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 대상에게 복을 주신 뜻이 있습니다. 창 1장 22,28, 2:3 2014.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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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대상에게 복을 주신 뜻이 있습니다. 창 1장 22,28, 2:3 2014.1.122018-12-03T21:10:2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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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은 누구나 복을 받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복 받으라는 말만 들어도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어떤 것이 참된 복인지를 모릅니다. 그래서 복인데도 불구하고 화라고 생각해서 좌절과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화를 복으로 생각하고 그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백성들은 자신들이 당한 고난을 화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화가 아니라 평안이고 장래에 소망을 주기 위한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29:11). 그렇습니다. 우리는 세상이 주는 가짜 복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진짜 복을 받아야 합니다. 오늘 우리는 세 곳의 말씀을 읽었습니다. 창세기 122절은 하나님께서 바다의 큰 짐승과 물고기와 새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이고, 창세기 128절은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셨다는 것이고, 창세기 23절은 안식일을 복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사람에게만 복을 주시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사람뿐만 아니라 바다의 큰 짐승과 물고기와 새에게 복을 주셨고, 안식일도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 대상에게 주신 복이 각각 무슨 의미가 있는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 번째로,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2절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창세기 120-21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큰 바다 짐승들과 물에서 번성하여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날개 있는 모든 새를 그 종류대로 창조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여러 바닷물에 충만하라 새들도 땅에 번성하라 하시니라 우리는 이 본문에서 그들이 누구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들은바다의 큰 짐승들과 물고기와 공중의 모든 새를 가리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첫째 날에는 빛을 창조하시고 빛과 어두움을 나누셨고, 둘째 날에는 하늘을 창조하시고 물을 둘로 나누셨고, 셋째 날에는 바다와 풀과 채소와 나무를 창조하셨고, 넷째 날에는 태양과 달과 별 등을 창조하셨고, 다섯째 날에는 바다의 큰 짐승과 물고기와 공중의 새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사항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넷째 날까지는 피조물에게 복을 주셨다는 말이 없는데 다섯째 날에는 창조하신 피조물에 복을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내용을 살펴보면 그 이유를 엿볼 수 있습니다. 복을 주신 내용은 한 마디로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첫째 날에서 넷째 날까지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생육하고 번성할 수 없지만 다섯째 날의 피조물에는 움직일 수 있기 때문에 생육하고 번성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넷째 날까지는 복을 주시지 않았고 다섯째 날에야 복을 주셨던 것입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생명이 곧 복이라는 것입니다. 즉 살아있는 자체가 복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빨리 죽는 것을 저주라고 말하고 장수를 복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상에서 생명보다 더 가치 있고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생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습니까? 물질만능주의에 짓눌려 생명을 경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파리 목숨처럼 생각합니다. 돈 때문에 자식이 부모를, 부모가 자식을, 아내가 남편을, 남편이 아내를 죽입니다. 돈을 버는 일이라면 윤리도 도덕도 없습니다. 어떤 남자가 길에서 요술 램프를 주웠습니다. 그 남자는 책에서 본대로 요술 램프를 문질렀습니다. 그러자 램프의 요정이 나와서 주인님, 소원 한 가지만 들어드리겠습니다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그 남자는 고민에 빠졌습니다.. “돈도 있으면 좋겠고, 여자 친구도 있으면 좋겠고, 결혼도 했으면 좋은데 한 가지만 선택하라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남자는 갖고 싶은 것을 한꺼번에 빨리 말하면 되리라고 생각해서 돈 여자 결혼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래서 돈 여자와 결혼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우리가 돈,,돈 하면 돈에 미쳐서 망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공의 가도를 달리다가 중도에 포기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육체의 생명이 가장 귀한 것인데 그것보다는 다른 것을 더 사랑하고 더 관심을 가지고 생명관리에 소홀하였기 때문입니다. 옛말에 죽은 호랑이보다 산 개가 더 낫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아무리 돈이 많고 명예가 있으면 무엇 합니까? 죽으면 끝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딤전 6:8)고 말씀하고 있고,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13:5)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은 물질이 아니라 생명임을 알고 생명을 존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우리는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 즉 족한 줄로 알고 돈보다 생명을 사랑해야 합니다. 한국의 대표지성인 이어령 전 문화부장관이 호암아트홀에서 지난 달 15일 팔순 잔치 겸 생명이 자본이다’(마로니에북스) 출판기념회를 가졌습니다. 그는 그 책에서 생명을 잃은 자본주의는 전혀 가치가 없다고 역설하고 있습니다. 병들고 노쇠해져서 더 이상 혼자 걸을 수 없게 된 자본주의 문명을 다시 복원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세계적인 부호 록펠러에 대한 이야기를 듣습니다. 우리는 주로 그를 십일조를 많이 낸 사람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기억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가 돈보다 생명이 더 귀한 것을 깨닫고 180도 변화된 삶을 살았다는 것입니다. 존 록펠러의 인생은 거침이 없었습니다. 33100만 달러를 모아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에는 정유회사를 만들어 미국 최대의 부자가 되었고, 53에는 억만장자가 되어 세계에서 가장 재산이 많은 대부호가 됐습니다. 그러나 그 때부터 이상하게 음식을 전혀 소화하지 못하고 눈썹과 머리카락 등이 빠지는 알로페키아라는 불치병에 걸렸습니다. 이제 남은 삶은 고작 1. 그는 온종일 우울한 표정으로 창밖을 응시하며 죽음을 기다리던 중 성경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 때에 록펠러의 시선이 한 곳에 멈추었습니다.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딤전 6:10). 그는 이 말씀에 찔려 자신이 가진 많은 재물을 교회와 구호단체에 내놓아 사람을 살리는데 앞장을 섰습니다. 그때부터 놀랍게 건강이 회복돼 98세까지 살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죽음에 이르게 되지만 생명을 사랑하면 복을 받고 장수하게 됩니다. 우리는 생명사랑운동을 벌여야 합니다. 돈보다 생명이 소중함을 깊이 명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육신의 생명보다 더 귀중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영적인 생명입니다. 사람 중에는 육적인 생명은 살아있어도 영적인 생명은 죽어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어떤 자들이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를 마음속에 모시지 못한 자들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는 생명이 없느니라”(요일 5:12)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해서 영적으로 죽어있는 자들을 살려야 하는 것입니다. 요즈음에 환경이나 인권문제를 가지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시민단체들이 많습니다. 그들이 왜 환경과 인권문제를 가지고 위협을 무릎 쓰고 투쟁을 합니까? ‘육체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육체의 생명보다 더 귀한 영적인 생명을 살리기 위해 환경이나 인권단체들보다 더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한 생명이 천하보다 귀합니다. 금년 한 해 동안 한 사람이라도 영혼을 구원하기로 결단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로, 가정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128절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들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아담과 하와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아담을 하와보다 먼저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셨을 때에는 복을 주시지 않았습니다. 하와를 만드신 다음에야 아담과 하와를 축복하셨습니다. 즉 아담과 하와가 결합하여 만든 가정을 보시고 그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축복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께서 남녀가 하나가 되어 만든 가정을 축복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가정이 축복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을 주시지 않으면 가정은 만들어질 수 없습니다. 결혼해서 한 몸이 되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복을 받아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하지만 결혼에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내를 얻는 자는 복을 얻고 여호와께 은총을 받는 자니라’(18:22)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님의 축복을 받아야 가정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가정이 하나님의 축복의 대상임을 알기 때문에 가정을 이루지 못하도록 방해를 합니다. 어떻게 방해하는지 아십니까? 첫째로, 동성애를 장려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즈음 동성애가 독버섯처럼 번져나가고 있습니다. 유럽은 동성애자들의 힘이 강해져서 네덜란드는 이미 아이를 입양하는 법을 통과시켰습니다. 지금 우리나라는 동성애가 그리 심각한 수위에 이르고 있지는 않지만 몇 해 전, 탤런트 홍석천이 동성애를 선언한 후 청소년들에게 급속히 번져가고 있습니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보고서 말세의 징조라고 하는데 사실은 동성애는 지금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벌써 구약시대부터 있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성을 심판하셨는데, 그 성을 심판하신 이유 중의 하나가 동성애가 행해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바울이 사역하던 로마제국에서도 동성애가 판을 치고 있었습니다. 봄페이가 화산 폭발로 2만여 명이나 비극적인 운명을 맞이하게 된 것도 지나친 향락과 널리 퍼진 동성애 때문이었습니다(1:26-17). 그런데 왜 가면 갈수록 동성애자들이 많아질까요? 그것은 마귀가 자신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들을 생산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동성애자들이 합법적으로 결혼을 해서 가정을 이루어보십시오. 그들이 자녀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혹 그들이 자녀를 입양해서 기른다고 해보십시오. 그 아이를 정상적인 사람으로 성장시킬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마귀의 속임에 넘어가서 동성애를 침묵하거나 동조하지 말고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둘째로, 이혼을 부추깁니다. 여러분이 알다시피 지금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OECD국가 중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황혼이혼도 급속히 증가하는 추세에 있습니다. 왜 이토록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을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습니다. 부부간의 부정일수도 있고, 성격차이 일수도 있고, 여성들이 경제활동으로 여권이 신장되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마귀가 가정을 파괴하여 하나님의 복을 누리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영적으로 강해져서 마귀의 유혹을 물리쳐야 하는 것입니다. 셋째로, 결혼을 기피하게 합니다. IMF전만 해도 결혼을 기피하는 여성은 별로 없었습니다. 그러나 요즈음에는 점점 결혼하지 않으려는 여성들이 급증하고 있습니다. 웬만한 남자는 장가가기도 힘든 시대가 되고 말았습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날까요? 마귀가 이기심을 부추겨서 자신만을 사랑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결혼은 상대방을 사랑해야 하는데 극도의 이기심은 자신만을 사랑하게 하기 때문에 결혼을 기피하는 것입니다. 성경은 말세의 징조 중의 하나로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귀는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자신만을 사랑하게 하여 극도로 이기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결혼을 해서 가정을 생육하고 번성하는 터로 만들어야 합니다. 육신의 자녀만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자녀들도 번성시키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의 가정이 육신의 후손을 번성시킬 뿐만 아니라 영적인 자녀들이 많아지게 하는 복음전도의 장이 되게 해야 합니다. 초대교회는 가정이 교회였고, 복음을 증거하는 첨병이었음을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로,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23절은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일곱째 날이란 하나님께서 6일간 창조하시고 안식하신 안식일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모두 마치고 안식하셨기 때문에 그 날을 축복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안식은 복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안식일을 지켜야 복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56:2). 그런데 왜 안식일을 지키면 복을 받을까요? 그것은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을 예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 않는 안식일은 축복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십계명은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주일에 모여 하나님을 예배하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안식일의 주인이신 예수께서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꾸셨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이니라”(6:5)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안식일의 주인은 예수님이십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안식일의 요일을 얼마든지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러면 왜 예수께서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주일로 바꾸셨을까요? 구약시대에는 하나님이 창조를 마치고 쉬신 날이 토요일이기 때문에 창조를 기념해서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켰지만 신약시대에는 예수께서 창조사역(creation)보다 더 큰 구원사역(recreation)을 마치시고 주일에 쉬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을 보면 사도바울은 안식일에 예배를 드리지 않고 주일에 설교하고 헌금을 하게 하였습니다(20:7; 고전 16:2). 따라서 우리는 구약시대에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킨 것처럼 주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합니다. 거룩이란 분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모든 날이 주의 날이지만 주일만큼은 다른 날과 다르게 온전히 주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6일 동안은 세상 일로 분주했을지라도 주일만큼은 주님을 예배하는 일로 분주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면 갈수록 주일개념이 상대화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일성수의 개념이 무너지고 있습니다. 개인 사정을 핑계로 주일을 범합니다. 예배를 드려도 형식적으로 드립니다. 또 정한 시간에 드려야 하는데 늦게 도착합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어쩌다가 늦을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예배시간에 자주 늦는 것은 하나님을 만홀히 여기는 것입니다.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서도 미리 가서 대기하는데 하물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을 만나는데 늦으면 되겠습니까? 저는 주일을 현대판 선악과라고 생각합니다. 아담과 하와가 먹지 말아야 할 선악과를 먹음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던 것처럼 우리가 주일을 범하면 영적인 죽음을 맞이하게 됨을 알아야 합니다. 마귀는 이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성도들로 하여금 주일을 지키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주일성수는 영적전쟁입니다. 우리는 마귀의 시험을 이기고 예배에 성공해야 합니다. 온전히 예배를 드림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복을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은 에릭 리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 잘 아실 것입니다. 1924년 파리올림픽 100m 예선경기장에는 에릭 리들을 찾는 방송이 울려 퍼졌습니다. 왜냐하면 에릭 리들은 영국에서 열린 올림픽대표 선발전에서 100m 육상경기에서 세계 신기록을 갱신하여 가장 유력한 금메달 후보였는데 당일 경기장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올림픽 경기 중 에릭 리들이 어디에 있었는지 아십니까? 그는 경기장 인근에 있는 스코트커크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 때까지 주일에는 달리지 않는다는 신앙의 다짐을 한 번도 어긴 적이 없었기 때문에 국가를 대표해서 출전한 올림픽 경기에도 출전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영국 올림픽 위원회는 에릭을 설득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했습니다. 그러나 에릭은 끝까지 그의 결정을 철회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위원회는 그의 주 종목이 아닌 200m400m 경기의 출전을 권유했습니다. 다행히도 에릭을 대신하여 100m 경기에 출전한 해롤드 아브람스가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그리고 에릭은 200m 경기에 출전해 예상을 뒤엎고 동메달을 획득하고, 400미터 경기에 출전하여 당시 우승 후보인 임바흐, 피치 등을 제치고 476으로 세계신기록을 세우고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에릭 리들은 우승의 비결을 묻는 기자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처음 200m는 내 힘으로 뛰었지만, 나머지 200m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하나님의 도움으로 뛰어 승리할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결승전에 출전할 때 담당 안마사가 쥐어준 쪽지에 적혀 있는 글귀 때문이었습니다. 그 쪽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는 이런 말씀이 있네.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히 여기리라.” 주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존중히 여기십니까? 주일은 여러분의 자유를 구속하는 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복 주시기 위해서 특별히 준비해 놓으신 날입니다. 우리가 주일예배에 성공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존중히 여기시고 인생의 성공자가 되게 하십니다. 마귀의 유혹에 넘어가지 마시고 어떤 유혹이 와도 주일을 성수하심으로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놀라운 복을 받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살아있는 자체가 복인 줄 알고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복을 주신 곳이기에 가정을 지키고 가정을 통하여 영혼을 구원하는 복을 받아야 합니다. 주일에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함으로 하나님께서 높여주시고 은혜를 베풀어주시는 복을 받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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