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바이러스로 세상을 감염시키라 행 24장 1-9절 2020.7.19.

//예수 바이러스로 세상을 감염시키라 행 24장 1-9절 2020.7.19.
예수 바이러스로 세상을 감염시키라 행 24장 1-9절 2020.7.19.2020-07-19T09:46:46+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예수 바이러스로 세상을 감염시키라 행 24장 1-9절 2020.7.19.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55

    지난주 사도행전 23장 25-35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간단히 살핀 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도록 하겠습니다.

    첫째로, 어떻게 누가가 천부장이 총독에게 보낸 편지 내용을 알고서 기록할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로 추측이 가능합니다. 하나는, 벨릭스 총독 앞에서 천부장의 편지를 읽을 때 이를 누가가 듣고서 기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천부장이 총독에게 편지를 보내기 전 미리 바울에게 보여주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두 번째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천부장이 총독에게 보낸 편지의 내용 중에는 바울이 이의를 제기하면 그가 로마법에 어긴 일로 형사 처벌을 받을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천부장이 네 번이나 바울을 죽음의 위기에서 건져주었지만 구원받지 못한 것을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절대로 구원받을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천부장이 예루살렘에서 근무하였고 그곳에서 바울을 여러 번 만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구원하시기 위해 그에게 복음을 들을 기회를 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루시아는 그런 기회를 놓쳤던 것입니다.

    셋째로, 바울이 가이사랴에 도착했을 때 어떤 마음을 가졌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가이사랴는 바울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문제로 다른 사람들과 실랑이를 벌였던 곳입니다. 즉 아가보를 비롯한 바울 팀은 예루살렘에 가지 말라고 권했지만,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했다며 단호히 뿌리치고 떠났던 곳입니다. 그런데 그가 죽지 않고 다시 가이사랴에 돌아온 것입니다. 그곳에서 곧 로마에 가서 복음을 전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곳에서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가졌던 각오를 떠올리며 로마에 가서도 그렇게 하기로 다짐했을 것입니다. 우리도 매주 모이는 이곳에서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할 것을 각오해야 합니다.

    넷째로, 바울이 로마에 가지 못하고 헤롯 궁에 2년간 머물게 된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바울은 빨리 로마에 가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곳에 2년이나 꼼짝하지 못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것은 1,2,3차 전도여행으로 만신창이가 된 바울을 회복시키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도 지금 코로나19로 해외에 나가서 사역을 못하고 있지만, 이는 더 큰 사역을 위해 준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앞에 놓인 장애물이 여러분을 더 멀리 그리고 빠르게 인도하는 촉진제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바울이 가이사랴로 이송된 지 닷새 후에 대제사장 아나니아는 몇몇 장로들과 함께 바울을 총독 벨릭스에서 고발하기 위해 더둘로를 대동하여 가이사랴까지 직접 찾아갑니다. 이미 살펴본 대로 아나니아는 주후(AD) 48년부터 59년까지 대제사장이었는데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를 탐욕스럽고 포악한 사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이틀만 대제사장이지 하나님을 이용하여 자기 배만 채우는 종교 사기꾼에 불과했습니다. 그가 대동한 더둘로는 변호사입니다. 변호사는 헬라어로 레토르라고 하는데 ‘말하다’라는 동사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rhetoric’(수사법)이라는 단어가 여기서 나왔습니다. ‘레토르’는 원래 ‘웅변가’나 ‘연설가’를 의미하는 단어입니다. 따라서 ‘더둘로’는 정통 법률가가 아니라 웅변가 또는 연설가로서 돈을 받고 자신이 알고 있는 법적 지식을 가지고 변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을 시작합니다. 3을 읽습니다. 벨릭스 각하여 우리가 당신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또 이 민족이 당신의 선견으로 말미암아 여러 가지로 개선된 것을 우리가 어느 모양으로나 어느 곳에서나 크게 감사하나이다.” 그는 먼저 벨릭스 총독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고 그의 선견으로 여러 가지 개선된 것이 있어 감사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이 아닙니다. 총독을 힘입어 태평을 누리지도 않았고 현저하게 개선된 것도 없었습니다. 당시 총독과 유대 종교지도자들과는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실은 당대 유대인 역사가인 요세푸스와 고대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유대인들이 네로 황제에게 벨릭스에 관한 탄원서를 올렸고, 벨릭스가 죽었을 때 환호했다고 기록한 것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더둘로가 벨릭스 총독에게 아첨했을까요? 그것은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총독의 마음의 문을 열어야 재판에서 승소해서 돈을 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더둘로가 벨릭스 총독에게 아첨한 것을 보면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는 직업이 변호사라 돈을 벌기 위해 총독 앞에서 아부하고 칭찬하고 있는데 우리는 무엇을 위해 아첨하고 칭찬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본업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전도는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더둘로가 직업상 벨릭스 총독을 칭찬한 것처럼 우리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상대방에게 아첨하고 칭찬해야 합니다. 우리는 복음이라는 상품을 파는 자입니다. 소비자인 비신자의 마음을 열기 위해서 그들에게 아첨해야 합니다. 우리가 망가지지 않고서는 복음을 전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장사꾼 기질을 배워야 합니다. 장사꾼은 물건을 팔기 위해 마음에 없는 말을 해서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합니다. 바울도 율법 아래에 있지 않았으나 복음을 전하기 위해 마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처럼 된 것입니다(고전 9:20). 사실 칭찬할 것이 없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금주 중에 전도대상자를 만나서 칭찬해서 복음을 전하는 일에 성공하기를 바랍니다.

     

    4-5을 읽습니다. 당신을 더 괴롭게 아니하려 하여 우리가 대강 여짜옵나니 관용하여 들으시기를 원하나이다 우리가 보니 이 사람은 전염병 같은 자라 천하에 흩어진 유대인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요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 더둘로는 총독에게 더 폐가 되지 않도록 짧게 말할 테니 너그럽게 들어달라며 입을 열기 시작합니다. 왜 더둘로가 이렇게 말했을까요? 이것은 종교적 사건이기 때문에 벨릭스 총독이 별로 관심을 갖고 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잠깐이면 된다고 했기에 무슨 말을 하는지 듣고자 했을 것입니다. 이로 보건대 더둘로는 천부적으로 언변술이 뛰어났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바울을 어떻게 고소했습니까?

    바울을 전염병과 같은 자라고 했습니다(5). 당시에도 다양한 병명이 있었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병명만 해도 여러 가지입니다. 예를 들어 중풍병도 있고, 혈루병도 있고, 간질병도 있고, 문둥병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더둘로는 바울을 전염병과 같은 자라고 했을까요? 누구든지 전염병의 특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염병은 전염이 가장 빠릅니다. 한 지역에서 발생하면 삽시간에 온 세상으로 퍼져 나갑니다. 성경에도 다윗의 범죄에 대한 심판으로 하루에 칠만 명이나 전염병으로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대상 21:14). 1347-1350에 걸쳐 유행한 페스트로 유럽에서만 2000만에서 3500만 가량의 희생자가 있었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이는 당시 인구의 30-40%에 해당합니다. 또한 1918년 스페인 독감으로 유럽에서 2000만 명이나 죽었습니다. 요즈음 코로나19로 많은 사람들이 불안해하고 있습니다. 중국 우환에서 시작된 지 불과 몇 개월 만에 전 세계로 번졌고, 확진자가 19일 현재 13,922,089명이고, 우리나라는 약 1/1000에 해당하는 13,700명입니다. 앞으로 백신이 개발되기 전까지는 급속도로 번져나갈 것입니다. 더둘로는 전염병이 이렇게 급속히 번지는 특성이 있으므로 빨리 바울을 죽이지 않으면 유대뿐 아니라 로마제국에 다 번지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놀라운 사실은 더둘로의 말대로 바울은 신속히 전 세계에 다니며 복음을 퍼트렸습니다.

    우리도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바이러스를 전염시키는 자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와 관련하여 어떤 말을 듣고 있지 않다면 그리스도인으로서 제대로 살고 있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저는 군대에서는 ‘새끼 예수’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젊은 시절에는 ‘예수님에게 미친자’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세상을 통치하시러 오시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빵의 문제를 해결하시기 위해서도 오시지 않았습니다. 인권운동이나 노동운동하러 오신 것도 아닙니다. 오직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증거하지 않으면 복음을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면 믿을 수 없고, 믿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복음에 대한 반응이 한 사람의 운명을 영원히 결정하므로 기회가 있든지 없든지, 상대방이 복음을 듣든지 않든지, 열매가 있든지 없든지, 전파해야 합니다. 예수 바이러스로 세상을 감염시켜야 합니다.

    유대인들을 다 소요하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5).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곳마다 크고 작은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더둘로가 말한 ‘소요’는 종교적인 문제로 분쟁하거나 다투는 것을 뜻하지 않고, ‘폭동’이나 ‘반란’을 의미합니다. 즉 바울이 단지 종교적인 문제로 분쟁을 일으키는 정도가 아니라 폭동과 반란을 일으키는 자라는 것입니다. 또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했습니다(5). ‘이단’으로 번역된 헬라어가 ‘하이레시스’인데, 여기서 ‘이단’이라는 ‘heresy’가 나왔습니다. 더둘로는 바울을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라고 했습니다. 당시 유대에는 스스로 메시아라고 주장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로마에 대항하는 일들이 번번이 일어났습니다. 벨릭스가 총독 재임 기간에도 로마에 대항한 암살집단들이 있었고, 애굽인에 의해 일어난 반정부 소요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사렛 이단의 우두머리이기 때문에 그를 따르는 나사렛 무리들이 언제든지 무장봉기를 일으킬 수 있다는 것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또 성전을 더럽게 하려고 했다라고 했습니다(6). 더둘로는 벨릭스 총독이 종교적인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성전을 더럽혀도 로마법에 위배 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더럽히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이를 말한 것은 바울이 로마법 뿐 아니라 유대법으로도 처형을 피할 수 없는 중죄인이라는 것을 설득하려고 한 것입니다.

    더둘로가 이렇게 바울을 전염병과 같은 자라 하고, 유대인을 다 소요하는 자라 하고, 나사렛 이단이라 하고, 성전을 더럽히려 했다고 고발한 것은,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총독 빌라도에게 고발할 때 신성 모독죄로 고발하지 않고 ‘자칭 유대인의 왕’이라고 하여 황제를 대적하여 반란을 일으키는 죄인으로 고발한 것과 그 맥을 같이합니다. 그렇습니다. 더둘로는 바울을 정치범으로 몰아서 예수님처럼 로마법에 따라 십자가에 처형시키기 위해 거짓 고소를 한 것입니다.

     

    그러자 더둘로의 고소에 유대인들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7-9절입니다. “당신이 친히 그를 심문하시면 우리가 고발하는 모든 일을 아실 수 있나이다 하니, 유대인들도 이에 참가하여 이 말이 옳다 주장하니라.” 더둘로의 거짓 변론에 유대인들이 옳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유대인들은 1절에서 알 수 있듯이 대제사장과 어떤 장로들입니다. 사실이 아닌데도 옳다고 동조하는 자들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하십니까? 거짓에 동조한 자들을 향해 분노가 치밀어 오릅니까? 그러나 이런 모습이 바로 우리의 모습일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어떤 것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때에 객관적으로 하지 않고, 내 편이냐 네 편이냐로 판단하려는 습관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더둘로의 주장이 모두 거짓인 것을 알고 있었지만, 같은 편이기 때문에 옳다고 동조한 것입니다. 이번 고 박원순 시장 성폭행 사건을 봐도 알 수 있지 않습니까? 성추행은 불법인 것을 알고 있지만, 서울 시청 6층 사람들과 민주당 사람들은 전 박시장 편을 들고 피해자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피해자라고 하지 않고 피해 호소인이라고 하다가 비판이 거세지자 피해자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에서는 이렇게 해도 그리스도인은 내 편과 네 편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판단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더둘로에 대해 생각하고 마치겠습니다. 제가 지난주에는 천부장 글라우디오 루시아에 대한 생각이 어떻게 변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이전에는 바울을 죽을 위기에서 여러 차례 건져주었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이번에는 어리석고 불쌍한 자로 생각하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더둘로는 천부장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더 어리석고 불쌍한 자입니다. 그는 수사학으로 무장한 웅변가였습니다. 그의 겉모습은 품위 있고 고상하고 지성인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가 변호사가 되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많이 했겠습니까? 돈도 많이 썼을 것이고, 시간도 많이 투자했을 것이고, 고생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오직 돈 때문에 의뢰인이 시키는 대로 죄 없는 사람을 죄 있는 자로 만들어 죽이려고 거짓을 말했습니다. 그러니 그가 얼마나 불쌍한 사람입니까? 흥미로운 사실은 더둘로는 ‘거짓말쟁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마귀의 뜻이 ‘이간자, 거짓말쟁이’입니다. 그런데 더둘로가 거짓 주장을 했다는 것은 마귀의 종으로 살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수고해서 얻은 돈, 지식, 명예를 더둘로처럼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거짓 증언이 아니라 진리를 증언하는데 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얼마를 살겠습니까? 길어야 100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세상으로 끝이 아니라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자들입니다. 영원한 삶에 오점을 남기지 않기 위해 잠시 사는 이 세상에서 거짓을 말하지 않고 진리인 복음을 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