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이름을 사용해보세요 행3:1-10 2018.1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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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이름을 사용해보세요 행3:1-10 2018.11.182018-12-04T00:00:1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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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본문은 성전미문에서 구걸하던 나면서부터 앉은뱅이 된 자를 고쳤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십여 년 간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었는데 한 순간 일어났을 뿐 아니라 걷고 뛰게 되었으니 얼마나 놀랐겠습니까? 앉은뱅이에게 이보다 더 큰 기적은 없습니다. 그런데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뛴 기적이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고 있습니까? 여러분에게도 이런 기적이 일어나기를 원하는 간절함이 있습니까? 아니면 단지 앉은뱅이 거지에게 일어난 기적이 자신과는 무관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같은 말씀이라도 듣는 자의 태도에 따라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들으면 기적이 일어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심지어 시험에 드는 경우도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얼마든지 기적을 베푸실 수 있다는 믿음으로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듣는 중 각종 문제가 해결되는 기적이 일어나기를 축복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도 기적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지 본문을 통하여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선천적 앉은뱅이 거지가 언제 일어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장 1절을 읽습니다. “제 구 시 기도 시간에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갈새” 여기서 성전은 헤롯 성전을 뜻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베드로와 요한이 헤롯 성전에 올라간 때를 제 구 시 기도 시간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루 세 번 기도했습니다. 오전 9시, 정오 12시, 오후3시입니다. 제 구 시는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오후 3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의 저자는 왜 굳이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는 기적이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일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기도와 기적은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즉 기적하면 기적이 일어난다는 것을 교훈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기도하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과 대화이기 때문입니다. 말씀 한 마디로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과 대화하는데 기적이 일어나지 않겠습니까? 따라서 기적을 원한다면 하나님과 대화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로 누구와 대화하는 시간이 많습니까? 하나님보다는 사람과 대화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습니다. 그런데 사람과 대화를 나누는 곳에는 아무런 기적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자동적으로 기적을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적은 기도하는 곳에만 일어납니다. 정말 하나님께서 살아계신 것을 믿는다면 그분과 친밀하게 대화하므로 날마다 기적속에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눈여겨보아야 할 단어가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제 구시 기도시간에 성전에 올라갔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올라갔다’가 습관적인 행동을 나타내는 동사라는 것입니다. 즉 그들은 기도하는 시간이 되면 어김없이 기도하러 성전에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기도하는 습관을 가졌기 때문에 기도하였고 기도하는 시간에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기 때문에 성령 안에서 무시로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기도는 ‘무시기도’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정시기도’도 있습니다. 따라서 시간을 정해놓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기도하는 습관만큼 복된 것은 없습니다. 어떤 습관을 갖느냐에 따라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기도하는 습관은 영원히 성공하는 습관입니다. 특별한 때만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삶이 기도가 되어야 하고 기도가 삶이 되어야 합니다. 기도하는 습관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성공합니다. 기도하는 가정과 사업체와 교회와 국가는 망하지 않습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반복적으로 행하는 바로 그것이 된다. 중요한 것은 행동이 아니라 습관이다.”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 중에 유독 유대인들이 많은 것은 그들이 기도하는 습관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 성지 순례 갔을 때에도 유대인들이 머리에 키파(빵떡 모자)를 쓰고 서서 기도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작년에 이스라엘에 D3제자훈련세미나를 인도하러 가서 일부러 회당에 찾아갔을 때도 남자들이 열심히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신선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기도하러 가다가 성전에서 앉은뱅이가 구걸하는 것을 보고서 어떻게 했습니까? 3-4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예루살렘 성전에는 동서남북 사방으로 문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쪽에 있는 문을 가리켜 미문(美門)이라고 불렀던 것은 그 문이 예루살렘 성전의 문들 가운데 가장 아름다웠기 때문입니다. 왜 동쪽문이 가장 아름다웠을까요? 역사가 요셉푸스에 의하면 그 문이 고린도에서 나오는 황동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토록 아름다운 문 앞에서 날마다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된 자가 구걸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은 성전에 오르내리며 앉은뱅이 거지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을 것입니다. 사실 베드로와 요한도 과거에는 날마다 성전에 오르면서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고서 눈살을 찌푸리며 그냥 지나갔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냥 지나가지 않았습니다.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고서 “우리를 보라”고 외쳤습니다.
    왜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 구걸하던 거지를 보고서 ‘우리를 보라’고 했을까요? 시선이 바뀌지 않으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앉은뱅이 된 자는 날마다 땅만 보면서 구걸했습니다. 그러나 땅만 보라보면 아무런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땅에서 나지 않고 위로부터 나오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사물을 바라보는 관점이 있습니다. 즉 생각의 틀이 있습니다. 기적을 원한다면 생각의 틀을 바꿔야 합니다. 즉 ‘이 세상만 바라보던 눈’이 ‘하늘나라를 바라보는 눈’으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에게 집중하던 시선을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백성들이 40년간 광야생활을 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농사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다른 나라와 무역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40년간 광야에서 수백만 명이나 되는 사람들이 어떻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날마다 위로부터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들의 관점을 바꾸기 위해서입니다. 즉 땅만 바라보지 않고 하늘을 바라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이 세상을 살아가지만 삶속에서 자주 하나님의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아직도 관점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데 여전히 땅만 바라보고 이 세상의 방법으로 살아가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관점을 바꿀 수 있을가요? 사실 우리의 관점을 바꾸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관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고 오랜 세월을 통해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관점을 깨기 위해서는 날마다 노력해야 합니다. 육에 속한 것에만 관심을 가지지 말고 영에 속한 것에 관심을 갖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을 훈련하는 것이 바로 ‘매일큐티’입니다. 매일 큐티는 세상만 바라보는 시선을 하늘을 향하게 합니다. 우리가 하늘을 바라보는 습관을 가지므로 영에 속한 자가 될 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와 기적으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앉은뱅이 거지가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자 그들이 뭐라고 했습니까? 6절을 보십시오.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가끔 시장이나 전철 입구에서 한 푼 달라면서 구걸하는 것을 봅니다. 처음에는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어 동전 몇 닢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그런 사람이 너무 많을 뿐더러 멀쩡한 사람이 구걸하기 때문에 대부분 모르는척하고 그냥 지나갑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처음에는 앉은뱅이 거지를 불쌍히 여겨서 동전 몇 닢을 던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항상 성전 미문에 앉아서 구걸했기 때문에 시선조차도 주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을 하였습니다.
    평소 그냥 지나쳤던 베드로와 요한이 어떻게 이번에는 앉은뱅이 거지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고 명령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오순절에 성령의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베드로는 평소 예수께서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고 말씀하신 것을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알고만 있었지 실제로 사용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충만을 받자 예수의 이름을 사용할 생각을 가졌고 이를 실제로 사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성령충만을 받으면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게 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성령은 예수를 증언하시는 영이므로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어 예수의 이름을 자주 사용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충만과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비례합니다. 따라서 예수의 이름을 자주 사용하지 않는 것은 성령 충만하지 않다는 증거고, 자주 사용한다면 성령 충만하다는 증거입니다. 성령 충만하므로 자주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여 날마다 기적을 체험하며 살아가기를 축복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 거지를 향하여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나면서 앉은뱅이 된 자가 치유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40년 동안 한 번도 일어나보지 못했던 자가 일어나 걷고 뛰기까지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뛰면서 하나님을 찬미한 것으로 보아 아마 영혼의 구원도 받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는 곳에는 구원이 일어납니다. 무엇보다도 예수의 이름을 듣고 믿는 자가 구원을 받습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오래 전에 면목동에서 부모와 형과 형수와 조카 등 일가족 5명을 죽이고 암매장한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그 범인이 이효상인데 그가 명문교회 박효진 장로님의 전도로 예수를 영접했습니다. 그러자 천국에 대한 확신을 갖고 전도하고 찬송을 부르며 천국에 입성을 했습니다. 어떻게 자기 가족까지 죽인 살인마가 구원을 얻을 수 있었습니까? 그가 예수의 이름을 듣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인육을 먹던 지존파 중 한 사람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면서 주님을 찬양하였습니까? 그가 사랑이 교회 이재명 집사의 전도를 받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이름을 듣는 대상만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는 자도 구원을 받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 10:13)고 말씀하고 있고,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시 50:15)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이름을 듣고 믿는 자만 아니라 그 이름을 부르는 자도 구원을 받습니다. 한마디로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 총체적인 구원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얼마나 예수의 이름을 자주 사용하고 있습니까? 예수의 이름을 부르는 것과 인생의 성패는 비례합니다. 많이 사용하면 성공적인 인생을 살게 될 것이고, 적게 사용하면 실패한 인생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라고 주신 것은 백지수표를 주신 것과 같습니다. 어떤 문제든지 예수의 이름을 사용하면 하나님께서 일하십니다. 이 세상에 예수의 이름으로 해결되지 못할 문제는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앉은뱅이를 향하여 예수의 이름만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 이름을 사용하면서 함께 행한 일이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를 치유하기 위해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령만 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앉은뱅이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자 벌떡 일어나고 뛰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만일 나사렛 예수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만 하고 앉은뱅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지 않았다면 아마도 일어나 걷고 뛰는 기적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기적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예수의 이름만 사용하지 말고 기적에 합당한 행동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은 기도할 뿐 아니라 기도한 대로 행할 때에 일어납니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입니다. 기도하지만 행동하지 않는다면 실제로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가서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 ‘2030123007000’의 비전을 세우고 이것이 이루어지기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비전이 이루어지도록 기도만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이 일에 함께 자들을 훈련해서 지구촌 곳곳에 세우고, 나라별로 훈련교재를 번역하여 보급하고, 각 나라에서 D3로 제자 삼는 사역이 일어나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너무나 많은 이름이 있습니다. 사람의 이름만 70억 개가 넘습니다. 그러나 그 많은 이름을 다 합쳐도 예수 이름 하나만 못합니다. 왜냐하면 오직 예수의 이름만이 살리는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이름을 많이 사용하심으로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하나님의 구원을 날마다 삶 속에서 경험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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