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에 들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눅7:18-35 2016년 2월 14일

//시험에 들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눅7:18-35 2016년 2월 14일
시험에 들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눅7:18-35 2016년 2월 14일2018-12-03T23:03:02+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시험에 들지 않는 방법이 있습니다 눅7:18-35 2016년 2월 14일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56

    우리는 지난주 죽었던 나인성 과부의 아들이 다시 살아나는 기적이 어떻게 일어났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하나님께서 계획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고 둘째는, 예수께서 나인성 과부를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고 셋째는, 예수께서 자신이 누구신지 알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공식에 따라 기적을 베푸시기 때문에 우리가 이 공식을 따르면 기적이 상식이 되는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읽은 본문은 크게 두 가지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께서 예수님의 정체성에 의문을 품고 제자들을 보내어 묻는 세례요한에게 메시아 사역의 본질을 밝히신 것이고, 다른 하나는 세례요한이 어떤 자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먼저 세례 요한의 물음에 예수께서 어떻게 답변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세례요한이 감옥에 갇힌 것은 헤롯 왕의 자기 동생의 부인을 자기의 아내로 가로챘기 때문입니다. 다른 여인도 아니고 자기의 동생의 아내에게 이렇게 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그러나 헤롯이 이토록 악한 일을 저질렀지만 그 어느 누구 하나 그의 잘못을 지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세례요한은 헤롯의 면전에서 “당신이 그 여자를 차지한 것이 옳지 않다”고 책망했습니다. 그 일로 세례요한은 헤롯부부에게 미움을 사서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세례 요한이 이렇게 감옥에 갇혀 있을 때였습니다. 그의 제자들을 통하여 예수께서 귀신과 각종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을 고쳐주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의 마음에 혹 예수님이 자신이 그토록 기다리는 메시야인지에 대해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제자들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왜 세례 요한이 예수께서 행하신 일을 전해 듣고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대해 의문을 갖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이유를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이유는 예수께서 자신이 생각한 것과는 다르게 사역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세례요한은 예수께서 당장에 세상의 악을 심판하시는 메시아로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가 그렇게 생각했는지를 알 수 있을까요? 누가복음 3장 7-9절을 읽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에게 일러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리라.” 우리는 그의 메시지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세례요한은 예수께서 당장에 어둠의 권세들과 불의의 세력을 심판하실 것으로 기대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서 로마제국을 멸하시고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당장 불의의 세력들을 멸하시지도 않고, 게다가 자기를 옥에서 구출해 내시지도 않았습니다. 이에 예수님의 메시아성에 대해 의심이 들었고 성격이 불같았던 요한은 도저히 참고 기다릴 수 없었기 때문에 자기 제자들을 보내서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라고 물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런 의문에 대해 어떻게 반응하셨습니까? 21-22절을 보십시오.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예수께서는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을 받으신 후에도 계속해서 온갖 병자들을 고쳐 주고 계셨습니다. 절름발이를 고치시고, 맹인의 눈을 뜨게 해 주시고,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요한의 제자들에게 보게 하시고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왜 이렇게 하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은 당장 현실 정치에 개입하셔서 세상을 뒤집어 놓는 것이 아니라, 병든 자를 고치고 귀신을 좇아내며 복음을 전파하시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하신 것입니다. 즉 세례요한이 생각하는 메시아와 자신이 생각하시는 메시아가 다르다는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어떻게 애굽에서 건져내셨습니까? 당장 애굽 왕 바로의 목을 꺾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원해내시지 않았습니다. 먼저 모세를 통하여 바로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시고 그 말씀과 함께 10가지 재앙을 행하시고 뒤쫓는 그들을 홍해 바다에 수장하심으로 구원하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이렇게 구원하실지 전혀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수님의 구원의 방법과 예수님께서 생각하시는 구원의 방법은 전혀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의 자유를 가지고 있지만 그 생각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이것을 새롭게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의 생각대로 주님께서 구원하실 것이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요한의 제자들의 질문에 답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경고하셨음에 주목해야 합니다. 23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이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께서 자신이 원하는 대로 구원을 베푸시지 않아도 시험에 들거나 예수님을 떠나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때문에 자기의 소원을 이루는 자가 복이 있는 자가 아니라 예수께서 자기의 생각대로 응답해주시지 않아도 계속해서 주님을 따르는 자가 복이 있는 자인 것입니다. 우리는 복에 대한 개념을 바르게 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세상에서는 장수와 부유함과 건강을 유지하는 것을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유호덕, 즉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를 하는 삶을 사는 것과 고종명, 즉 객지가 아닌 자기 집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오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말하는 복은 수와 부와 건강과는 무관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어려운 일을 만나서 믿음이 식어지고 주님을 가까이 하지 않고 있다면 복을 받지 못한 증거이고, 좋은 일이나 나쁜 일과 무관하게 항상 주님을 떠나지 않고 늘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다면 그가 바로 복을 받은 증거인 것입니다.

    다음은 예수께서 세례 요한을 어떻게 평가하셨는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26절입니다.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눅 7:26). 사람들이 광야에 간 것은 선지자를 보기 위해서인데, 그들이 광야에서 만난 세례요한이 선지자 중에서 가장 휼륭한 자라는 것입니다. ‘훌륭한 자’는 원문대로 번역하면 ‘선지자 이상의 어떤 자’라는 뜻입니다. 즉 세례요한이 지금까지 역사에 등장했던 선지자들 중에 가장 나은 선지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세례요한을 모든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7절을 보십시오. “기록된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말라기 선지자가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도록 한 사자를 보낸다고 예언했는데, 바로 그 사람이 세례요한이라는 것입니다. 즉 세례요한이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길을 준비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이므로 모든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다시피 구약시대의 선지자들도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였기 때문에 그들 역시 예수님의 오시는 길을 예비한 자들입니다(눅 24:44; 요 5:39).
    그런데 왜 예수께서 그를 모든 선지자보다 나은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지금까지의 선지자들은 오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증거만 했지, 그분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세례요한은 구약의 선지자들이 예언한 바로 그 분을 직접 만났습니다. 세례 요한은 직접 그 메시야를 보고 그를 증거하며 또한 회개의 세례를 통해 사람들이 예수님께로 나아가는 길을 평탄케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세례요한을 훌륭한 선지자라고 말씀하셨을 뿐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고 칭찬하셨던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세례 요한을 이렇게 평가하신 것을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는 어떤 사람의 위대함은 그의 소유와 인격과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분과 어떤 관계를 맺고 그분을 위해서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상적으로 대단한 일을 했어도 그가 주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거나 혹 주님과 관계를 맺었어도 주님께 온전히 헌신하지 않는다면 그는 훌륭한 자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습니까?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 즉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예수님과 신랑신부의 관계가 되었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계시고 그분이 우리의 주인이시고 우리는 그분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명령인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세례요한보다 더 훌륭한 자들입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엄청난 자들입니다. 이것을 알고 자긍심과 담대함으로 세상을 살아가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천국에서도 큰 자와 작은 자가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천국에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평등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은 그런 생각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28절). 왜 세례요한이 여자가 낳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인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고 하셨을까요? 세례요한을 선지자들 중에서 최고의 선지자이고 여자가 나은 자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하신 것은 그가 다른 선지자들과는 다르게 예수님을 직접 보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그를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을 직접 보았지만 그의 안에 영으로 오신 예수님을 모시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라는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간다고 모든 사람이 동등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혹자는 천국에 들어가면 모두가 똑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만일 그렇게 생각을 한다면 이는 매우 불공평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구원을 받지만, 구원받은 후 목숨을 바쳐 죽도록 충성하는 사람이 있고, 전혀 주님께 헌신을 하지 않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단지 예수님을 믿었다는 한 가지 이유만으로 천국에서 동등하다고 한다면 말이 됩니까? 우리가 알다시피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은 오직 복음을 믿기만 하면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서의 상급은 구원받은 후, 얼마나 주님을 위해 충성하느냐에 따라 결정됩니다. 우리는 이미 천국을 소유한 자들입니다.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천국에서 가장 큰 자가 되기 위해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이런 은혜를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세례요한은 예수님의 메시아 사역이 마음에 들지 않아 의문을 제기했을지라도 예수께서 그를 모든 선지자보다 나은 자라고 평가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혹 신앙에 회의를 품기도 하고 온전히 믿음으로 살아가지 못할지라도 주님은 우리를 높이 평가하십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그분께서 엄청난 대가를 지불하시고 구원해내신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를 매우 소중히 여기시고 우리를 인하여 즐거워하십니다. 이것을 깨닫고 어려움 때문에 하나님을 멀리하지 말고 더욱 더 주님과 친밀한 관계를 맺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하십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