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를 꿰뚫다 롬6:3-4 20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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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례를 꿰뚫다 롬6:3-4 2014.4.62018-12-03T21:17:3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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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신 성례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세례와 다른 하나는 성찬입니다. 오늘은 세례식을 거행하는 날이기 때문에 특별히 세례에 대하여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예수께서는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친히 제자들과 함께 유대 땅을 다니시며 세례를 베푸셨습니다. 그리고 공생애를 마치시고 마지막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 세례를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따라서 세례에 대하여 정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제가 오늘 설교제목을 세례를 꿰뚫다라고 정한 것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세례와 관련하여 네 가지 질문을 던지고 답을 하는 형식으로 세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첫 질문은, 예수께서 세례를 베풀라고 하셨는데 왜 교회는 세례외에 학습, 입교, 유아세례 등의 예식도 행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말씀하셨지 학습, 입교, 유아세례를 베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교회들은 세례를 베풀 때에 학습과 입교와 유아세례를 베풉니다. 우리는 세례와 함께 이런 예식을 함께 행하는 것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지만 기독교 역사를 보면 이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많이 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도 침례교단에서는 학습이나 유아세례 입교식을 행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혹 침례교단에서 신앙생활을 하다가 오신 분들은 이런 예식에 대하여 부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과연 예수께서 직접 명령하시지 않은 학습과 입교와 유아세례를 베푸는 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우리가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학습과 입교와 유아세례가 모두 세례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학습은 세례를 받기 전에 하고 유아세례는 영유아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이고 입교는 유아세례를 받은 자가 만 14세가 되어 스스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 때에 행합니다. 그런데 왜 교회가 세례와 관련하여 이런 예식을 행할까요? 그것은 세례가 참된 세례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예를 들어 세례를 받기 전 학습을 받는데 학습 과정을 거치면 어떤 유익이 있습니까? 6개월의 기간을 통하여 세례를 준비하는 마음을 갖게 되고 또 이 기간에 믿음이 자라서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온전히 믿게 되어 구원 받은 것을 확신하는 가운데서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도 이런 일을 경험하신 분들이 많이 있을 것입니다. 제가 칼럼에도 소개해 드렸지만 전도대상자 김순영씨를 보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제가 그분을 처음 만난 것은 작년 초가을이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 4월이니까 약 6개월 전에 뵈었습니다. 그 기간을 거치면서 그분의 신앙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세례는 평생에 한 번만 받는 것입니다. 그런 세례를 그냥 받아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온전히 믿는 상태에서 받아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학습과정을 거친 후 세례를 받는 것을 비성경적이라고 비판하고 거절하는 것은 바른 태도로 볼 수 없습니다. 또한 유아세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세례는 원칙적으로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고 구원을 받은 자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따라서 자신의 의지로 복음을 받아들일 수 없는 영유아에게 세례를 베푼다는 것은 설득력이 떨어집니다. 그런데 이 문제를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유아가 자신의 의지로 예수님을 영접할 수 없기 때문에 그냥 버려두는 것이 낫겠느냐? 아니면 어머니의 믿음으로 아이에게 세례를 받게 하여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을 받게 한 후에 그가 스스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 때에 입교를 하는 것이 낫겠느냐는 것입니다. 당연히 후자가 낫습니다. 교육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어릴 때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할 수 있도록 유아세례를 받게 하는 것이 훨씬 신앙에 유익합니다. 물론 유아세례를 받았다고 믿음생활을 잘한다고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는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확률은 훨씬 높습니다. 그런데 단지 이런 실질적인 이유 때문에 유아세례를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구약시대의 할례가 세례를 예표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할례가 세례를 예표하느냐에 대해서는 신학적으로 논쟁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구약의 할례가 유아세례의 그림자가 될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왜냐하면 할례를 받는 시기가 자의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시기가 아니라 난지 불과 8일 만에 받기 때문입니다. 왜 유대인들은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베풀까요? 그것은 어려서부터 하나님의 백성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소변을 볼 때마다 할례한 것을 보면서 어떤 생각을 할까요? 자신이 하나님의 언약백성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갑니다. 마찬가지로 유아세례를 받으면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알게 되고 혹 잠시 세상으로 나갔다가도 할례를 보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깨닫고 다시 주님께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성경에 문자적으로 학습과 유아세례를 베풀라는 말이 없다고 이런 예식을 행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 한 것이 아닙니다. 저는 성경에 유아세례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은 성서가 기록될 당시 유대 문화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당시 유대사회에서 여자 및 아이는 기록의 대상에 들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따라서 문자적으로 유아에게 세례를 베풀라는 말이 없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하는 것은 지나친 성경해석이라고 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유일무이한 신앙의 표준으로 삼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말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따르고 기독교의 전통을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초대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베푼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신앙의 선배들이 세례만 베풀지 않고  학습과 유아세례를 베풀었던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신앙생활에 더 낫기 때문에 결정한 것입니다. 학습과 유아세례와 입교가 우리의 신앙에 유익한 것임을 아시고 이에 해당되는 분은 예식에 동참하시기 바랍니다.

     

       두 번째 질문은, 세례와 구원은 어떤 관계에 있느냐는 것입니다. 세례와 구원의 관계를 논할 때에 가장 핵심적인 것은 세례가 구원의 조건이냐는 것입니다. 개신교는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교리를 믿고 있기 때문에 세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마가복음 1616절을 보면 마치 세례가 구원의 조건인 것으로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 함께 마가복음 1616절을 찾아서 읽겠습니다. 믿고 세례를 받는 사람은 구원을 얻을 것이요 믿지 않는 사람은 정죄를 받으리라.” 이 말씀을 보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믿고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정말 믿고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믿고 세례를 받아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뜻이 아닙니다. 구원 받은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한 말씀입니다. 성경에는 이런 형태로 기록된 곳이 많습니다. 예를 들어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18:25)라는 말씀입니다. 낙타가 어떻게 바늘귀로 들어갈 수 있습니까?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그토록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기 힘들다는 것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세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님을 얼마든지 입증할 수 있습니다. 그것을 어떻게 입증할 수 있을까요? 세례를 언제 베풀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모두 세례를 베푼 시기를 구원을 받은 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빌립이 간다게의 국고를 맡은 내시에게 세례를 베푼 때가 언제였습니까? 그가 빌립을 통하여 이사야 53장에 나오는 양처럼 도살자에게 끌려가는 자가 예수님이심을 알고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은 후에 베풀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아나니아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언제 세례를 받았습니까? 그가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영접한 후였습니다. 빌립보 감옥의 간수가 언제 세례를 받았습니까? 예수를 영접하여 구원을 받은 후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세례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구원 받은 후에 받는 것입니다. 따라서 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분들은 스스로에게 던져야 할 질문이 있습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세례를 받느냐 아니면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느냐오늘 세례를 받으시는 분들은 모두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세례를 받는 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 질문은, 왜 세례가 구원의 조건이 아닌데 받느냐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본인 스스로 죄 사함 받은 것을 확증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종전에 살펴본 대로 세례는 구원을 받은 후에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은 내용이 무엇입니까? 죄로부터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는 죄 사함을 받은 것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런데 죄 사함을 받는 것을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볼 수 있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세례입니다. 자신이 세례를 받음으로 죄 사함을 받은 것을 확증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으면서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자신이 죄 사함 받은 자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자신의 죄가 다 씻어졌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또한 이미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죄 사함 받은 감격과 기쁨을 회복해야 합니다.

       둘째로, 서로 한 가족이임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는 종종 다른 그리스도인을 형제자매라고 부릅니다. 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을 형제자매라고 부릅니까?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와 동일하게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무엇으로 알 수 있을까요? 단지 같은 예배당에 있기 때문에 알 수 있을까요? 아닙니다. 상대방이 자신과 동일하게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통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상대방이 많은 사람 앞에서 자신과 동일하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을 볼 때에 그도 자신과 동일한 하나님의 자녀로서 한 가족임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서로 한 가족인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물에 잠기는 형태의 세례를 보여주고 있지만 기독교 역사를 볼 때에 물속에 잠기지 않고 머리에 뿌리거나 붓는 형태로 세례를 베푼 경우도 많습니다. 지금도 물속에 잠길 수 없는 지역이나 상황에서는 약식으로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형식은 다를지라도 세례를 베푸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에 연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물속에 잠기는 것은 예수님처럼 죽는다는 것을 뜻하고, 물속에서 다시 올라오는 것은 예수님처럼 새로운 생명으로 살겠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은 무릇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기 때문에 예수님과 떨래야 땔 수 없는 관계에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의 십자가이고, 예수님의 부활은 나의 부활임을 알아야 합니다.

     

       네 번째 질문은, 세례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것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었기 때문에 옛 사람은 죽고 새사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 세례를 받은 분들에게는 다음 주에 사진을 붙여서 세례증을 드립니다. 그런데 세례증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을 확증하는 것이지, 그것을 가지고 있다고 자동적으로 삶이 변화되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세례를 받는 자체로 만족하면 안 됩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마음을 갖고 변화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미 세례를 받으신 분들은 과연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이미 받은 물세례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이미 자신을 믿고 따르는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서 들은 바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1:5)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20명의 성도들은 이 약속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하자 오순절에 성령세례를 받았습니다. 그러자 삶이 변화되었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고 세상으로 나가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옛 삶을 벗어버리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길은 물세례를 받은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성경은 술 취하지 말고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5:18)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을 때에 이미 성령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와 계시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아 변화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둠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하거나 술 취하지 말며 음란하거나 호색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2-14). 그렇습니다. 이미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기 때문에 옛 사람으로 살지 말고 새 사람답게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세례가 무엇인지, 왜 받아야 하는지, 세례를 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았습니다. 세례는 행사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전환점입니다. 물세례롤 만족하지 말고 성령충만을 받아 옛 사람은 죽고 새 사람으로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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