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말씀이 있기에 소망이 됩니다 사 41:8-20절 20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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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속의 말씀이 있기에 소망이 됩니다 사 41:8-20절 2012.2.52018-12-03T19:00:0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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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2년이 시작된 지 벌써 한 달이 지났습니다. 소망으로 시작했지만 우리의 현실은 그리 소망적인것 같지 않습니다. 오히려 여기저기로부터 절망적인 소식들이 들려올 뿐입니다. 특별히 지난 주 느닷없이 몰아닥친 한파로 우리는 어려움을 많이 겪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늦은밤특별기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함으로 추위를 잠재웠습니다. 혹한에도 불구하고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했습니다. 하지만 ‘늦은밤특별기도회’에 참석하여 간절히 기도했어도 여전히 상황이 바뀌지 않아 낙심하고 있는 분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으면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해서 우리에게 네 가지 약속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뿐 아니라 친히 도우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0절을 읽어보십시오.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당시 이스라엘은 최강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는 상황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두려움과 공포 속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바로 그러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하여 “내가 너와 함께 하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고 도와주리라”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두려움과 공포의 상황에 있을 때에도 여전히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람들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당하면 하나님께서 자신들과 함께 하시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 처해 있을 때에 더욱 함께 하십니다.

    우리는 ‘두 발자국‘이라는 시를 알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주와 함께 바닷가를 거니는 꿈을 꾸었습니다. 하늘을 가로질러 빛이 임한 그 바닷가 모래위에서 두 짝의 발자국을 보았습니다. 한 짝은 그의 것이었고, 또 다른 한 짝은 주님의 것이었습니다. 그는 마지막 그의 발자국이 멈춘 곳에서 그의 인생의 장면들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그의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에는 오직 한 짝의 발자국만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아해서 주님께 물었습니다. “주님, 제가 당신을 따르기로 했을 때, 저와 항상 함께 하겠다고 약속하셨지요. 그러나 보십시오. 제가 주님을 가장 필요로 했을 때 그 때 거기에는 한 짝의 발자국 밖에는 없었습니다. 주님은 저를 떠나계셨지요?” 그 때에 주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나의 귀하고 소중한 아이여, 나는 너를 사랑하였고 나는 결코 너를 떠나지 않았단다. 네 시련의 때 고통의 때에도… 네가 본 오직 한 발자국 그것은 내 발자국이니라. 그 때 내가 너를 등에 업고 걸었노라.” 그렇습니다. 여러분이 힘들고 어려울 때에도 주님은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아니 힘들수록 더욱 더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이것을 믿는 것이 바로 임마누엘의 확신입니다. 우리가 임마누엘의 확신으로 살아야 각종 두려움을 이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군사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아주 불안한 상황에 있습니다. 김정일의 사망으로 장차 한반도의 정세가 어떻게 바뀔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으로는 주택대출 400조 가운데 20조가 원금과 이자를 갚아야하기 때문에 빚 상환 부담이 급증하고 있고, 돌려막기로 버티는 다중채무자가 380만 명이나 되고, 제2금융권의 고리 대출이 급증하고 있고, 실질임금은 3.5% 줄었는데 1월 식품물가는 4.8%나 올라 서민들은 점점 살기 힘든 상황에 처해있습니다. 또한 언제 닥칠지 모르는 각종 사고와 재앙과 질병에 대한 불안감은 더 해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가장 크게 불안과 두려움을 누구인지 아십니까? 50대 이후의 고개 숙인 남성들입니다. 요즈음 50대 부인들이 모이면 주고받는 말은 이것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나이 먹은 여자한테 꼭 필요한 네 가지가 뭐냐고 물어보면 ‘건강, 돈, 친구, 딸’이라고 하고, 가장 필요 없는 한 가지가 뭐냐고 물으면 ‘남편!’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집에서 안 쓰는 물건 내다 놓으라고 하면 가장 먼저 ‘늙은 남편’을 내놓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요즈음 50대 남편들은 부인이 해외여행이나 이사를 가자고 하면 가장 겁을 낸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외국 가서 버리고 오거나, 이사 갈 때 안 데리고 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개숙인 남성들이여!,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돈을 많이 못 벌어서 가족들이나 사회에서 인간대접을 받지 못할지라도 주님께서는 여러분과 함께 하십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자녀는 어떤 상황을 만나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두려움은 마귀가 주는 것이지 결코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라”(딤후 1: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두려움이 우리에게 엄습해 올 때마다 환영하지 말고 예수의 이름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미국의 대설교가 헨리 비처(Henry Beecher)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두 개의 손잡이를 잡고 하루를 산다. 하나는 두려움의 손잡이이고, 다른 하나는 믿음의 손잡이이다.” 그렇습니다. 인생은 선택입니다. 두려움의 손잡이를 잡으면 염려와 불안가운데서 살게 되지만, 믿음의 손잡이를 잡으면 소망과 기쁨가운데 살아갈 수 있습니다. ‘두려움의 손잡이’를 물리치시고 ‘믿음의 손잡이’를 붙잡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 연약한 자를 도우셔서 강한 대적을 이기게 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사야 41장 14-16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보라 내가 너를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기로 삼으리니 네가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것이며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들 것이라 네가 그들을 까부른즉 바람이 그들을 날리겠고 회오리바람이 그들을 흩어 버릴 것이로되 너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겠고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로 말미암아 자랑하리라”

    본문을 보시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라고 부르셨지만 그들을 날카로운 타작기계로 삼으셔서 산들을 쳐서 부스러기를 만드시고 작은 산들을 겨 같이 만드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백성들이 벌레같이 형편없는 존재이지만 그들을도우셔서 승리자로 만드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민족은 아주 약소한 민족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도우심으로 주변의 강대국들과 싸워 승리하게 하셨습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이스라엘과 싸운 민족은 그들보다 훨씬 강대했습니다. 아낙자손이 그러했고, 블레셋족속이 그러했고, 아말렉 족속이 그러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스라엘백성들이 그들보다 강한 대적들을 물리칠 수 있었습니까? 주님께서 약한 그들을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6일 전쟁’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1967년 이스라엘과 아랍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은 인구가 단지 250만 명에 불과했고 아랍은 1억 명이 넘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누가 보아도 그 전쟁은 무모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이스라엘의 국방장관이었던 모세 다얀장군은 방송을 통해 다음과 같이 짤막한 성명서를 발표했습니다. “우리는 2534년 만에 되찾은 조국 이스라엘을 지키기 위해 부득이 이 전쟁에 참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쟁을 하면 우리는 최단기간 내에 반드시 승리할 것입니다. 그 이유는 전 장병이 최신식 무기로 무장해 있기 때문입니다.” 이 방송을 들은 서방 첩보원들은 이스라엘이 정말 위력적인 최첨단 무기를 개발한 줄 알았습니다. 후원국인 미국도 어리둥절했습니다. 드디어 전쟁이 시작됐습니다. 모세 다얀장군은 군인들을 전쟁터로 내 보내고 방송국 의자에 앉아 천천히 또박 또박 하나님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시편 3편이었습니다. 일부만 낭독해 드리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지요 일어나 나를 치는 자가 많으니이다. 여호와여 일어나소서 나의 하나님이여 나를 구원하소서 주께서 나의 모든 원수의 빰을 치시며 악인의 이를 꺾으셨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다얀장군의 말대로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전쟁이 끝났습니다. 이런 전쟁은 세계전쟁사에 일어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어떻게 약속국가인 이스라엘백성이 40배나 되는 적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이스라엘을 도우셔서 그들의 대적을 대신 물리쳐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비록 약하지만 주님께서 도와주시면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날 우리가 싸워서 이겨야 할 원수는 누구일까요? 여러분과 다퉜거나 여러분에게 상처를 주었거나 여러분에게 재산상의 손해를 입힌 자들일까요? 아닙니다. 그들은 이미 구원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거나 또 장차 구원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자들이기 때문에 그들과 싸워서는 안 됩니다. 우리의 원수는 오직 하나 밖에 없습니다. 마귀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너희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벧전 5:8)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마귀가 얼마나 힘이 센지 아십니까? 욥기를 읽으신 분은 아시겠지만 하루아침에 욥이 열 자녀와 그 많던 재물을 다 잃고, 머리에서 발끝까지 악창이 나게 할 정도로 막강한 힘을 갖고 있습니다. 쇠고랑으로 채워도 스스로 끊을 수 있을 정도로 힘이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마귀를 이길 수 없고 주님께서 도와주셔야 이길 수 있는 것입니다. 주의 도우심으로 마귀와의 싸움에서 날마다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필요를 채우시고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7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 가련하고 가난한 자가 물이 없어 갈증으로 혀가 마를 때에 하나님께서 응답하신다는 말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신다는 뜻입니다. 이미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를 통과할 때에 이것을 경험했었습니다. 그들이 목마를 때에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셔서 먹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앞으로도 그렇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도 동일하게 광야라고 하는 이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마셔야 할 물을 마시지 못하는 상황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기적을 베푸셔서 그분의 방법으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고 버리지 않으실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우리가 특별한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자녀입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양육을 책임져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부모는 자식이 공부를 못해도, 속을 썩여도, 자식이 성인이 될 때까지는 돌봐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자녀로 삼으셨기 때문에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셔야 합니다. 육신의 부모는 자녀를 실수로 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창세 전에 선택하여 자녀로 삼아주셨기 때문에 우리를 책임져주시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빌 4:19)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우실 때에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채우신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사실 이스라엘백성들이 광야를 걸어갈 때에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시고 반석을 쳐서 물을 마시게 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전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전후좌우 꽁꽁 막혔을지라도 보이는 상황만 보고 절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약속하신 것을 이루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믿고 그분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갓난아이가 배고프다고 젖을 먹지 않고 아무 것이나 먹으면 큰 일 납니다. 오직 어미의 젖을 먹어야 살 수 있고 안전합니다. 우리는 육신적인 필요가 있을 때에 세상적인 방법을 찾지 말고 하나님 아버지의 공급하심을 믿고 그분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넷째로, 광야에 샘을 내시고 사막을 옥토로 만들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18-20절을 보십시오. “내가 헐벗은 산에 강을 내며 골짜기 가운데에 샘이 나게 하며 광야가 못이 되게 하며 마른 땅이 샘 근원이 되게 할 것이며 내가 광야에는 백향목과 싯딤 나무와 화석류와 들감람나무를 심고 사막에는 잣나무와 소나무와 황양목을 함께 두리니 무리가 보고 여호와의 손이 지으신 바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가 이것을 창조하신 바인 줄 알며 헤아리며 깨달으리라.” 우리가 알다시피 이스라엘은 우리나라의 강원도만한데 땅의 상당 부분이 거친 광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더욱이 비는 우기(雨期)에만 내리기 때문에 건기(乾期)에는 무척 메마르고 물이 귀합니다. 또 아열대 지방이어서 대단히 기온이 높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렇게 메마르고 척박한 광야와 사막에 물을 흐르게 하고, 백향목을 비롯하여 잣나무, 소나무, 황양목 등을 심어 자라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기적을 행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개입하시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삶에 개입하심으로 각각 100와 90세에 아들을 낳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삶에 개입하심으로 살인자를 이스라엘민족의 지도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렙의 삶에 개입하심으로 85세의 나이에 난공불락의 성인 헤브론을 정복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보이는 것만을 바라보고 절망하면 안 됩니다. 보이지 않지만 지금도 살아계셔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소망가운데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 약속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가만히 놀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메마른 땅을 옥토로 바꾸시고 광야에 백향목을 비롯하여 많은 나무들을 심으셨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이 이 약속을 믿고 갈릴리 호수의 물을 파이프로 사막지역에 끌어들여 나무를 자라게 하고 팔레스타인 남부 지역인 네게브 사막을 초원으로 바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그냥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그 분의 약속을 믿고 노력할 때에 성취되는 것입니다. 감나무 밑에 앉아서 감이 떨어지기를 기다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약속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이번 송구영신예배 때 약속의 말씀을 뽑았을 것입니다. 그 약속이 대단한 축복의 말씀일지라도 여러분이 그 약속이 이뤄지기를 힘쓰지 않으면 결코 이뤄지지 않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어려운 시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네 가지 약속을 가슴에 새기고 살아간다면 소망이 넘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2012년 네 가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소망가운데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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