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판을 피하는 길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1:5-19절 201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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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판을 피하는 길이 있습니다 누가복음 21:5-19절 2018.3.32018-12-03T23:43:4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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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주에 가난한 과부의 헌금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은 우리에게 헌금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려고 하신 것이 아니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의 외식을 책망하시려고 하시면서 동시에 우리가 외식하지 않도록 하시기 위해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도 예수께서 같은 스타일로 말씀하신 것입니다. 겉으로는 성전파괴를 주제로 말씀하신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른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먼저 성전파괴에 관해 말씀하신 것을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5절을 보면 어떤 사람들이 성전을 가리켜 ‘그 아름다운 돌과 헌물로 꾸민 것’을 말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평행구절인 마태복음 24장 1절에는 어떤 사람들이 누군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제자’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제자들이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키면서 그것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대해 말했다는 것입니다.
    왜 제자들이 헤롯 성전을 돌과 헌물로 아름답게 꾸민 것에 대해 예수님께 말했을까요? 이를 알기 위해서는 잠시 성전의 역사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있어서 성전은 세 개였습니다. 첫째는 솔로몬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솔로몬의 지시로 7년에 걸쳐 건축되어졌는데 기원전 587년에 바벨론 군대에 의해 파괴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스룹바벨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던 유다 백성이 돌아와서 스룹바벨을 중심으로 솔로몬 성전을 지었던 자리에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 성전은 솔로몬 성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작고 빈약했습니다. 세 번째 성전은 헤롯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예수께서 태어나시기 전 헤롯 1세부터 짓기 시작해서 그가 죽고 난 후 30년이 지난 예수님 당시에도 계속해서 짓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고 하셨을 때, 그들이 “이 성전은 사십육 년 동안에 지었거늘 네가 삼 일 동안에 일으키겠느냐”(요 2:19-20) 라고 말한 것입니다. 이 성전은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도 30여년이 지난 A.D. 63년이 되어서야 완성되었습니다. 한마디로 헤롯 성전은 80년이나 건축했기 때문에 그 크기와 웅장, 그리고 그 아름다움은 이루 형용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특별히 황금으로 뒤덮인 성전의 외양은 찬탄을 금할 수 없었고, 햇빛을 받아 반사하는 성전의 광채는 보는 사람의 눈을 멀게 할 정도로 찬란했다고 합니다. 또한 황금으로 덮이지 않은 대리석 부분은 순백색으로 눈부시게 빛나 멀리서 볼 때에는 마치 만년설로 덮인 산처럼 보였다고 합니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제자들이 헤롯 성전을 지나갈 때에 예수님께 웅장함과 아름다움에 대하여 말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과 제자들이 같이 예루살렘 성전을 보았는데, 제자들은 성전의 웅장함과 아름다움을 주제로 이야기를 했는데 예수께서는 가만히 계셨을까요? 그것은 성전을 바라보는 관점이 달랐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성전의 겉모습에 주된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고 예수께서는 그 안에서 행해지는 것에 주된 관심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성전은 하나님께 나와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곳입니다. 즉 하나님을 만나는 장소입니다. 그런데 당시 성전 내부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습니까? 장사꾼들과 환전상들로 강도의 소굴이 되어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런 사실을 잘 알고 계셨기 때문에 당시 성전이 웅장하고 아름답게 보였어도 이에 대해 한마디도 말씀하시지 않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겉으로 보여지는 것에 관심을 두시지 않습니다. 즉 우리의 외모, 학력, 규모 크기에 관심을 두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가치관을 우리의 가치관으로 삼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속 사람에 관심을 가지시기 때문에 우리도 겉 사람보다 속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크게 보이려고 하지 말고 주님께서 거하시기에 조금도 불편함이 없는 자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의 말에 뭐라고 대답하셨습니까? 6절을 읽습니다. “너희 보는 이것들이 날이 이르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무슨 의미입니까? 제자들이 그토록 자랑하는 성전이 완전히 무너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이 성전은 A.D. 70년 로마의 디도장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이 성전이 완성되는 데는 80년이 걸렸지만 한 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성전이 어떻게 파괴된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까? 성전이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도록” 무너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건물이 아무리 크게 무너져도 조각들은 겹쳐지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게 무너질 수 있겠습니까? 지난번에 말씀드린 대로 헤롯 성전을 금붙이로 장식했는데 이를 로마 군인들이 알고 금붙이를 캐기 위해 돌조각을 일일이 뒤집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헤롯 성전이 이처럼 무너진다고 말씀하신 것은 단지 성전이 그렇게 무너질 것을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더 욱 더 큰 의도가 숨겨져 있습니다. 아무리 화려하고 웅장한 성전도 돌 하나 돌 위에 남지 않고 무너지듯이 하나님께 보이지 않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하는 신앙생활은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에게 여러 차례 “화 있을진저”라고 말씀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바르게 신앙생활을 해서 예수님의 심판이 대상이 되지 말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은혜와 복을 베푸시는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그러자 사람(제자)들이 예수님께 되물었습니다. “선생님이여, 그러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이런 일이 일어나려 할 때에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7절). 그들이 이렇게 묻자 예수께서 구체적으로 어느 때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그런 일이 일어날 징조를 말씀하셨습니다. 8-17절까지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요약하면 크게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로, 미혹하는 자들이 나타나서 유혹한다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이르시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며 ‘때가 가까이 왔다’ 하겠으나 그들을 따르지 말라.” 한마디로 종말에 관한 거짓된 말로 미혹하는 자들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나라 안에서 소요와 국가 간의 전쟁이 자주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9-10절입니다.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 이 일이 먼저 있어야 하되 끝은 곧 되지 아니하리라 또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셋째로, 천재지변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11절입니다. “곳곳에 큰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과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큰 징조들이 있으리라.” 특정한 지역만이 아니라 지구촌 곳곳에서 각종 재앙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믿는 자들에 대한 환난과 박해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12절입니다. “이 모든 일 전에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가려니와” 단지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박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다섯째로, 가장 가까운 사이에서 배신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16-17절입니다.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또 너희가 내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믿을 사람이 하나도 없을 정도로 가족들에게도 배신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장차 성전파괴 시에 일어날 징조들을 들으면서 어떤 마음이 듭니까? 솔직히 한편으로 두려운 마음이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이에 대한 대처방안을 말씀해주셨기 때문입니다.
    첫째로, 많은 사람이 유혹을 해도 받지 않도록 그들을 따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8절).
    둘째로, 난리와 소요의 소문을 들어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9절).
    셋째로, 집권자들이 박해하며 투옥시키며 그들 앞에 끌어다 세울 때 무슨 말을 할지 미리 궁리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14절).
    넷째로, 끝까지 인내하라는 것입니다(19절).

    우리는 이처럼 예수께서 성전이 파괴될 때에 장차 일어날 현상들을 말씀하실 뿐 아니라, 이에 대처방안까지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첫째로,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미래에 구체적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말씀하시는 것은 역사의 주인이 하나님이신 것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주인이라는 말은 무슨 의미입니까? 이 세상의 모든 일이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허락가운데서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천재지변이 일어나고 난리와 전쟁의 소문이 있어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렇습니다.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지금보다 더 온갖 두려운 일이 발생할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아버지이시기 때문에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둘째로, 우리가 각자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역사를 그분의 뜻대로 이끌어 가실지라도 우리에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라고 말씀하신 것은 우리가 감당해야 할 몫이 있다는 것입니다. 장로교 신자들은 구원을 행함으로 받지 않고 믿음으로 받는다는 교리를 믿기 때문에 신앙생활도 은혜로 하려는 경향이 다소 있습니다. 그래서 전도나 신앙생활을 타 교단에 비해 적극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은혜로 구원하신 것은 그 방법 밖에는 없기 때문이지, 구원받은 후에도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다고 믿고 가만히 앉아서 받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자는 마땅히 자녀로서 감당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켜주시지만 조심하지 않으면 여러 가지 어려움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금번에 태국 치앙라이에서 사역을 마치고 HIM이라는 교단의 차세대 리더 목사와 점심을 하기로 약속이 되어 있어서 점심 식사 전까지 ‘요크’라는 커피 브랜드로 비즈니스 선교를 하는 선교사의 집에서 커피를 마셨습니다. 그런데 커피가 좀 싱겁다고 했더니 다시 더 진한 커피를 주어서 마셨는데, 커피가 너무 진했던지 위가 불편해서 비행기에 탑승 전까지 고통을 당했습니다. 고통 중에 제가 계속해서 내뱉은 말이 있습니다. “괜히 커피를 진하게 마셨다.” 선교의 주체는 하나님이시고 복음전도를 가장 기뻐하시기 때문에 이에 순종하는 저에게 진한 커피를 마시지 못하도록 간섭하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제가 판단할 몫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조심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통을 당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은혜로 살지만 항상 조심하는 자세로 살아가야 할 몫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파괴와 함께 말씀하신 징조들이 단회적이냐는 것입니다. 즉 예수께서 성전파괴 시 일어난다고 말씀하신 징조들이 한 번만 나타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와 그에 대한 징조들은 모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메시아를 자칭하는 등 백성을 미혹하는 자들이 나타났고, 난리와 소요가 여기저기서 일어나서 무자비한 진압이 있었고, 큰 지진과 기근 같은 자연재해도 있었고(행 5:34-39), 천하에 큰 흉년이 일어났습니다(행 11:28). 또한 사도들은 종종 잡혀가 옥에 갇히고 불려가 채찍질을 당하며 예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을 금지 당하고 순교하는 자들이 속출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2,000년 전에 말씀하신 성전파괴 시의 징조가 지금도 세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여전히 거짓 메시아가 이곳저곳에 나타나서 택한 성도들을 유혹하고 있고, 지진과 기근이 일어나고 있고, 자연재해가 줄을 잇고 있습니다. 그리고 믿는 자들에 대한 박해가 세계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을 ‘예언 성취의 이중성’이라고 합니다. 즉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과거에도 성취되었지만 종말에도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언 성취를 이중적으로 행하실까요? 신약성경 고린도전서 10장 11절을 읽습니다. “그들에게 일어난 이런 일은 본보기가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느니라.” 무슨 의미입니까? 성경이 과거에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것은 말세를 만난 우리를 깨우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즉 과거의 사건을 성경에 기록한 것은 말세를 사는 자들을 교훈하시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성전파괴 시에 임할 징조들이 말씀하신 대로 성취되었듯이, 이런 징조들이 지금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면서 주님의 심판이 임했음을 알고 이를 준비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보이지 않고 사람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을 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항상 심판을 준비해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심판의 날이 우리에게는 상을 받는 날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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