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성전 가르침의 의미를 살피다 눅 21장 37-38절 2018.4.22

//예수님의 성전 가르침의 의미를 살피다 눅 21장 37-38절 2018.4.22
예수님의 성전 가르침의 의미를 살피다 눅 21장 37-38절 2018.4.222018-12-03T23:46:1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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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어린 시절에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부모님과 함께 사셨습니다. 30세쯤 되시자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이기신 후에 본격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가르치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주로 어디서 가르치셨는지 아십니까?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셨을 뿐 아니라, 들판, 갈릴리 호수가, 선상에서, 산상에서, 예수님을 초청한 사람의 집 등 다양한 곳에서 가르치셨습니다(마 4:23).
    그런데 본문은 예수께서 어디에서 가르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전’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성전은 예루살렘에 있는 헤롯 성전입니다. 즉 예루살렘성전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실 때에 어떤 상황에 계셨는지 아십니까?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예수께서 어떤 상황에서 성전에서 가르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두 곳만 찾아보겠습니다. 첫째로, 마태복음 16장 21절입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둘째로, 누가복음 13장 33절입니다.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우리는 두 구절을 통하여 예수께서 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죽으시기 위해서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가르치신 때는 곧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상황이었습니다.
    그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가셔서 가르치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가르침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는 것을 어떻게 생각하셨는지는 성경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우리말로 선생이라는 뜻을 가진 ‘랍비’라고 불리셨습니다(요 20:16). 또한 마태는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 중 가장 먼저 가르치는 사역을 소개하고 있습니다(마 4:23; 9:35). 그리고 예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당부하셨습니다(마 28:19-20).
    왜 예수께서 이토록 가르치는 것을 중요하게 다루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세 가지 사역의 구조를 살펴보면 엿볼 수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세 가지 사역을 하셨다고 소개하면서 그 순서를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마 4:23, 9:35). 그런데 예수께서 친히 이 세상에 전도하러 오셨기 때문에(막 1:38) 순서상 전도가 맨 앞에 나오는 것이 맞습니다. 그런데 마태는 세 가지 사역 중 맨 앞에 전도가 아니라 가르치는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도 다음에 치유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런 순서가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전도를 위해 먼저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또한 전도할 때에 치유가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하기 위해 먼저 가르침이 있어야 하고, 전도를 능력있게 하기 위해 치유가 따라야 합니다. 가르침이 단지 가르침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가르침은 반드시 전도로 이어져야 합니다. 가르침을 받을 때에 많은 사람이 전도할 수 있고 전도를 능력있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께서 성전에서 무엇을 가르치셨는지, 그리고 그 대상이 누구였는지를 밝히고 있지 않습니다.
    먼저 무엇을 가르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앞서 살펴본 누가복음 20장 1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 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여기서 우리는 예수께서 복음을 가르치셨다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복음은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당시는 아직 예수께서 아직 십자가에 죽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복음을 전하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자신이 곧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시지만 부활하실 것을 가르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에서 날마다 가르치신 것은 자신이 곧 십자가에 못 박혀죽으시지만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입니다. 제가 평소 사도행전 5장 42절을 읽으면서 궁금하게 생각하던 것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사도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을까?”라는 것입니다. 즉 사도들이 어디서 이렇게 하는 것을 배웠느냐는 것입니다. 그 답이 바로 오늘 본문에 나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자신이 죽고 부활하실 것을 말씀하셨는데 말씀하신 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시자 사도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던 것입니다.

    다음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대상이 누구였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을 보면 처음부터 예수께서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이라는 사실을 아무에게나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마태복음 16장 21절을 읽습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여기서 이때란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냐”라고 물으실 때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 16:16절)라고 고백한 때입니다. 즉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신앙고백한 후에야 비로소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실 것을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그리스도인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당부하셨습니다(마 16:20).
    그런데 본문은 예수께서 어떤 자들에게 복음을 가르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38절을 읽습니다.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모든 백성이 복음을 들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을 전한 대상에 변화가 일어났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제자’에서 ‘일반백성’으로 확대된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복음은 제자들에게서만 머물지 않고 다른 자들에게도 전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먼저 복음은 구원받은 자들에게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복음을 가르쳐야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게 되고, 또한 먼저 복음을 배워야 함께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던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은 이미 구원받은 자들 안에서만 머물지 말고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성전에서 복음을 전하실 때에 백성들뿐 아니라 유대종교지도자들, 즉 원수들도 복음을 듣게 되었듯이, 원수에게까지도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죽음을 코앞에 두신 상황에서 끝까지 복음을 증거하신 모습을 보면서 이런저런 이유로 중단하였던 전도를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구령의 열정을 회복하고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기 위해 복음을 증거하고 가르치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복음이 더 이상 우리 안에만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3분복음메시지’를 계속해서 암송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복음이 믿음의 공동체를 떠나 비신자들의 삶 속으로 파고 들어가도록 반복해서 ‘3분복음메시지’를 암송해야 합니다. 우리가 ‘가서 제자 삼으라’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에 순종할 때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대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밤에는 감람원이라는 산에 가셔서 무엇을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다시 37-38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누가는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밤에는 산에서 쉬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밤에 산에서 쉬셨다’고 말씀하신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정말 예수께서 밤에는 감람 산에 가셔서 쉬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을 가본 사람은 다 알듯이 일교차가 매우 심합니다. 낮에는 매우 덥고 밤에는 매우 춥기 때문에 산에서 쉬실 수가 없었습니다. 집으로 가셔야 편히 쉬실 수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밤에 쉬시러 감람 산에 가셨다는 말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안 됩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 밤에 감람 산에 가셨을까요? 누가복음 22장 39-43절을 통해서 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서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예수께서 밤에 감람 산에 올라가신 것은 쉬시러 가신 것이 아니라 기도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과 우리의 쉼이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육체적으로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쉼으로 생각하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과 영적으로 교제하시는 것을 쉼으로 이해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기도하지 않으면 내 영혼은 안식을 가질 수 없습니다. 따라서 피곤하고 힘들어도 영적으로 안식을 얻으려면 기도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감람 산에서 기도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죽음을 앞둔 상황에서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위해 기도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기도는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는 수단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한 수단입니다. 따라서 나의 뜻을 이뤄달라고 기도하지만 그것이 주님의 뜻이 아니라면 이뤄주지 않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사실은 내 뜻보다는 하나님의 뜻대로 이뤄지는 것이 좋습니다. 따라서 현실이 자기의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아도 그 속에 하나님의 뜻이 있는 줄 믿고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런 자세로 기도하면 시험에 들 일이 전혀 없습니다. 열심히 기도하지만 종종 시험에 드는 것은 주님의 뜻을 구하지 않고 오직 자기의 뜻이 이뤄지기만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다시 누가복음 21장 37-38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나가 감람원이라 하는 산에서 쉬시니 모든 백성이 그 말씀을 들으려고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가더라.” 우리 말 성경은 ‘예수께서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산에서 쉬신 것’과 ‘이스라엘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이른 아침에 성전에 나아간 것’과 인과관계에 있는 것처럼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영어성경은 등위접속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낮에는 가르치시고 밤에는 쉬신 것’과 ‘백성들이 이른 아침에 말씀을 듣기 위해 성전에 나온 것’을 별개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 말 성경처럼 37절과 38절이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설교자의 준비와 말씀을 듣는 청중의 태도는 결코 무관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교자는 철저히 준비해야 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제가 설교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시간을 쏟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러나 제가 요즈음에 염려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전만큼 설교를 위해 기도하는 시간이 많지 않다는 것입니다. 제가 기도로 설교를 준비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저는 설교를 기도로 준비하고 여러분은 말씀을 사모하여 주님께 나아오는 역사가 매주일 일어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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