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종이 되렵니까? 눅12:41:48 2017.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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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종이 되렵니까? 눅12:41:48 2017.2.192018-12-03T23:21:3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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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이 본문을 읽어서 알 수 있듯이 지난 번 누가복음 12장 35-40절 말씀과 대등소이 합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설교자들은 이 둘을 하나로 묶어서 설교합니다. 그런데 제가 왜 이 둘을 따로 나누어서 설교할까요? 그것은 본문을 따로 구분하여 설교하지 않으면 본문을 통하여 반드시 들어야 할 주님이 음성을 들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리스도의 종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하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실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메시지입니다.

    오늘 본문은 베드로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41절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여기서 베드로가 말한 ‘이 비유’는 36절부터 40절까지를 말한 비유를 지칭합니다. 즉 종들이 집 주인이 혼인 잔치에 참여했다가 언제 돌아올지 모르기에 깨어 있어야 하듯이, 우리도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깨어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베드로는 예수께서 이 비유를 제자들에게 하신 것인지 아니면 모든 사람들에게 하신 것인지가 궁금했습니다. 왜냐하면 자신들은 주님과 특별한 관계에 있다고 생각했는데, 자신들도 모르게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베드로의 질문에 어떻게 하셨습니까? 예스나 노로 대답하시지 않고 자신의 말을 계속해서 이어갔습니다. 왜 예수께서 그렇게 하셨을까요? 그들에게도 말씀하신 것이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언제 오실지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오늘 말씀도 한마디로 ‘깨어 있으라’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번 말씀은 지난번에 말씀하시지 않은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크게 세 가지입니다. 첫째로,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둘째로, 남녀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기만 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악한 종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셋째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아니한 종이 받을 대가가 어떤 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첫째로, 지혜롭고 진실한 청지기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지난 번 비유에서는 주인에게 상응하는 단어로 ‘종’만 등장했습니다. 그런데 이번 이야기에는 ‘청지기’라는 단어가 등장합니다. 넓은 의미에서 종과 청지기는 서로 바꿔 쓸 수 있을 정도로 의미가 흡사합니다. 그러나 엄격히 말하면 다릅니다. 종은 주인이 시키는 일만 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청지기는 주인을 대신해서 일하는 사람입니다. 즉 종과 청지기는 둘 다 주인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지만, 실제로 일하는 태도가 다릅니다. 종은 그저 시키는 일만 합니다. 그런데 청지기는 어떻게 해야 종들을 잘 관리하고, 주인의 재산을 잘 관리해서 주인에게 조금도 해가 없도록 하기 위해 늘 고민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청지기는 어떤 청지기입니까? ‘말씀의 청지기’입니다. 말씀의 청지기는 다른 그 어떤 청지기보다 소중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청지기 직분을 어떻게 감당하느냐에 따라 많은 영혼이 구원받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의 청지기가 열심히 복음을 전하면 구원받는 자들이 생기고 그렇지 않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그런데 누가 말씀의 청지기입니까? 목회자만 일까요? 아닙니다. 성경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 삼으라고 말씀하셨기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말씀의 청지기입니다. 우리는 말씀의 청지기로서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야 합니다.
    제가 왜 평신도사역형교회를 외치고 있습니까? 모든 평신도가 말씀사역자로 부르심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목회자만 말씀 사역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500년 전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킨 정신과 어긋나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시 중세시대로 돌아가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중세시대가 어떤 시대였습니까? 평신도들에게서 말씀을 빼앗아 평신도를 병신도로 만들었던 시대입니다. 즉 평신도가 말씀사역과는 전혀 무관하게 살았던 시대가 암흑시대였습니다.
    특별히 본문에서 “제 때에 양식을 나누어 주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째로,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에게 때를 놓치지 않고 복음을 전해서 구원받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구원받아야 할 자가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로, 구원받은 자에게 말씀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그들이 가르침을 통해 믿음이 자라고 다른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종들에게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줄 수 있는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를 찾고 계십니다. 찾고 계신다는 것은 단지 예수께서 그렇게 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렇게 살아가는 자가 거의 없다는 의미입니다. 그렇습니다. 뜻밖에도 많은 그리스도인이 말씀을 전하지도 않고 가르치지도 않습니다. 말씀사역에 별로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예배를 드리고, 찬양하고, 기도하고, 헌금을 드리고, 교제하는 데는 깊은 관심을 갖지 복음을 전하고 가르쳐 제자 삼는 살을 살아가는 일에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아가면 신실하고 지혜로운 청지기가 될 수 없습니다.

    둘째로, 때리고 먹고 마신 악한 종의 이야기입니다. 45절 보시겠습니다.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본문은 어떤 자를 ‘악한 종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하여 남녀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한 자입니다. 그런데 왜 이 종이 남녀종들을 때렸을까요? 자기 마음에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왜 먹고 마시고 취했을까요? 자신의 육신의 만족과 쾌락을 위해서입니다. 한마디로 악한 종은 자기 자신이 주인인 것처럼 생각하고 자기의 정욕대로 살아가는 자입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악한 자와 세상에서 말하는 악한 자는 개념이 좀 다릅니다. 세상은 행동에 초점을 맞추지만 성경은 하나님과의 관계에 맞춥니다. 따라서 복음을 믿고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지만 아지도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는 자는 악한 자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께 어떻게 신앙고백을 합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자와 주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구원자라는 것은 죄에서 건져주신 분이라는 뜻이고, 주님이라는 것은 우리의 삶의 주인이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자이시고 주인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자기 뜻대로 하면 악한 자입니다. 악한 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물어야 합니다.
    아이를 업은 한 여성이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기차가 가다가 중간에 고장이 나서 스톱을 했습니다. 여인은 옆 사람에게 기차가 멈춘 곳이 자신이 내려야 할 역인지를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그 역이 바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즉시 내렸습니다. 그녀가 내리자 기차는 곧 출발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자기가 내려야 할 역이 아니라 잠시 차가 고장 나서 정차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매서운 추위에 죽을 고생을 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한 가지 묻겠습니다. 누가 잘못한 것일까요? 기차역이 어딘지를 모르면서 안내한 사람일까요? 아니면 자신이 내려야 할 기차역이 어디인지를 물은 여인일까요? 후자입니다. 왜 그럴까요? 어느 기차역인지를 알려면 차장에게 물었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어떤 문제를 만나든지 예수님께 물어야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악한 종이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갔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악한 종이 주인이 곧 온다고 생각했다면 이렇게 행동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기 위해서는 곧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8확신 마지막 과에는 ‘상주심의 확신’이 있습니다. 에녹이 365세를 살았는데, 왜 300년만 하나님과 동행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그가 65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므두셀라’는 ‘그가 죽으면 하나님의 심판이 온다’는 뜻입니다. 즉 에녹은 므두셀라를 바라보면서 날마다 하나님의 심판을 의식했기 때문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악한 종이 되지 않는 비결은 주님께서 곧 오신다는 확신을 갖고 자기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 살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은 종은 그렇지 않은 종보다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는 이야기입니다. 47절과 48절을 다시 읽습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47절과 48절에는 주의 뜻대로 행치 않은 두 종의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그런데 두 종이 행치 않은 것은 같지만 한 가지 차이점이 있었습니다. 한 종은 주인의 뜻을 알고 있었지만 행치 않았고, 다른 종은 주인의 뜻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행치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이 두 종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주의 뜻을 알고도 그대로 행치 않는 자는 많이 맞을 것이고, 주의 뜻을 몰라서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적게 맞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이것을 말씀하셨을까요? ‘주의 뜻을 알면서 행치 않는 자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말씀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는 자는 엄한 벌을 면치 못합니다. 저와 여러분은 복음을 먼저 믿은 자로서 다른 사람보다 큰 책임을 갖고 있습니다. 책임의식을 갖고 일하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는 전혀 다르게 행동합니다.
    여기서 장차 ‘잘못한 것에 대해 매를 맞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알아야 합니다. 알다시피 우리가 죽으면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곳에서 상을 받고 영원히 주님과 영생복락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매를 맞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우리가 주님의 뜻대로 살지 않으면 천국에서 받을 상이 감해진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지만 주님의 뜻대로 않으면 천국의 상을 많이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세 종류의 종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첫째는 지혜 있고 진실한 종에 대한 이야기, 둘째는 때리고 먹고 마신 악한 종에 대한 이야기이고, 셋째는 주인의 뜻을 알고도 행치 않는 종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첫째의 종이 되어야 하지, 둘째와 셋째의 종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서 원하시는 종이 되어 마지막 날 큰 상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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