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주일에 어른 신앙을 생각한다 막10:13-16 20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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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이주일에 어른 신앙을 생각한다 막10:13-16 2014.5.42018-12-03T21:19:2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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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동신교회에 부임해서 어린이주일을 두 번 지났습니다. 두 번 설교 원고를 대충 훑어보면서 제 설교지만 나름대로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만 아니라 절기설교는 주제가 동일하기 때문에 지난 설교를 리메이크 하고 싶은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방금 지은 밥이 더 맛이 있음을 알기 때문에 재탕의 유혹을 물리치고 새롭게 밥을 지었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큰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아이를 가진 부모들이 예수님께서 아이들을 만져주시기를 바라고 데리고 왔을 때에 제자들과 예수님의 반응이 각각 어떠했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은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사람들에게 분노했지만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따뜻하게 맞이하시고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어떻게 하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자녀들의 영적인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본문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3). 당시 유대 어머니들은 아이가 첫돌을 맞으면 유명한 랍비에게 아기를 데려가서 기도를 받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따라서 본문에서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아이들을 데리고 왔던 것도 예수님께 기도를 받기 위해서 데려온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사실은 이와 동일한 기사를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을 보면 사람들이 예수께서 안수하고 기도해주심을 바라고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왔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19:13). 부모들이 아이들에게 기도를 받게 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친밀하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즉 부모들이 자녀의 영적인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자기 아이를 데리고 가서 안수 기도를 받게 하려는 것을 보면서 각자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나는 자녀의 영적인 삶에 얼마나 관심을 갖고 있는가?”

    안타깝게도 자녀들의 영적인 삶에 깊은 관심을 두는 부모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돈의 사용처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의 신앙교육을 위해 어느 정도의 돈을 사용하십니까? 우리나라 학부모들이 일 년간 부담하는 사교육비 규모는 년간 30조 원이 넘습니다. 여기에 공교육비까지 하면 50조원이 넘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북한의 총예산이 약 15조 원이니까 무려 3.5배나 넘는 돈을 오직 교육에만 쏟아 붓고 있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 중에 자식 과외를 위해 한 달에 천만 원을 사용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6:21)라고 말씀하고 있듯이, 우리가 자녀교육에 많은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은 거기에 마음을 쏟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을 믿는 자라면 자녀들의 영적인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녀들이 밥을 먹지 않으면 어떻게 해서라도 밥을 먹이려고 하듯이 자녀들이 영적인 양식을 먹지 않으면 그냥 두지 말고 권면하고 설득해서 먹게 해야 합니다. 자식들이 부모와 대화를 하지 않으면 아이에게 무슨 일이 있다고 생각하고 대화를 하려고 노력하듯이, 진짜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멀리하는 것을 보면 자녀들의 신앙에 문제가 있는 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왜 우리가 자녀의 영적인 삶에 관심을 쏟아야 할까요? 많은 이유가 있지만 크게 두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하나는,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계승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원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당대에만 잘하기를 원하시지 않고 계속해서 전승되기를 원하십니다. 기독교가 왜 전도를 강조하는지 아십니까? 전도를 해야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고 자녀들이 만들어져야 신앙을 계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전도는 단지 모르는 사람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는 방법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생물학적 전도도 있습니다. 즉 부부가 낳은 자식에게 신앙을 계승함으로 주의 백성이 많아지게 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이 방법으로 성공한 민족이 바로 유대인입니다. 유대인은 전도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유대교 신앙은 계속해서 전승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철저히 자기 자녀들에게 신앙교육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밖으로 나가서 전하지 못할지라도 나를 통하여 태어난 자식만큼은 구원을 받게 해야 됩니다. 우리의 신앙을 당대에서 멈추게 해서는 안 됩니다. 어제 조선화자매가 시집을 가서 첫 아들을 낳아서 심방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의 이름을 시아버지가 하명으로 지었습니다. 왜 그렇게 이름을 지었는지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지으신 명품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지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어릴 때부터 하나님과 관계를 맺게 하여 키운 자식은 결코 하나님의 품을 떠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가 나와 내 집은 오직 하나님을 섬기겠노라고 말한 것처럼 자신뿐만 아니라 자녀들도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하겠다고 결단해야 합니다.

     둘은, 하나님을 가까이 하는 것이 진짜 성공이기 때문입니다. 왜 부모들이 자녀들의 공부에 돈을 쏟아 부을까요? 그것은 자녀들이 이 세상에서 성공적인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진짜 성공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세상의 모든 것은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사라지고 변합니다. 그래서 성공한 것 같아도 그것은 진짜가 아닙니다. 진짜 성공은 영원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 영원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 밖에 없기 때문에 하나님과 가까이 해야 진짜 성공을 하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73:28)라고 말한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하지 않은 상태에서 얻는 물질, 권세, 명예는 복이 아니라 화가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어려움이 없으면 하나님을 찾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말 자식들이 이 세상에서 진짜 성공적인 삶을 살기를 원한다면 자녀들이 하나님을 가까이 하게 해야 합니다. 언제 아담과 하와가 불행하게 되었습니까? 그들이 에덴동산에 있었을 때에는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담과 하와가 살았던 에덴동산을 낙원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어지고 낙원에서 쫓겨나자 불행한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 자녀들이 하나님과 밀접한 관계를 맺게 해야 합니다.

    오래 전에 미국에서 실제로 일어난 일입니다. 모든 미국 시민의 가슴을 울리고 그리스도인들에게는 더욱 신앙의 도전을 주었던 한 어린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 소년의 이름은 라이언 화이트(Ryan White)입니다. 라이언은 13살 때 혈우병을 앓아서 수술을 받았는데 수혈을 잘못해서 그만 에이즈(AIDS)에 걸리고 말았습니다. 이번 세월호 사건처럼 자신의 잘못이 아닌 어른들의 부주의로 죽음 앞에 놓이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이 곧 죽을 것을 알면서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고 변함없이 밝게 학교생활을 했습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들에게 아주 친절하게 대하였고, 그를 염려하는 부모님을 위로하면서 기쁘게 지냈습니다. 이러한 사실이 신문 기자들에게 알려지게 되면서 소년의 이야기는 매일 각종 신문에 게재되었고 텔레비전 등의 매체를 통해 보도되자 많은 사람들에게 각광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레이건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라는 거부 부동산 업자, 마이클 잭슨 등 유명 인사들과 많은 사람들이 그를 찾아가 선물도 주고 위로하며 관심을 표현해 주었습니다. 그럼에도 죽음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습니다. 라이언은 5년 동안 살다가 결국 18살에 죽었습니다. 그런데 소년이 죽기 전에 그의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나눈 대화 내용이 한 크리스천 잡지에 실렸는데 그것으로 인해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가슴을 울리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아들아, 미안하다. 이제는 네게 아무 것도 해 줄 것이 없구나. 이 아빠가 더 이상 어떤 선물도 줄 수 없음을 용서해다오.”

    아빠, 전 지금까지 많은 선물을 받았지만 아무도 아빠 같은 선물을 준 사람은 없었어요. 아빠는 저에게 죽어서도 천국에 갈 수 있는 티켓을 선물로 주셨잖아요. 바로 예수님을 소개해 주셨어요. 아빠 덕분에 교회에 나가서 예수님을 믿고 영생을 선물로 얻었는걸요. 이 보다 더 위대한 선물은 없을 거예요.”

    얼마나 멋진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이런 위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까? 부모가 어린 자녀의 영혼에 관심을 갖고 그에게 구원의 확신을 심어주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에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꽃을 피우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어린아이처럼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오자 제자들은 꾸짖었지만 예수님은 환영을 하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안으시고 축복기도를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10:15)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는 자는 결단코 그 곳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우리는 예수께서 어린아이같이 받들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말씀하신 의미를 알아야 합니다. 혹자는 어린아이가 어른보다 순수한 것처럼 우리가 순수하게 신앙생활을 해야 한다는 뜻으로 이해합니다. 물론 아이가 어른보다 순수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모든 인간은 나면서부터 죄인이기 때문에 갓난아이나 어른이나 순수성에 별로 차이가 없습니다. 혹자는 어린아이가 자신을 낮추듯이 우리도 자신을 낮추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는 의미로 이해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가 자기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모습을 보신 분이 계십니까? 오히려 어린아이들은 자신을 자랑하고 뽐냅니다. 혹자는 어린아이가 욕심이 없듯이 우리가 욕심을 부리지 말아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어린아이는 사회성이 없어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도 모르고 자기 욕심대로 행동합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어린아이의 어떤 점을 보시고 어린아이와 같이 받들지 않으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나왔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어린아이들이 예수님께 어떻게 나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의지로 나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아닙니다. 어린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부모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왔습니다. 즉 어린아이가 부모에게 의존적이듯이 우리도 주님께 의존적어야 한다는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천국은 스스로 의롭게 살기 때문에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어린아이가 부모 없이 살아갈 수 없음을 알고 부모에게 철저히 매달리듯이 주님의 공로를 철저히 의지하는 자만이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계실 때에 이 일에 본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뜻을 주장하시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아가시지 않았습니다. 무슨 일을 하시든지 자신의 뜻과 생각을 없었고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뜻만 앞세웠습니다. 하나님 없이 자신이 뭔가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영적 교만입니다. 사도 바울도 어린아이처럼 살아갔습니다. 그는 세상의 지식이 많았어도 자신을 가장 어리석은 자로 생각했습니다. 그가 약하게 생각할 때 가장 강한 자가 되었습니다. 가장 능력이 있는 사람은 자신에게 능력이 없고 오직 하나님께만 있다고 믿는 사람이고,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자신에게는 지혜가 없고 오직 하나님께 있다고 믿는 사람입니다.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전 10:12)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의지하는 순간 우리는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제가 1988년 목사안수를 받을 때였습니다. 당시 제가 섬겼던 교회의 사이즈가 커서 부교역자들 가운데 네 명이 한꺼번에 안수를 받았습니다. 안수를 받고 각각 인사말을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제일 먼저 지금 일본 오오사카중앙교회에서 목회를 아주 잘 하고 있는 함광옥 목사가 이렇게 인사말을 했습니다. “저는 주님께서 잠시라도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야 저 친구 지나치게 겸손한 척 하는구나! 어떻게 멀쩡히 서 있으면서 주님께서 붙잡아주시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고 아무 것도 할 없다고 하지그런데 그의 고백이 저의 고백입니다. 정말 주님께서 저를 붙잡아주시지 않으면 쓰러질 수밖에 없고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어린아이가 부모님께 절대 의존적이듯이 하나님께 절대 의존적이어야 합니다.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날마다 주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사람을 외모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제자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만져주심을 바라고 어린아이들이 데리고 나아오는 것을 꾸짖었지만 예수께서는 오히려 그들을 안으시고 축복기도를 해주셨습니다.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을 데리고 온 사람들을 꾸짖었는데 어떻게 예수께서는 어린아이들을 안으시고 축복하셨을까요? 그것은 제자들과 예수님이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사람의 겉모습만 보았지만 예수께서는 속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겉모습만 보았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요? 현재의 이용가치를 보고 사람을 판단했다는 것입니다. 제자의 모습이 바로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닐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천국을 소망한다고 말은 하지만 너무 현세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현재의 모습만 보고 사람을 평가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상대방이 당장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되면 무시하고 관심을 쏟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가치로 사람을 보지 말아야 합니다. 깊이 숨어 있는 영혼을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그가 부자든 가난한 자든 많이 배웠든 못 배웠든 젊든, 연로하든 동일하게 대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어린아이들을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자로 보시고 소중하게 여기셨던 것처럼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소중한 존재로 생각해야 합니다. 어린 아이들도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존재이기 때문에 그들을 소중하게 여겨야 하는 것입니다. 야고보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 형제들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말라 만일 너희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남루한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 너희가 아름다운 옷을 입은 자를 눈여겨보고 말하되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소서 하고 또 가난한 자에게 말하되 너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 하면 너희끼리 서로 차별하며 악한 생각으로 판단하는 자가 되는 것이 아니냐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들을지어다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또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나라를 상속으로 받게 하지 아니하셨느냐“(2:1-5).

    그런데 우리가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아야 할 아주 실제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종종 하찮은 사람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나타나시기 때문입니다. 제가 사람을 외모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말할 때에 자주 사용하는 실화가 있습니다. 제가 분당에서 목회할 때에 저희 교회에 김혜순 전도사라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한양대 영화연극학과를 졸업하고 배우생활을 하다가 심장병으로 사형선고를 받고 칼빈신학을 졸업하고 충현교회 전도사로 사역을 하면서 청송감호소 선교사역에 전념을 하던 분입니다. 제가 10년간 청송감호소 사역을 도우면서 저와 가깝게 지내게 되어 제가 섬기는 분당큰사랑교회의 아동부 전도사로 사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분이 저에게 이런 간증을 했습니다. 그가 어느 날 점심때가 되어 라면을 끓여서 막 먹으려고 하는데 누군가가 노크를 하더랍니다. 그래서 문을 열었더니 아주 남루한 옷을 입은 남자가 서 있더랍니다. 깜짝 놀라서 어떤 일이냐고 했더니 묻는 말에는 대답을 하지 않고 이렇게 말을 하더랍니다. “, 라면 맛있겠다. 라면 좀 먹었으면 좋겠다.” 약간 무섭기도 하고 기분도 좋지 않아 다른 곳으로 가보라고 문을 닫고 혼자서 라면을 먹으려고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사람이 혹시 주님께서 거지의 모습으로 변장하고 나타나신 분이실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더랍니다. 그래서 즉시 일어나서 문을 열고 보았더니 아무도 없더랍니다. 그는 순간 그가 거지의 모습으로 찾아오신 주님이심을 깨닫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다시는 사람을 외모로 대하지 않겠다고 용서를 빌었다고 합니다.

    주님께서 종종 우리에게 하찮은 존재로, 귀찮은 존재로 찾아오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그런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임금이 심판을 할 때에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지 아니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지 아니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 입히지 아니하였고 병들었을 때와 옥에 갇혔을 때에 돌보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왼편에 있던 자들이 뭐라고 대답했습니까? “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께서 주리신 것이나 목마르신 것이나 나그네 되신 것이나 헐벗으신 것이나 병드신 것이나 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공양하지 아니하더이까 그러자 임금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그렇습니다. 사람을 섬기는 것이 곧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가 바르게 신앙생활을 하려면 우리의 눈에 하찮게 보이는 사람부터 사랑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예수께서 한 율법사로부터 제일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37-40). 사람 사랑을 통하여 하나님 사랑을 실천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어린이 주일에 우리가 어떻게 해야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지를 말씀드렸습니다. 자녀들을 정말 사랑한다면 무엇보다도 그들의 영적인 삶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자녀들이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도록 해야 합니다. 어린아이가 부모를 철저히 의지하듯이 절대적으로 주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사람을 외모로 보시지 않은 것처럼 우리도 외모로 대하지 말아야 합니다. 어린이주일을 통하여 우리의 신앙이 좀 더 성숙해지고 주님을 닮아가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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