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광은 주님께 돌리고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눅 5:12-16 2015.1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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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은 주님께 돌리고 더욱 주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눅 5:12-16 2015.10.252018-12-03T22:57:4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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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설교를 평소보다 짧게 하고 8차 필리핀사역에 대해 나누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나병환자가 예수님께 나아와 고침 받은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세의 율법에 나병환자는 어느 누구도 가까이 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레 13:45-46). 그래서 나병환자는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나면 사람들이 자기에게 접근하여 오는 것을 막기 위하여 “나는 부정하다! 부정하다!”라고 외쳐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나병환자가 사람과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나병자가 주님께 나아가 고침을 받을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나병자에게 주님께 나가면 꼭 치유를 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은 최고의 장애인 율법을 뛰어넘어 주님께 나아가 고침을 받게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 모두에게 나병환자가 가졌던 믿음이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믿음만 가지면 나병자처럼 응답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즉 우리에게 믿음만 있으면 우리가 구하는 모든 기도에 응답받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믿음으로 구하면 모두 응답을 받는 것처럼 가르침을 받아왔습니다. 그래서 믿음으로 구하면 자신이 원하는 모든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나병환자가 고침받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2-13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왜 예수께서 나병자를 고쳐주셨습니까?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 그것은 주님께서 그것을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즉 고침 받은 것이 주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의 응답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바로 주님의 뜻입니다. 즉 주님의 뜻에 맞아야 믿음의 기도가 응받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즉 주님의 뜻에 맞지 않는 믿음은 자기 욕심이기 때문에 응답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기자는 “…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라”(약 4:2-3)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기도할 때에 주님의 뜻에 포커스를 맞추어야 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번에 말씀을 준비하면서 나병자에게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당시 나병자의 상황은 매우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온 몸에 나병이 들릴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런 상황에서도 먼저 자신의 병이 낫는 것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보다 주님의 뜻인지를 물었습니다. 우리는 나병자에게서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보다 주님의 뜻을 구해야 합니다. 내 뜻과 생각을 믿는 것은 신앙이 아니라 신념입니다. 자기 생각을 믿는 것은 우상 숭배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대로 일이 이루어지지 않아 불평하고 원망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의 뜻에는 관심이 없고 오직 내 뜻을 이루기 위해 기도했던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뜻대로 구하지 말고 주님의 뜻대로 간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나병자를 고치실 때에 어떻게 고치셨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13절입니다.“예수께서 손을 내밀어 저에게 대시며” 예수께서는 다른 방법으로도 얼마든지 나병자를 고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나병자에게 손을 내밀어 대심으로 고치셨을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나병자와 접촉하지 말아야 하는데 왜 예수께서는 굳이 손을 내밀어 그의 몸에 대심으로 고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소외된 사람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누군가와의 접촉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입니다. 상대방에게 뭔가를 주지만 자기를 기쁘게 하는 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성자 프란시스를 잘 아실 것입니다. 그는 부잣집 맏아들로 태어났지만 학교를 중단하고 포목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벌었고 젊은 시절 허랑방탕하게 살았습니다. 그러나 질병을 통해서 살아 계신 주님을 만났습니다. 그 후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주님의 마음으로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나병자들을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프란시스의 집의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나가 보았더니 한 나병자가 서 있었습니다. 나병자는 몹시 추우니 잠시 방에서 몸을 좀 녹일 수 있게 해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프란시스는 친절하게 그의 손을 잡고 방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러자 환자는 너무 배가 고프니 저녁을 먹게 해 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두 사람은 같이 식탁에서 저녁을 먹었습니다. 고름이 줄줄 흐르고 썩은 냄새가 나는 흉칙한 나병자와 마주앉아 밥을 먹는 것은 정말 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밤이 깊어지자 나병자는 너무 추우니 프란시스에게 알몸으로 자기 몸을 녹여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래서 프란시스는 입고 있던 옷을 다 벗고 자신의 체온으로 나병자를 안아 녹여주었습니다. 이튿날 아침이 되었습니다. 프란시스가 일어나 보니 환자는 온데 간 데 없었습니다. 주님이 나병자의 몸으로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후 프란시스는 자기처럼 미천한 자에게 주님께서 찾아와 주신 것에 대해 깊은 감사의 기도를 드렸는데 그것이 바로 유명한‘평화의 기도’입니다.
    주여, 나를 평화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신앙을/ 거짓이 있는 곳에 진리를 / 절망이 있는 곳에 희망을/ 어두움에 빛을 / 슬픔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가 되게 하소서/위로 받기보다는 위로하고/ 이해 받기보다는 이해하며/ 사랑 받기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우리는 줌으로써 받고/용서함으로써 용서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나병자의 아픔을 배려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타자중심적인 사고를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나병을 고쳐주시면서 그에게 뭐라고 하셨습니까? 14절입니다.“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또 네 깨끗케 됨을 인하여 모세의 명한대로 예물을 드려 저희에게 증거하라.”당시 나병자는 불치병으로 저주의 상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불치병을 고치셨으면 더 널리 알리어서 더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셔야 하는데 왜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정말 말대로 사람들에게 이르지 말라는 의미일까요? 본문을 자세히 읽어보면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고만 말씀하시지 않고 제사장에게 보이고 저희에게 증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는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제사장보다 먼저 다른 사람에게 알려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왜 그렇게 하라고 말씀하셨을까요? 모세의 율법에 그렇게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 나병자에게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가서 제사장에게 그의 몸을 보이고 모세의 명한대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확인을 받으라고 말씀하신 것은 율법을 지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딜레마에 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나병자를 고쳐주시기 전에는 예수께서 나병자가 율법을 지키지 않은 것에 대해 아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았는데, 그가 고침 받고나자 율법을 지키라고 요구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그것은 예수께서는 율법을 구원의 조건으로 이해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즉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 것으로 이해하시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구원 받은 자는 율법을 지켜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구원받았기에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아버지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일로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자 어떻게 하셨습니까? 15-16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예수의 소문이 더욱 퍼지매 수많은 무리가 말씀도 듣고 자기 병도 고침을 받고자 하여 모여 오되 예수는 물러가사 한적한 곳에서 기도하시니라” 특별히 영어 성경은 16절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But Jesus often withdrew to lonely places and prayed.” withdraw는 ‘물러나다’는 뜻입니다.‘물러나다’는 뜻은 포기에 가까운 표현입니다. 주님은 자신에게 주어지는 영광의 자리를 포기했다는 뜻입니다. 주님께서 영광을 받는 자리를 떠나셨던 것은 그것이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임을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주님께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모든 영광은 주님의 것임을 알고 그 영광을 가로채지 말고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멸치 천대는 우리가 받고 모든 영광은 주님께 돌려야 합니다. 우리가 쥐고 있던 모든 것들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우리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구하신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영광을 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영광을 구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한적한 곳으로 물러가셔서 무엇을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기도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예수깨서 기도하셨다는 것은 쉽게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한 사람이라도 더 고쳐주시고 구원하셔야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러나 주님께서는 그렇게 하시지 않고 기도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하시는 것일까요?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기도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이런저런 일로 바쁘면 기도를 소홀히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면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아십니까? 주님보다 그것들이 더 중요하게 여겨지고 결국 주님을 멀리하게 됩니다. 그리고 주님을 멀리하면 마귀가 가까이 하고 마귀가 가까이 하면 결국 패망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기도를 배워야 합니다. 일이 잘되어 바빠질수록 하나님과 가까운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것보다 주님과 대화하는 시간보다 소중하고 가치 있는 시간은 없습니다. 기도로 주님과의 관계를 더욱 친밀하게 하시기를 주님의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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