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가 눅 11:14-26 201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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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는가 눅 11:14-26 2016.10.232018-12-03T23:14:5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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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1장 14-26절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임하게 할까? 20016.10.23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어떤 사건이 소개되어 있습니까? 예수께서 말 못하는 사람을 고치셔서 말을 하게 하는 기적이 일어난 일로 바리새인들과 논쟁을 벌이신 내용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먼저 14절을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한 말 못하게 하는 귀신을 쫓아내시니 귀신이 나가매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는지라 무리들이 놀랍게 여겼으나” 한마디로 귀신을 쫓아내었더니 벙어리가 말을 하게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불치의 병과 귀신이 매우 밀접한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즉 눈에 보이는 질병이 전부가 아니라 그 배후에 귀신의 역사가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귀신을 쫓으셨을 때에 병든 자가 고침을 받고 불치병이 고침을 받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이 어떤 병에 걸렸을 때는 먼저 그 원인이 혹 귀신으로부터 말미암지는 않았는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갑자기 어떤 병에 걸렸다고 합시다. 그러면 혹 마귀의 공격을 받았기 때문에 들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왜 이런 습관을 갖는 것이 필요할까요? 어떤 사건을 육적으로만 판단하지 않고 영적으로 판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즉 영성이 있는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이런 영성이 없으면 율법적인 사람이 되기 쉽습니다. 영성이 있어야 눈에 보이는 대로 판단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구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근거로 모든 병은 귀신으로 말미암는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즉 모든 병은 귀신과 관계가 있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이렇게 주장하는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성락침례교회의 김기동 목사입니다. 성경을 보면 귀신을 쫓을 때에 병을 고침 받았다는 내용이 자주 등장하기 때문에 그의 주장에도 어느 정도 일리는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모든 병의 원인이 귀신이라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성경이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질병에 걸리는 이유를 다양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혹은 하나님께서 징계하시기 때문에, 혹은 자고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혹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등등의 이유로 병에 걸리게 하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든 질병의 원인을 귀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바른 생각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자 어떤 반응이 일어났습니까? 크게 세 가지 반응이 일어났습니다. 첫째로 ‘무리들’은 귀신이 쫓아내므로 벙어리가 말하는 것을 보고서는 놀랍게 여겼습니다. 이와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마태복음은 이런 사실을 놀랍게 여기면서 ‘이는 다윗의 자손이 아냐’라고 말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그중에 더러’는 예수께서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고 했습니다(15절). 셋째로 ‘또 더러’는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세 가지 반응을 보인자들 중에 어떤 자들을 향하여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의 축사 사역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쫓아냈다고 말한 자들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 누가복음을 밝히지 않지만 이와 동일한 내용을 기록한 마태복음은 바리새인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마 12:24). 왜 예수께서 세 부류의 사람들 중에서 오직 바리새인들에게만 대응을 하셨을까요? 그들이 예수님의 축사사역을 가장 심각하게 오해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 잡아주셔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오해를 풀어주시기 위해 크게 두 가지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는 1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지며 스스로 분쟁하는 집은 무너지느니라.” 무슨 말입니까?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가 서로 망하듯이 귀신은 또 다른 귀신의 힘을 빌려서 쫓아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적과 싸우야지 아군과 싸우면 지게 마련입니다. 그리고 또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다른 하나는 19절입니다. “내가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면 너희 아들들은 누구를 힘입어 쫓아내느냐 그러므로 저희가 너희 재판관이 되리라.” 당시에 예수님만 귀신을 쫓아내지 않고 일부 바리새인들도 쫓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께서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이라면 바리새인들은 무슨 능력으로 쫓아내느냐는 것입니다. 즉 바리새인들이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가지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면서 왜 내가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가지고는 비판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말씀이 매우 논리적이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비논리적으로 함부로 말했지만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논리적으로 대응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말이 너무 터무니없기 때문에 그냥 비웃고 넘어가실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렇게 대응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그들의 논리에 호소하셨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배워야 합니다. 종종 우리는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함부로 폄하하는 자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들과 어떤 태도로 논쟁을 합니까? 먼저 화부터 냅니다. 그리고 상대방을 설득시키려는 노력을 중단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께서 본을 보여주신 대로 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터무니없게 말을 할지라도 조소하거나 무시하지 말고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말해야 합니다. 사실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알아들을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전혀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고 상대방이 제대로 알 수 있도록 논리적으로 말할 필요가 없다고 주장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하신 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험담에 논리적으로 대응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먼저, 20절을 보겠습니다. “그러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하나님의 손을 힙입은 것이라는 것입니다. 누가는 ‘하나님의 손’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내었다고 말하지만 마가(3장)와 마태(12장)는 ‘성령’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즉 예수께서 성령으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곧 이미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징표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축사사역을 전혀 새로운 측면으로 말씀하신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우리는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을 보면서 주로 어떤 생각을 합니까? 예수님의 능력에 놀랍다는 반응을 보이고 자신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축사사역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은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증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은 이 말씀이 무슨 말인지 몰랐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처음으로 듣던 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신 것이 하나님의 나라가 임한 것이라는 증표라는 것이 무슨 의미입니까? 귀신이 쫓겨나 곳에 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축사사역에 대한 이해를 새롭게 해야 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능력 행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게 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단지 물리적으로 귀신의 세력을 추방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가 이뤄지게 하는 수단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주기도의 두 번째 기도가 무엇입니까? ‘나라가 임하시오며’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결론을 도출해내야 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은 귀신을 쫓아야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통치를 받기를 원하는 사람은 귀신을 쫓아야 합니다.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해야 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통치가 이 땅에 이뤄지기를 위하여 기도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당연히 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설교를 준비하면서 새롭게 깨달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세워지지 않는지를 새로운 측면에서 깨닫게 된 것입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간구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되려면 귀신을 쫓아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진실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기를 원한다면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그 권세를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께서 또 이 말씀을 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21-22절입니다. “강한 자가 무장을 하고 자기 집을 지킬 때에는 그 소유가 안전하되 더 강한 자가 와서 그를 굴복시킬 때에는 그가 믿던 무장을 빼앗고 그의 재물을 나누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 자신이 더 귀신보다 강하시기 때문에 귀신을 쫓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 말씀을 왜 하셨을까요? 예수께서는 귀신보다 더 강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귀신을 쫓기 위해서 다른 귀신의 힘을 빌리실 필요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셨지만 마귀를 멸하실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도 그분의 능력으로 귀신을 쫓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23절)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더 강한 자가 강한 자를 결박한다고 말씀하시면서 왜 이 말씀을 하셨을까요? 어찌 보면 이 말씀은 앞의 말씀과 전혀 무관하게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사람은 누구든지 어느 한 편에 속하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즉 더 강하신 예수님께 속하든지 아니면 강한 마귀에게 속하든지 둘 중의 하나에 반드시 속해야 합니다. 무엇을 통하여 예수님께 속했는지 아니면 마귀에게 속했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그 기준이 예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는 자는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고, 예수님과 함께 모으지 않는 자는 주님을 헤치는 자입니다. 즉 예수님처럼 귀신을 쫓아내면 예수님께 속한 자이고 귀신을 쫓는 것을 방해하는 자는 마귀에게 속한 자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축사사역에 동참하느냐 하지 않느냐가 주님께 속한 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우리의 원수입니다. 이 원수를 대적하는 일에 주님과 뜻을 함께 하는 자가 예수님께 속한 자입니다. 귀신을 쫓는 것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거나 그런 사역하는 자들을 함부로 비판하고 정죄하므로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24-26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더러운 귀신이 사람에게서 나갔을 때에 물 없는 곳으로 다니며 쉬기를 구하되 얻지 못하고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 심하게 되느니라.”
    이 말씀은 쉽게 이해될 수 있는 말씀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말씀을 비유로 하셨기 때문입니다. 전에 말씀을 드렸지만 비유는 당시 일반적으로 행해지고 있는 풍습을 배경을 합니다. 예수께서는 당시 귀신이 나갔다가 다시 들어가서 상태가 이전보다 안 좋게 되는 상황을 보시고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가 참고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그것은 마태복음 12장 45절입니다.“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그 사람의 나중 형편이 전보다 더욱 심하게 되느니라 이 악한 세대가 또한 이렇게 되리라.” 즉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것은 예수님 당시의 세대를 향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시고 지혜로운 왕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백성들을 구원하셨지만 잠시 동안 구별된 삶을 살고 더 악한 세력에 휩싸여 오히려 더 심한 상태가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의 영적상태는 어떻습니까?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를 통하여 회개하고 결단도 하지만 첫 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점점 더 악해져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계속해서 우리의 원수와 싸워서 이김으로 자신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고 주님의 통치를 받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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