽은 내용의 줄거리입니다. 여러분은 요셉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요셉이 하루아침에 그의 인생이 곤두박질치는 것을 보면서 세 가지 질문을 던져보았습니다. 첫째로, 인생의 주인이 누구냐는 것입니다. 둘째로, 육신의 부모는 어디까지 자식을 도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셋째로, 우리가 고난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냐는 것입니다.

     

        첫째로, 인생의 주인은 누구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라면 한 가지 해결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모든 일이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다 이뤄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누구나 원치 않는 고난을 당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자신이 원치 않는 고난을 당하지 않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자신을 인생의 주인이라고 착각할까요? 그것은 종종 사소한 일들은 자신이 마음먹은 대로 이뤄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사고 싶은 물건을 구입한다든지, 먹고 싶은 음식을 먹는다든지 등등. 그러나 크고 중요한 일들은 자신의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생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요셉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그런데 그가 야곱을 그의 부모님으로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가 태어나고 보니 야곱의 11번째 아들로 태어난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하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뜻에 상관없이 부모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온 것입니다. 또한 요셉이 자신이 원해서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하고 팔렸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그는 형제들에게 배신당한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더군다나 자신이 종으로 팔린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그의 뜻과 상관없이 형제들에게 배신을 당하였고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요셉처럼 원치 않는 일들을 당할 수 있습니다. 천재지변으로 엄청난 손실을 입을 수 있습니다. 금년에는 태풍이 없어서 김장과 관련된 농작물이 피해를 적게 입어 오히려 산지출하 가격이 폭락하여 농부들이 울상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농부들이 원한 것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각종 사고로 장애를 입기도 하고, 사업에 실패하기도 하고, 갑자기 직장에서 쫓겨나기도 합니다. 이런 불행은 전혀 우리가 원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불행을 미리 막거나 피할 수 없습니다. 돈이나 권력이나 그 어떤 것으로도 막을 수 없습니다. 최고 강대국이라고 불리는 미국이나 일본 같은 나라도 갑자기 불어 닥치는 지진이나 자연재해 앞에 속수무책인 것을 보고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원하지 않아도 불행한 일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님을 깊이 깨달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국민 강사 김미경씨를 잘 알 것입니다. 그가 진행하는 TV 토크쇼에 나올 정도로 제법 유명한 김해영씨가 기독교방송에 나와서 강의하는 것을 잠시 들었습니다. 그녀의 초년기 인생은 너무 비참했습니다. 그녀는 첫딸로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 만으로 아버지에게 내동댕이쳐졌고, 그때 입은 상처로 척추장애를 입어 평생 134의 단신으로 살아가야만 했습니다. 아버지는 자살로 생을 마감했고, 어머니는 우울증으로 그녀를 학대했고, 학업을 제대로 마칠 수 없어서 초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14살 때 가사도우미로 사회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세상에 나가 보니 집보다 더 냉혹해서 더 이상 살기가 힘들어 인생을 접기로 하고 자살을 꿈꾸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기술교육원 크리스천 교사의 전도로 예수님을 만남으로 인생의 새로운 장이 열리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예수님을 만난 후 신체적 장애와 가난 등 모든 상황을 인정하고 자신을 사랑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죽을 힘을 다해 살아보자고 자기 자신과 약속하고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천자문은 물론이고 일어, 영어를 모두 독학으로 마스터해서 미국에서 나약대학을 졸업하고 44세에 콜롬비아대학원 사회복지 석사과정을 마쳤고 2012년에는 국민훈장 목련상과 KBS 감동대상 희망상도 거머쥐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모진 고난을 겪은 김해영 씨가 강의를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내던진 질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여러분, 제가 친 아버지에게 내동댕이쳐져서 척추장애를 입고 134cm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 저의 뜻으로 되었습니까?”여러분은 김해영씨의 질문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인생이란 자신의 뜻과 생각대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우리의 뜻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즉 인생의 주인은 우리 자신이 아닙니다. 요셉은 젊은 나이였지만 뜻하지 않게 당한 고난을 통하여 자신이 인생의 주인이 아님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요셉이 이런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요셉이 그의 형제들을 만나서 말한 것을 들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 한번 창세기 457-8을 읽어보시겠습니다.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45:7-8).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겉으로 볼 때는 형제들이 자신을 팔아서 애굽에 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자기 민족을 구원하시기 위해 자신을 먼저 그곳으로 보내셨다는 것입니다. 즉 그의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생의 진짜 주인이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첫째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인과 종은 마지막 결산할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아도 하나님의 뜻과 무관하게 살아간다면 마지막 날 하나님께 칭찬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호된 책망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예수께서 마태복음 25장에서 말씀하신 달란트 비유를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달란트 비유의 핵심은 자신이 받은 달란트대로 열심히 일하라는 것을 교훈하라는 의미도 있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달란트를 주신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그분의 뜻대로 달란트를 잘 활용하라는 것입니다.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칭찬을 받았는데 왜 1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호된 책망을 받았습니까?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이 왜 자신들에게 각각 금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를 주셨는지 알고 열심히 노력해서 각각 5달란트와 2달란트를 남겼지만 1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주인이 왜 자신에게 1달란트를 주셨는지를 모르고 주인에게 받은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두었다가 다시 되돌려주었기 때문입니다. 즉 달란트를 주신 하나님의 뜻대로 우리의 인생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상관없이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는 것은 마지막 날에 심판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잠시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마지막 날에 칭찬을 받기 위해서는 주님의 뜻대로 살기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뜻하지 않은 고난을 당하면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고난을 당하게 하실 수도 있고 당하지 않게도 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고난을 허락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시편기자는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107:10-11).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우리가 주인의 뜻대로 살지 않고 우리 마음대로 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뜻하지 않게 고난을 당할 때에는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지를 돌아보고 자신을 성찰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고난을 당하면 다른 사람을 원망하지만 우리는 고난을 당하면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둘째로, 육신의 부모는 자식을 어디까지 도울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아버지 야곱은 요셉을 유달리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채색옷을 입혀주었고, 다른 아들들은 들로 나가 고생을 했지만 야곱은 집안에서 편히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 야곱이 그의 아들에게 해 줄 수 있는 것은 여기 까지가 전부였습니다. 집안에서나 그를 보호하고 사랑할 수 있었지 밖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서는 아무런 도움을 줄 수 없었습니다. 인간관계에서 부자지간만큼 서로 도울 수 있는 관계는 없습니다. 그런데 그가 형제들에게 팔리는 것도 막을 수 없었고, 애굽에서 종살이 하는 것으로부터도 지켜 주지를 못했습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인간은 어느 누구도 절대적으로 의지할만한 대상이 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146:3-4). 우리는 다 부모님의 도움을 받고 삽니다. 그런데 우리의 부모님의 실체를 알아야 합니다. 부모님은 우리를 이 세상에 오게 하는 통로이고, 우리에게 육신적으로 많은 도움을 줄 수 있지만 그러나 우리의 모든 인생 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육신의 아버지를 의지하지 말고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실 수 있는 진짜 아버지를 의지해야 합니다. 특히 부모가 재산을 가지고 있다고 의지하면 안 됩니다. 지금까지 먹여주고 키워주신 것만으로 만족하게 생각하고 더 이상 부모님을 의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마땅히 의지해야 할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지 않고 육신의 부모를 의지하면 불행한 일이 만들어집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깨어집니다.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는 효도와 순종의 관계로 엮여져야 합니다. 그래야 성경이 말씀하시는 아름다운 부자관계가 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야곱의 하나님으로 자기 도움을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그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146:5). 그렇습니다. 돈 많은 부모를 둔 자보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자신의 도움으로 삼고 그분께 소망을 두는 자가 참으로 복된 자입니다. 부모가 자신에게 남겨 줄 유산이 없는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의지하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결국은 패망에 이르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을 절대적으로 의지해야 합니다.

     

    셋째로, 우리가 고난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어디 계시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요셉은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형제들에게 갔다가 구덩이에 던져진 후에 애굽으로 팔려갔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에서 그가 당한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이렇게 고통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계셨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가 되실 수 있습니까? 성경이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겠다(1:12)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런데 부모가 자식을 낳으면 자식을 책임지듯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이 땅에서 우리의 삶에 책임을 지십니다. 그래서 시편 4814절은이 하나님은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시니 그가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고, 마태복음 2819절은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함께 하시시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는데 왜 우리에게 고난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시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들도 이런 고민을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다윗이 깊은 고난에 빠져있을 때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22:1-2).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1:2)”신약 시대 사람인 세례 요한도 이와 같은 고민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헤롯왕에게 바른 말을 해서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옥에서 예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는 등 기적을 행하신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서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당신이 메시아 인줄 아는데 왜 밖에서는 귀신을 쫓아내고 병든 자를 고치시면서 당신을 위해 옥에 갇혀 있는 나는 돌아보지 아니 합니까? 라는 뜻입니다. 우리도 성경의 인물들처럼 우리가 어려움을 당할 때에 하나님께 이런 질문을 드릴 수 있습니다.“하나님! 당신께서는 저의 아버지이시고 저를 사랑하신다고 하시면서 왜 제가 당하는 고통을 보시고 가만히 계십니까?”혹 이런 분이 계시다면 오늘 그 답을 얻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답을 얻지 못하면 하나님과 불편한 관계가 만들어져서 그분께 가까이 나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우리가 고난 당할 때에 하나님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계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누구 말대로 우리의 고난을 해결하실 능력이 없어서 숨어계신 것일까요? 세상을 말씀 한 마디로 만드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고난을 해결하실 능력이 없어서 숨어계신다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고난 당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어디서 무엇을 하시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당할 때에 더욱 더 가까이 하시고 우리에게 주실 복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고난 당할 때에 고난 건너편에 있는 축복을 주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창세기 22장에서 아브라함이 이삭을 번제물로 드린 사건을 통하여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날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그의 아들 이삭을 번제물로 드리라고 명령을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라함은 다음 날 아침 일찍이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산으로 가서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놓고 그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로 아들을 잡으려 하였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하늘로부터 음성이 들렸습니다.“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아무 일도 그에게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아브라함이 눈을 들어 살펴본즉 한 숫양이 뒤에 있는데 뿔이 수풀에 걸려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숫양을 가져다가 아들을 대신하여 번제로 드렸습니다. 그리고 그가 만들어 낸 말이 있습니다.‘여호와 이레입니다.‘여호와 이레가 무슨 뜻입니까?‘하나님께서 준비하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100세에 얻은 아들을 번제물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고 순종할 때에 그는 마음이 찢어질 듯이 아팠을 것입니다. 아들은 짐승처럼 각을 떠서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아버지의 마음보다 더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요? 그런데 바로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위하여 숫양을 준비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할렐루야!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심한 고통 가운데 있을 때에 주님께서는 우리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영원히 안식할 천국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14:1-3)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을 아십니다. 우리가 고난을 당할 때에 더욱 더 가까이 하시고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준비하십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주인이 아니므로 원치 않는 고난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고난을 통하여 진짜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이키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을 쳐야 합니다. 또한 인생의 환난 날에 육신의 부모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진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고난당할 때에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더 가까이 하심을 믿고 낙심하지 말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상황에 있습니까? 고난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도울 힘이 없는 인생을 의지하지 마시고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건져주시는 주님만을 붙잡고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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