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성전에서 행하신 것을 새롭게 해석하다 누가복음 19장 45-48절 2017.12.31

//예수께서 성전에서 행하신 것을 새롭게 해석하다 누가복음 19장 45-48절 2017.12.31
예수께서 성전에서 행하신 것을 새롭게 해석하다 누가복음 19장 45-48절 2017.12.312018-12-03T23:39:2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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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2017년 주일설교로는 마지막 날입니다. 예전 같았으면 누가복음 강해를 중단하고 다른 본문을 찾아서 설교를 준비했겠지만 금년에는 강해순서를 그대로 따랐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본문이 금년도 마지막 설교본문으로 손색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읽어서 알고 있듯이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크게 두 가지를 행하셨습니다. 하나는 성전을 정화하셨고, 다른 하나는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행하신 두 가지를 살펴봄으로 금년도 마지막으로 들려주시는 주님의 음성을 듣고자 합니다.

    먼저, 성전을 정화하신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46절을 다시 읽습니다. “성전에 들어가사 장사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 되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니라.” 여기서 말하는 성전은 어떤 성전일까요? 한 마디로 헤롯 성전입니다. 헤롯은 한 사람의 이름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이두매(에돔), 즉 에서의 후손으로서 팔레스타인과 그 인접 지역을 통치했던(B.C. 47 – A.D. 70년) 헤롯 가문(家門)에 속한 자들을 일컫는데, 이 성전을 지은 자는 ‘안티파테르 2세’의 아들로서 성경에 등장하는 헤롯 대왕을 가리킵니다. 성전은 헤롯이 유대인의 환심을 사기 위해 주전 20 년경에 시작해서 그의 사후인 주후 64 년경에 완공되었습니다. 약 80년에 거쳐 지었기 때문에 당대 세계 최고, 최대, 최상의 건축물로 통할 정도로 매우 웅장했습니다(마 24:1). 일반적으로 헤롯 성전을 솔로몬 성전, 스룹바벨 성전에 이어 제3성전이라고도 하지만 유대인들은 절대로 헤롯 성전을 제3성전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헤롯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목적으로 성전을 짓지 않았을 뿐 아니라 그가 이방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토록 화려하고 웅장한 헤롯 성전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세상보다 더 악한 일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제사장들과 장사꾼이 결탁해서 온갖 불법과 편법이 자행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성전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요? 하나님께서 각자의 짐승들 중에서 처음 것을 가져다가 희생 제물로 드리라고 명하셨습니다(신 12:5-7). 그런데 백성들이 멀리서 오는 까닭에 제물을 집에서부터 준비해 오기가 힘이 들고 여러 가지 문제가 발생하자 예루살렘에 와서 준비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성전 근처에는 제물로 드릴 짐승들을 파는 장사꾼들이 모여들게 되었습니다. 제사장들은 이런 사실을 알고서 이방인의 뜰로 불리는 성전의 뜰에서 제물을 사고팔도록 허락하고 이익금 중 일부를 챙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개인적으로 밖에서 가지고 오는 제물은 부정해서 안 된다고 하고 성전 뜰에서 파는 것만 제물로 드릴 수 있다고 해서 폭리를 취하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흠 없는 것이어야 하는데 장사꾼들이 흠 있는 것까지도 가져다가 팔았고 제사장들이 이를 눈감아 주면서 돈을 챙겼습니다. 또한 성전에 들어갈 때는 반드시 성전세를 내도록 되어 있는데 시중에서 사용되는 돈은 부정하다고 하여 성전에서만 사용되는 돈을 따로 만들어서 그것만 사용하게 하여 큰 이익을 남겼습니다. 결국 제사장들은 제사보다는 뇌물을 챙기기에 급급하여 성전을 장사꾼의 소굴이 되게 했던 것입니다. 칼만 안 들었지 그들이 하는 짓은 강도와 전혀 다를 바 없었습니다. 가장 거룩해야 할 성전에서 가장 세속적인 일들이 일어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로 이러한 광경을 보시고 모든 장사꾼들을 성전에서 내어 쫓으시며 “너희가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오늘날 예수께서 우리 교회에 들어오신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우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로, 주님께서 이곳에 들어오실 경우입니다. 이곳에서 장사하는 자가 없기 때문에 쫓아내실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혹자는 교회에서 물건을 파는 것을 여기에 적용해서 비판하는데 이는 옳은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시 성전과 오늘날의 교회는 개념차제가 다를 뿐 아니라 예수께서 성전에서 제사에 필요한 것을 사고파는 것 자체를 가지고 책망하신 것이 아니라 제사장들이 제사를 빌미로 부당한 방법으로 백성들로부터 폭리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우리의 몸인 성전을 찾아오시는 경우입니다. 아마도 헤롯 성전에 일어났던 일이 재현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겉으로 보기에는 거룩한 것처럼 보이지만 마음속은 각종 욕심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 안에 있는 각종 욕심, 음란, 교만, 시기질투, 미움, 완악함 등을 보시고 그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쫓아내실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의 행위와 그의 행실대로 보응하나니”(렘 17:9-10). 우리는 예수께서 곧 찾아오실 것에 대비해서 예배당 건물 짓는 데 관심을 쏟지 말고, 마음의 성전을 정결하게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안식하실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거룩하게 하고 온유와 겸손으로 다듬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신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47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우리는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셨기 때문에 가장 먼저 예배를 드리셨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먼저 예배를 드리셨다고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이처럼 누가복음에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예배를 드리셨다는 기록이 없는 이유를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예배를 드리셨는데 누가가 이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예배를 드리시지 않고 곧바로 장사하는 자들을 보시고 내쫓으셨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예배를 드리셨는데 누가가 이를 생략했다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아예 예배자체를 드리시지 않았다고 생각합니까? 우리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무엇보다도 예수님의 예배관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예배에 어떻게 이해하셨을까요? 요한복음 4장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거기에는 예수께서 수가성에서 사마리아 여인과 대화하시는 장면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의 남편의 숫자까지 알아맞히시자 그녀는 예수께서 선지자이신 줄로 알고 이렇게 질문합니다. “우리 조상들은 이 산에서 예배하였는데 당신들의 말은 예배할 곳이 예루살렘에 있다 하더이다”(20절). 왜 여인이 이렇게 질문을 했을까요? 그것은 평소 여인이 이를 매우 궁금하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래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 즉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예배를 드려야 한다고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그런데 솔로몬이 죽은 후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갈렸는데 여로보암이 북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그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사를 드리러 예루살렘으로 갔다가 혹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고 북 이스라엘의 벧엘과 단에 성전을 지어서 그곳에서 제사를 드리도록 하였습니다. 그래서 같은 민족이지만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벧엘과 단에서 남유다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산발랏이 사마리아의 총독이 되자 알렉산더로부터 허락을 받아 그리심 산 정상에 예루살렘 성전에 필적할 만한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이 산발랏은 느헤미야 시대의 산발랏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그 성전이 기원전 113년 경 하스몬 왕조의 힐카누스에 의해 파괴되었지만, 사마리아인들은 그리심 산을 하나님께서 정하여 주신 기도의 산으로 여기고 그 산이 참된 제사의 중심지가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는 것인지 예루살렘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맞는지를 물은 것입니다.
    이에 예수께서 어떻게 대답하셨습니까? “여자여 내 말을 믿으라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여기서 우리는 ‘영과 진리로 예배하라’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람들마다 제 각기 해석하지만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이 말씀이 무슨 의미인지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수가성 여인이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리심 산에서 예배를 드리고 유대인들은 모리아 산에서 드린다고 하는데 과연 어느 곳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은지를 물은 것에 대해서 답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영으로 존재하시므로 특정한 장소에서만 예배를 드리는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과거에는 특정한 장소에서 예배를 드렸지만 이제는 삶의 현장에서 예배를 드리라는 것입니다. 바울도 이것을 깨달았기 때문에 로마서 12장 1절에서 뭐라고 말하고 있습니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들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예배를 이렇게 이해하셨기 때문에 우리처럼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리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날마다 가르치셨다고 말씀하고 있는데, 과연 무엇을 가르치셨을까요? 47절을 통하여 이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47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자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가르치신 내용과 당시 유대교지도자들의 심기가 불편한 것과 상관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도대체 예수께서 어떤 내용을 가르치셨기에 그들이 예수님을 죽일 마음까지 가졌을까요? 그것은 누가복음 20장 1-2절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성전에서 백성을 가르치시며 복음을 전하실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장로들과 함께 가까이 와서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 권위를 준 이가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하라.” 예수께서 무엇을 하실 때에 대제사장과 서기관과 장로들이 이런 말을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복음을 전하실 때였습니다. 즉 예수께서 자신이 메시아이심을 가르치셨기 때문에 유대종교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죽이려고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실을 사도행전 5장 42절에서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우리 함께 사도행전 5장 42절을 읽습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본문에서 ‘그들’은 누구일까요? 사도들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고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다고 하는데 그 대상이 누구일까요? 본문에는 그 대상이 나와 있지 않지만 이를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사도들이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어디에서 가르치고 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입니다. 그런데 사도행전에 나오는 집은 가정교회를 뜻하기 때문에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라는 말은 ‘성전에 있든지 가정교회’에 있든지’라는 뜻입니다. 성전과 가정교회의 공통점은 무엇입니까? 이미 구원받은 사람들이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사도들이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는 말은 이미 구원받은 성도들을 대상으로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사도들이 어떻게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않을 수 있었을까요? 그들이 곁에서 날마다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시는 것을 보았고 전도하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자신이 그리스도이심을 가르치셨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하신 일을 살펴보았습니다. 주님께서 오늘이라도 찾아오시면 심판이 아니라 상을 받을 수 있도록 우리의 마음을 거룩하게 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성전에서 날마다 가르치시고 복음을 전하셨던 것처럼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고 가르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살아가도록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전하는 훈련을 하기 위해서 만든 것이 ‘3분복음메시지’이고,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고 가르치는 훈련을 하도록 만든 것이 ‘온가족튼튼양육 제1과’인 것입니다. 따라서 여러분이 이것을 반복하면 초대교회 평신도들이 나가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제자삼은 것처럼 주님의 마지막 명령인 ‘가서 제자삼으라’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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