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전쟁에 이겨야 할 이유 있습니다. 엡6장 10-17 2013.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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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전쟁에 이겨야 할 이유 있습니다. 엡6장 10-17 2013.6.22018-12-03T20:31:1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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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은 어느 때에 가장 기뻐합니까? 돈을 벌었을 때입니까? 아니면 높은 지위를 얻었을 때입니까? 아니면 명예를 얻었을 때입니까? 아니면 소원하던 일이 이루어졌을 때입니까? 그러나 우리에게 이 모든 것보다 더 기뻐할 수 있는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의 말씀의 맛을 알면 이 세상의 그 무엇을 얻었을 때보다 더 기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시 119:103)고 고백한 것입니다. 꿀은 최고의 맛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뭔가 맛있으면 꿀맛이라고 하고 인생에서 최고로 행복한 때인 신혼 후 첫 한 달을 허니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는 것은 말씀의 맛이 최고라는 것입니다. 즉 말씀보다 더 맛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의 맛보다 더 맛있는 것은 없습니다. 한 동안 “맛을 보고 맛을 아는 샘표 간장”이라는 광고 카피가 있었듯이, 말씀의 맛을 봐야 말씀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말씀이 얼마나 맛있는지를 모르는 것은 아직 말씀을 온전한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저도 사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입에 꿀보다 더하니이다”는 이해가 되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말씀이 꿀보다 더 달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제가 체험한 맛있는 말씀을 여러분과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울왕과 다윗의 관계는 장인과 사위지간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떤 관계에 있었습니까? 한 마디로 쫓고 쫓기는 관계였습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그들의 관계가 이렇게 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들의 관계가 처음에는 매우 좋았습니다. 이스라엘군대가 블레셋 장군 골리앗 앞에서 벌벌 떨고 있을 때에 다윗이 나가 골리앗을 쓰러뜨리자 사울왕은 그를 이스라엘의 공신으로 생각하고 총애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궁에서 사울왕과 함께 생활하면서 사울이 악신에게 공격을 받을 때면 수금을 타서 악신을 쫓아주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사울은 다윗을 사위로 삼았습니다. 그런데 그토록 좋았던 관계가 왜 깨어지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사울 왕이 블레셋사람들을 죽이고 돌아올 때 이스라엘군대를 환영하러 나온 여인들이 “사울의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요”라고 외쳤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한 마디로 다윗이 사울보다 더 전쟁을 잘하는 장수라는 것입니다. 이런 여인들의 외침은 사울왕의 마음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사울왕은 전투에 능한 자로 백성들의 사랑과 신뢰를 한 몸에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다윗이 자기보다 백성들로부터 더 칭찬을 받게 되자 이전에 그를 사랑했던 것보다 더 미워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사울왕은 다윗을 죽이기로 결심하고 기회를 노렸습니다. 첫 번째 시도는 다윗이 수금을 탈 때였습니다. 당시 다윗은 사울 왕 곁에서 그가 악신으로 고통을 당하면 수금을 타서 악신을 쫓아 주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이었습니다. 사울 왕이 악신으로 고통을 당하자 다윗이 수금을 타고 악신을 쫓아주자 바로 그 때에 다윗에게 창을 던졌습니다. 다행히 창이 빗나감으로 다윗은 목숨을 건질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자기를 죽이려한다는 것을 알아채고 그의 곁을 떠났습니다. 그러자 사울 왕은 공개적으로 자기 아들 요나단과 모든 신하 앞에서 다윗을 죽이라고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산과 들로 도망을 다녔고, 급기야는 이웃나라인 블레셋나라로 망명을 하였습니다. 즉 사울 왕이 다윗을 미워하고 죽이려고 했던 것은 그를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사울의 시기와 질투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한 동안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고 한 것은 단지 시기심과 질투심이 아니라,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음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깨닫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정말 말씀이 꿀보다 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자 그럼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한 마디로 마귀가 메시아의 언약을 파괴하려고 배후에서 사울을 충동질했기 때문입니다. 즉 마귀의 음모 때문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누구의 후손으로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로마서 1장 3절은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다”고 말씀하고 있고. 또한 마태복음 1장 1절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마 1:1)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께서는 다윗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즉 메시아는 다윗을 통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오실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사울 왕을 사주하여 다윗을 죽임으로 메시아 언약을 파괴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울 왕이 다윗을 그토록 집요하게 죽이려고 했던 것은 그 배후에 마귀의 사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한번 생각해보십시오. 아무리 권력에 눈이 멀고 시기와 질투심이 있다고 사위를 죽일 생각을 하겠습니까? 그것도 한두 번도 아니고 13년이나 죽이려고 좇아다닐 수 있습니까? 그것은 사울 왕이 단지 왕의 자리를 빼앗길 것을 두려워해서 그렇게 한 것이 아니라, 마귀가 메시아의 언약을 파괴하기 위해서 배후에서 그를 조종했기 때문입니다. 사실 이런 일은 다윗보다 훨씬 이전부터 있었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왜 마귀가 아브람때부터 메시아 언약을 파괴하기 위하여 힘을 썼을까요? 그것은 성경이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 1:1)고 말씀하고 있듯이, 예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지 않으면 이 세상에 오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느 날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찾아오셔서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 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그에게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라고 하시고 그를 이끌고 밖으로 나가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하시자 아브람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도 아브람의 아내 사래가 자녀를 낳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여호와께서 나의 생산을 허락지 아니하셨으니 나의 여종과 동침해서 자녀를 낳게 해달라”고 했습니다. 더 이상 사래의 요구를 거절하기 힘들게 되자 아브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아내의 말을 듣고 여종인 하갈과 동침했습니다. 그래서 난 아들이 바로 이스마엘입니다. 그러나 이스마엘은 단순히 한 사내아이가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마귀가 메시아의 오는 길을 막기 위해 꾸민 계략에 속아 아브람과 사라가 선택한 결과물인 것입니다. 예수께서 아브람의 후손으로 오시기 위해서는 반드시 하나님의 약속대로 사라의 몸을 통하여 난 자라야 가능합니다. 그런데 마귀는 사라를 충동질하여 아브람으로 하갈과 동침하게 하여 이스마엘을 낳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헤롯왕 때에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께 경배하고 헤롯에게 알리지 않고 고향으로 돌아가자 헤롯이 2살 이하의 아이를 다 죽인 것을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아무 죄 없는 아이들을 모조리 죽일 수 있습니까? 그것은 헤롯이 마귀의 사주를 받아 메시아로 오신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이토록 메시아 언약을 파괴하려고 몸부림을 쳤지만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메시아 언약을 완성하시고 우리에게 구원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메시아 언약을 파괴하는 것에 실패했다고 완전히 손을 든 것이 아닙니다. 마귀는 하나님께서 그의 자녀들에게 주신 모든 약속을 방해하기 위해 지금도 공격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마귀가 어떻게 우리를 공격하는지를 알고 영적전쟁에 대처해야 합니다. 마귀는 크게 네 가지를 통하여 우리를 공격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지 못하게 합니다.

      1)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의 양식이기 때문에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어느 누구도 영적인 힘이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까이 하지 않으면 약속의 말씀을 붙잡을 수 없고 또한 약속을 붙잡지 않는 사람은 약속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마귀는 모든 방법을 동원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말씀을 가까이 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자리에 앉아 계시지만 마귀는 마음만은 딴 곳에 있게 합니다. 말씀에 집중을 하지 못하게 합니다. 어젯밤에 충분히 수면을 취했어도 말씀을 들을 때 졸리게 합니다. 토요일 밤늦게 까지 TV를 시청하여 예배시간에 조는 것은 마귀가 역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말씀 듣는 일에 성공하기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합니다.

      2)기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경에는 하나님의 약속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그냥 이루어지지 않고 기도를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에스겔 36장 37절은 하나님께서 “주 여호와께서 약속을 하셨을지라도 이스라엘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냥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해야 이루어집니다. 마귀는 이런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온갖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성도들에게 기도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혹 너무 바빠서 기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혹 몸이 너무 아파서 기도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혹 기도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겉으로만 그렇게 보일 뿐, 기도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배후에서 역사하는 마귀의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말해서 기도하는데는 돈이 들지 않습니다. 어떤 자격증도 필요하지도 않습니다. 땅을 파는 것처럼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기도하는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것은 대부분 마귀의 계략에 넘어졌기 때문입니다. 요즘 금요성령집회를 인도하면서 너무 안타까운 마음이 듭니다. 예수께서 금요일에 수난 받으신 것을 기억하고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기 위해 매주 금요성령집회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모임에 참석하는 성도들이 많지 않습니다. 새벽예배에 참석하는 분보다도 적습니다. 우리가 금요성령집회에 참석하지 않는 것은 단지 피곤함이나 환경적인 여건 때문이 아닙니다. 그 기도회에 참석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왜 금요성령집회에 참석하고 싶은 마음이 없을까요? 성령께서 그런 마음을 주셨을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기도하면 성령께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알고 마귀가 그런 마음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3)혈기를 내어 은혜를 쏟게합니다. 성경은 온유한 자가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땅을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땅을 차지하고 누린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 땅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기위해서는 온유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땅은 단지 눈에 보이는 땅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기업으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마귀는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이 복을 받지 못하도록 혈기를 부리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혈기를 내게 하는 배후에는 언제나 마귀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에베소서 4장 26-27절은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 것도 아닌 일로 혈기를 내고 다투는 것은 그 배후에서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주일에 교회에 오기 전에 사소한 일로 종종 다투는 것은 마귀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잘 드리고 집에 가서는 혈기를 부리는 것도 마귀의 역사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혈기가 나올 때에 배후에 사탄의 계략이 있음을 알고 꾹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삭에게 온유함을 배워야 합니다. 이삭이 자신이 살고 있는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자 블레셋왕 아비멜렉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인 일이 탄로가 나서 아비멜렉에게 책망을 받고 그랄골짜기로 쫓겨갔습니다. 그곳에 도착해서 이삭의 목자들이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사막지역에서 물은 생명같이 귀히 여기는 재산이기 때문에 그랄의 목자들이 그것을 빼앗으려고 싸움을 걸어 왔습니다. 이때에 이삭이 어떻게 했습니까? 그곳 이름을 에섹(다툼)이라고 하고 그곳을 피하여 다른 곳으로 갔습니다. 그곳에서 땅을 팠더니 또 물이 나왔습니다. 그러자 그랄 목자들이 또 좇아와서 싸움을 걸었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도 그곳을 싯나(대적)라고 하고 다른 곳으로 옮겨갔습니다. 그곳에서 또 우물을 파서 물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이상 좇아오지 않자 그곳 이름을 ‘장소가 넓다’는 뜻으로 르호봇이라고 하고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고 하였습니다. 이삭은 싸워야 하는 상황에서도 혈기를 내지 않고 온유하게 대처하자 더 넓은 땅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온유한 마음을 가질 때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을 차지하는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다투지 않고 자기 권리를 포기하면 망할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온유한 자가 땅을 차지한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혈기의 배후에는 마귀가 있음을 알고 혈기가 나올 때마다 물리치시고 늘 온유한 자세를 가짐으로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넓혀주시고 채워주시는 복을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전도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마지막으로 “너희는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왜 이 명령을 우리에게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일일이 찾아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지 않아도 다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또 천사를 통해서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 일을 우리에게 맡기셨을까요?그것은 전도릍 통하여 상을 받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지만 상은 행함으로 받는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면 어떤 복을 받는지 아십니까? 성경은 이렇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막 10:29-30)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자는 하늘의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단 12:3)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전도하는 자에게는 엄청난 축복이 약속되어 있기 때문에 마귀는 그 약속을 누리지 못하게 하기위하여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무관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전도하지 않는 데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습니다. 혹자는 바쁘기 때문에, 혹자는 몸이 아파서, 혹자는 몸이 빈약해서, 혹자는 전도하고 싶지만 할 줄 모르기 때문에 등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이유보다 전도하지 않는 것은 마귀가 배후에서 방해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도를 하지 못하는 것은 철저히 배후에 마귀의 역사가 있음을 알고 마귀와 싸워 이겨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엡 6:12). 그렇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은 악한 영들과의 싸움입니다. 즉 마귀와의 싸움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힘으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엡 6:13). ‘전신갑주’가 무엇입니까? 머리에서 발끝까지 온 몸을 보호하는 갑옷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우리가 전신갑주를 취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악한 자의 불화살을 소멸할 수 있는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구원의 투구를 쓰고,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고 권면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혼자서 말씀을 읽고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원수 마귀와의 싸움에서 이겨야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지 못하도록 교묘하게 공격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읽지 못하게 하고, 기도하지 못하게 하고, 혈기를 내게 하고, 전도를 하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의 싸움은 사람과의 싸움이 아니라 마귀와의 싸움인 줄 알고 마귀와의 싸움에서 승리하심으로 하나님의 약속을 누리는 축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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