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눅15:11-32절 2017.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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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눅15:11-32절 2017.7.162018-12-03T23:29:4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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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눅 15장 11-32절 아버지의 사랑은 이런 것입니다 2017.7.16
    오늘 읽은 본문은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라고 불립니다. 이 비유의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미리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를 멀리 떠나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먹을 것이 없게 되자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갔더니 아버지가 기쁘게 맞이하고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고 잔치를 벌였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비유의 주인공이 누구라고 생각합니까? 아버지를 떠나 멀리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온 탕자일까요? 아니면 돌아온 아들을 받아준 아버지일까요? 그동안 많은 설교자들이 돌아온 탕자에 맞추어서 설교를 했기 때문에 돌아온 탕자가 주인공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 비유가 ‘탕자의 비유’라고 불렸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의 주인공은 돌아온 탕자가 아닙니다. 아버지를 떠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자를 다시 아들로 맞이한 아버지입니다. 이 비유는 탕자를 받아준 아버지처럼 우리를 행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에 대해 말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어떤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법으로 대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찾아와서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라고 간청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돌아올 분깃을 간청한데는 나름대로 성경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신명기 21장 17절을 보면 재산 상속 시 장자에게 전 재산의 2/3를, 차자에게 1/3을 나누어 줄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이렇게 장자에게 부모의 재산을 차자보다 배나 더 주도록 규정한 것은 아마도 장남이 부모를 모시는 것과 관련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둘째 아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미리 달라고 한 것은 아버지에게 크게 잘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재산 상속은 부모의 임종(臨終)시나 죽은 후에야 실행되는 것인데 멀쩡히 아버지가 살아있는데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두 아들들이 결혼했다는 흔적을 찾아볼 수 없기 때문에 아마도 본문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그리 나이가 많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미리 자신에게 돌아갈 분깃을 달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 보면 아버지를 빨리 죽으라는 뜻으로 들릴 수 있기 때문에 아버지를 분노케 할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보십시오. 아마도 가만히 있을 사람은 하나도 없을 것입니다. 다른 아버지였다면 신명기 21장 18-21절의 말씀을 근거로 아들을 성읍의 장로들에게 데리고 가서 패역한 아들이라고 하여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둘째 아들의 요구에 그대로 순응했습니다. 그리고 요구하지 않은 첫째 아들에게도 주었습니다. 한마디로 아버지는 아들의 잘못을 법으로 대응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즉 아버지가 아들을 법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법으로 대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법을 앞세우실 수도 있지만 법보다는 사랑을 앞세우십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사랑보다 법을 앞세우셨다면 이곳에 살아남을 자는 하나도 없습니다.

    둘째로,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측은히 여기십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요청한 대로 돌아올 분깃을 받자마자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는 먼 나라에서 허랑방탕하여 가진 재산을 다 낭비했습니다. 업친데 겹친 격으로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궁핍하게 되었습니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그 나라에서 머슴살이를 했는데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먹으려고 해도 아무도 주는 자가 없어 배를 곯아야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집에서 편하게 살았지만 아버지를 떠난 지금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도 유지하지 못하는 형편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면 비참하게 됩니다. 처음에는 자기 마음대로 살면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반드시 망하게 되어 있습니다. 망해도 대충 망하지 않고 회복이 불가능하도록 철저히 망합니다. 왜 하나님을 멀리하면 잘 될 것 같은데 반드시 망하게 될까요? 그것은 인생의 주인이 하나님이신데 자기 마음대로 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망하기 때문에 마귀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하나님을 멀리하도록 우리를 유혹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둘째 아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17절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둘째 아들은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스스로 돌이켜’라는 부분을 현대인의 성경은 ‘그제서야 그는 제 정신이 들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것은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제 정신이 든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가 제 정신이 들어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0절을 읽겠습니다. “이에 일어나서 아버지께로 돌아가니라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 측은히 여겨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니”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집에 도착하려면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미 아들이 돌아오기 전부터 아버지는 날이면 날마다 대문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직 거리가 멀었지만 아버지가 아들을 즉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이 아버지로 하여금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먼 나라로 가서 탕진한 아들을 기다리게 했을까요? ‘측은히 여겨’ 즉 측은지심([惻隱之心)때문입니다. ‘측은히 여겨’라는 것은 아들이 당하는 고통을 도와주지 않으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바로 아버지의 측은지심이 부모의 재산을 탕진하고 아들을 기다리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측은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살면 고통당하는데 이것을 보시고 우리를 측은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이미 용서하시고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멀리서 돌아오는 것을 발견하자 즉시 아들에게 달려갔습니다. 동양권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은 체면을 차리느라고 급해도 달려 나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아들에게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기서 ‘입맞추니’는 여러 번 거듭하여 입을 맞출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단 한 번 의례적인 인사로 입을 맞추지 않고 맞추고 또 맞추었습니다. 왜 아버지가 그렇게 했을까요? 아들이 돌아온 것이 너무 기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버지가 아들에게 달려가서 입을 맞추는 과정을 주목해보아야 합니다. 돌아온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빌기도 전에 아버지가 아들에게 달려가서 목을 안고 여러 번 입을 맞추었고, 아들의 잘못에 대해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기 전에 아버지가 이미 아들을 용서했다는 뜻입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했을 때부터 이미 아들을 용서했는지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입으로 잘못했다고 고백하기 전부터 이미 용서해 놓으시고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오해해서는 안 됩니다. 이 말은 우리가 회개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용서해주신다는 말이 아닙니다. 본문에서 살펴보았듯이 아버지가 미리 용서해 주었을지라도 아들이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아버지의 용서를 맛볼 수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가는 자만이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회개하면 우리에게 회복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입을 맞추자 아들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둘째 아들이 지은 죄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떤 죄가 가장 큰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죄는 행위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가 주인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살고 있습니까?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셔놓고도 여전히 우리의 생각과 뜻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 앞에서 큰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난 토요일 큐티의 내용이 무엇이었습니까? 모세가 고라당이 대적할 때에 즉시 대응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 앞에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즉 그가 자신의 생각대로 대적들을 대응하지 않고 먼저 하나님의 뜻을 물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기에 범사에 주님께 묻고 결정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 아들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다고 하면서 이제는 아들로 불릴 자격조차 없다고 하지만 아버지가 어떻게 합니까? 돌아온 아들에게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깁니다.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에게 이렇게 한 것은 그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한다는 것입니다. 사실 둘째 아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버지가 아들로 자신을 대우해주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21절)라고 말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과는 달리 그를 아들로 대우해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면 전혀 예상치 못할 정도로 우리를 대우해주십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로 마음을 쏟지 않는 이유는 바로 이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자기 마음대로 살아갈 때와 하나님께 돌이켜 살아갈 때에 각각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우하시는 정도는 감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이렇게 한 것은 단지 그를 아들로 다시 인정한다는 뜻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아들의 추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자식의 부끄러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아버지는 아들의 추한 모습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합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우리를 자녀로 삼아주시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먼저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워주십니다. 예수의 피로 우리를 씻어주시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마귀는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허물을 들추어내지만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옷으로 우리를 덮어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주님께 돌아가면 즉시 “너의 과거는 없어졌다! 너는 내 아들이다!” 라고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로 돌아감으로 깨끗이 씻음 받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권위를 신속히 회복하는 은혜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측은히 여기시고,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놓고 회개하기를 기다리십니다. 그리고 돌이키면 기뻐하시고 회복의 은혜를 베푸십니다. 세상으로 향했던 우리의 마음을 주께로 돌이키므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회복의 은혜를 입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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