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그립바 왕에게 복음을 증거하다 행 26장 1-23절 202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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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립바 왕에게 복음을 증거하다 행 26장 1-23절 2020.8.162020-08-16T10:12:3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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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사도행전 25장 13-27절을 통해서 몇 가지 주의 교훈을 들었습니다. 간단히 살펴보고 오늘 읽은 본문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듣겠습니다.

    첫째로, 유대 종교지도자들이 바울을 고소할 때부터 정죄하기를 청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느냐는 것입니다. 정죄는 원래 재판을 통하여 결정되는 것인데 고소 단계에서 정죄를 청했다는 것은 자신들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불법을 자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목적뿐만 아니라 수단도 법을 지켜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의로운 길로만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베스도가 총독 자체가 성공한 것인데 계속해서 자기를 자랑하는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인간은 계속해서 자랑거리를 찾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랑은 교만하다는 증거이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기 때문에 이를 자랑하지 말고 오직 그리스도를 자랑하려고 해야 합니다.

    셋째로, 베스도가 정치적 의도를 갖고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심문을 받으려 하느냐고 물었는데 바울이 로마 황제에게 상소한다고 말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인생은 우리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무엇이든지 하려면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아닌지를 주님께 물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우리 인생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넷째로, 바울이 죄수의 모습으로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엄을 갖춘 자리에서 복음을 증거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방법으로 복음을 증거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세상은 성공한 것을 통하여 사람을 설득하지만, 하나님께서 연약함과 부족함으로 설득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약할 때 곧 강하기 때문입니다.

    다섯째로, 누가가 베스도 총독이 바울의 죄를 발견하려고 아그립바 왕 앞에서 심리한 것을 기록한 이유가 무엇이냐는 것이냐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께서 아무 죄가 없으셨는데 총독 빌라도 앞에서 심문을 받으신 것처럼 바울도 총독 베스도와 아그립바 왕에서 심문을 받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바울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주님께서 가신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이므로 주님께서 가신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먼저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과 그의 누이 버니게, 가이사랴 총독 베스도, 그리고 천부장들과 시중의 높은 사람들이 모인 장소에서 바울 사건에 대해 경과를 보고합니다. 그의 말이 끝나자 바울이 변호한 내용이 오늘 본문입니다. 바울은 먼저 ‘아그립바 왕이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바울은 ‘왕이여’를 세 번이나 부릅니다(12절과 19절). 당시 그 자리에 참석한 자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가 알고 있는 사람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오직 아그립바만 불렀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가 참석자 중에서 가장 높은 자이기 때문이라고 그렇게 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즉 대표성 발언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바울이 누구에게 변론하기 위해 그 자리에 불려 나온 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바울이 아그립바 왕을 부른 것과 관련하여 다른 것을 생각해보았습니다. 즉 그가 무엇을 깨달았을지를 생각해보았습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실 때 어떤 사명을 주셨습니까?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음을 전하라.” 세 그룹에게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이 중에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임금들’ 앞에서 복음을 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합니다. 왜냐면 한 나라의 통치자가 아니라 여러 나라의 통치자들에게 복음을 전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벨릭스와 베스도에 이어 아그립바 왕 앞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맞이한 것입니다. 더군다나 가이사랴는 아그립바와의 관할지역도 아닙니다. 이때 바울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은 반드시 이루시는구나!” 즉 바울은 아그립바 왕을 부를 때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뼛속 깊이 깨달았을 것입니다.

    지난주는 코로나19이후 가장 바쁘게 사역을 했습니다. 월요일에서 화요일까지 평택에서 목회자세미나를 인도했습니다. 첫날은 오전 9시부터 밤 9시까지, 둘째 날은 오전 9시부터 5시까지 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참석자들과 대화하고 집에 도착하니 밤 10시였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부터 금요일까지 3일간 오전 10시부터 5시까지 줌으로 일본 은혜와 진리교회 양육부흥회를 인도했습니다. 줌 세미나는 생애 처음으로 한 것입니다. 다른 팀도 참석해서 함께 훈련받았습니다. 제가 생각했던 것보다 많은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원장님도 줌으로 상담을 했는데, 현장에서 하는 것과 방불할 정도로 은혜가 차고 넘쳤습니다. 첫째 날 세미나를 마치고 서선교사님과 원장님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러 식당에 갔습니다. 주인 남편이 배달을 나가고 없게 되었을 때 부인이 음식을 갖고 우리 테이블로 왔습니다. 바로 이때가 전도할 기회라고 생각해서 곧바로 작업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처음에는 거절하더니 결국은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제가 이때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십니까?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라고 하시면서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볼지어다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나님께서 함께하시지 않으면 어떻게 안 믿겠다고 하던 자가 불과 몇 분 만에 믿겠다고 생각을 바꿀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먼저 ‘너그럽게 들어 달라’고 청을 합니다(3절). 이 말은 자기의 말을 끝까지 들어 달라고 부탁했다는 것입니다. 지난주도 말했지만, 사람은 누구나 처음 듣는 말에 크게 영향을 받습니다. 바울의 첫 마디가 끝까지 잘 들어달라고 했기 때문에 그런지는 정확히 몰라도 아그립바 왕은 끝까지 바울의 말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먼저 예수 믿기 전에 어떠했는지를 소개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젊었을 때 엄격한 바리새인의 훈련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조상들이 바라는 것 때문에 유대인들에게 고소를 당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조상들이 바라는 것이 무엇입니까? 장차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생을 누리는 것입니다. 즉 자신이 고소를 당한 것은 조상들처럼 죽은 자의 부활을 전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 말을 하면서 뭐라고 말합니까? 8입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우리가 알다시피 바울은 아그립바 왕 앞에서 자신을 변호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그립바 왕’이라고 세 번이나 불렀고, 아그립바 왕을 ‘당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8절에서는 ‘당신’이라고 말하지 않고 ‘당신들은’이라고 했습니다. 즉 단수가 복수로 바뀌었습니다. 왜 바울이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8절)라고 말할 때는 ‘당신’을 ‘당신들’로 바꾸었을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을 다시 살리신 것은 아그립바 왕만 믿어야 할 것이 아니라 그곳에 참석한 모든 자들이 믿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믿지 않아도 될 자는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난 자들은 모두 죄인이므로 반드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들어야 하고 믿어야 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도록 하려고 어떻게 했는지를 주목해야 합니다. 첫째로, 8절을 다시 읽습니다. “당신들은 하나님이 죽은 사람을 살리심을 어찌하여 못 믿을 것으로 여기나이까?” 무슨 말입니까? 예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사람의 이성으로 판단하지 말고 우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의 관점에서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나는 것은 이해 불가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말씀 한마디로 창조하신 분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즉 사고의 패러다임을 바꾸면 믿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1권 1과를 할 때 ‘대표성의 원리’를 말하는 것도 생각의 틀을 바꾸도록 하는 것입니다. 즉 지금까지 자신이 잘못한 경우만 책임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경우도 책임을 지는 경우가 있다고 설득해서 생각을 바꾸게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9-12절을 다시 읽습니다. “나도 나사렛 예수의 이름을 대적하여 많은 일을 행하여야 될 줄 스스로 생각하고 예루살렘에서 이런 일을 행하여 대제사장들에게서 권한을 받아 가지고 많은 성도를 옥에 가두며 또 죽일 때에 내가 찬성 투표를 하였고 또 모든 회당에서 여러 번 형벌하여 강제로 모독하는 말을 하게 하고 그들에 대하여 심히 격분하여 외국 성에까지 가서 박해하였고 그 일로 대제사장들의 권한과 위임을 받고 다메섹으로 갔나이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바울은 나사렛 예수를 대적하기 위하여 대제사장에게 권한을 받아 그리스도인들은 옥에 가두고 죽일 때 찬성했고 모든 회당에서 예수를 강제로 모독하게 하고 심지어 그리스도인들이 다메섹에 있다는 말을 듣고 그곳까지 갔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한 이야기를 했을까요? 자신을 상대방과 동일시해야 상대방의 마음의 문을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대방에게 복음을 전하려면 먼저 자신이 망가져야 합니다. 과거의 실패를 자랑해야 합니다. 셋째로, 13-15절을 다시 읽습니다. 왕이여 정오가 되어 길에서 보니 하늘로부터 해보다 더 밝은 빛이 나와 내 동행들을 둘러 비추는지라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바울은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때를 정오라고 하고, 자신만 경험한 것이 아니라 동행자들이 있었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의 음성을 직접 들었다고 말합니다. 즉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것은 꾸며낸 이야기가 아니라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직접 체험했다는 것입니다. 또 자신이 예수님을 만난 것에 대한 증인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자신이 경험한 것을 말하는 것보다 설득력이 강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도 복음 전도자가 되려면 주님을 더욱 많이 경험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바울에게 나타나신 후 어떻게 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16-18절입니다.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주님께서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고 말씀하신 후 곧바로 그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한마디로 바울이 본 것과 장차 보여 주실 일에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본 것과 장차 보여 주실 일’이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바울이 본 것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신 것입니다. 그리고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이 증거한 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과 그분께서 다시 이 세상에 오셔서 심판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이 두 가지를 증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주로 무엇을 증거하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것만 전하고 있습니다. 즉 초림 예수만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초림 예수뿐 아니라 재림 예수도 전해야 합니다. 즉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만 전하지 말고 곧 다시 오셔서 심판하실 예수님을 증거해야 합니다. 왜 그럴까요? 초림 예수만 강조하면 그분을 믿고 구원을 받지만, 천국에 대한 소망을 두지 않아 이 세상 사람과 동일하게 살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곧이어 바울은 왜 자신이 핍박을 받고 있는지를 말합니다. 19-23절입니다.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먼저 다메섹과 예루살렘에 있는 사람과 유대 온 땅과 이방인에게까지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 전하므로 유대인들이 성전에서 나를 잡아 죽이고자 하였으나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아 내가 오늘까지 서서 높고 낮은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은 선지자들과 모세가 반드시 되리라고 말한 것밖에 없으니 곧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 함이니이다 하니라.”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에 즉시 순종한 후 모든 사람에게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와서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고 전했기 때문에 핍박을 받는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가 단지 이런 일로 유대인들이 그를 죽이려고 했다는 것은 납득하기 힘듭니다. 그러나 바울이 뒤이어 말한 것을 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성경에서 말한 대로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으실 것과 죽은 자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신다는 것을 전했다는 것입니다. 즉 바울은 유대인들이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려면 예수께서 그들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믿어야 한다고 말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회개에 합당한 일을 하라는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일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믿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전하라고 했으니 바울이 핍박을 받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지만, 핍박을 받지 않는 것은 바로 이렇게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제대로 된 복음을 전하므로 주님의 이름으로 핍박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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