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에게 믿음을 배운다 눅 2장 36-39절 2015.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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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에게 믿음을 배운다 눅 2장 36-39절 2015.6.282018-12-03T23:42:5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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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 번 ‘시므온의 신앙’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가 어떻게 메시아를 가슴에 안는 영광을 얻게 되었는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첫째로,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시므온이 이렇게 살았기에 초림 예수를 안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듯이, 우리도 이러한 삶을 살아가므로 재림예수를 영광중에 뵈옵는 은혜를 입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본문은 메시아를 보는 영광을 얻은 또 다른 사람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는 아셀지파 바누엘의 딸 안나라는 여선지자입니다. 이 사람의 운명은 참으로 기구합니다. 결혼하여 7년 만에 남편이 죽고 과부로 84세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84세가 되던 해 두 눈으로 아기 예수님을 보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장수시대에 살고 있지만 그래도 아직 까지는 90세를 넘기기는 힘듭니다. 그런데 안나는 당시 84세에 성전에서 예수님을 볼 수 있었습니다. 즉 그녀는 장수의 복을 받았을 뿐 아니라 성전을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건강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토록 기다리던 메시아를 보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어떻게 안나가 그런 영광을 얻을 수 있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한 번 37-38절을 보시겠습니다. “(눅 2:37)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눅 2:38)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우리는 본문을 통하여 37절과 38절이 원인과 결과의 관계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안나가 그토록 많은 나이에 아기 예수를 두 눈으로 볼 수 있었던 원인을 바로 37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로, 안나는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37절을 읽어보십시오.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성경은 안나가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안나가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성전을 하루 종일 떠나지 않고 살았다는 의미일까요? 물론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전은 하나님께서 계신 곳입니다. 즉 성전은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안나가 그곳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은 그가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삶을 살았다는 뜻입니다. 즉 안나가 ‘성전을 떠나지 않았다’는 말은 하나님 이외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즉 남편을 빼앗긴 자리에 오직 하나님만을 모시고 살았다는 것입니다. 안나는 결혼한 지 7년 만에 남편과 사별했기 때문에 그녀가 홀로 있게 된 때는 30세도 안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그녀는 오직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살았습니다. 사실 30세도 안 되는 나이에 세상을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살아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안나는 그렇게 살았기에 아기 예수를 직접 목도하는 영광을 누릴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나만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도 그렇게 해야 합니다. 우리도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말아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모심으로 그분과 결혼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예수께서 우리의 신랑이 되시고 우리는 그의 신부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부사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조를 지키는 일입니다. 즉 마음을 빼앗기지 않는 것입니다. 음식을 못하거나, 좋지 않은 습관이 있거나, 성격이 맞지 않아도 그것은 이혼의 사유가 되지 않습니다. 성경은 간음을 해야 이혼의 사유가 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미 예수님을 영원한 신랑으로 모신 자들이 주님 이외의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은 간음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돈이나 세상이나 심지어 자신조차도 주님보다 더 사랑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함께 디모데후서 3장 2절을 읽겠습니다.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딤후 3:2). 어떻습니까? 이 시대 우리의 모습이 아닙니까? 이기주의는 극치에 달해있고,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있고, 자신을 자랑하고, 부모에게 거역하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말세의 징조와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마음을 세상에 빼앗기지 말고 하나님만 사랑해야 합니다. 에덴동산에서 마귀가 아담과 하와에게 금지된 선악과를 먹으라고 유혹한 것은 일회적인 사건이 아닙니다. 지금도 이 유혹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마귀는 계속해서 이 세상을 사랑하도록 유혹하지만 이 유혹에서 승리해야 합니다. 이 싸움을 이기지 못한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껍데기만 있고 알맹이는 하나도 없는 것과 같습니다. 잠언기자는 “무릇 지킬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 4:23)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님 한 분으로 만족하기에 마귀의 시험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둘째로, 자신의 뜻을 죽이는 훈련을 하였습니다. 다시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 안나는 주야로 금식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녀가 주야로 금식했다는 말은 날마다 하루 종일 금식했다는 말이 아닙니다. 날마다 금식하면 살 수 없습니다. 그러면 주야로 금식했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에 시간을 많이 쏟습니다. 따라서 안나가 ‘주야로 금식했다’는 말은 그녀가 금식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고 자주 금식했다는 뜻입니다. 안나가 금식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그녀는 자주 금식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신앙생활에 있어서 금식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금식은 신앙생활에 매우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입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 가운데 금식하지 않은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모세, 다윗, 에스더, 엘리야, 예수님, 바울, 초대교회 성도 등이 금식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금식이 신앙생활에서 이토록 중요한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무엇보다도 금식은 육신의 생각을 죽이는데 가장 효과적이기 때문입니다. 금식을 해보시면 알지만 하루만 먹지 않아도 힘이 없습니다. 힘이 없게 되면 자신의 무능함과 연약함을 깨닫게 되어 자신을 죽은 자로 여기게 됩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을 죽이는데 금식보다 효과적인 도구를 없습니다. 그런데 금식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육신은 음식을 먹어야 살 수 있습니다. 굶으면 죽게 되어 있는 것이 육신입니다. 저도 매달 한 번씩 ‘월삭금식’을 하지만 금식할 때마다 고비가 있고 쉽지 않습니다. 인간은 먹어야지만 사는 동물인데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는 것이 쉽겠습니까? 그러나 금식을 통해서 자신을 죽이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평안과 생명입니다.
    요즈음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보다는 성도간의 교제에 관심을 쏟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교회는 교제공동체이기 때문에 성도간의 교제는 당연한 것입니다. 성도의 교제가 없는 교회는 이미 죽은 교회입니다. 그런데 성도간의 교제보다 더 우선적인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교제입니다. 그분과의 교제가 안 된 상태에서 이루어지는 성도간의 교제는 인간 중심의 교제로 흐르게 되어 교회의 분열을 가져오고 하나 됨을 저해할 뿐입니다. 우리는 사람과의 교제보다 금식을 통하여 자신을 죽임으로 주님과 좀 더 친밀해져야 합니다. 우리가 죽지 않으면 주님께서 가까이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죽여야 하나님께서 우리를 온전히 다스리십니다.

    셋째는, 하나님만을 의지하였습니다. 안나는 금식만 하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안나가 남편과 사별한 후 기도로 살아갔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안나가 남편의 죽음을 통해 자신이 누구를 의지해야 할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안나는 젊은 나이에 남편을 먼저 보내면서 하나님 한 분 이외에 의지해야 할 대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러한 깨달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우리가 의지하고 자신을 맡길 대상이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남편도, 자식도, 친구도, 그 어떤 것도 우리를 영원히 책임질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는 일에 목숨을 걸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의 중요성을 알지만 기도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께서 도와주시지 않아도 내 힘과 능력으로 살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말 우리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살 수 있습니까? 절대 속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바 아니면 사람은 아무 것도 받을 수 없습니다. 호흡하는 것조차도 하나님께서 힘을 주셔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인간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존재로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인간을 헬라어로 ‘안쓰로포스’라고 합니다. 이는 하나님께 뿌리를 박고 사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무능함을 깨닫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번에 우리가 얼마나 무능한 존재인지를 경험하고 있지 않습니까? 삼성병원이라면 국내 최고의 병원인데 그런 병원에서 의사가 ‘메르스’에 감염되었고 병원이 부분적으로 폐쇄되었습니다. 감기의 일종에 불과한 ‘메르스’ 하나조차 해결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인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안나처럼 이 세상에 의지할 자가 오직 하나님 한 분밖에 없음을 알고 절망의 날을 맞이해도 기도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워도 기도의 끈을 놓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안나와 같이 남편을 잃고 세상에서 소망이 끊어지는 날일수록 하나님께 더욱 더 가까이 나아가야합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힘들어도 천국에 대한 소망을 갖고 기도해야 합니다. 인간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시작임을 깨닫게 하나님께 간절히 매달려 기도해야 합니다.
    물론 기도하지 않아도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이미 죽은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고도 이런저런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이룰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는 자와 함께 하시고 그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무능함을 절실히 깨닫게 하시기전, 스스로 깨닫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안나를 통하여 이전보다 더욱 주님께 엎드리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안나가 이렇게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삶을 살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38절을 보십시오. “마침 이 때에 나아와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예루살렘의 속량을 바라는 모든 사람에게 그에 대하여 말하니라.” 여기서 ‘마침 이때에’가 어느 때일까요? ‘마침 이 때에’란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데리고 율법에 따라 정결예식을 하려고 성전에 왔을 때입니다. 그 때에 마침 안나가 성전에서 금식하며 기도하고 있었기에 그의 눈으로 아기 예수를 보는 영광을 얻을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당시 안나가 남편과 사별하고 성전을 떠나지 않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할 때에 사람들은 그녀를 보며 비웃거나 조롱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가슴이 아파 혼자서 울며 밤을 지새우는 날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삶과 눈물의 기도를 들으시고 마침내 메시아를 두 눈으로 보는 영광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세상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자신의 정욕을 죽이고 하나님만 의지하고 기도하면 주님께서 찾아오셔서 영광의 옷을 입혀주시고 영광의 자리에 앉게 해주십니다.
    시간에는 ‘크로노스’와 ‘카이로스’가 있습니다. 크로노스(Chronos)는 모든 생명체에 똑같이 주어지는 객관적인 시간 입니다. 반면에 카이로스는 어떤 특정한 때나 기회를 나타내는 시간입니다. 즉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특별한 사건이나 시기를 나타냅니다. 예를들어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마가복음 1장 14∼15절)에서 때가 바로 카이로스입니다. 그런데 카이로스의 영광을 맛보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안나처럼 평소 하나님 마음을 세상을 빼앗기지 않고 자기의 정욕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마침 이 때’의 영광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려고 준비하신 영광은 그것을 위해 힘써 준비한 자들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를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끝까지 그 날을 바라보며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안나는 자신의 인생에 갑자기 찾아온 남편과의 사별이라는 불행을 하나님과 가까이 하는 기회로 삼아 성전을 떠나지 않고 금식하며 기도하는 일에 집중하다가 아기 예수님을 만나는 영광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갑자기 찾아오는 불행 앞에서 절망하거나 낙심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께로 향하는 기회로 삼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물론 안나처럼 살아가는 것은 힘들고 어렵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는 고리타분하게 보입니다. 심지어 믿는 자들에게조차 비난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마침 이 때’를 준비해 놓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날에 최고의 것으로 갚아주십니다. 세상살이가 힘들고 어려워도 ‘마침 이 때’가 있음을 알고 안나처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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