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성경해석을 본받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20:41-44절 2018년 2월 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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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성경해석을 본받아야 합니다 누가복음 20:41-44절 2018년 2월 4일2018-12-03T23:40:5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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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먼저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배경을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난주에 살펴보았듯이 예수께서 사두개인들과 부활에 대해 논쟁하셨습니다. 사두개인들이 계대결혼에 관한 성경구절, 즉 신명기 25장 5-10절 말씀을 근거로 부활이 없다고 주장할 때에 예수께서 가시떨기나무에 관한 말씀을 인용하여 그들의 주장을 반박하시자, 옆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서기관 중에서 어떤 자들이 “선생님, 잘 말씀하셨나이다”(39절)라고 예수님을 칭찬했습니다. 바로 이때에 예수께서 하신 말씀이 오늘 본문입니다.
    본문을 다시 읽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 시편에 다윗이 친히 말하였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내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 하였느니라 그런즉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라 칭하였으니 어찌 그의 자손이 되겠느냐 하시니라”(41-44절). 예수께서 그들에게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본문에서 ‘그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언 듯 보면 사두개인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바로 앞 절인 40절에서 ‘그들’이 사두개인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그들은’ 서기관들을 가리킵니다. 그것은 이와 동일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 22장 41-42절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모였을 때에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시되 너희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 누구의 자손이냐 다윗의 자손이니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잠시 생각하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누가와 마태가 예수께서 그리스도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지만 예수께서 질문한 대상이 전혀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께서 직접 바리새인들에게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고 기록하고 있는 반면, 누가는 서기관들에게 사람들이 어찌하여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이라고 하느냐고 물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 모두 그리스도에 대해 어떻게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잘못 알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성경을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서기관들이나 그렇지 않은 일반 백성들이나 모두 그리스도를 다윗의 후손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리 성경을 많이 읽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계시해주시지 않으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없습니다. 우리가 성경을 많이 알아서 예수께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저와 여러분이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바울도 에베소에 보낸 편지에서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주의 은혜를 잊지 말고 살아가야 합니다. 한순간이라도 주의 은혜로 구원받은 것을 잊으면 자신도 모르게 교만하게 되어 감사를 잃고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당시 서기관이나 백성들이 그리스도를 잘못 알고 있었을까요? 즉 그리스도를 다윗의 자손으로만 알고 있었을까요? 우리가 이를 알기 위해서는 성경에 등장하는 두 가지 언약에 대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한 가지는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맺으신 언약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말씀에 순종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삼아주시고 그들이 거하는 가나안 땅에서 쫓겨나지 않게 하신다는 언약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중앙집권적인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나라가 아니라 12지파가 각각 흩어져서 사사를 중심으로 통치하는 형태를 갖고 있었습니다. 반면에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은 모두 왕정제도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는 평안하게 지냈지만 불순종하면 그들의 공격을 받아 압제와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들이 주변국가로부터 공격받는 이유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주변 국가들처럼 왕정체제를 갖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하여 사무엘에게 왕을 세워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자가 사울입니다. 그가 처음에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겸손한 통치자였는데 점점 교만하게 되더니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크게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제사장만 제사를 드리도록 명령하셨는데 이를 어기고 자신이 드린 것입니다. 당시 블레셋이 병거 삼만과 마병 육천 명을 데리고 이스라엘을 쳐들어오자 백성들이 벌벌 떨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사무엘이 정한 기한에 와서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오지 않자 백성들이 흩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사울이 직접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전쟁할 때에 적군의 모든 것을 진멸하라고 하셨는데 좋은 것은 놔두고 그렇지 않은 것만 없애버린 것입니다. 사울이 그렇게 한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사울은 당시 주변 국가와 싸워서 이기기 위해 주변의 용병들을 많이 채용했기 때문에 용병을 관리하려면 무엇보다도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전리품을 진멸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것을 취하여 용병들에게 나눠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이토록 교만하게 행하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전쟁터에 나가서 화살을 맞게 하시고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하게 하셨습니다. 그를 이어 탄생한 왕이 바로 다윗입니다.
    다윗은 왕이지만 자신을 왕으로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자신은 왕을 모시는 종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반드시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점점 주변 국가를 정복하여 강대한 나라가 되게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다윗이 하루는 자신의 궁은 백향목 궁으로 너무나 화려한데 하나님의 법궤는 휘장에 있는 것을 깨닫고 성전을 짓기로 결심합니다. 그리고 다윗은 이런 마음을 나단 선지자에게 전합니다. 그러자 나단 선지자는 왕이 마음에 원하는 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에 하나님께서 나단 선지자에게 나타나셔서 다윗에게 언약의 말씀을 주십니다. 이 언약은 사무엘하 7장과 역대상 17장에 나와 있는데 이를 ‘다윗언약’이라 합니다. 한마디로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를 세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다윗의 후손이 와서 그 나라를 로마로부터 해방시키고 예전에 다윗이 건설했던 것처럼 왕국을 세워주기를 바라고 있었습니다. 즉 정치적인 메시아를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다윗의 후손을 통하여 영원한 나라를 세워주신다고 약속하신 것은 그런 의미로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통하여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 말씀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도록 하시기 위해 말씀하신 것이 바로 누가복음 20장 42-43절입니다. 다시 함께 읽습니다. “주께서 내 주께 이르시되 내가 네 원수를 내 발등상으로 삼을 때까지 내 우편에 앉았으라 하셨도다”(눅 20:42-43). 이 말씀은 다윗이 시편 110편 1절에서 말한 것을 예수께서 인용하신 것입니다. 다윗은 두 ‘주’를 언급했는데, 첫 번째 ‘주’는 하나님을, 두 번째 ‘주’는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자손이 되실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가 다윗의 후손으로 오시지만 그는 단지 사람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믿고 있지만 당시 유대인들은 이것을 받아들이기 매우 힘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과 같은 메시아를 기대했지 하나님께서 친히 이 땅에 오신다고는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는 자들 중에서도 그분의 신성과 인성을 동시에 인정하지 않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인성을 부정한 자들 가운데 대표적인 자들은 도케데파(도케티시즘)입니다. 그들은 유대교 전통보다는 희랍 사상의 영향을 받아서 영과 정신은 선하지만 육과 물질은 악하다는 이원론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악한 인간의 육을 입었다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즉 그리스도가 입은 육신은 그렇게 보였을 뿐이지 실제로 인간의 육신을 입은 것이 아니라고 하는 가현설을 주장했습니다. 반면에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는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자들은 ‘에비온파’라고 합니다. 에비온은 ‘가난, 빈민’이라는 뜻을 갖고 있는데 이들은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부인했습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로서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임했고 그 후 율법을 완전히 성취하여 신으로부터 메시아로 세움을 받았다고 주장했습니다. 오늘날 이들과 비슷하게 주장하는 자들이 바로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그들도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에 불과하지 하나님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성령께서도 제 삼위의 하나님이 아니라 능력으로 이해하므로 삼위일체를 부인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잠시 왜 예수께서 인성과 신성을 모두 가지신 분으로 이해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먼저 왜 예수께서 인성을 부인하면 안 될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받으려면 누군가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어야 합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에 누군가를 대신하여 죽을 수 없으므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님의 인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것을 부인하게 되므로 죄 사함을 받을 수 없고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또 왜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인하면 안 될까요? 죄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은 마귀의 자녀에서 해방되는 것과 동일한 말인데 예수께서 하나님이 아니시면 어떻게 마귀의 자녀에서 건져낼 수 있겠습니까?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신성과 인성을 모두 가지셨음을 온전히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다윗이 시편에서 말한 ‘주’를 새롭게 해석하신 것을 통하여 반드시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을 읽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대로 읽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서기관들은 성경을 가까이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르게 성경을 읽지 않았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성경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바르게 읽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어떻게 읽어야 성경을 제대로 읽는 것일까요? 예수께서 가르쳐 주신 대로 읽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 39절을 읽습니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무슨 말입니까? 모든 성경이 예수님을 증거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을 예수 그리스도의 눈으로 읽어야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수년에 걸쳐 예수 그리스도로 성경을 읽은 ‘성경이 열린다’를 저술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을 많이 읽는다고 좋은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많이 읽지만 바르게 읽지 않으면 당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 같이 성경을 곡해해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던 것처럼 안티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살펴보고 마치겠습니다. 왜 예수께서 사두개인들과 부활에 대한 논쟁을 마치시고 서기관들과는 그리스도의 정체에 대해서 논쟁을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부활을 인정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느냐 않느냐는 것은 예수의 부활을 믿느냐 믿지 않느냐와 직결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깨닫기 위해서는 반드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런 사실을 당시 유대인들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30세가 되자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죽은 자를 살리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병든 자를 고쳐주셨습니다. 그러자 제자들 뿐 아니라 백성들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예수님을 추종했습니다. 그래서 그분께서 예루살렘 성에 낙타를 타시고 입성하실 때에 2km나 되는 길에 겉옷을 벗어서 길에 깔았습니다. 그리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외치며 열렬히 환영했습니다(마 21:8-9). 그런데 왜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겠다고 호언장담했던 베드로로 뿐만 아니라 모든 제자들이 예수님을 부인하고, 환호하던 백성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을까요?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러자 그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깨닫고 주를 증언하다 모두 순교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부활과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과는 불가분의 관계에 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지 않으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할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부활하셨다고 증거하므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하도록 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렇게 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것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한 영혼이 구원을 받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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