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행 1:8 2013.3.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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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배보다 더 중요한 게 있습니다. 행 1:8 2013.3.102018-12-03T20:23:5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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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동신교회의 이름으로 함께 모여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우리 동신교회를 이곳에 세워주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즉 우리 동신교회의 존재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혹 여러분 중에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 동신교회가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분도 계실 것입니다. 물론 예배는 교회가 존재하는 매우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그런데 예배보다 교회가 존재하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입니다. 그렇습니다. 전도보다 교회가 존재하는 더 중요한 이유는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에서 그렇습니다. 무엇보다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러 오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지만 하늘의 영광 보좌를 버리시고 이 세상에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목적은 전도를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잃어버린 자를 구원하시기 위해 식사도 제대로 하실 시간이 없으실 정도로 바쁘게 이 마을 저 마을로 다니시며 전도를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후 두려움에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20:21-22).

    다른 하나는, 예수께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부탁하셨기 때문입니다(막 16:15). 예수님은 교회의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교회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맨 마지막에 가장 중요한 말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에게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은 예배를 잘 드리라는 것이 아닙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여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교회가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 최우선적으로 집중해야 하는 것입니다. 위대한 기독교 변증학자 C.S.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교회가 전도하지 않는다면 예배도, 성경공부도, 기도도, 교제도, 봉사도 다 의미 없는 일이 되고 말 것이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함께 모여서 예배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고, 간절히 기도하고, 사랑으로 교제하고, 열심히 봉사하는 모든 것이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맞추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또한 자신이 은혜를 받습니다. 그러나 비신자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도를 하면 어떻습니까?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가 은혜를 받을 뿐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이 구원을 받습니다. 지옥으로 갈 영혼을 살리는 것보다 더 소중한 일은 이 세상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보다 전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고 우선적으로 관심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주로 예배를 드리거나, 기도를 하거나, 하나님의 말씀을 읽는 것에는 다소 관심을 가지지만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평생 동안 한 사람도 전도하지 못하고 죽는 사람들이 무려 85%나 된다고 합니다. 즉 평생 한 사람도 전도를 하지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라는 것입니다. 금세기 훌륭한 신학자이며 목회자인 John Stott는 “전도하지 않는 죄”라는 책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고 죽어 가는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지 않는 것은 죄를 범하는 것이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악한 행동을 하는 것만이 죄가 아닙니다.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지 않는 것도 죄를 짓는 것입니다. 따라서 사무엘선지자가 이스라엘백성들을 위해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코 범지 않겠다고 말한 것처럼 잃어버린 영혼을 찾는 일에 무관심한 죄를 범치 않기로 결단해야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찾아 전도할 수 있을까요? 오늘 읽은 본문은 우리에게 그 답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이 말씀은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권능을 받게 되어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며 복음의 증인이 된다는 것입니다. ‘권능’은 헬라어로 ‘두나미스’라고 하는데 이 말에서 ‘다이너마이트’가 나왔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우리가 성령을 받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다이너마이트와 같은 강력한 힘을 주시기 때문에 땅 끝까지 찾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전도를 잘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성령을 받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령을 받아야 전도를 잘할 수 있다고 말씀을 드리니까 벌써부터 자신과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귀를 닫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성령을 받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주신 약속때문이지 우리의 힘과 능력때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기전에 제자들에게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행 1:4). 여기서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이 무엇입니까?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이 약속을 믿었기에 함께 모여 열흘간 간절히 기도하다가 오순절에 성령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을 받자 밖으로 뛰쳐나가 담대히 복음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하신 것입니다. 당시 그들 가운데는 많이 배운 자도 없었고, 돈을 많이 가진 자도 없었고, 권력을 가진 자도 없었습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 정말 별 볼일 없게 보이는 힘 없고 나약한 자들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성령을 받자 담대히 세상으로 나가서 복음을 외쳤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성령을 받기 위해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이 어떤 뜻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한 마디로 주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12명의 정탐꾼이 가나안의 정세를 살펴보기 위해 들어갔습니다. 그 중에 2사람은 긍정적인 보고를 했고 나머지 10사람은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그러자 회중들은 부정적인 보고를 듣고서 “우리가 애굽땅에서 죽었거나 이 광야에서 죽었으면 좋았을 것을 어찌하여 여호와가 우리를 그 땅으로 인도하여 칼에 쓰러지게 하려 하는가”라고 원망하며 모세와 아론을 돌로 쳐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때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회중에게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내가 그들 중에 많은 이적을 행하였으나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민 14:11).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지만 그것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과 동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멸시하는 사람이 어떻게 성령의 권능을 받아 복음의 증인이 될 수 있겠습니까? 오순절에 120명이 성령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을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간절히 기도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을 부어주시겠다는 약속을 믿고 기도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부어주셔서 능력 있게 복음을 증거하게 하십니다.

      여러분은 혹 한국 초대교회의 역사에 큰 업적을 남긴 장로로 손꼽히고 있는 ‘고찬익 장로’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그는 상놈 중에서도 최하위 천민신분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늘 자신의 신세를 비관하고 살았습니다. 신발을 만들어서 생계를 유지했는데 술만 마시면 사람들과 싸움을 하고 피해를 입혀서 관가에 끌려가서 종종 매를 맞았습니다. 또 노름으로 재산을 탕진해서 빚 독촉이 심해지자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천민이라 이름이 없어서 사람들은 그를 고씨라고만 불렸습니다. 당시 고찬익은 고향 땅 안주를 떠나 팔도강산을 누비며 노름·사기·술에다가 난동을 부려서 관가에 붙잡혀 가서 매를 흠씬 맞고는 폐인이 되었고 말을 못하는 벙어리가 된 상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연동교회의 초대 담임이었던 게일 선교사의 전도로 예수님을 믿고 나서 운명이 바뀌게 되었습니다. 하루는 게일 선교사가 고씨를 만나서 야곱의 이야기가 담긴 ‘네 이름은 무엇이냐?’라고 하는 전도지를 주었습니다. 그 내용은 창세기 28장 10~22절에 나오는 야곱의 행적에 관한 이야기였습니다. 고찬익은 그날 잠을 자다가 꿈속에서 흰 옷을 입은 한 노인이 나타나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묻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이에 고찬익은 너무 무섭고 떨려서 말을 못하는 입으로 “내 이름은 고가 올시다. 싸움꾼이고 술꾼이고 망나니올시다. 누구신지 모르지만 저를 용서해 주십시오”라며 울었습니다. 그러자 노인은 다시 “이제부터 너는 내 아들이다”라 하고 사라졌습니다. 정신을 차리고 전도지를 또다시 읽을 때 갑자기 혀가 풀리고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쁨은 말로 다할 수 없었습니다. 그 밤중에 게일선교사에게 찾아갔습니다. 게일선교사는 “형님, 잘 오셨습니다”하며 그를 반겨 맞이했습니다. 고찬익은 꿈에 한 노인이 나타난 일과 자신이 벙어리였는데 말을 하게 된 것을 고백했습니다. 그러자 게일 선교사는 그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이라고 가르쳐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을 다른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하는 자라는 뜻을 가진 ‘찬익’으로 바꾸어 주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찬익이라는 이름으로 삶을 새롭게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게일 선교사님의 지도를 받아 연동교회를 섬기던 중 성령께서 그에게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갖게 하셨습니다.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그것은 내게 주신 사명을 다 감당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는 빈부귀천을 따지지 않고 만나는 사람들에게 열심히 복음을 전했습니다. 복음을 전하면서 과거에 잘못한 사람들에게는 찾아가 무릎을 꿇고 자신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빌었습니다. 특별히 그는 빈민굴에 가서 몸이 불편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매주 그들을 업고 교회에 모시고 왔습니다. 지금은 휠체어가 있고 교통수단이 있어서 다소 수월하지만 당시는 그런 것들이 없었기 때문에 친히 사람들을 업고 매주일 예배를 드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매주 그렇게 했습니다. 또 한자 성경을 들고 다니면서 양반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가 날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하자 연동교회는 날로 부흥을 했습니다. 그가 잘 배우지도 못하고 가장 낮은 천민신분이었지만 성령의 권능을 받자 하나님 앞에 귀하게 쓰임 받는 복음의 증인이 된 것입니다. 나중에 모든 성도들의 인정을 받아 그 교회 장로가 되었고 장로가 된 후에도 힘을 다하여 복음을 전하다가 주님의 품에 안겼습니다. 게일 선교사는 고찬익 장로를 이렇게 평가했습니다. “고찬익 장로는 한국에서 내가 만난 사람 중에 가장 위대한 복음의 증인이었습니다. 만일 내가 노벨상을 추천할 수 있는 권한이 있다면 고찬익 장로를 추천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고찬익 장로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시면서 무슨 생각을 하십니까? 저는 도대체 그가 어느 정도로 변화된 삶을 살았기에 외국선교사가 그를 노벨상 후보를 추천하겠다고 말했을지를 생각했습니다. 그때에 성령께서 갑자기 저에게 이런 마음을 주셨습니다. ‘고찬익 장로가 변화된 것을 대단하다고 생각하지 말고 그를 변화시켜서 능력있는 삶을 살게 하신 성령님을 대단하시다고 생각하라.’ 그렇습니다. 사람이 대단한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대단하신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이름도 없이 살던 천민출신의 고씨를 노벨상 후보자로 추천하고 싶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변화시키시고 위대한 인생을 살게 하신 것입니다. 그 성령께서 지금도 저와 여러분과 함께 하시면 우리를 놀랍게 변화시키시고 또 우리를 통하여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실 것입니다. 암으로 병원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사람도 살리셔서 그를 통하여 크고 위대한 일을 행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달 전석도 목사님을 통하여 그가 간암과 중풍 등 8가지 병으로 사형선고를 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살리셔서 지금까지도 크게 사용하신다는 것을 들었습니다.

     

      아주 감동적인 실화 하나만 소개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매일 저녁 집 앞에 있는 광장에 나가서 복음을 증거하는 아버지와 아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날은 비가 부슬부슬 내려서 전도하러 가기가 여의치 못했습니다. 그러자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습니다. “아빠, 비가 오는데 오늘도 전도하러 나가나요?” 그러자 아버지는 “얘야 오늘은 비가 오니까 내일 날씨가 좋아지면 나가자꾸나.”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아이는 비가 오는 날에도 사람들은 반드시 예수님을 필요로 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전도지를 들고 밖으로 나갔습니다. 그러나 비가 와서 그런지 집 앞 광장에는 사람들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근처에 있는 집들을 찾아다니면서 전도하기 시작했습니다. 집집마다 벨을 누르며 전단지를 돌리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주일을 맞이하여 교회에 나가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그런데 설교 말씀이 끝나고 광고 시간에 한 여인이 뒤쪽에서 손을 들고서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꼭 증거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목사님은 그 여인을 앞으로 나오게 했습니다. 조금 초라한 차림의 여인은 예배당 앞으로 나와서는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실 저는 며칠 전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인생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갖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기 위해 수 십 알의 수면제를 앞에 놓고 그것을 먹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순간 누군가가 저희 집의 초인종을 누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무엇인가에 이끌리듯 문쪽으로 다가가서 문을 여니 그 곳에는 비에 젖은 한 소년이 서 있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에게, ‘얘야 무슨 일이니?’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아이는, ‘아주머니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해드리기 위해서 왔어요.’라고 말하며 저에게 전도지 한 장을 건네주었습니다. ‘구원의 기쁜 소식’, 그것은 저에게 생명의 빛과도 같은 말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는 순간 희망의 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 아이가 전해 준 전도지를 찬찬히 읽으면서 정말로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그 아이는 희망을 잃고 죽음의 자리로 나아가고 있는 저를 살리시기 위해 보내신 하나님의 천사였다”고 말입니다. 제가 오늘 이처럼 새로운 날을 맞이할 수 있게 된 것은 하나님이 저를 사랑하셔서 보내신 저 아이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왜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살아 있게 하셨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경은 우리의 존재 이유를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우리를 살려두신 것은 우리에게 주신 전도의 사명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남은 생애를 전도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 교회는 4월 28일, ‘구삼행복축제’의 날로 지킵니다. 지금부터 시작해서 4월 28일까지 구역마다 3명이상 주님께 인도해야 합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에 관심을 갖고 전도하면 얼마든지 할 수 있습니다. 계획한 대로 각 구역에서 세 명씩 주님께 인도하면 우리 교회는 부흥의 새로운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에게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불붙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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