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메시아를 믿고 따릅니까? 마16장 16-24절 2013.4.7

//어떤 메시아를 믿고 따릅니까? 마16장 16-24절 2013.4.7
어떤 메시아를 믿고 따릅니까? 마16장 16-24절 2013.4.72018-12-03T20:27:02+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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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러분 저를 보고 싶으셨습니까? 죄송하지만 매주일 저를 보고 싶은 마음을 가지시고 예배에 참석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저를 보고 싶다는 것은 곧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싫어도 저를 사모하시면 하나님께서 저의 입을 통하여 증거되는 말씀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부어주십니다.할렐루야! 옆엣 분과 인사합니다. “말씀으로 넘치는 복을 받읍시다.”

      예수께서 가이사랴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러자 혹자는 예수님을 세례요한이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세례요한이 광야에서 천국이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라고 외쳤는데 예수께서도 천국이 가까웠다 하시면서 회개하라고 외치셨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엘리야라고 말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엘리야가 죽은 수넴여인의 아들을 살리고 하늘에서 불을 내리는 등 엄청난 능력을 했는데 예수께서도 죽은 자를 살리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는 등 수많은 기적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혹자는 예레미야라고 한다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예레미야 선지자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는데 예수께서도 종종 우시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세례 요한도, 엘리야도, 예레미야도 아니셨기 때문에 다시 제자들에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그러자 베드로가 마치 이 질문을 기다리고나 있었다는 듯이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 16:1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베드로의 대답을 들으시고 “네가 복이 있도다”라고 하셨을까요? 어느 누구도 예수께서 자신을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는데 처음으로 베드로가 자신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혹 공자, 소크라테스, 석가모니와 함께 세계 4대 성인 중의 한 사람으로 알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리스도’라는 말은 헬라어 ‘크리스토스(christos)’를 음역한 것이고, ‘크리스토스’는 히브리어 ‘메시아’를 번역한 말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와 ‘메시아’는 다 같은 말로서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를 임명할 때는 머리에 기름을 부어서 거룩하게 구별을 하였기 때문에 그들을 모두 ‘기름부음을 받은 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하나님의 보냄을 받아 이스라엘을 구원하러 오실 왕’ 즉 구원자라는 뜻으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것은 예수께서 곧 이스라엘백성들이 그토록 학수고대하는 메시아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하고 나자마자 곧 자신이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들으시자마자 곧바로 자신이 장차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장로들과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을 말씀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 자신이 그리스도이신 것은 맞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메시아, 즉 다윗처럼 이스라엘의 독립과 영광을 회복시켜 줄 정치적인 메시야가 아니라,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고난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고난 받는 메시아이셨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베드로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라고 고백을 했지만 예수께서 정확히 어떤 분이지를 알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했지만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부활하시는 분이심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예수께서 수난예고를 말씀하셨을 때에 베드로가 보인 반응을 통하여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장차 자신이 수난 당할 것을 말씀하시자 어떻게 했습니까? 예수님을 붙잡고서 “주여, 그리 마옵소서 이 일이 결코 주께 미치지 아니하리이다”고 항변을 했습니다. 여기서 ‘항변했다’로 번역된 헬라어는 ‘에피티마오’(epitimao)인데 이 말은 ‘항변하다’는 뜻보다는 ‘책망하다’, ‘거세게 항의하다’는 뜻에 더 가깝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제자가 스승을 책망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님께 감히 책망하는 투로 말한 것은 예수께서 정확히 어떤 메시아이신지를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메시아이심을 모르면 예수님을 온전히 섬길 수 없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하여 모든 제자들이 다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하고 주님을 떠났던 것은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메시아이신 줄을 정확히 몰랐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예수님을 어떤 메시아로 믿고 계십니까? 혹 예수님을 육신적인 소원을 이루어주시는 메시아로만 믿고 계십니까? 혹 모든 질병을 치료해주시는 메시아로만 믿고 계십니까? 혹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메시아로만 믿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메시아관을 바꾸셔야 합니다. 물론 예수께서는 우리의 소원도 들어주시고, 질병도 고쳐주시고, 우리의 각종 문제도해결해주십니다. 그러나 그보다는 먼저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는 메시아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지라도 예수님을 우리의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메시아이심을 믿지 않으면 구원 받을 수 없습니다. 예수라는 이름이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라는 뜻을 갖고 있듯이,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어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 이 시간, 예수께서 여러분에게 “아무개야, 너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은 저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수난예고를 제대로 깨닫지 못하자 그를 책망하신 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24절)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단지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 즉 복음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가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8-9)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은 후에는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로, 자신을 부인해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라는 말이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자신의 생각을 죽이라는 뜻입니다. 왜 예수님을 따르는 자는 자신의 생각을 죽여야 할까요?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우리의 주가 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으로 모신다는 것을 뜻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다는 것은 우리가 그분의 종으로 살겠다는 뜻입니다. 종은 자신의 생각을 버리고 주인이 시키는 대로 순종하듯이 우리는 주님의 종이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을 버려고 주님의 뜻에 순종해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육신의 생각대로 살면 망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선포하고 있습니다.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5-7)).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을지라도 육신의 생각대로 살면 망합니다. 우리는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는데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전처럼 육신의 생각대로 살다가 멸망한다면 얼마나 불행한 일입니까? 따라서 우리는 영생을 얻은 자답게 육신의 생각을 죽여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자신의 생각을 죽일 수 있을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를 통하여 그 비법을 깨달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를 알고 계셨기에 그 십자가를 피하려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자신의 생각을 버리시고 하나님의 뜻대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십자가를 지시기전 주님께 간절히 기도를 드림으로 자신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신의 생각을 죽일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은 날마다 죽는 것을 자랑한다고 한 것은 날마다 기도로 자신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열심히 기도하지만 삶의 변화가 거의 없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것은 자신의 생각을 죽여 달라고 기도하지 않고 이 세상의 문제만 해결해달라고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난 주 5일간 희망찾기 특별새벽기도회를 했습니다. 특새 때는 항상 특별한 일이 일어납니다. 평생 새벽기도를 하지 않던 분이 새벽에 5일간 완주하신 분도 있고, 어떤 분은 마지막 날 말씀을 듣고 40년간 잘못 생각했던 틀에서 해방이 되는 기적을 맛본 분도 계십니다. 특별히 어떤 권사님이 5일 동안 매일 감사헌금을 드리면서 봉투에 기도제목을 적었는데 그 내용이 저의 시선을 사로잡았습니다. “십자가 앞에서 날마다 나 자신 죽게 하시고 주님의 보혈로 거듭나게 하소서.” 그렇습니다. 우리의 기도에 반드시 자신을 죽게 해달라는 내용이 들어가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신약시대의 예배는 구약시대의 제사와 흡사합니다. 그런데 구약시대에 어떻게 제사를 드렸습니까? 제사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제물을 죽였습니다. 제물을 죽이지 않고서는 제사를 드릴 수 없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우리의 생각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야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배를 드리면서 이미 자신이 죽은 자로 알고 “주여 나의 생각을 죽여주세요”라고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라고 말씀하시면서 동시에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24). 따라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거의 같은 의미입니다. 즉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자는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없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사람은 이미 자기를 부인한 사람입니다. 혹자는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에 우리는 십자가를 지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언뜻 들으면 그럴 듯합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누구든지 예수님을 좇으려면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라는 말은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데 따르는 고난과 희생을 감내하라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을 따르기 위해 고난과 희생을 감내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기독교의 핵심가치인 사랑하라는 계명에 온전히 순종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증거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를 지셨듯이 우리가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자기 십자가를 지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의 생각에 큰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어떤 변화가 일어나야 할까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깊이 깨닫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동일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제가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제가 꾸며서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분명히 이것을 우리에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루는 한 율법사가 예수께서 사두개인들로 하여금 꼼짝 못하게 하셨다는 소식을 듣고서 예수님을 시험하러 찾아와서 한 가지 질문을 던졌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 질문에 예수께서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마 22:37-40). 이것이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곧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율법사는 이 말을 들었을 때 큰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동일시할 수 있단 말인가? 예수께서 이런 생각을 아시고 말씀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이야기하신 것이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강도 만난 사람의 곁을 지나간 사람은 제사장, 레위인, 사마리아인입니다. 여기서 제사장과 레위인은 당시 하나님을 잘 믿는 자를 대표하는 자로서 오늘날로 말하면 종교지도자를 가르칩니다. 그런데 그들은 이런 저런 핑계를 대고 강도 만나 거반 죽게 된 자를 보고서 그냥 지나쳐버렸습니다. 그런데 당시 사람들에게 멸시 천대를 받는 사마리아인은 비록 여행 중에 있었지만 그를 주막으로 데려다가 치료해주고 주막 주인에게 부비가 더 들면 여행하고 돌아오는 길에 더 주겠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그때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고 하셨습니다. 무슨 말입니까? 하나님의 일을 한다는 핑계로 당장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사랑을 베풀지 않는 것은 잘못된 신앙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눈에 보이는 어려운 자에게 사랑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 것은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저와 여러분의 모습이 아닙니까? 하나님을 믿는 것과 사람 사랑하는 것을 이원화해서 하나님께는 열심을 다하지만 가난한 사람은 못 본체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는 선한 사마리아인처럼 자신보다 어려운 사람을 돌아보는 것이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따라 가는 것입니다. 그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는 그 어떤 고난과 희생도 감내해야 하는 것입니다. 혹 가리발디에 대해 들어보셨습니까? 그는 9세기경 프랑스 나폴레옹 3세의 무력 간섭에 맞서 싸운 이탈리아의 군사적 영웅이었습니다. 그는 의용군을 조직해 프랑스의 무력에 맞섰습니다. 그는 의용군을 모집할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급료도, 막사도, 식량도 주지 못한다. 내가 줄 수 있는 것은 굶주림과 갈증과 강행군과 전투와 죽음뿐이다. 입으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도 조국을 사랑하는 자는 나를 따르라.” 주님께서는 자신의 제자가 되고자하는 자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제자이기 때문에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메시아이심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정치적인 메시아가 아니라 고난 받는 메시아로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지만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기 위해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삶을 살아갈 때에 사람들은 우리를 향하여 너는 정말 예수 믿는 사람이라고 말할 것이고 우리 주님은 우리를 통하여 크게 영광을 받으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좇아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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