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거짓 고소로 빌라도와 헤롯을 오가시다 눅 23:1-12 2018.7.8

//예수께서 거짓 고소로 빌라도와 헤롯을 오가시다 눅 23:1-12 2018.7.8
예수께서 거짓 고소로 빌라도와 헤롯을 오가시다 눅 23:1-12 2018.7.82018-12-03T23:51:2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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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무리들의 고소로 예수께서 빌라도와 헤롯 사이를 오가신 과정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는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소한 자가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절을 읽습니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예수님을 체포한 일을 주도한 자는 종교지도자들이었습니다. 즉 대제사장, 서기관, 장로들이었습니다. 그런데 본문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고소한 자가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무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예수님을 대적한 주체가 ‘종교지도자’로부터 ‘무리’로 바뀌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이곳저곳 다니시며 복음을 전파하실 뿐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각종 기적을 행하시자 무리들은 예수님을 메시아로 생각하고 추종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자 왕으로 등극하시는 줄로 알고 무리들이 “지금 우리를 구원하소서”라고 환호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들어오시자 완전히 달라지셨습니다. 마치 전혀 힘없는 분처럼 로마 군병들에게 잡히셔서 대제사장의 집에 갇히셨습니다. 그리고 곧 예수께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신다는 소문이 떠돌았습니다. 그러자 무리들은 예수님에 대한 생각이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기대하던 메시아가 아니라 거짓 메시아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님을 저주의 상징인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앞장을 서게 되었던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을 추종하던 무리들이 불과 몇 시간 만에 예수님을 십자가에 처형하겠다고 돌변한 것은 예수님을 잘못 알았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님을 진짜 메시아가 아니라 가짜 메시아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예수께서 누구신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중도에서 얼마든지 배신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무리들이 예수님을 그토록 열렬히 추종했지만 돌변한 것은 예수께서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오신 고난 받는 메시아가 아니라 빵의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위해 오신 정치적인 메시아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과거에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을 믿다가 그만 두거나 타종교로 개종하는 것은 예수께서 죄와 사망과 심판과 지옥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주신 분으로 믿지 않고 단지 육신의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분으로 믿고 따르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의 공동체에서 재정을 맡을 정도로 신임을 받았던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은 30에 팔았습니까?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자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떠났지만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후 예수님을 증거하다가 순교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온전히 깨달은 자라야 어떤 상황에서도 주님을 배신하지 않고 끝까지 따를 수 있습니다. 사도들은 이 사실을 제대로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였던 것입니다(행 5:42).

    그런데 무리들이 고소한 내용이 무엇입니까? 2절을 읽습니다. “고발하여 이르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더이다 하니.”
    그들이 빌라도에게 고소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예수께서 백성들을 미혹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가시는 곳 마다 천국 복음, 즉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심으로 그들을 위로하시고 소망을 주셨지, 단 한 번도 백성들을 미혹하거나 잘못으로 인도한 적이 없습니다. 사실 백성들을 미혹한 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유대종교 지도자들이었습니다. 무리들이 예수께서 ‘백성들을 미혹한다’고 고발한 것은 모두 거짓이었습니다.
    둘째로, 예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는 것을 금한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번도 세금을 내지 말라고 가르치신 적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세금을 내라고 가르치셨습니다. 하루는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이렇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우리가 아노니 당신은 바로 말씀하시고 가르치시며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진리로써 하나님의 도를 가르치시나이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눅 20:21-22). 이 때에 예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눅 20:25)고 대답하셨습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가시아에게 세금을 내라는 것입니다. 또한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시던 중 성전세를 내라는 요청을 받으셨을 때에 본인은 굳이 내실 필요가 없으셨지만 오해를 받지 않으시기 위해 물고기를 잡아 입에서 꺼낸 한 세겔로 베드로와 예수님의 몫으로 세금을 내셨습니다(마 17:27). 따라서 예수께서 가이사에게 세금 바치지 말라고 가르쳤다는 것은 거짓입니다.
    셋째로, 예수께서 자기 자신을 자칭 유대인의 왕 그리스도라고 했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한 번도 스스로 자신이 왕이라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혹 상대방이 물을 때에 간접적으로 자신이 왕이라고 시인하셨을 뿐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왕이시라고 시인한 것도 세상에서 말하는 왕은 아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백성들이 예수님을 임금으로 세우려고 했어도 예수께서 이를 뿌리치시고 혼자서 산으로 가셨던 것입니다(요 6:15).
    우리가 살펴본 대로 그들의 고소는 모두 새빨간 거짓이었습니다. 사실 그들 자신도 그들이 거짓으로 고소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을 거짓으로 고소했을까요? 주원인읁 살펴본 대로 예수께서 메시아가 아님을 알았기때문입니다 그런데 더구체적인 이유는 예수께서 메시아가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음의 상처를 받아 분노가 표출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도 다른 사람을 메시아로 좇은 적이 있었습니다. 약 400여명이 ‘드다’가 메시아인 줄 알고 따랐습니다. 그리고 ‘유다’도 메시아인 줄 알고 사람들이 좇았습니다. 그런데 드다와 유다가 모두 죽임을 당하자 따르는 자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행 5:36-37). 그 일로 백성들이 마음에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선포하시고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내시고 각종 기적을 행하시자 이번에는 진짜 메시아가 나타났다고 확신하고 예수님을 추종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님마저도 제자에게 배신당하여 체포되셨고 곧 죽게 되는 상황에 놓이자 예수님도 메시아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자 더 깊은 상처를 받고 예수님을 죽이려고 거짓 고소를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믿었던 만큼 기대에 미치지 못하면 상처를 받고 그 상처를 분노로 표출합니다.
    혹 여러분이 특정한 사람에 대한 말을 들으면 화가 나고 분노가 일어납니까? 그것은 마음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상한 마음을 치유할 수 있을까요? 치유세미나에게 가야 합니까? 아닙니다. 자신이 주님께 얼마나 큰 죄를 용서받았는지를 깨달으면 됩니다. 주님께서 용서하신 죄가 얼마나 큰지를 알면 그 어떤 사람도 용서할 수 있습니다.

    빌라도가 그들의 고소를 듣고서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이에 예수께서 “네 말이 옳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빌라도는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좀 이상하지 않습니까? 당시 로마황제가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었고, 지금 자신이 그 지역의 총독으로 와 있는데, 예수께서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했는데, 왜 예수님께 죄가 없다고 빌라도가 말했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해보십시오. 여러분이 로마 총독인데 누군가가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라고 주장하면 가만히 있겠습니까? 그런데 빌라도는 아무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예수께서 말씀하신 왕이 세상에서 말하는 왕이 아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세상에서 말하는 왕이라면 백성들에게 끌려와서 이렇게 자기 앞에서 재판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평행구절인 요한복음 18장 33-37절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에 빌라도가 다시 관정에 들어가 예수를 불러 이르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는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빌라도가 대답하되 내가 네 나라 사람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넘겼으니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라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겨지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빌라도가 이르되 그러면 네가 왕이 아니냐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네 말과 같이 내가 왕이니라 내가 이를 위하여 태어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언하려 함이로라 무릇 진리에 속한 자는 내 음성을 듣느니라 하신대” 이처럼 빌라도는 예수께서 말씀하신 왕이 이 세상의 왕이 아니라 영적인 의미에서 왕이기 때문에 예수님에게 죄가 없다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자 무리들이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5절을 읽습니다. “무리가 더욱 강하게 말하되 그가 온 유대에서 가르치고 갈릴리에서부터 시작하여 여기까지 와서 백성을 소동하게 하나이다.” 그들은 빌라도가 무죄라고 판단하자 그들의 계획이 수포로 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더욱 강하게 말했습니다. 여기서 강하게 말했다는 것은 아주 격렬하게 외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발자국 더 나아가 예수께서 유대뿐 아니라 갈릴리 그리고 예루살렘까지 와서 백성들을 소동하게 한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무리들이 예수께서 온 천하에 다니며 백성들을 소동하게 한다고 말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빌라도가 가장 무엇을 두려워하는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종종 로마제국에 대항했기 때문에 총독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은 백성들이 소동을 일으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무리들이 어떻게 한 목소리로 이런 주장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이렇게 말하기 전, 서로 입을 맞추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이 유대종교지도자들로부터 그렇게 말하도록 사주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유대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반드시 죽이기 위해 무리 배후에 숨어서 그들을 조종했습니다. 무리들이 유대종교지도자들의 사주를 받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는 일에 하나된 것을 보니 마음이 참으로 아픕니다. 우리는 악한 자의 영향을 받는 무리에서 나와야 합니다. 절대다수가 주장한다고 해서 진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진리입니다. 우리는 다수가 따르는 이 세상의 문화를 거역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만들어진 교회가 더처치입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무리들이 예수께서 이곳저곳에서 백성들을 소동하게 한다는 말을 듣자 갑자기 어떤 질문을 합니까? 6-7절을 읽습니다. “빌라도가 듣고 그가 갈릴리 사람이냐 물어 헤롯의 관할에 속한 줄을 알고 헤롯에게 보내니 그 때에 헤롯이 예루살렘에 있더라.” 사실 빌라도는 죄 없는 예수님에게 십자가 처형을 요구하는 무리들의 요구가 내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침 예수께서 갈릴리에서도 소동을 일으켰다고 하자 당시 갈릴리 지역을 관할하던 분봉왕 헤롯이 예루살렘에 와 있었기 때문에 그에게 재판을 이양하기 위해 물은 것입니다. 이 헤롯은 헤롯 안티파스(B.C.20-A.D.39)로서, 세례 요한을 죽인 인물로서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자입니다.
    이렇게 해서 예수께서는 헤롯에게 보내졌습니다. 헤롯은 평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었고 또한 예수께서 기적 행하시는 것을 보고 싶었기 때문에 이를 반겼습니다(8절). 그래서 헤롯은 예수님을 만나서 여러 가지를 물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하시지 않았습니다. 왜 헤롯이 여러 가지를 물었는데 예수께서 한마디도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그것은 헤롯이 무리들에게 고소당한 내용과 무관한 질문을 던졌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헤롯 앞에 서신 것은 무리들이 고소를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고소한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심문해야 합니다. 그런데 헤롯은 그런 것을 묻지 않고 그와는 상관없는 질문만 했기 때문에 아무 말씀도 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한마디로 주제와 무관한 질문을 했기 때문입니다. 드라마에서도 재판할 때에 검사가 범죄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는 것을 피의자에게 물으면 상대변호사가 “검사는 본 재판과 무관한 것을 유도심문하고 있습니다”라고 말하면서 판사에게 중지시켜 달라고 요청하는 것을 보지 않습니까? 우리는 예수님의 대화기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제와 무관한 말을 해서 시간을 낭비하거나 올무에 걸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자 헤롯은 군인들과 함께 예수를 업신여기며 희롱하고 빌라도에게 도로 보냈습니다. 그런데 헤롯은 예수님에게 죄수의 옷을 입혀 보내지 않고 빛난 옷을 입혀서 보냈습니다(11절). ‘빛난 옷’(에스데타 랍프란)은 당시 유대의 왕이나 로마의 귀족들이 특별한 행사를 축하할 때 입었던 망토로서 은실로 짠 옷이었습니다. 그가 이런 옷을 예수님께 입혀서 보낸 것은 예수님을 유대인의 왕이라고 조롱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지만 이렇게 조롱을 당하시면서 빌라도에서 헤롯에게로, 헤롯에게서 빌라도에게로 보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두 사람 사이를 탁구공처럼 왔다 갔다 하시는 동안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평소 빌라도와 헤롯이 원수지간이었는데 당일에는 친구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이미 성경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시편 2편 2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무슨 말입니까? 사람들이 기름부음 받은 자를 함께 대적하였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빌라도와 헤롯이 하나가 되어 예수님을 대적한 것이 우연같이 보이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미 성경에 예언한 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당하는 일들은 재수가 없어서 우연히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두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이를 하나님의 허용적인 뜻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날아가는 참새도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번 전주세미나에 두 사람의 중국선교사가 참석했습니다. 그들은 중국에서 가장 기독교 박해가 심한 우무루치에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얼마 전 공안에서 전화가 왔다고 합니다. 중국에 들어오는 즉시 조사를 받게 될 것이고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 감옥에 보내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중국의 시진핑이 조례 개정을 기점으로 대대적으로 기독교를 핍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닙니다. 이를 통하여 가정교회를 정화하는 것입니다. 가정교회가 정화되지 않으면 중국의 교회는 소망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통하여 세계복음화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지금처럼 우리가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천년만년 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입니다. 머지않아 신앙의 자유를 빼앗기고 큰 핍박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이럴 때에 이상한 일을 당하는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서 오실 날이 더 가까이 이르렀음을 알고 깨어 준비해야 합니다. 우리가 모든 시험을 이기고 주님 앞에 서는 비결은 말씀과 기도로 무장하여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것 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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