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러진 자도 다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행 1:15-26절 2018년 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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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진 자도 다시 쓰임받을 수 있습니다 행 1:15-26절 2018년 9월 30일2018-12-03T23:57:0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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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주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서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가 함께 전심으로 기도한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본문 15절은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에 힘쓰던 자들이 모두 몇 명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5절을 다시 읽습니다.“모인 무리의 수가 약 백이십 명이나 되더라 그 때에 베드로가 그 형제들 가운데 일어서서 이르되. ”누가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여 기도한 자들이 120명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들이 많이 있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고린도전서 15장 5-8절에는 12제자와 500여 형제 등이 있었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을 추종하던 자들 중에는 여성이 남성보다 훨씬 더 많았기 때문에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자들은 이보다 훨씬 많았음에 틀림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명령에 순종한 자들은 120명에 불과했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을까요? 저는 세 가지 추측이 가능하다고 봅니다. 첫째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모든 자들이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는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둘째로, 많은 사람들이 감람산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지만 마가의 다락방이 좁아서 120여 명만 들어가고 나머지는 밖에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면 박해받을 것을 두려워하여 각자 집으로 돌아간 자들이 많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추측이 모두 가능하다고 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 중에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간 자들이 어떻게 120명밖에 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는 것보다 왜 사도행전의 저자가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자들이 120명이라고 기록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이렇게 생각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가 단지 120명이라고 말하지 않고 ‘약 120명’이라고 기록했기 때문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자들이 약 120 명’이었다는 것은 정확히 120 명인지 아닌지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가 다락방에 모인 자들이 120명이라고 한 것은 뭔가 의도가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숫자 120이 갖고 있는 의미 때문입니다. 앞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들이 많았지만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간 자들이 120명밖에 안 되는 이유를 세 가지로 말씀드렸듯이, 누가가 왜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사람이 120명이라고 했는지를 세 가지로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수신학적으로 숫자 120은 하나님의 계획이 이뤄지기까지 기다려야 하는 기간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즉 수련기간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자들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받기까지 기다리다가 오순절이 이르자 성령을 받았습니다. 둘째로, 당시 유대인의 종교적 관습에 따르면 지역의 생활을 관장하는 작은 산헤드린을 이루기 위해서는 120명이 되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마가의 다락방에 올라가서 기도한 사람이 120명이 되었다고 한 것은 초대교회가 합법적으로 탄생한 단체라는 것입니다. 셋째로, 첫 교회가 탄생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120명이 함께 합심으로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함께 기도하던 중 오순절이 이르자 성령께서 강림하심으로 교회가 탄생한 것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나라를 새롭게 하기 위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을 미스바로 모이게 하여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던 것도 같은 이치입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이유 때문에 누가는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자들의 수가 약 120명이나 되었다고 기록했다고 봅니다.

    그런데 약 120명이 모인 가운데서 ‘누가’ 일어나서 말씀을 증거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까?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자였습니까? 주님을 모른다고 3번이나 부인했을 뿐만 아니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후에도 “물고기나 잡으러 가지 더 이상 예수의 뒤를 따르지 않겠다”고 했던 자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어떻게 120명이나 되는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증거할 수 있었습니까? 이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도 종종 베드로와 같이 주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고 믿음 없이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이나 모른다고 부인했는데 주님께서 그를 다시 사용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베드로가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윤리적으로 바르게 살고 머리가 좋고 실력이 있다고 사용하시지 않습니다. 죄를 짓고 넘어지고 자주 실수해도 철저히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을 받은 자를 사용하십니다. 성경을 주의 깊게 읽어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자는 다 실수가 많았지만 자신의 잘못을 빨리 깨닫고 회개하는 자들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혹 죄를 자주 범하고 실수를 많이 해서 이제는 틀렸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인간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시작임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납작 엎드려 철저히 회개하고 매달리면 성령의 충만을 받아 크게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범해서는 안 되는 죄를 범했지만 다시 쓰임 받은 한 목사의 간증을 듣고 크게 감동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그 목사는 포항에서 목회를 잘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유혹의 덫에 넘어져 제 7계명을 범하여 철장 신세를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자신 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도 이제 그의 목회는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교도소에서 만기 복역하고 출소하여 교회를 개척했는데 불과 몇 년도 되지 않아 1,000명이 넘는 교회로 크게 부흥을 시켰다고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그가 형무소에서 철저히 회개했고 성령의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시편기자는“사람을 높임이 동에서나 서에서나 남으로 말미암지 않고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이를 높이시고 저를 낮추기도 하시느니라”(시 75:6-7)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죄 가운데 있을 때 낮추시고 회개할 때에 높이십니다. 우리 중에 온전한 인간이 어디 있습니까? 허물 없는 자가 어디 있습니까? 우리는 다 실수하고 넘어지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사는 길은 오직 회개밖에 없습니다.

    베드로가 그들 중에 일어나서 한 말이 무엇입니까? 16-22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형제들아 성령이 다윗의 입을 통하여 예수 잡는 자들의 길잡이가 된 유다를 가리켜 미리 말씀하신 성경이 응하였으니 마땅하도다 이 사람은 본래 우리 수 가운데 참여하여 이 직무의 한 부분을 맡았던 자라(이 사람이 불의의 삯으로 밭을 사고 후에 몸이 곤두박질하여 배가 터져 창자가 다 흘러 나온지라 이 일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리어져 그들의 말로는 그 밭을 아겔다마라 하니 이는 피밭이라는 뜻이라)시편에 기록하였으되 그의 거처를 황폐하게 하시며 거기 거하는 자가 없게 하소서 하였고 또 일렀으되 그의 직분을 타인이 취하게 하소서 하였도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베드로가 한 말이 무슨 의미입니까? 가룟 유다가 배신한 것은 다윗의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가 가룟 유다의 배신 사건을 다윗 예언의 성취로 해석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베드로가 구약성경에 매우 익숙해있었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에 정통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준비한 자를 사용하십니다. 사도 바울이 하나님께 크게 쓰임을 받은 것도 그가 구약성경에 정통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한다면 말씀을 가까이 해서 마음 판에 새겨놓아야 합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가룟 유다의 배신을 구약성경의 성취라고 거론하면서 결론적으로 한 말이 무엇입니까? 21-22절을 다시 읽습니다.“이러하므로 요한의 세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 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즉 그 예언대로 12제자 중 자살한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람을 뽑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즉 성경의 말씀대로 순종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만나든지 성경으로 해석하고 순종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자신 뿐 아니라 모든 문제의 답을 성경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경은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모든 문제의 답을 성경을 통해서 얻고 있습니까? 무엇을 하든지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까? 우리가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해도 성경에 근거를 두지 않으면 이는 주님의 일이 아니라 자신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전 세계에 다니면서‘D3전도중심제자훈련’을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D3에서 가장 중요한 핵심이 무엇입니까? 예수께서 세 가지 사역을 훈련하셨듯이 평신도들도 그렇게 사역하도록 훈련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평신도를 훈련하는 방법을 어디서 찾아냈습니까? 사도행전 5장 42절에서 발견했습니다. 사도행전 5장 42절에는 세 가지 훈련 방법, 즉 반복훈련, 집중훈련, 시연훈련을 가르쳐 주고 있습니다. 세상은 급변해도 하나님의 말씀은 불변합니다. 따라서 모든 시대 모든 일의 절대기준인 말씀을 따라야 합니다.

    베드로의 제안에 그 자리에 모인 자들이 어떻게 했습니까? 23-26절을 읽습니다.“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 그들이 기도하여 이르되 뭇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주여 이 두 사람 중에 누가 주님께 택하신 바 되어 봉사와 및 사도의 직무를 대신할 자인지를 보이시옵소서 유다는 이 직무를 버리고 제 곳으로 갔나이다 하고 제비 뽑아 맛디아를 얻으니 그가 열한 사도의 수에 들어가니라. ”그들은 베드로의 말을 듣고 나자 두 사람을 추천해서 그 중에 한 사람을 제비뽑아 가룟 유다를 대신할 사도로 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여기서 제비뽑기를 하는 과정을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들이 먼저 기도하고 직접 제비를 뽑아 가룟 유다를 대신할 자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먼저 요셉과 맛디아 두 사람을 내세운 후에 기도하고 제비뽑기를 통하여 결정했습니다. 그들이 먼저 후보를 추천한 것을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인정받기 전에 사람에게 인정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께 인정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듯이, 사람들에게 칭찬받지 못하는 사람은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칭찬받을 수 없습니다.
    혹자는 하나님께서만 알아주시면 되고 사람은 상관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주장하는 사람들은 성경에서 가장 중요한 가르침을 무시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대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또 십계명이 무엇입니까? 제1-4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관계를, 5-10계명은 사람의 관계를 규정하고 있습니다. 기독교는 하나님과의 관계와 사람과의 관계를 거의 같은 수준으로 다룹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롬 14:18). 우리는 하나님과 바른 관계를 맺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뿐더러 형제자매들과도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따라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고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칭찬받고 있지 않다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적으로 살펴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왜 굳이 가룟 유다 대신에 한 사람을 뽑아 12명을 채웠느냐는 것입니다. 제가 이 질문을 던지는 것은 다른 경우는 12명이 안 된 경우에도 충원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사도행전 12장 2절을 보면 사도 야고보가 첫 순교해서 11명만 남았어도 한 사람을 뽑아서 12명을 채우지 않았습니다. 또한 12제자들 중에 계속해서 순교하는 자들이 생겼지만 그때마다 이를 충원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왜 가룟 유다가 죽은 후에는 곧바로 맛디아를 뽑아 보충했을까요? 그것은 교회의 기초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가룟 유다가 죽은 때는 교회가 아직 탄생하지 않았을 때이고, 야고보 사도가 순교한 때는 이미 교회가 탄생한 후입니다. 그러면 왜 교회가 탄생하기 전에는 사도의 수가 12명이어야 할까요? 에베소서 2장 20절을 보십시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셨느니라.” 교회가 어디의 터 위에 세워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입니다. 이를 영어로 표현하면‘And are built upon the foundation of the apostles and prophets’그런데 여기서 ‘of’를 동격의 전치사로 보면 사도들과 선지자라는 기초 위에 교회가 세워졌다는 것이고, of를 소유격으로 보면 교회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인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웠다는 뜻이 됩니다. of를 동격의 전치사로 해석하든 소유격으로 해석하든 사도들과 선지자의 숫자가 부족하면 교회의 기초는 단단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빠진 숫자를 충원해야 했던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제비뽑기와 관련하여 한 마디하고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제비를 뽑는 일은 고대 이스라엘에 있어서 신성한 제도였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기위한 방법 중에 하나로 종종 사용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언 16장 33절은 “제비는 사람이 뽑으나 모든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잠 16:33)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를 제비뽑기를 통해서 뽑았다고 해서 교회의 모든 일군을 제비로 뽑아야 한다고 주장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사도행전 13장에 보면 안디옥 교회가 선교사를 파송할 때에 누구를 보내는지를 제비뽑아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금식기도를 하는 가운데서 성령께서 친히 불러 세우시는 사람들을 파송하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제비를 뽑는 것은 의사결정 방법 중의 하나일 뿐, 교회의 지도자나 중요한 일을 결정하는 유일한 방법이 아님을 알아야합니다. 즉 성경의 한 구절을 지나치게 강조해서 모든 성경을 해석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절대적 진리와 상대적 진리가 있습니다. 상대적 진리는 시대에 따라 변할 수 있는 반면, 절대적 진리는 영원히 불변합니다. 상대적 진리에 목숨을 걸지 말고, 절대적 진리인 복음을 전하는 일에 목숨을 거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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