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봅니다 눅 15장 11-24 2013.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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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를 통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봅니다 눅 15장 11-24 2013.5.122018-12-03T20:29:4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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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어버이 주일로 지킵니다. 일반적으로 어버이 주일에는 부모의 효도에 초점을 맞추어 말씀을 증거합니다. 그래서 어버이 주일에 ‘효자동 이야기’와 같은 감동적인 이야기들이 단골 메뉴로 등장합니다. 그러나 오늘은 전혀 다른 측면에서 아버이 주일 메시지를 전하고자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은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 비유’라고 불립니다. 이 비유의 내용을 간략히 말씀드리면, 어느 아버지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미리 돌아올 분깃을 달라고 하여 아버지를 멀리 떠나서 허랑방탕하게 살다가 먹을 것이 없게 되자 남의 집에 품꾼으로 들어갔는데 돼지에게 주는 주엄 열매조차 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뒤늦게 잘못을 깨닫고 아버지께로 돌아갔더니 아버지가 아들을 기쁘게 맞이하고 동네 사람들을 초청하고 잔치를 벌였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즉 이 비유의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아버지를 떠나 멀리 갔다가 다시 집에 돌아온 탕자일까요? 사실 그동안 많은 설교자들이 이 비유의 초점을 돌아온 탕자에 맞추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시고자 하는 것은 돌아온 탕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닙니다. 아버지를 떠나 모든 재산을 탕진하고 돌아온 자를 다시 아들로 맞이한 아버지에 대해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버지를 통하여 이처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의 크신 사랑을 이야기하시는 것입니다. 즉 육신의 아버지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놀라운지를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어떠한 지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법으로 대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십니다.

      어느 날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찾아와서 “아버지여 재산 중에서 내게 돌아올 분깃을 내게 주소서”라고 간청을 합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이렇게 돌아올 분깃을 간청한 것은 성경적인 근거가 있습니다. 신명기 21장 17절을 보면 재산 상속 시 장자에게 전 재산의 2/3를, 차자에게 1/3을 나누어 줄 것을 규정하고 있습니다. 제가 읽어드리겠습니다.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아마도 구약시대에 이렇게 장자에게 부모의 재산을 차자보다 배나 더 주도록 규정한 것은 장남이 부모를 모시는 것과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에게 돌아올 분깃을 미리 달라고 하는 것은 큰 잘못입니다. 왜냐하면 재산 상속은 부모의 임종(臨終)시나 죽은 후에야 실행이 되는 것인데 멀쩡히 아버지가 살아계신데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살아계신 아버지에게 돌아갈 분깃을 미리 달라는 것은 어떤 의미로 보면 아버지를 빨리 죽으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에 이런 요청은 하지 말았어야 합니다. 한 번 여러분에게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해보십시오. 아직 살아갈 날이 많은데 자식이 찾아와서 미리 유산상속으로 돌아올 몫을 미리 달라고 했다면 아마도 손이 올라갔던지, 다시는 자신 앞에 나타나지 말라고 호통을 쳤던지, 그 후로는 자식을 보지 않았던지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분깃을 요구하는 아들에게 아무 말 없이 그의 몫을 주었고 요구하지 않은 첫째 아들에게도 주었습니다. 사실 이 아버지는 신명기 21장 18-21절의 말씀을 근거로 아들을 성읍의 장로들에게 데리고 가서 패역한 아들이라고 하여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게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아들의 요구에 그대로 순응했습니다. 그는 아들의 잘못을 법으로 대응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했습니다. 우리도 가정에서 이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와 같이 살고 있지 않습니까? 자식이 잘못을 하고 문제를 일으키고 사고를 쳐도 자녀들에게 법을 들이대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녀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인정하고 자신이 감당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와 아들은 사랑으로 움직이는 관계이지 법으로 움직이는 관계가 아닙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가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임을 알아야 합니다. 즉 아버지가 아들에게 법으로 대하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듯이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우리를 법으로 대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을 무서운 분으로만 생각하면 혹 자신이 잘못했을 경우 다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다시 아버지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가 자신의 잘못에 대하여 법으로 대하시지 않고 사랑으로 대하신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있지만 하나님을 어떻게 알고 믿느냐는 매우 중요합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잘못할 때마다 칼을 들이대시는 무서운 분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잘못을 다 알고 계셔도 못 본척하시고 그냥 눈을 감아주시는 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 들어가서 안식을 취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허물이 드러나도 부모님이나 가족으로부터 심판을 받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심판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잘못을 자신의 잘못으로 여기시고 대신 심판을 받으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면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요청한 대로 돌아올 분깃을 받자 며칠도 되지 않아 먼 나라로 떠났습니다. 그가 분깃을 받자마자 부모의 곁을 떠난 것을 통하여 우리는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평소 그가 아버지의 간섭을 얼마나 귀찮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사실 결혼하기 전까지 부모들은 자식에 대해 이런 저런 간섭을 합니다. “일찍 일어나라, 제발 공부 좀 해라, 늦게 다니지 말아라, 함부로 돈을 쓰지 말아라.” 등등 잔소리를 많이 합니다. 그러나 부모가 자식에게 이런 저런 잔소리를 하는 것은 간섭이 아니라 사랑의 표시입니다. 그런데 자식들은 간섭이라고 생각하여 귀찮게 여기고 심지어 반항심을 갖기도 합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둘째 아들이 돌아올 분깃을 미리 챙겨서 먼 나라로 갔던 것은 평소 부모의 사랑을 간섭이라고 생각하고 반항심에서 그렇게 했을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육신의 부모와 자식 간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관계에서도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신앙생활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주일성수를 해야 하고, 소득의 십일조를 내야 하고, 교회에 봉사를 해야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간섭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고 하나님께 반항합니다. 그리고 심한 경우는 반항심 때문에 시험에 들어 교회를 등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버지의 간섭에 시험을 받아 먼 나라로 간 아들이 어떻게 되었습니까? 허랑방탕하여 가진 재산을 다 낭비했습니다. 업친데 겹친 격으로 그 나라에 크게 흉년이 들어 궁핍한 자가 되었습니다. 입에 풀칠을 하기 위해 그 나라에서 머슴살이를 했는데 돼지가 먹는 ‘쥐엄 열매’라도 먹으려고 해도 아무도 주는 자가 없어 배를 곯아야 했습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버지 집에서 편하게 살았지만 아버지를 떠난 지금은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성도 유지하지 못하는 형편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아들이 아버지를 멀리 떠났을 때에 비참하게 된 것은 하나님을 멀리하면 이처럼 비참하게 된다는 것을 교훈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내 뜻으로 하면 잘 될 것 같지만 망합니다. 망해도 대충 망하지 않고 비참하게 망합니다. 둘째 아들이 쥐엄 열매로 배를 채우려고 해도 주는 자가 없었던 것보다 더 처절하게 패배의 쓴 잔을 마셔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둘째 아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17절입니다. “이에 스스로 돌이켜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꾼이 얼마나 많은가 나는 여기서 주려 죽는구나.” 둘째 아들은 그런 상황에서 ‘스스로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가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스스로 돌이켜’라는 부분을 현대인의 성경에서는 ‘그제서야 그는 제 정신이 들었다’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그동안 아버지에게 분깃을 미리 받아 타국으로 가고, 흥청망청 지내다가 재산을 다 낭비하고 돼지나 먹는 쥐엄 열매를 먹으려고 해도 먹을 수 없도록 추락하게 된 것은 모두 제 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려는 것은 제 정신이 아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드신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에 제 정신이 든 사람은 하나님을 떠나지 않습니다.

      그가 제 정신이 들자 가장 먼저 생각이 난 것이 무엇입니까? 아버지께로 돌아가겠다는 것입니다. 그가 정신을 차리자 아버지의 집이 더 좋다는 것을 깨닫고 그곳으로 돌아갈 생각을 한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에게 제 정신이 들어야 하나님을 찾게 되는 것입니다. 제 정신이 들지 않으면 세상이 더 좋은 줄 알고 하나님 아버지를 떠나 세상연락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고난이 계속 닥쳐도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는 것은 아직도 제 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혹 여러분 주변에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하는데 돌아오지 못하는 분들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아직까지 제 정신이 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아직 주님께 돌아오지 못한 자들을 위해 기도할 때에 둘째 아들처럼 제 정신이 들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이키면 기뻐하시고 잘못을 고백하기 전 용서해 주십니다.

      둘째 아들이 스스로 결심하고 아버지께로 돌아가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20절을 보면 “아직도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그를 보고”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집에 도착하려면 거리가 먼데 아버지가 먼저 아들을 보았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이미 아들이 돌아오기 전부터 아버지는 날이면 날마다 대문 밖에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가 오늘이면 돌아오려나, 내일이면 돌아오려나, 나간 자식을 기다리고 있었기에 아직도 거리가 멀었지만 돌아오는 아들을 즉시 발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모의 마음입니다. 그런데 무엇이 아버지로 하여금 모든 재산을 정리하여 먼 나라로 가서 탕진한 아들을 기다리게 했을까요? 그것은 바로 측은지심([惻隱之心)때문입니다. 여기 ‘측은히 여겨’라는 단어는 도와주지 않으면 마음이 아파 견딜 수 없게 된 상태를 의미합니다. 그런 아버지의 마음이 아들이 와서 잘못을 빌기도 전에 날마다 문밖에 서서 아들을 기다리게 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측은히 여기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이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당하는 고통을 보시고 우리를 측은히 여기십니다. 그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라고 우리를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돌아오는 것을 발견하자 즉시 아들에게 달려갔습니다. 동양권에서는 나이 많은 사람은 체면을 차리느라고 급해도 달려 나가지 않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데 이 비유에 등장하는 아버지는 그런 것에 전혀 개의치 않고 아들에게 달려가서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습니다. 여기서 ‘입맞추니’는 여러 번 거듭하여 입을 맞출 때에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단 한 번 의례적인 인사로 입을 맞추지 않고 맞추고 또 맞추었습니다. 왜 아버지는 돌아온 아들에게 한 번만 입을 맞추지 않고 맞추고 또 맞추었을까요? 그것은 아들이 돌아온 것이 너무 기뻤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돌아가면 너무나 기쁘셔서 부모가 군에 간 아들이 휴가를 나올 때에 맨발로 뛰어나오는 것보다 더 빨리 나오셔서 맞이하십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아들에게 입을 맞추는 과정에서 우리가 주목해서 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돌아온 아들이 자신의 잘못을 빌기도 전에 아버지가 그렇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들의 잘못에 대해서 아무런 책망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아들이 용서를 구하기 전에 아버지가 이미 아들을 용서했다는 것을 뜻입니다. 아마도 아버지는 아들이 분배된 재산을 다 팔아서 집을 나갔을 때부터 이미 아들을 용서했는지 모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회개할 때에야 비로소 용서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용서를 해 놓으시고 우리가 회개하기를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그러나 아버지가 미리 용서해 주었을지라도 아들이 돌이켜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았다면 자신의 잘못을 용서하신 아버지의 마음을 알 수 없었듯이, 우리가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주님의 용서는 맛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용서는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자만이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때문에 주님의 품안에 안기지 못하고 계십니까? 이제 자존심과 주저함과 두려움을 다 버리고 주님의 품안에 뛰어드시기 바랍니다. 이미 용서하시고 안아주시기 위해 팔을 벌리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의 품에 안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오는 자의 신분을 회복시켜주시고 부끄럽지 않게 해주십니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입을 맞추자 아들은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둘째 아들이 하늘과 아버지께 지은 죄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버지의 집을 떠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가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성경이 가장 중요하게 취급하는 죄는 단지 윤리적이고 도덕적이고 행위적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떠나 자기 멋대로 마음대로 사는 것입니다. 인생의 주인이신 하나님께 묻지 않고 자기가 주인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앞에서 큰 죄인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를 떠난 것이 죄를 범한 것임을 깨닫고 이제는 아들로 불릴 자격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어떻게 합니까? 아버지는 잘못하고 돌아온 아들에게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웁니다.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에게 이렇게 한 것은 그를 자신의 아들로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더 이상 남의 집에서 품삯을 받고 일하는 종이 아니라 자신의 아들이라는 것을 모든 사람들에게 보여준 것입니다. 사실 둘째 아들은 집으로 돌아가면서 아버지가 아들로 자신을 대우해주실 것이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하지 못하겠나이다”(21절)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아들의 생각을 초월하여 대우를 해주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주님께 돌아가면 우리가 전혀 예상치 못할 정도로 우리를 대우해주십니다. 무엇보다도 신분을 변화시켜주십니다. 마귀의 자녀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바꿔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요함을 맛볼 수 있도록 풍성한 삶을 살게 해주십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집에 돌아온 아들에게 옷을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긴 것은 단지 그의 신분을 상승시켜준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아들의 추한 모습을 누구에게도 보여주지 않겠다는 아버지의 마음을 보여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의 추한 모습을 어느 누구에게도 보여주기 싫어합니다. 여러분 중에 자식의 부끄러운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분은 단 한 사람도 안 계실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면 가장 먼저 우리의 부끄러운 모습을 가리워주십니다. 예수의 피로 우리를 씻어주시고 정결하게 하십니다. 마귀는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 허물을 들추어내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의로운 옷으로 우리를 가리워주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아무리 큰 죄를 지었어도 주님께 돌아가면 즉시 “너의 과거는 없어졌다! 너는 내 아들이다!” 라고 해주시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께로 돌아감으로 우리의 과거를 다 깨끗이 씻어주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아들의 권위를 신속히 회복시켜주시는 은혜를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잃은 아들을 되찾은 아버지의 비유’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전에 미리 용서해주시고, 우리의 신분을 바꿔주시고, 풍성한 삶을 누리게 하십니다. 우리가 진짜 아버지이신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은 효도중의 효도입니다. 우리가 주님께로 돌아가지 않으면 육신의 부모님께도 제대로 효도할 수 없습니다. 세상으로 나갔던 우리의 마음을 주님께로 돌이켜서 우리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을 기쁘게 해드릴 뿐 만 아니라 육신의 부모님도 기쁘게 해드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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