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의 부활,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마 28:6, 11-15절 2013.3.31

//예수의 부활,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마 28:6, 11-15절 2013.3.31
예수의 부활, 반드시 믿어야 합니다. 마 28:6, 11-15절 2013.3.312018-12-03T20:26:3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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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예수께서 사망의 권세를 박차시고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입니다. 부활절은 기독교 절기 가운데 가장 의미 있는 날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종살이 하던 우리를 해방시켜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새 길을 열어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이렇게 모든 인류를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시키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지 않을뿐더러 이것을 공격하는 자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이들가운데 ‘프랭크 모리슨’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영국의 저널리스트였는데,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중 마지막 며칠에 대해 지나치게 어리석은 믿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부활을 비롯한 여러 가지 사건들이 한낱 신화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밝혀내기 위해 자그마치 10년 동안이나 연구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런 과정에서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은 거짓이 아니라 사실임을 발견하고 글을 썼는데 그것이 바로 “누가 돌을 옮겼는가?”(Who moved the stone?)입니다.

      또 벤허라는 작품을 쓴 ‘류 왈레스’도 그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철저한 무신론자였는데 사람들이 기독교라는 굴레에 묶여 자유롭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불쌍하다고 생각하여 기독교의 멍에로부터 그리스도인들을 해방시켜 주겠다는 생각으로 기독교를 반박하는 책을 저술하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수없이 많은 오류와 거짓이 쏟아져 나올 것을 기대하며 온갖 의심의 눈으로 성경을 탐독했습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을 다 읽었지만 자신이 기대하는 오류는 단 하나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말씀대로 모든 것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 자신의 의심에 회의를 품기 시작했고 맹목적으로 적개심을 품은 것을 부끄러워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약성경을 읽어가면서 인류의 죄를 짊어지기 위해 죄 없으신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장면에서 그만 무릎을 꿇고 예수님을 영접하면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저의 구세주입니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사람이 많지만 대표적인 사람은 문화관광부 초대장관을 지낸 이어령씨 입니다. 그는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의 최고의 지성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믿기 2년 전에, “나는 왜 예수를 안 믿는가?”라는 주제로 강의를 하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2년 후 미국에서 검사로 잘 나가던 딸 이민아씨의 문제로 예수님을 영접하고 “나는 왜 예수를 믿어야 했나?”라는 주제로 간증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에서 영성으로라는 책을 써서 문서로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예수님의 부활을 축하하는 자리에 앉아 계시지만 아직도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에 대해서 반신반의하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다른 때보다 제 설교에 더 집중하셔서 ‘프랭크 모리슨’이 10년간 연구해서 얻은 것과 동일한 결과를 얻게 되기를 바라고 ‘류 왈레스’가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나의 구세주이십니다”라고 고백한 것과 동일한 신앙고백을 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언제 어디서 어떻게 태어나셨고, 어떻게 성장하셨고, 어떻게 사역을 하셨고, 어떻게 돌아가셨고, 돌아가신 후 어떤 일이 일어났고, 지금은 어디에 계시고, 장차 어떻게 하실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주장대로 예수께서 위대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려고 애를 쓰기도 하지만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나셨다든지 우리의 죄를 사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은 좀처럼 쉽게 믿으려고 하지를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에서 어떤 부분은 믿고 어떤 부분은 믿지 않는 것이 과연 성경을 대하는 바른 태도일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은 구약 39권 신약 27권 합계 66권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성경이 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신약성경은 이미 오신 예수 그리스도와 다시 오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장차 메시아가 나타나 온 인류를 구원해 주신다는 약속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신구약성경의 내용입니다. 이처럼 신구약성경은 철저히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성경은 서로 뗄래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마치 세로와 가로로 잘 짜여진 천과 같습니다. 그런데 성경의 어느 부분은 받아들이고 어느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마치 가로와 세로로 짜여진 천을 갈기발기 찢는 것과 같습니다. 찢겨진 천은 천으로서 제 기능을 상실하게 되듯이 성경을 이렇게 부분적으로만 믿으면 성경을 통하여 받을 수 있는 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학창시절 교과서를 가지고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데 교과서 중에서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고 어떤 부분은 받아들이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그것이 사실인지 아닌 지, 또 옳고 그른지를 묻지도 않고 무조건 교과서에 적힌 내용을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였던 교과서가 어떻게 되어가고 있습니까? 바뀌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한 때 무비판적으로 진화론을 받아들였지만 지금은 창조과학자들에 의해 전혀 과학적 근거가 없는 이론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교과서의 내용이 바뀐다는 것은 과거에 주장한 것이 틀렸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어떻습니까? 기록된 지 수천 년이 지났지만 한 번도 내용이 바꾼 적이 없습니다. 또 한 군데도 틀렸다고 수정한 적도 없습니다. 이것은 성경이 하나도 틀림이 없다는 것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성경의 주장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사람들이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을 믿지 않는 것일까요? 거기에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어떻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런 질문을 제기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에게는 죽은 자를 다시 살릴 수 있는 능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일은 인간세계에서나 불가능한 일일 뿐, 신적인 세계에서는 얼마든지 가능한 일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인간세계에서도 개인의 능력차에 따라 다릅니다. 어떤 사람이 할 수 없지만 어떤 사람은 할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하물며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못하실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사람들은 예수께서 죽으신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고 하니까 예수께서 스스로 다시 살아나신 것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은 스스로 살아나셨다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기 때문에 그가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을 살리신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는다”(롬 10:9)라고 말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셨다는 것은 예수께서 스스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살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이 세상을 말씀 한 마디로 창조하신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죽은 자를 살리시는 것은 식은 죽을 먹는 것보다 더 쉬운 것입니다. 그동안 죽은 자는 절대로 다시 살아날 수 없다는 생각에 예수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지 못하신 분이 계시다면 오늘 그 생각의 빗장을 제끼시고 예수의 부활을 믿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육안으로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직접 눈으로 보고 만져야 믿으려는 본능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어느 시대를 불문하고 마찬가지입니다. 하루는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는데 마침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도마에게 찾아가서 “우리가 주를 보았노라”라고 하자 도마는 믿을 수가 없다며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요 20:25)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두 눈으로 보고 만져봐야 믿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입니다. 직접 두 눈으로 보여주는 것보다 확실한 방법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만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고 만질 수 없어도 존재하는 것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꼭 보고 만져야만 믿을 수 있다고 하면 안 됩니다. 보고 만지지 않고서도 우리는 얼마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보여달라는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요 21:29)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보지 못해서 믿지 못하겠다고 하지 말고 믿음으로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받아들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을 보지 못했지만 그것을 믿을 수 있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무엇보다 빈 무덤입니다. 예수께서 부활하시고 나서 가장 먼저 무덤에 간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입니다. 그들이 무덤에 가서 보니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습니다. 로마군인들이 무덤의 문을 굳게 지키고 있었는데 어떻게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을까요? 당시 그와 관련하여 유대사회에는 두 가지 이야기가 떠돌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제자들이 와서 훔쳐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둘 중에 어떤 말이 믿을만할까요?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던 자들은 로마 군인들이었습니다. 당시 경비병들은 네 명이 한 조로 편성되어 운영되고 있었습니다. 즉 혼자서 지키지 않고 네 사람씩 24시간을 교대로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예수님의 제자들이 시신을 훔쳐갈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예수님의 시신을 훔쳐갔기 때문에 무덤이 텅 비어있었다고 주장하는 것은 거짓입니다. 성경은 군병들이 예수께서 부활하신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돈을 받고 백성들에게 거짓말을 퍼뜨렸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빈 무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것에 대한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인도에서 노방 전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이슬람교도 한 사람이 설교 중에 이렇게 외쳤습니다. “우리는 당신네 기독교인들이 못 가진 것 한 가지를 가졌소.” 그러자 스탠리 존스 선교사가 물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오?” “우리는 메디나에 가면 마호메트의 시체가 들어 있는 관이 있어서 마호메트란 사람이 정말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소. 하지만 당신네들이 믿는 예수의 무덤에는 빈 무덤밖에 볼 수 없다는 것이요.” 그러자 스탠리 존스는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 기독교와 당신이 믿는 종교와 다른 점이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에게는 빈 무덤밖에 없는 것이오.” 그렇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께서 부활하신 결정적인 증거입니다. 그러나 ‘빈 무덤’만이 부활의 증거가 아닙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이 수없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은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를 비롯하여 베드로, 열두제자, 오백여 형제 등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 그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부인하고 떠났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모두 순교를 했습니다. 한 두 명도 아니고 어떻게 12명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다고 죽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듯이 자신들도 부활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사실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왜 우리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어야 할까요? 여기에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구원의 문제가 달려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신 것, 즉 복음을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살아나신 것을 믿어야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모든 사람이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죄인이고, 죄인이기 때문에 죽어야 하고, 죽은 다음에는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합니다. 이런 운명에 벗어날 수 있는 길은 하나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죄 없는 사람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모든 사람이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이기 때문에 죄인이 아닌 사람은 한 사람도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친히 동정녀의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님이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셨기 때문에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지 않으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셨다는 말은 단순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났다는 말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인류 역사가운데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경우는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염을 하던 중 일어나기도 있고, 어떤 사람은 관 속에 넣었는데 살아나기도 합니다. 성경에도 죽은 자가 살아난 기적이 여러 군데 기록되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수넴여인의 아이가 죽었다가 살아났고, 사르밧과부의 아들이 죽었다가 살아났습니다. 신약시대에도 나인성과부의 아들이 죽어서 관에 넣고 장지를 향해 가는 도중에 살아났고, 나사로는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썩은 냄새를 펄펄 풍기고 있었지만 살아났습니다. 또 예수께서 부활하시자 무덤에 있던 자들이 살아났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것을 믿어도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혔지만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믿어야만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사하신 것과 관련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이 우리의 죄 때문인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그러난 장사한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시지 않았다면 그는 누구를 위하여 죽은 것이겠습니까? 그것은 예수님의 죄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 때문에 돌아가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라도 우리가 먹지 않으면 화중지병(畵中之餠)입니다. 즉 그림의 떡입니다. 아무리 멋있는 옷이라도 우리 몸에 걸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리 비가 와도 물통의 뚜껑을 열어놓지 않으면 물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지 보석이라는 말이 있는 것이 아닙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다시 살아나셨을 지라도 그것을 믿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마귀는 우리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그것을 방해할 것입니다. 마귀는 아마도 여러분의 귀에 이렇게 속삭일 것입니다. “그냥 교회나 다니면 되지 그런 것을 뭣하러 믿어”, “이런저런 일로 골치 아픈데 뭘 그런 것을 가지고 신경 써!” 그러나 이러한 생각을 물리치시고 오늘 이 시간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아 구원 받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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