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려없이 살 수 있습니다. 마6:31-34 2017.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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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없이 살 수 있습니다. 마6:31-34 2017.1.292018-12-03T23:20:45+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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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가 알다시피 누가복음을 강해중입니다. 그래서 금주도 순서에 따라 누가복음 12장 35-40절을 중심으로 말씀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래도 금주가 음력으로 새해 첫 주인데 다른 말씀을 전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읽은 말씀 설교 본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굳이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염려라는 주제에 대해 말씀을 준비했을까요? 그것은 염려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해가 바뀌어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는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구절이 있습니다. 33절입니다. 함께 다시 읽겠습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상황에서 이 말씀을 하셨습니까? 우리가 읽어서 알고 있듯이 예수께서 염려하지 말라고 하시면서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마태복음 6장 33절은 염려와 관련해서 이해를 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동안 마태복음 6장 33절을 어떻게 이해하였습니까? 앞뒤 문맥과는 전혀 상관없이 마태복음 6장 33절만 뚝 떼어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즉 염려와는 전혀 상관없는 말씀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주로 먼저 기도해야 할 제목으로만 생각했습니다. 이제 마태복음 6장 33절을 새롭게 바라보아야 합니다. 무엇을 먼저 구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이 아니라, 어떻게 하면 염려를 해결할 수 있는지를 가르쳐주는 말씀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6장 33절은 무엇으로 시작하고 있습니까? ‘그런즉’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영어성경에서는 ‘But’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그런즉’과 ‘그러나’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 접속사입니다. ‘그런즉’은 ‘그러므로’와 유사한 접속사로서 원인결과 접속사입니다. 반면에 ‘But’은 앞의 내용과 정반대의 내용을 말하려고 할 때에 사용하는 역접 접속사입니다. 문맥으로 볼 때에 한글성경보다는 영어성경이 번역을 바르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가 염려하지 않기 위해서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것입니다. 즉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구하지 말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염려를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난주에 염려하고 싶지 않은데 우리가 계속해서 염려를 하게 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드렸습니까? 배후에서 마귀가 계속해서 우리를 공격하기 때문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그 근거를 염려의 원어인 ‘메림나오’에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메림나오’는 ‘마음’과 ‘나누다’의 합성어로서 마음이 갈라지는 것이 염려인데, 마귀는 ‘이간자’이므로 우리의 마음이 나눠지게 하는 것은 마귀의 공격에 기인하기 때문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우리가 염려하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우리가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않고 이방인처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하기 때문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 두 가지가 서로 상충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이것은 염려의 원인을 각각 다른 측면에서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공격하기 때문에 염려한다는 것은 영적인 차원에서 이해한 것이고 ,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지 않고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하므로 염려를 하게 된다는 것은 일반적인 차원에서 이해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이 질문을 만들어서 여러분을 괴롭게 할까요?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떤 문제를 바라볼 때에 영적인 측면과 일반적인 측면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사업에 실패를 했다고 합시다. 사업의 실패를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먼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소위 말하는 경영학적인 측면에서도 분석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할 때에 문제를 정확히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실제적으로 염려하지 않기 위해서는 마태복음 6장 33절에서 두 가지 단어를 주의 깊게 살펴보아야 합니다.
    첫째로, ‘먼저’입니다. ‘먼저’는 우리가 알다시피 ‘어떤 일에 앞서서’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가졌기에 무엇을 먹고 입는 문제를 생각해야 하지만 그것을 구하기 전,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은 ‘먼저’와의 싸움입니다. 하나님 먼저가 아니면 신앙생활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만 염려로부터 자유하지 못한 것은 순서가 잘못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통치와 바른 관계를 구하는 삶을 살아가지 않기 때문에 각종 염려가운데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망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의 칼자루를 쥐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십일조를 드리고 일주일 중 하루를 일하지 않아도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역설의 종교입니다. 예수께서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요 12:2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구하면 하나님께서 염려하는 것보다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유명한 시간관리 전문가가 학생들에게 강의를 시작하면서 “제가 퀴즈를 하나 내 보겠습니다”라고 하더니 테이블 밑에서 커다란 항아리를 꺼내 올려놓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항아리 안에 ‘주먹 만한 돌’을 하나씩 넣더니 아구까지 돌이 가득 차자,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학생들은 일제히 “예”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강사는 “정말입니까?”라고 되묻고서는 다시 테이블 밑에서 ‘조그만 자갈’을 한 움큼 꺼내어 항아리에 집어넣고 흔들었습니다. 그러자 자갈이 큰 돌멩이 사이에 난 틈을 비집고 들어갔습니다. 자갈이 가득 차자 강사는 다시 물었습니다. “이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그러자 학생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고 고개만 갸웃거렸습니다. 그러자 강사는 다시 테이블 밑에서 ‘모래’를 한 움큼 집어 들더니 주먹 만한 돌멩이와 자갈 사이의 빈틈으로 흘려 넣고는 또 물었습니다. “이제 항아리가 가득 찼습니까?” 그러자 이번에는 학생들이 자신 있게 외쳤습니다. “아닙니다!” 아니나 다를까 강사는 빙그레 웃으면서 물 주전자를 꺼내어 ‘물’을 항아리에 붓자 항아리에 물이 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여러분은 이 실험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한 학생이 번쩍 손을 들더니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노력하면 사이사이 다른 일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그러자 강사는 세차게 머리를 흔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닙니다. 이 실험이 주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차례에 관한 교훈’입니다. 만약 맨 처음에 큰 돌을 넣지 않고 먼저 자갈이나 모래를 넣었다면 큰 돌은 영원히 넣지 못했을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인생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그것을 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를 의를 구하지 않으면 영원히 그것을 구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반면에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를 구하므로 염려의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구하라’는 동사입니다. ‘구하라’는 영어로 ‘seek’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단어는 ‘을 발견하기 위해 찾다, 또는 필요한 것을 얻기 위해 추구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단순히 응답을 받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한다는 의미를 갖고 있지 않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했습니까? 기도하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가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는 뜻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의 나라’는 ‘하나님의 나라’로서 그의 나라를 구하라는 말은 하나님의 통치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는 삶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의 의’는 ‘하나님의 의’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얻게 되는 의라고 말할 수 있지만, 여기서는 그런 뜻이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는 삶을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위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그분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 삶을 살아가는 삶을 살아갈 때에 염려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지만 염려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우리가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맺는다면 염려 없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한 가지 예화를 말씀드리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나미’라는 필기용품 제조업체가 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가 한 때 경쟁이 너무 심해서 도산의 위기에 처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이 회사의 대표인 송삼석씨가 기도원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분이 기도하면서 생각해보니까 사업을 하는 동안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게 너무나 많았습니다.
    첫째, 주일성수를 하지 않았습니다. 결혼식이나 계모임이나 친구들의 모임들에 참석하느라고 주일을 빼먹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놓고 철저히 회개하였습니다. “하나님, 이제부터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을 범하지 않겠습니다.
    둘째, 돈을 많이 벌고도 십일조를 하지 않았습니다. 십일조를 하려고 해도 사업을 하다보면 늘 부족해서 감사헌금만 했지 십일조를 드리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회개했습니다. “하나님, 이제부터 철저히 십일조를 하겠습니다.”
    셋째, 새벽기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새벽기도를 해야 된다는 것을 알았지만 사업관계로 사람들을 만나 술을 마시고 피곤하다는 핑계로 하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회개했습니다. “제가 새벽마다 주님 앞에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범하였습니다. 이제부터는 새벽 기도를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고 난 후, 성경을 쭉 읽다가 요한복음 21장 1-14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거기에 보면 베드로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졌더니 153마리의 고기를 잡았다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11절).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하나님, 제가 ‘모나미 153’이라는 볼펜을 만들겠습니다. 하나님 이 볼펜이 모든 사람의 손에, 아니 전 세계에 있는 모든 사람의 손에 다 들려지게 하옵소서!” 그리고 목표를 크게 잡고 “50억 자루가 팔리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했습니다.
    사실 부도 위기에 몰린 회사가 장차 볼펜 50억 자루를 팔 꿈을 꾼다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한 자루에 200백 원만 계산해도 50억 자루면 1조 원이나 됩니다. 허황된 기도같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기도하고 내려와서 ‘모나미 153볼펜’을 만들어 팔기 시작했습니다. 어찌된 일인지 소문이 나기 시작하더니 볼펜 시장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도 모나미 볼펜을 한 번씩 써봐서 알지만, 디자인이 뛰어난 것도 아니고 다른 제품보다 기능이 특출한 것도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수십 년 동안 불티나게 팔려서 현재 자산이 수천억대가 되는 회사로 발전했습니다. 2015년 현재 36억 자루가 팔렸다고 합니다. 이렇게 된 근원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송삼석 회장이 무엇을 먹을까 입을까를 염려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불투명한 시대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상황에서도 풍성한 삶을 살아가는 방법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면 됩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통치를 구하고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구하는 삶을 살면 하나님께서 간섭하셔서 우리의 삶을 지금보다 풍성하게 하십니다. 염려대신 풍성함을 누리게 하십니다. 2017년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심으로 모든 염려에서 자유한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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