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구원 받는 날입니다 행16:25-34 2013.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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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구원 받는 날입니다 행16:25-34 2013.7.142018-12-03T20:34:2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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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2차 구삼행복축제’에 참여하신 분들을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고 환영합니다. 그리고 새가족을 주님께 인도하기 위해 수고하신 성도들에게 주님의 특별한 은혜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이나 교회에 다니시지만 아직 구원 받지 못하신 분은 말씀을 통해서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게 되기를 바라고, 이미 구원 받으신 분들은 구원의 터를 더욱 견고하게 하시기를 바랍니다. 인사하겠습니다. ‘오늘은 구원 받는 날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구원 받은 간수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는 빌립보 감옥의 간수였는데 그 감옥에 바울과 실라가 투옥되었습니다. 간수는 그들을 든든히 지키라는 명령을 받고 그들의 발을 착고에 채워 감옥 깊은 곳에 가두었습니다. 밤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간수는 잠을 자고 있었지만 바울과 실라는 감옥 깊은 곳에서 기도하고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전혀 뜻하지 않은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홀연히 큰 지진이 일어나더니 옥터가 움직이고 모든 죄수들의 매인 것이 다 벗어졌고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러자 간수는 죄수들이 다 도망을 간 줄로 알고 칼을 빼어 자결을 하려고 했습니다. 바로 그 때였습니다.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간수는 두려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부복하여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우리는 여기서 빌립보 감옥에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을 때에 간수가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는 질문을 던졌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갑자기 지진이 나서 옥문이 열리고, 죄수들의 매인 것이 다 풀어지는 사건이 발생한 것은 간수에게는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만난 것입니다. 그 사건이 어떻게 종결지어지느냐에 따라 살기도 하고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가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만났을 때에 고민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구원의 문제였습니다. 빌립보 간수가 인생의 최대 위기에 구원의 문제를 고민했다는 것은 그만큼 구원을 가장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로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구원의 문제는 인생의 위기를 만난 간수만 빨리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닙니다. 구원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입니다. 저는 오늘 간수가 인생의 최대 위기를 맞이했을 때에 고민했던 구원의 문제를 함께 생각하므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성경은 한 마디로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야기입니다. 즉 ‘구원’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주제입니다. 자그마치 ‘구원’이라는 단어가 성경에 530회나 등장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이 무엇이고, 그 구원을 어떻게 받는지를 정확히 알고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제가 제자훈련을 여러 팀을 하고 있는데, 매주 토요일 오전에는 김정현 집사님과 제자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김정현 집사님이 양육을 받던 중 자신이 한양대학교 시절 아르바이트를 해서 30개국을 다녀왔다며 이런 말을 했습니다. “저는 뭔가 결정하기 전까지는 수없이 탐색하지만 일단 결정을 하면 그것에 목숨을 겁니다.” 우리는 이 원리를 구원에 적용해야 합니다. 구원은 신앙생활의 기초이기 때문에 자신이 받은 구원을 소중히 생각하고 더 구원을 알기 위해 노력하고 그 구원의 완성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구원이란 무엇일까요? 국어사전은 구원을 ‘위험이나 곤란에 빠져 있는 사람을 구하여 주는 것’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즉 일반적으로 구원이란 각종 고난에서 해방되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일반적인 구원의 개념과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은 죄의 문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성경에서 말하는 구원에도 질병이나 각종 문제에서 해결 받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가장 중요하게 다루는 구원은 죄 문제로부터 해방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마 1:21)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라는 이름의 뜻 자체가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이기 때문에 예수를 믿고 구원 받는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죄에서 해방 받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기독교에서 “구원 받았습니까?”라고 묻는 것은 죄 사함을 받은 확신이 있냐고 묻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묻겠습니다. 여러분은 구원을 받았습니까? 정말 과거에 지은 죄 뿐 아니라, 현재 짓고 있는 죄와 장차 지을 죄까지 다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이 확신이 있다면 여러분은 죄에서 구원 받은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경은 죄에서 해방되는 것을 이토록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죄로부터 인간의 모든 불행과 저주가 시작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고통의 근원적인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죄가 없다면 고난도, 저주도, 죽음도, 심판도, 지옥도 상관이 없습니다. 모든 불행은 죄라는 뿌리 깊은 나무의 열매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은 무엇보다도 죄 문제를 해결 받는 구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중에는 “나는 죄인이 아니라 죄에서 구원 받을 필요가 없어”라고 생각하는 분이 계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그런 분이 계시다면 그것은 스스로 자신을 속이는 것입니다. 성경은 “만일 우리가 죄 없다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일 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단호하게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롬 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였다”(롬 3:23). 한 번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의 생각이 맞겠습니까? 고전 중의 고전인 성경의 주장이 맞겠습니까? 우리는 스스로 우리의 생각과 판단이 얼마나 자주 틀리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주장은 단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이 죄인이라고 말씀하시면 죄인인 것입니다.

      그러면 왜 성경은 모든 사람이 죄인이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인류의 첫 조상인 아담이 죄를 범하여 죄인이 되었고 모든 인간이 그의 후손으로 태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라”(롬 5:12)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아담의 후손이므로 나면서부터 죄인이고 죄 가운데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결코 죄는 죄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죄는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에게 저주와 사망이 임했듯이, 우리는 모두 죄인이기 때문에 저주를 받아 고통가운데 살다가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죽는다고 끝입니까? 아닙니다. 성경은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히 9:27)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심판을 받으면 끝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불로 소금 치듯 하는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받아야 한다(막 9:47-49)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인간은 아담의 후손이므로 죄인으로 태어나서 저주가운데 살다가 죽은 후에는 심판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든 인간의 운명인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이런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은 우리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인생의 최대 위기를 당했을 때에 던진 질문이 무엇입니까? “선생들아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그러자 이 질문에 바울이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고 대답했습니다.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면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주 예수’를 믿으라는 말이 무슨 말일까요? 예수께서 주님이심을 믿으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이런 종교가 바로 유대교입니다. 유대교도 우리가 믿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은 아직도 오실 메시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들도 우리가 믿는 여호와를 하나님으로 믿지만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친히 자신과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10:30). 또한 예수께서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죄를 사하시고, 죽은 자를 살리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등 갖가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과 주변 사람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을 믿고 있지만 아직 예수님을 하나님이심을 모르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오늘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깨닫고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구원을 받기위해서는 단지 예수께서 하나님이심을 믿는 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어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 10:9-10)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지만 이 세상에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어야지만 받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모든 사람은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으로 태어나므로 아무리 착한 일을 해도 의롭게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착한 일을 해도 여전히 죄인입니다. 원숭이가 사람이 될 수 있습니까?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남자가 여자같이 예쁘다고 여자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 여자가 됩니까? 절대로 될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죄인인 우리가 구원 받는 길은 자신의 선행으로 되지 않고 오직 한 길,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라고 말씀하고 있고,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행 4:12)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선을 행함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고 믿음으로 받는다는 것은 구원이 공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로부터 유교와 불교권에 있었기 때문에 자신이 노력해야지만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러나 구원은 우리의 힘과 노력으로는 받을 수 없고 오직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음으로써 받을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의 은혜로만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 선교사가 인도의 어느 해변 마을에 정착해서 선교활동을 했습니다. 선교사는 그 마을의 촌장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했지만 받아들이질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힌두교도들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고행을 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아왔기 때문에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복음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선교사는 포기하지 않고 촌장을 구원하기 위해 자주 만나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느 날 촌장이 선교사와 이야기를 하던 중 선교사가 자기 영혼을 위해 너무 애를 쓰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선교사님을 찾아가서 선물이라며 커다란 진주 하나를 주었습니다. 선교사는 보석에 대해 잘 몰랐지만, 보석이 크고 광택이 아름다워서 값진 보석임을 직감하고 받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촌장은 굳이 받으라고 하자 선교사는 지갑을 열어 있는 돈을 모두 촌장에게 건넸습니다. 그러자 촌장은 놀라면서 “이러면 절대로 안 됩니다!”라며 거절을 했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저도 그냥은 도저히 못 받겠습니다. 촌장님이 돈을 받으셔야 제 마음이 편합니다.” 그렇게 서로 옥신각신하다가, 마침내 촌장이 화를 벌컥 냈습니다. “정 돈을 주시겠다면 이 진주를 드릴 수 없습니다!” 그러자 선교사는 “촌장님, 혹 이 진주에 무슨 사연이라도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촌장은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드디어 입을 열어 사연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내 아들은 진주조개를 따는 아이였는데 바닷물 속으로 잠수해서 누구보다 크고 좋은 진주를 따오곤 했습니다. 그런데 하루는 조개를 따러 바다에 들어가더니 나오지를 않는 것이었습니다. 수영을 아주 잘하는 아이였기에, 곧 나오리라 생각했지만 결국은 사흘째 되어서야 바닷가에 시체가 되어 나타났습니다. 그런데 손에 뭔가를 꼭 쥐고 있었는데 그게 바로 이 진주였습니다. 깊은 곳에서 진주조개를 따서 올라오다가 그만 숨이 끊어진 것입니다. 저는 아들을 잃은 슬픔이 너무나도 컸습니다. 그래서 아들이 쥐고 있었던 진주를 제 방에 놓고 늘 보면서 아들 생각을 하곤 했습니다. 이 진주는 제 아들과 맞바꾼 것이라 저에게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이토록 소중한 진주를 돈 을 받고 팔 수 있겠습니까?” 선교사는 그 말을 듣고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촌장님이 아들의 생명과 바꾼 진주에 값을 매길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도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심으로 구원을 이루셨기 때문에 그 구원을 값주고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에 은혜입니다. 공짜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구원을 은혜로 받을지라도 반드시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죄인인지를 깨닫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란 죄에서 해방을 받는 것인데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구원 받을 생각조차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죄인인 것을 모르는 사람은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그 어떤 노력도 하지 않습니다. 산해진미가 차려져 있어도 배가 고프지 않은 사람은 전혀 음식을 손을 대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죄인인지 모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건강한 자에게는 의사가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 데 있느니라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막 2:17)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죄인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4가지 사실을 통하여 죄인임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두려움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다 두려움을 갖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한 사람도 예외 없습니다. 돈이 많아도, 건강해도, 명예와 권력을 갖고 있어도 두려움을 가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두려움이 있다는 것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두려움이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죄인이라는 증거이기 때문에 스스로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둘째로, 죄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죄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집니다. 아담으로부터 전해 내려온 죄의 본성인 원죄와 스스로 짓는 죄인 자범죄입니다. 자범죄는 생각과 말과 행동으로 짓는 모든 죄를 포함합니다. 여러분이 원죄를 인정하지 않아도 마음으로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죄인인 것입니다. 따라서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셋째로, 고통 가운데 살아가고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고통을 갖고 살아갑니다. 고통의 종류만 다를 뿐 고통 없는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물질은 풍성하지만 질병으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건강하지만 물질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식들은 효도해도 남편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남편은 잘해줘도 자식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떻든 여러분에게 고통이 있다면 죄인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고통은 죄로부터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반드시 한 번은 죽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왜 죽을까요? 늙고 병들어서 죽을까요? 아닙니다. 늙고 병들어서 죽는 것이 아닙니다. 건강한 사람도 죽고, 젊은 사람도 죽습니다. 모든 사람이 죽는 이유는 죄 때문입니다. 수를 다 누리고 죽어도, 질병으로 죽어도, 교통사고나 각종 재해로 죽어도, 그것은 죽음에 이르는 과정일 뿐 죽음의 근본적인 원인은 죄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죽는다는 것을 인정하신다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깨달아야 구원을 향해 나갈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이 죄인임을 인정하시고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이 죄인임을 부정하고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 그리스도를 거절하시겠습니까?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구원 받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중요하고 시급한 일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지만 저와 여러분의 죄 값을 대신 치러주시기 위해 인간의 몸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그분을 마음에 모신다면 누구든지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요 1:12)고 약속하셨습니다. 부모님이 열심히 믿는다고, 아내가 열심히 믿는다고 자녀가 열심히 믿는다고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각자가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자신의 삶의 주인으로 모셔 들일 때에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때요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후 6:2)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시간 마음의 문을 여시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면 누구든지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구원의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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