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 므나 비유를 새롭게 해석하다 누가복음 19:11-27절 2017.12.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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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므나 비유를 새롭게 해석하다 누가복음 19:11-27절 2017.12.102018-12-03T23:37:4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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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내용은 소위 열 므나 비유라고 합니다. 여러분이 다 읽어서 알고 있듯이 귀인이 왕위를 받으려고 먼 나라로 가면서 종 열에게 각각 한 므나씩 주면서 장사하라고 했는데 왕위를 받고 돌아와서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긴 종은 잘했다고 칭찬을 했지만 한 므나 그대로 가지고 나온 종은 책망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는 마태복음 25장에 나오는 달란트 비유와 다소 내용이 흡사하지만 전혀 다른 비유입니다. 열 므나 비유를 통하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자기 중심적으로 말씀을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11절을 보십시오.“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 비유를 더하여 말씀하시니 이는 자기가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고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함이더라.”본문을 통하여 예수께서 열 므나 비유를 어떤 상황에서 말씀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제자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당장에 나타날 줄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제자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이런 생각을 했을까요? 그것은 스가랴 예언 때문입니다.“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슥 9:9). 그런데 마침 예수께서 예루살렘 가까이 오셨을 때에 삭개오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눅 19:9-10).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메시아가 와서 자신들을 구원해주실 것을 기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에 가까이 오셨을 때에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곧 왕으로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신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 왜 예루살렘 성에 입성하셨습니까? 죽으시기 위해 입성하셨습니다. 제자들이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곡해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자기 생각에 따라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생각을 기록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해석해야지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만일 성경을 자기중심적으로 해석하면 어떻게 될까요? 그 순간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자신의 욕심을 이루는 요술방망이로 전락합니다. 이렇게 자신의 욕심을 이루기 위해 성경을 이용하는 것을 기복신앙이라고 합니다. 왜 기독교가 오늘날 이기적인 종교집단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까? 성경을 하나님의 뜻대로 읽지 않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성경을 보는 태도를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의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 위해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반드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12-15절을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어떤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갈 때에 그 종 열을 불러 은화 열 므나를 주며 이르되 내가 돌아올 때까지 장사하라 하니라 그런데 그 백성이 그를 미워하여 사자를 뒤로 보내어 이르되 우리는 이 사람이 우리의 왕 됨을 원하지 아니하나이다 하였더라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와서 은화를 준 종들이 각각 어떻게 장사하였는지를 알고자 하여 그들을 부르니”
    이 본문에서 귀인은 예수님을 가리키고, 종은 제자를 가리키고, 귀인을 미워하고 왕 됨을 원치 않는 자들은 유대 종교지도자들과 그를 따르는 이스라엘백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면 귀인이 먼 나라로 가서 왕위를 받아가지고 돌아온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예수께서 천국으로 가셨다가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반드시 다시 오십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오신다는 것을 알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 날을 먼 훗날에 임할 것으로 생각하지 말고 곧 도래가 임박한 것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본문을 보시면 귀인이 왕위를 받아가지고 오려고 먼 나라로 가지만 오랜 세월이 지나야 돌아온다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즉 귀인이 먼 나라로 가서 곧바로 왕위를 받아온 것처럼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반드시 오시는데 곧 오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이렇게 곧 주의 재림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믿는 것을‘종말적 신앙’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종말적 신앙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이 신앙으로 살아가지 않으면 우리의 시선을 이 세상에 빼앗기고 마침내 마귀에게 유린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바울도 이것을 알았기 때문에 자기 당대에 예수께서 오실 것을 믿고 종말적 신앙으로 살아갔던 것입니다.
    우리가 왜 제자훈련을 하기 위해 지구촌 곳곳마다 찾아다니고 있습니까? 주님의 재림이 임박해있기 때문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지옥에 보내면 안 되는데 복음을 가장 효과적으로 전하는 방법이 제자훈련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하고 넘어갈 것이 있습니다. 과연 예수께서 제자들이 이 비유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들을 것이라고 생각하시고 말씀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여러 차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지만 그것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은 더욱 무슨 뜻인지 알리가 만무합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시간이 지나면 깨닫게 되어 재림을 사모하는 신앙생활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시는 제자들이 무슨 의미를 깨닫지 못했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다시 그들에게 나타나셨을 때에 깨닫고, 주님께서 곧 다시 오실 것을 확신하고 그분을 위해 목숨을 바쳤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지금 이 비유의 의미를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은 생애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자로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주님께서는 우리가 수고한 대로 상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16-19절을 읽겠습니다.“그 첫째가 나아와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겼나이다.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다. 착한 종이여, 네가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하였으니 열 고을 권세를 차지하라. 하고 그 둘째가 와서 가로되 주여, 주의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만들었나이다. 주인이 그에게도 이르되 너도 다섯 고을을 차지하리라 하고”유대 나라의 화폐의 단위 중에서 달란트가 제일 높은 단위이고, 그 다음은 므나이고, 그 다음은 데나리온이고, 그 다음은 세겔과 렙돈입니다. 한 데나리온은 한 사람의 하루 노동 품삯에 해당되고, 한 므나는 보통 사람의 한 달 월급에 해당됩니다. 그런데 귀인이 열 종에게 각각 한 므나씩 주면서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왕이 되어 돌아와서는 각 종을 불러서 결산했습니다. 그런데 종마다 달랐습니다. 한 므나로 장사를 해서 열 므나를 남긴 종도 있었고, 한 므나로 장사를 해서 다섯 므나를 남긴 종도 있었고 한 므나를 가지고 장사하지 않고 그대로 가지고 온 종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 각각 “잘하였도다. 착한 종이여!”라는 칭찬과 함께 한 므나로 열 므나를 남긴 종은 열 고을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고, 한 므나로 다섯 므나를 남긴 종에게는 다섯 고을을 차지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반면에 장사를 하지 않고 한 므나를 그대로 가져온 종에게는 책망을 하며 있는 것을 빼앗아 열 므나 있는 자에게 주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장차 천국에서는 각자 충성한 대로 상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믿는 자는 누구든지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상은 각자가 수고한 대로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두 가지 법칙이 있습니다. 첫째는 심은 대로 거두는 종두득두의 법칙이고 다른 하나는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은혜의 법입니다. 이 두 법은 이 세상 뿐 아니라 천국에서도 상존합니다. 그런데 혹자는 천국에서는 종두득두의 법칙이 없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즉 천국에는 상급의 차별이 없이 다 똑같다고 주장합니다. 심지어 혹자는 천국에서조차 이 세상처럼 높낮이가 있다면 그런 곳에 갈 필요가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성경은 여기저기서 천국에서 상이 다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신앙생활을 대충한 자와 목숨 바쳐 주님께 충성한 자가 동일하다면 그것이 공평한 것일까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어떻게 헌신하느냐에 따라 천국에서의 상급이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고 죽도록 충성해야 합니다.

    넷째로, 한 사람도 구원하지 못한 자는 ‘악한 자’라고 책망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귀인이 왕이 되어오자 한 므나를 내어 놓은 자가 있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21절을 보십시오. “이는 당신이 엄한 사람인 것을 내가 무서워함이라. 당신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나이다.”왜 주인이 장사하라고 준 한 므나를 가지고 장사하지 않고 수건에 싸 두었을까요? 그것은 므나를 맡긴 주인을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자 므나를 준 주인은 뭐라고 말했습니까? 22,23절을 보십시오.“악한 종아 내가 네 말로 너를 판단하노니 너는 내가 두지 않은 것을 취하고 심지 않은 것을 거두는 엄한 사람인 줄 알았으냐? 그러면 어찌하여 내 은을 은행에 두지 아니하였느냐 그리하였으면 내가 와서 그 변리까지 찾았으리라.”한마디로 주인은 종을 향하여 ‘악한 종’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어떤 자가 악한 자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는 나쁜 짓을 한 자를 악한 자라고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해야 할 것을 하지 않은 자를 악한 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서 한 므나로 장사해서 열 므나와 다섯 므나를 남기고, 한 므나를 그대로 가지고 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어떤 종은 복음을 전파해서 열 명을 구원을 했다는 뜻이고, 어떤 종은 다섯 명을 구원했다는 뜻이고, 어떤 종은 한 명도 구원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즉 본문에서 한 므나 그대로 가져온 자가 악한 자라는 평가를 받은 것은 그가 한 영혼도 구원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마지막 날 한 영혼도 구원하지 못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악한 자라는 심판을 면할 수 없습니다. 사복음서는 모두 서신 말미에 복음을 전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하나님 나라와 그의 다시 오실 것을 두고 엄히 명하노니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고 명령하였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마땅히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단 한 사람에게라도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게 해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열 므나 비유의 핵심은 예수께서 심판주로 다시 오셔서 복음을 증거한 자들에게는 상을 주시고 그렇게 하지 않은 자들에게는 준엄한 책망이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우리 모두 복음을 파는 일에 탁월한 자가 되어 주님 앞에 섰을 때에 잘했다 칭찬받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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