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행복지수를 업그레이드 하라 대상 11장 15-19절 20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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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행복지수를 업그레이드 하라 대상 11장 15-19절 2014.2.92018-12-03T21:13:3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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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동신교회라는 공동체를 중심으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은 행복해야 하는데 우리의 행복지수가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이유 중의 하나는 잃었던 낙원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낙원은 지상에서 가장 행복한 곳입니다. 따라서 교회생활 역시 행복해야 합니다. 행복은 관계에서 비롯되기 때문에 행복하게 교회생활을 하려면 교회 안에서 좋은 관계를 맺어야 합니다. 성도는 목사를 만나고 싶어하고, 목사는 성도를 만나고 싶어하고, 성도들은 성도들을 서로 만나고 싶어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의 신앙행복지수를 업그레이드 할 수 있을까요?

     

      첫째로, 서로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해야 합니다. 다윗은 사울 왕이 죽은 후 헤브론에서 유다 왕이 된지 7년 반 만에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마침내 모든 이스라엘 지파 장로들이 인정하는 이스라엘 왕으로 등극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왕이 되자 가장 먼저 블레셋 정복에 나섰습니다. 그렇게 한 이유는 무엇보다도 블레셋에게 빼앗긴 하나님의 언약궤를 되찾아 오기 위해서였습니다. 다윗은 블레셋과의 한 판 승부를 결정짓기 위해서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블레셋과 마주 보며 대치하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전운이 감돌고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다윗이 전투를 앞두고 심한 갈증을 느꼈든지 부하들 앞에서 이런 말을 했습니다. 베들레헴 성문 곁 우물물을 누가 나로 마시게 할꼬!”(대상 11:17). 그러자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다윗의 부하 중에 요압과 야소브암과 엘르아살이 겹겹이 포진하고 있는 블레셋 병영을 향해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목숨을 아끼지 않고 적진에 뛰어들어 우물물을 퍼왔습니다. 어떻게 세 용사가 한 사람의 마실 물을 뜨기 위해 목숨을 맞바꾸는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윗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세 용사는 다윗 왕이 얼마나 목이 마르면 저런 말씀을 하셨을지를 생각했습니다. 사실 다윗은 그들에게 물을 떠오라고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단지 그는 물을 마시고 싶다고만 말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 용사가 목숨을 건 행동을 하였던 것은 다윗의 마음을 헤아렸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지면 희생적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윗은 세 용사가 적진에 들어가 떠온 물을 어떻게 했습니까?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드렸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여 내가 결단코 이런 일을 하지 아니하리이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갔던 이 사람들의 피를 어찌 마시리이까”(19). 그렇습니다. 다윗이 세 용사가 떠온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드렸던 이유는 세 용사가 어떤 마음으로 그 물을 떠 온지를 알았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그들의 헌신에 너무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물을 마시지 않고 여호와께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과 세 용사의 관계는 왕과 신하의 관계입니다. 왕과 신하의 관계는 명령과 복종의 관계입니다. 그런데 세 용사는 다윗왕의 마음을 헤아렸고 다윗 왕은 세 용사의 마음을 헤아렸습니다. 얼마나 행복한 모습인지 모릅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서 서로의 관계를 이렇게 맺는다면 우리 공동체가 얼마나 행복하겠습니까?

    그러나 상대방을 헤아리는 마음을 갖기 위해서는 우리가 서로 어떤 관계에 있는지를 정확히 인식해야 합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우리는 그 몸의 각 지체입니다. 각 지체가 서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제 기능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뭐라고 말했습니까?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또한 머리가 발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하지 못하리라. .. 몸 가운데 분쟁이 없고 오직 여러 지체가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느니라”(고전 12:21, 25). 또한 우리는 한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있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형제자매입니다. 세상에서는 사장과 종업원의 관계로 있을 수 있고, 채주와 채무자의 관계로 있을 수 있고,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 형제자매이기 때문에 서로의 마음을 헤아릴 줄 알아야 합니다. 특별히 상처를 주지 않도록 상대방을 배려하는 말을 해야 합니다. 지난 주일 오후 예배 후 어느 집사님과 상담하는 과정에서 아주 안타까운 말을 들었습니다. 그 집사님이 우연히 카페를 지나가다가 어떤 분이 자신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들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 내용이 사실과 전혀 달랐다고 합니다. 그는 그 말을 듣고 더 이상 교회에 봉사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 봉사를 내려놓게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동신교회라는 신앙공동체로 저와 여러분을 보내주신 것은 서로 돌아보고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부주의한 말로 상처를 주는 일이 없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좇아다녔습니다. 예수께서 가시는 곳마다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예수님을 좇아다녔는지 아십니까? 주로 병 고침을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는 다른 이유로 예수님을 좇아다닌 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좇아다닌 것은 예수께서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들 중에 대표적인 사람은 막달라 마리아입니다. 그녀는 창녀였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일곱 귀신의 포로가 되어 있었습니다. 창녀에 귀신까지 들린 여자를 가까이 할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습니다. 가족들도 버렸고 친구들도 냉대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녀의 고통을 헤아리셨습니다. 그래서 귀신을 쫓아주시고 창녀에서 벗어나게 해주셨습니다. 그러자 막달라 마리아는 예수님의 신실한 추종자가 되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후 무덤에 안치되셨을 때에 가장 먼저 무덤을 찾아 갔던 자는 막달라 마리아였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을 헤아려주고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 합니다. 그리고 그런 관계로 신앙생활을 할 때에 행복지수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천국의 열쇠’(크로닌 저) 라는 명저가 있습니다. 그 책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어느 날 자기 밑에 있는 간호원이 자기가 지시한 대로 하지 않아서 환자 한 명을 죽게 하였습니다. 그러자 크로닌은 병원장에게 탄원서를 썼습니다. “이 간호원은 자격 미달이니 파면하여 주시기를 간청합니다.” 간호원은 자기가 잘못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간호원은 크로닌에게 가서 무릎을 꿇고 빌었습니다. “선생님! 한번만 기회를 주세요. 한번만 용서하여 주세요.” 이 말을 듣는 순간 크로닌은 간호원의 말이 마치 자신이 예수님 앞에 가서 해야 할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속으로 이렇게 중얼거렸습니다. 그렇다. 사람이 한번 죽는 것은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 나도 주님 앞에 가서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사람이 사람을 용서할 수 있냐? 저 간호원을 누가 정죄할 수 있냐?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지 않냐? 어느 간호원이 일부러 사람을 죽이겠느냐? 정말 실수요, 정말 모르고 한 것이 아니야?” 크로닌에게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자 들고 있던 탄원서를 간호원 앞에서 찢어 버렸습니다. 그 후 세월이 흘렀습니다. 크로닌에게 용서 받은 간호원은 영국에서 가장 큰 병원의 간호과장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크로닌이 그녀를 이해하고 알아주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서로를 알아주고 사랑하려고 노력할 때에 우리교회가 행복한 공동체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강도가 혼자 살고 있는 집에 들어가서 자고 있는 과부를 깨워 칼을 들이대며 꼼짝 말고 두 손을 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과부는 한 손만 들었습니다. 그러자 강도는 다시 큰 소리로 두 손을 들으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과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쪽 손은 신경통이라 들 수가 없습니다.” 그러자 강도는 칼을 내려놓고 마주 앉아 자신도 신경통을 앓고 있다고 말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리고 신경통에 좋은 약과 치료 방법 등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 새 친구가 되었습니다. 어떻게 강도가 변하여 친구가 될 수 있었습니까? 상대방의 고통을 헤아리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입니다.

    작년에 세계적으로 화제가 되었던 사진 두 장이 있었습니다. 패트릭의 친구들이라는 단체가 홈페이지에 패트릭의 치료비를 모금하기 위해 두 장의 사진을 올렸는데 그것이 전 세계인의 마음에 감동을 불러일으켰습니다. 한 장은 26명의 건장한 남자들이 삭발하고 찍은 사진이고, 다른 한 장은 미국 제41(1989~93) 대통령을 지낸 조지 부시가 삭발을 하고 백혈병을 앓는 두 살배기 패트릭과 함께 찍은 사진입니다. 부시는 경호원 중의 한 사람 아들 존이 백혈병에 걸렸는데 머리가 빠져서 창피해서 다른 아이들과 어울리기 싫어한다는 말을 듣고 존처럼 머리를 삭발하고 그와 함께 사진을 찍었던 것입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우리나라에 이런 정치 지도자가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서로의 고통을 헤아리고 함께 할 때에 우리의 신앙행복지수가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공동목표의 성취를 위해 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다윗이 싸워야 할 상대는 블레셋이었습니다. 당시 블레셋은 강대국이라 감히 상대할 자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세 사람이 함께 적진을 뚫고 들어가 그들과 싸워 이기고 물을 길어올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다윗과 세 용사가 한 가지 목표의 성취를 위해 하나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 목표가 무엇이었습니까? 블레셋 정복이었습니다. 거대한 목표에 마음이 하나가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세 용사가 하나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요압은 여부스 원주민의 산성을 빼앗은 최고의 장군이었고, 야소보암은 창으로 한 번에 삼백 명을 죽일 정도로 대단한 자였고, 엘르아살은 수많은 블레셋 군대를 무찌른 용사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블레셋을 정복하는 일에 마음을 같이 했기 때문에 적진을 뚫고 물을 길어오는 일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루어야 할 목표는 무엇입니까? 즉 우리 동신교회가 이루어야 할 최고의 목표가 무엇이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이 바로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시기 위해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잃어버린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전도해야 합니다. 그런데 전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하는 방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제자를 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승천하실 때에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28:19-20)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마음을 품고 훈련을 받아 제자 삼는 삶을 살아갈 때에 우리의 행복지수는 높아지는 것입니다.

    참새구이 장사들이 참새가 많이 모이는 곳에 먹이를 뿌리고 그 위에 그물을 쳐 놓았습니다. 그리고 멀리에서 끈을 연결시키고 보고 망을 보다가 수 천 마리 참새 떼가 앉아서 그물 밑에서 먹이를 먹자 재빨리 끈을 당겼습니다. 그러자 그 많은 참새들이 그물 안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이제 참새는 모두 죽을 운명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이때 참새 한 마리가 말했습니다. 우리 모두가 살 방법이 있다. 다 같이 그물을 등에 업은 채로 하늘로 오르자. 그리고 그물을 나무위에 걸쳐 놓고 밑으로 빠져 나오자. 다 같이 하면 된다.” 그래서 참새는 모두 그물을 등에 지고 하늘로 날아올랐습니다. 수 천 마리가 한꺼번에 그렇게 하자 그물이 들렸습니다. 나무까지 날라 가서 걸치고 밑으로 모두 빠져 나왔습니다. 하나가 되자 모두 살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공동 목표를 이루기 위해 힘을 합하면 모두 살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제자 삼는 사역에 힘을 합치면 놀라운 일을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며칠 전, 조선일보에 삼성, 구글 시스코와 글로벌 특허 3총사 결성이라는 제하의 기사가 실렸습니다. 현재 삼성전자가 보유한 글로벌 특허는 10만 여건, 구글은 5만 여건, 시스코는 1만 여건 정도가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왜 서로 특허를 공유하기로 계약을 맺었는지 아십니까? 특허분쟁으로 인한 소모전을 줄이고, 사업기술을 공유해 표준화를 이루어 세계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도 복음전도라는 목표를 위해 비전을 공유하고 함께 힘을 합쳐야 합니다. 자기 생각을 너무 강하게 주장하면 교회는 하나 될 수 없고 시너지 효과를 창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공동목표에 한 마음을 품지 않으면 결코 신앙행복지수는 높아질 수 없습니다.

    아프리카 부족을 연구하던 어느 학자가 아프리카 아이들을 불러 놓고 게임을 하나 제안하였습니다. 멀리 나무 밑에 맛있는 각종 과일을 많이 담은 바구니 하나를 두고서 먼저 달려가는 사람이 다 먹으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떨어지자 마치 약속이나 한 듯이 아이들이 모두 손을 잡고 바구니를 향하여 달려가더니 바구니 안에 있는 과일을 다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 학자가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한 명이 먼저 가면 다 차지할 수 있는 데 왜 함께 뛰어 갔지?” 그러자 아이들은 우분트(UBUNTU)”라고 외쳤습니다. ‘우분트(UBUNTU)’란 반투족 말로 네가 있기에 내가 있다(I am because you are)”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모두 슬픈데 어떻게 혼자만 행복해질 수 있나요?.” 이 말은 넬슨 만델라 대통령이 자주 강조해서 널리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 교회 안에 이 단어가 퍼져나가야 합니다. 당신이 있기에 내가 있습니다.” 나는 잘되고 다른 사람이 망하는 공동체는 불행한 공동체입니다. 내가 있어야 너도 있다고 생각하는 공동체는 신앙행복지수가 높을 수 없습니다. 제가 기도할 때마다 양극화현상을 치유해 달라는 공동기도제목을 내놓고 있습니다. ‘부익부 빈익빈이 극대화된 사회는 불행한 사회입니다. 어느 한두 사람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아닙니다. 저는 모든 평신도들을 스타로 만들기 위해 모든 평신도가 사역하는 평신도사역형교회를 꿈꾸고 여러분을 훈련하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신앙의 공동목표를 위하여 한 마음을 품고 함께 나가는 자들이기 때문에 모두가 소중한 자들입니다.

     

      셋째로, 자신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가 살펴보았듯이 다윗은 세 용사가 떠온 물을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습니다. 다윗이 세 용사가 힘들게 떠온 물을 자신이 마시지 않고 하나님께 부어드렸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그것은 자신의 생명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한다는 표현입니다. 사실 다윗은 자신이 내뱉은 말에 세 용사가 그들의 목숨을 내던져서 물을 떠오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블레셋이 어떤 군대인지를 알고 있었고 그 일을 한다는 것은 목숨을 내놓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적진에 들어가서 물을 길어오자 다윗은 그들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깨달았습니다. 그것을 깨닫자 다윗은 감히 목숨을 걸고 떠온 물을 마실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그 물을 하나님께 부어드렸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다윗이 어떻게 자신보다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이 얼마나 사랑받는 존재인지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사랑 받는 존재인지를 깨달으면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고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은 하지만 실제로 자신을 더 사랑하는 것은 자신이 얼마나 큰 사랑을 받고 있는 존재라는 것을 온전히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아무리 열심히 해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온전히 깨닫지 못하면 사랑의 방향은 바뀌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만 사랑하지 다른 사람이나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습니다.

    이북 사리원의 계동교회에서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계동교회는 장로가 모두 7명이었는데 그 중에 4명 장로가 6.25때 공산당에게 순교를 당해 교회사에 기록되는 영광을 얻었습니다. 그 중에 강덕기 장로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공산당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을 가장 미워합니다. 강덕기 장로가 교회에서 기도하고 있을 때에 공산당원들이 들이닥쳤습니다. 그들은 기도하고 있던 강 장로를 잡아 교회의 기둥에 맸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부인하라고 강요하였습니다. 강 장로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자 그들은 강 장로의 눈을 모두 후벼냈습니다. 피가 낭자하였습니다. 그래도 강 장로는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두 눈이 있을 때는 하늘나라가 보이지 않았는데 두 눈이 빠지고 나니 하늘나라가 보이는구나.그리고 그는 내 주여 뜻대로 행하시옵소서.라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그러자 공산당원들은 모멸감을 느끼고 한 방에 총으로 쏴 죽일 수도 있었지만 총 개머리판으로 수없이 많이 내리쳐서 죽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국군이 그 마을에 들어와 상황이 역전되어 미처 도망하지 못한 공산당원들이 붙잡혔습니다. 포로로 잡힌 자들 중에는 강 장로를 때려 죽였던 자도 있었습니다. 국군들과 동네 사람들은 강 장로를 붙잡아 맸던 기둥에 그를 붙잡아 맸습니다. 그리고 강 장로 아들에게 말했습니다. “아버지를 죽인 사람이니 네 마음대로 해도 좋다. 네 아버지에게 한 것처럼 두 눈을 빼고 때려 죽여도 좋다.” 그 때 강 장로 아들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 아버지의 순교를 헛되게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기둥에 묶여 있는 아버지를 죽인 원수의 손을 잡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당신은 나의 원수이지만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어떻게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사랑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사랑 받은 것을 깨닫는 만큼만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사랑할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종종 시험에 드는 것은 주님의 사랑을 온전히 깨닫지 못하고 다른 사람이나 주님보다 자신의 유익을 추구하기 때문입니다. 타인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자신의 유익을 구하면 당연히 다른 사람은 손해를 보게 되기 때문에 다툼과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신앙행복지수를 높이기 위해서는 자신보다 다른 사람을 그리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식당은 음식이 맛있고 서비스가 좋으면 몰려듭니다. 그러나 교회는 자신보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아져야 사람들이 몰려오는 것입니다. 저부터 힘써 노력하겠습니다. 우리 함께 노력해서 이웃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신앙공동체로 만드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신앙생활은 행복해야 합니다. 그러나 행복은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려고 노력하고, 공동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한 마음을 품고, 자신보다 타인과 하나님을 더 사랑해야 행복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노력하므로 신앙행복지수를 업그레이드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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