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안식일 치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다 누가복음 14장 1-6 2017.5.21

//예수께서 안식일 치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다 누가복음 14장 1-6 2017.5.21
예수께서 안식일 치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다 누가복음 14장 1-6 2017.5.212018-12-03T23:26:4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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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수께서 안식일 치유를 통하여 말씀하시다 누가복음 14장 1-6 2017.5.21 본문은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의 지도자의 집에 안식일 식사에 초대되어 수종병 든 사람을 고치심으로 바리새인들과 논쟁하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미 살펴보았듯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심으로 바리새인들과 논쟁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닙니다. 이미 6장(1-11절)에서는 오른손 마른 사람을 고치신 일로, 누가복음 13장(10-17)에서는 18년 동안 귀신들려 펴지 못한 여인을 고치신(눅 13:10-17)일로 그들과 논쟁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면 유대교 종교지도자들과 논쟁을 하게 되고 생명의 위협을 받게 된다는 것을 알고 계심에도 안식일 논쟁을 하셨을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예수께서 자신을 하나님으로 계시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 자신을 치료하시는 분으로 계시한 것처럼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치심으로 자신이 하나님이심을 깨닫도록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자주 이사건 저사건을 허락하시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고 구원자이신 것을 깨닫게 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이제 본문을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1,2절을 읽겠습니다.
    “안식일에 예수께서 한 바리새인 지도자의 집에 떡 잡수시러 들어가시니 그들이 엿보고 있더라 주의 앞에 수종병 든 한 사람이 있는지라.”
    일반적으로 유대인들은 평일보다 안식일 날 식탁을 더 풍성하게 차리고 남을 초대하여 대접하는 풍습을 갖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하는 것이 더 경건하고 율법에 충실한 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그러한 유대인의 관습에 따라 한 바리새인 지도자가 예수님을 초대하자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지도자의 집에 가신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 어떤 자들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어떻게 하시는지를 엿보는 자들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하여 당시 바리새인의 지도자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한 저의가 무엇이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진심으로 대접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음해하기 위해 치밀한 계획 하에 이루어진 것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예수님과 바리새인들과의 관계를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가 예수님을 진심으로 접대하려고 초청했다면 은밀한 가운데 진행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런 사실을 모르고 가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다 아시고 계셨지만 그의 초대에 응하신 것입니다. 즉 스스로 호랑이 굴에 들어가신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식사하시러 가신 그곳에 수종병에 걸린 자가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수종병’은 신약 성경 중 여기만 나오는데 신체의 여러 부위에 물이 고여서 몸이 붓고 살이 썩어가는 병인데 개역판에서는 ‘고창병’이라고 번역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는 이 병을 하나님의 저주로 인해 생기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예수께서 수종병에 걸린 자를 보시고 어떻게 하셨습니까? 3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율법 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르시되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 하냐”
    본문에서는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수종병자와 관련하여 아무 질문도 하지 않은 것으로 나와 있지만 예수께서 대답하셨다고 말씀하신 것으로 봐서 바리새인들이 수종병자와 관련하여 모종의 질문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그 질문을 들으신 후 율법교사와 바리새인들에게 “안식일에 병 고쳐 주는 것이 합당하냐 아니 하냐”고 질문을 던지셨던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한 번도 이런 질문을 들어본 적이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감히 그들에게 이런 질문을 할 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율법 교사들과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질문하셨을까요? 그들은 안식일에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심지어 병든 자도 고쳐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모세가 기록한 율법에는 안식일에 병을 고치는 것을 금지하는 내용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그렇게 생각한 것은 안식일에 아무 것도 하지 말라는 말씀을 무 노동의 소극적인 개념으로만 해석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그들의 잘못된 생각을 깨우치도록 하기 위해 질문을 하신 것입니다. 즉 그들의 생각의 틀을 깨뜨리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은 단지 율법교사와 바리새인에게만 던져진 질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 자신에게도 던져져야 할 질문입니다. 우리는 나름대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을 지키기 위해 다양한 논리로 방어를 합니다. 그런데 우리도 얼마든지 바리새인과 서기관처럼 성경을 잘못 해석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우리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성경을 해석해도 육신을 가졌기 때문에 주님의 뜻대로 해석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과연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과연 옳은 것인지 바른 것인지를 계속해서 물어야 합니다.
    금년이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지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런데 종교개혁은 과거의 한 사건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는 계속해서 말씀대로 믿고 행하고 사역하기 위해 개혁해야 합니다. 지금 우리교회가 의 사역이 어떻게 가능해졌습니까?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이 “너희는 가서 제자 삼으라”인 것을 새롭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웬만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마태복음 28장 19-20절 말씀이 주님의 지상명령이라는 것은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루터가 종교개혁을 했지만 구원론은 개혁했지만 다른 것은 못했기 때문에 이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과 교인은 전무한 것입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신앙과 사역을 본받기 위해 계속해서 개혁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질문하시자 율법교사와 바리새인들이 잠잠했습니다. 바로 그때에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5절을 읽겠습니다.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 중에 누가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시니”
    예수께서 너희 중에 그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으면 안식일에라도 곧 끌어내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어느 누구도 안식이라도 자기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졌는데 가만히 있을 자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자신이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신앙생활은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신앙이라는 미명으로 지극히 상식적인 것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과거에는 병에 걸려도 병원에 가지 않고 기도만 하다가 죽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물론 기독교는 기적의 종교입니다. 기독교 신앙의 기초는 신비입니다.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죽으신지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어야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의 신앙은 상식적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초월적인 존재이신 하나님만 믿는 것이 아니라 그 하나님께서 인간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기적만을 추구하는 사람은 좀 더 상식적인 것을 추구해야 하고 신앙생활을 상식적인 차원에만 하는 사람은 기적을 추구함으로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그들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대답하지 못했다”(5절 후반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그들이 한 마디도 대답하지 못했을까요? 첫째로, 만일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불법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의 성경적 증거를 요구하는 예수님에게 아무 증거도 제시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합당하다’고 한다면 지금까지 그들이 주장해 온 유전이 거짓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결과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실 당시 유대교지도자들은 자신의 논리가 완벽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어느 누구도 그들의 주장을 반박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논리는 예수님 앞에서 모순이었다는 것이 드러났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논리는 항상 자가당착에 빠질 뿐입니다. 나름대로는 논리를 갖고 있지만 허점투성이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날마다 우리의 논리를 가지고 살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고후 10:5)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 가지만 더 살펴보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께서 이 질문을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때가 언제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4절을 읽겠습니다.
    “그들이 잠잠하거늘 예수께서 그 사람을 데려다가 고쳐 보내시고”
    예수께서 환자를 고치신 다음입니다. 왜 예수께서 그들에게 고침 받은 사람을 앞에 두고 말씀하시지 않고 먼저 그를 돌려보낸 후에 말씀하셨을까요? 그가 바리새인들에게 더 이상 농락당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수종병자 자신이 에수님께 고침을 받고자 그 자리에 온 것이 아닙니다. 예수를 음해하기 위한 바리새인들의 계략에 의해 고의적으로 끌려나온 것입니다. 그가 그 자리에 계속해서 있다는 것은 계속해서 그들에게 이용을 당하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를 먼저 그 자리에서 떠나게 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악인들의 계략에 의해 계속해서 농락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시험에서 건져주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어떤 시험을 당해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주시고 머리털 하나도 해하지 않도록 지켜주십니다. 우리 모두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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