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창12:5-9 2014. 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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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창12:5-9 2014. 8.312018-12-03T22:30:0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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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주일낮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일주일에 한 번만 주일낮예배를 드리는 분이 계신가 하면 더 많이 드리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한 주에 10번 이상 예배를 드리는 분도 계십니다. 그런데 예배를 한 주에 한 번을 드리던, 열 번을 드리던 꼭 갖추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구원 받은 감격과 기쁨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의 감격과 기쁨이 없이 드리는 예배는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와 사망과 심판과 지옥에 굴레에서 건짐을 받았다는 사실을 확신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구원 받은 것이고 또한 구원 받은 감격과 기쁨을 가지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구원의 확신은 신앙의 기초입니다. 이것이 무너지면 신앙이 무너집니다. 마치 기둥이 무너지면 건물이 무너지듯이 구원의 확신을 잃는 순간 신앙은 무너집니다. 그래서 오늘 예배륻 드리면서 구원 받은 감격과 기쁨이 있는지 확인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일랜드 출신 플루트 연주자 가운데 제임스 길웨이라는 명연주자가 있습니다. 그는 정상에 있었지만 연습을 많이 하는 노력파였습니다. 한번은 그가 나이 50세가 되어 자신을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습니다. 매일 몇 시간씩 기본 음계를 연습하면서 자신을 점검해 보았습니다. 그러던 중 자신이 얼마나 잘못되어 있는지 발견하고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중에 제 페이스를 찾은 후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나는 어떤 곡이든 척척 연주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처구니없게도 기본 음계는 부자연스러웠고, 조가 바뀌면 나도 모르게 흐트러지곤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자주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 중직을 맡고 있을지라도 신앙의 기초가 잘못되어 있을 수 있음을 알고 늘 구원의 감격과 기쁨으로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성공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런데 정말 성공하기 원한다면 예배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배의 성공이 인생의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예배에 성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의 진짜 주인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어떻게 예배에 성공했는지를 엿볼 수 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께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나타나신 장소에서 하나님께 단을 쌓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희생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로 말하면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배를 어떻게 이해하십니까? 제가 집필한 양육교재 제1권인 온가족튼튼양육에서 예배를 어떻게 정의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높이는 모든 말과 행위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란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주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를 드릴 때에 하나님을 높이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에 기록되어있지는 않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높이겠다는 마음으로 제사를 드렸을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서 이런 마음이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높이겠다는 마음이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드신 이유가 하나님을 찬송하도록 하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4321절은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43:21)라고 말씀하고 있고, 고린도전서 1031절은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존재 목적은 하나님을 높여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통하여 주님을 마음껏 높여드리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제단을 쌓은 곳이 어디였습니까?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였습니다(6).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처음 당도한 곳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였습니다. ‘모레는 히브리어인데 지침, 교사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종종 무당 또는 점쟁이로 번역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상수리나무는 구약에서 가나안 종교의 문란한 종교 의식과 관련되어 있습니다(4:12-13). 따라서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 처음으로 도착한 곳이 어떤 곳임을 알 수 있습니까? 한 마디로 가나안 이방 신상과 이방 신전이 있는 곳으로 하나님께 예배조차 마음대로 드릴 수 없는 땅이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가 세겜 땅 모레 상수리 나무에 도착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를 가든지 가장 먼저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는 항상 예배를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예배를 드리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이 가장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예배임을 알고 예배 드리는 일에 성공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먼저 예배를 드린 자는 아브라함만이 아닙니다. 우리가 잘 아는 노아도 그렇게 했습니다. 노아는 주님 말씀에 순종하여 방주를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거하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40일간 비를 내리셔서 세상을 심판하시고 물이 다 걷히자 노아에게 다시 배에서 나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8:16-17).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배에서 나옵니다. 그런데 노아가 배에서 나와 가장 먼저 한 일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단을 쌓고 모든 정결한 짐승과 모든 정결한 새 중에서 제물을 취하여 번제를 하나님께 드린 것입니다(8:20). 그러나 노아가 배에서 나오자마자 하나님께 번제를 드리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홍수로 인해 주변 환경이 완전히 바뀌었기 때문에 매우 혼란스러웠을 것입니다. 또한 수백일동안 배 안에서 살았기 때문에 심리적으로도 안정감을 찾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노아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제사를 드린 것입니다. 우리는 매우 불확실하고 불투명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상이 급변하게 변해도 하나님은 영원하시기 때문에 그분 앞에 예배드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해야 합니다.

       제가 상수동에서 목회할 때였습니다. 71세에 저를 만나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영접하고 훈련을 받아 평신도사역자가 된 이점순 권사님의 간증을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우리 동신교회에도 오셔서 한 번 간증한 적이 있습니다. 그 권사님이 예수님을 영접한지 두 달쯤 되었을 때였습니다. 평소 생일을 맞이하면 집안끼리 돌아가면서 함께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그해 2월에는 여동생 남편의 생일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생일이 마침 주일이라 온 집안이 주일에 모여 함께 식사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점순 권사님이 생일 식사에 초청을 받고 뭐라고 했는지 아십니까? 주일이라 오전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려야하고, 오후에는 말씀훈련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주일에는 참석할 수 없다. 주일에 예배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다저는 이점순 권사님의 간증을 듣고 너무 감사했습니다. 그리고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중직자들도 친척 중에 애경사가 생기면 주일예배에 빠지는 경우가 허다한데, 이 분은 예수를 믿은 지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았는데도 그런 제의를 단호히 거절했기 때문입니다. 예배는 만왕의 왕 되시는 주님 앞에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 있어도 예배만큼은 빼어먹지 않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몇 해 전에 제가 아는 목사님이 이희돈 장로의 신앙 간증 영상을 보내줘서 보았는데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 성공적인 예배자로 살아가는 모습에 너무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분은 911테러가 일어난 세계무역센터의 수석 부총재였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최고위층 사람들과 자주 만남을 가졌습니다. 어떤 경우는 왕의 초청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연회에 참석하면 자신이 섬기는 교회에 가서 주일예배를 드릴 수 없기 때문에 왕의 초청을 사양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멋있습니까? 가장 먼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에 성공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한 번만 예배를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속적으로드렸습니다. 8을 보십시오.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처음으로 제사를 드린 곳은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곳에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겼을 때도 여전히 제단을 쌓았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즉 계속해서 예배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는 한두 번에 끝내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행사가 아닙니다. 예배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예배의 성공자가 되기 위해서는 단지 주일의 예배로 멈추면 안 됩니다. 삶속에서 계속 예배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예배니라.” 그렇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예배의 성공자가 되려면 예배당 예배로 끝내지 말고 삶을 통해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업을 시작하거나 생일을 맞이하면 목사를 초청하여 예배를 드립니다. 물론 개업하면서 예배를 드리거나 생일을 맞이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은 매우 잘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배는 사업을 시작하거나 생일에만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인가를 시작하기 전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그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기 때문에 삶 속에서 계속해서 드려야 합니다. 시작할 때만 예배를 드리고 그 후로 예배와 상관없이 살아간다면 그것은 예배를 잘못 드린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계속해서 예배를 드린다면 어느 정도로 자주드려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예배의 횟수에 관하여 생각을 해야 합니다. 유럽에서는 일평생 교회에 세 번만 가는 교인들이 있습니다. 이를 ‘BMF 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첫 번째는 부모의 품에 안겨 처음으로 교회에 가서 유아세례를 받고(Baptism), 두 번째는 결혼식을 올리기 위해 교회에 가고(Marriage), 그리고 마지막 한번은 죽은 후에 교회당에서 장례식(Funeral)으로 마감을 합니다. 1년에 세 번 교회에 가는 교인이 있습니다. 이런 교인을 ‘ETC Christian’이라고 부릅니다. 부활절인 Easter, 추수 감사절인 Thanksgiving day, 성탄절인 Christmas의 약자를 따서 그날에만 교회에 가는 형식적인 교인들을 말합니다. 이렇게 평생 세 번, 일 년에 세 번 예배를 드리는 것은 예배를 드리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행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교회에 허락하신 공예배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주일 낮예배를 비롯하여 주일오후예배, 수요저녁예배, 새벽예배, 목장모임, 금요기도회에 참여해야 합니다. 혹자는 한국교회가 예배를 너무 많이 드린다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많이 드릴수록 좋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주 모여 예배드리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025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그 날이 가까옴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라(10:25). 따라서 주일 한 번 예배드리는 것으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더 많이 예배를 드리기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고 수고해야 합니다. 주일 낮 예배만 드렸던 분은 주일 오후까지 드리고, 주일오후까지 드렸던 분은 수요기도회까지 드리고, 수요기도회까지 드렸던 분은 금요기도회까지 드리고, 금요기도회까지 드렸던 분은 새벽예배까지 드려야 합니다. 예배의 횟수가 점점 더 많아지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러나 예배를 자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맨손으로 나가지 않고 제단을 쌓았습니다. 제단을 쌓았다는 것은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제사를 드렸다는 것은 제물이 바쳐졌다는 것입니다. 제물이 바쳐졌다는 것은 동물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또 동물이 죽임을 당했다는 것은 피를 흘렸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동물의 피를 요구하실까요? 그것은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죄 문제를 해결 받기위해서는 반드시 누군가 대신하여 죽어야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구약시대에는 짐승의 피를 통해서 인간의 죄를 해결해주신 것입니다(9:22).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범죄 한 아담과 하와에게 무화과나무 잎으로 만든 옷 대신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입히셨습니다. 가죽 옷을 지을 때에 흘린 피를 보시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사하셨습니다. 아벨도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릴 때에 흘린 피를 보시고 죄를 사하셨습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 구약시대에는 피 제사를 통하여 죄 문제를 해결 받아 하나님 앞에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짐승의 피를 바치는 제사는 완전할 수 없었습니다. 죄를 지을 때마다 짐승을 죽이는 번거로움이 있고, 영원히 죄를 속죄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친히 십자가에 못 박히셔서 산 제물이 되심으로 우리의 죄를 영원히 사하신 것입니다(9:12). 더 이상 우리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 제사를 드릴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떤 죄를 지었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하고 나가면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다(10:18). 우리는 이것을 믿고 하나님께 나가야 합니다. 오직 예수의 피만이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믿는 믿음을 가지고 나가야 합니다. 혹 잘한 것이 있어도 그것을 의지하고 나가면 안 됩니다. 잘했던 못했던 오직 예수의 피를 의지해야 합니다. 아무리 예배를 자주 드려도 예수의 피를 붙잡지 않고 나가면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습니다. 예배는 오직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의지하여 나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예배에 성공하는 자를 어떻게 하시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8-9절을 읽겠습니다. “거기서 벧엘 동쪽 산으로 옮겨 장막을 치니 서쪽은 벧엘이요 동쪽은 아이라 그가 그 곳에서 여호와께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더니 점점 남방으로 옮겨갔더라아브라함이 아이성에서 제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자 하나님께서 그를 남방으로 옮겨가게 하셨습니다. 그가 남방으로 옮겨갔다는 것은 그의 지경이 넓어졌다는 것을 뜻합니다. 한 마디로 그가 복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예배에 성공하는 사람은 반드시 복을 받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일천번제를 드리자 하나님께서 그가 구하지 않은 부와 귀와 명예까지 주셨습니다. 성경은 내게 토단을 쌓고 그 위에 너의 양과 소로 너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라 내가 무릇 내 이름을 기념하게 하는 곳에서 네게 강림하여 복을 주리라”(20:24)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정말 복을 받기 원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성공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예배를 드리지 않고 열심히 살기만 하면 복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복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지 스스로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집을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되며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수꾼의 깨어 있음이 헛되도다 너희가 일찍이 일어나고 늦게 누우며 수고의 떡을 먹음이 헛되도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의 사랑하시는 자에게는 잠을 주시는도다”(127:1-2). 따라서 복을 받기를 원한다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에 성공해야합니다.

       그런데 예배의 성공자에게 하나님께서 주시는 최고의 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예배의 성공자를 존중히 여기신다는 것입니다. 사무엘상 230절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나라의 대통령이 존중히 여겨도 영광인데 온 우주를 만드신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기신다니 얼마나 영광입니까우리는 예배에 성공함으로 하나님께서 존중히 여기시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2005년 몽골에서 선교사로 사역하는 이용규 선교사가 쓴 내려놓음이라는 책이 출간되어 한 동안 한국교회에 큰 은혜를 끼쳤습니다. 이 선교사는 그 책에서 예배와 관련해 일어난 실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 교회에 출석하는 성도 가운데 벌러르라는 자매가 있는데, 그녀는 나면서부터 듣지 못하는 장애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선교사와 함께한 선교팀의 기도로 귀가 열리는 기적을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매는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주일, 갑자기 집에서 키우던 소가 없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매는 잃어버린 소를 찾아 이리저리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배시간이 임박한 것을 알고서는 계속해서 소를 찾아야 할지, 아니면 예배에 참석해야 할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에라, 소야 잃건 말건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게 우선이다. 지각하지 않게 빨리 뛰어가자!”하고 헐레벌떡 들판을 가로질러 교회로 달려가 예배를 드렸습니다. 이 자매가 예배에 참석하게 된 상황을 전해들은 이용규 선교사는 그때부터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소가 아닌 예배를 택한 믿음의 결단을 결코 부끄럽지 않게 해 주세요. 제발 그녀가 소를 다시 찾을 수 있게 해 주세요. 그리고 이 기회에 그녀가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 자기를 존중히 여기는 자에게는 어떻게 역사하는 분이신지를 분명히 알게 해 주세요라고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아십니까? 예배를 마치고 나가보니 잃어버렸던 소가 교회 앞에 와서 나 여기 있어요하고, 울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잃어버렸던 소가 자기 집으로 가지 않고 교회로 온 것입니다. 집을 나간 소가 집으로 가야지 어떻게 교회로 올 수 있습니까? 소를 선택하지 않고 예배를 선택한 벌러르에게 하나님께서 상을 주신 것입니다. 그녀가 잃어버린 소를 선택하지 않고 예배를 선택하자 하나님께서 소를 찾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분명히 살아계신 것을 경험하게 하시고 높여주신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입니다. 그가 그런 명예를 얻은 것은 그의 인격이 훌륭하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예배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배에 성공해야 인생에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방황이 끝나고, 교회를 잘 만나면 신앙생활의 방황이 끝나고, 예배에 성공하면 인생에 성공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을 받고 싶다면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드리는 예배에 성공하고 날마다 삶 속에서 예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예배에 성공함으로 하나님께 존중히 여기심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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