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 메시지 눅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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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 메시지 눅2:1-142018-12-03T21:03:59+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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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년 성탄절이 다가오는 12월이면 대학로의 한 극장에서는 빈 방 있습니까? 라는 연극이 30여 년째 공연되고 있습니다. 내용을 간단히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교회 학생회 학생들이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의 내용으로 연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교회에 덕구라는 장애학생이 있었습니다. 교회 학생들은 덕구가 정상인이 아니라 연극에 참여하는 것을 반대했지만 학생회 선생님은 덕구를 참여시켜야 한다고 우겨서 대사가 제일 적은 여관집 주인 역을 맡게 되었습니다. 덕구는 극중에서빈방 없어요 다른 곳에나 가봐요라는 대사만 하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마저도 어려워서 덕구는 연습할 때마다 동료들로부터 핀잔을 들어야만 했습니다. 마침내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요셉과 만삭이 된 마리아가 머물 곳을 찾다가 마지막 여관에 도착했습니다. 요셉은 여관주인에게 산모가 해산해야 하는데 방을 구할 수 없냐고 간곡히 사정합니다. 덕구는 연습대로빈방 없어요 다른 곳에나 가봐요!”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연극을 지도했던 선생님은 안도의 숨을 내쉬었습니다. 그런데 곧바로 퇴장해야 할 덕구가 처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요셉과 마리아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각본에 없는 대사를 하는 것이었습니다.“요셉님, 마리아님 가지 마세요 사실은 우리 집 안방이 비어 있어요. 그 방을 쓰세요!”그러면서 요셉과 마리아를 붙잡고 놔주질 않았습니다. 그 순간, 관객들은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성도들은 이처럼 뜻 깊은 성탄연극을 본적이 없다면서 큰 은혜를 받고 돌아갔다고 합니다. 오늘 이곳에 참석하신 여러분 모두가 성탄절 예배를 통하여 평생 잊을 수 없는 은혜를 받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본문 1절은 예수께서 탄생하신 역사적인 배경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탄생하신 때는가이사 아구스도가 통치하고 있을 때입니다. 성경에는 모두 4명의 가이사가 등장하고 있는데 가이사 아구스도는 영화벤허에 나오는 황제 옥타비아누스를 말합니다. 그는 2차 삼두 정치를 끝내고 패권을 잡아 지난 100년간에 걸친 공화정의 내란을 일소시켜 로마에 안정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자 원로원은 그의 공을 인정하여 그를 존경하는 의미에서 그에게 존엄자라는 뜻의아구스도라는 칭호를 주었습니다. 바로 이 아구스도 때부터 로마가 제정을 시작했고 그는 대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가 되었습니다. 그는 로마를 새롭게 만들었습니다. 강력한 군사력을 바탕으로 세계를 통일하고 다시는 전쟁이 없게 했습니다. 이를 가리켜 역사는‘Pax Romana’, 로마로 인한 평화라고 합니다. 또한 그는 벽돌의 로마를 화려한 대리석의 로마로 바꾸었고 그 유명한 로마법을 완성해 세계가 로마법의 질서에 들어가게 했습니다. 이때 로마는 문화면에서도 유명한 시인들이 많이 나오는 등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습니다. 로마제국을 안정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막강한 군사력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막대한 돈이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가이사 아구스도는 그 돈을 어디서 모을까 궁리하다가 호적을 하게 하여 세금을 받으려고 천하로 다 호적을 하라고 영을 내린 것입니다. 그래서 천하 모든 사람들은 하던 일을 멈추고 각자 자기 고향으로 가서 호적을 해야 했습니다. 요셉은 다윗의 후손이기 때문에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으로 호적을 하러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올라갔는데 그 이유는 마리아가 이미 임신한 상태였기 때문입니다(2:5).

     

    그러나 요셉이 호적하러 베들레헴으로 갈 때에 마리아와 함께 한 것은 단지 그녀가 임신했기 때문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 요셉과 마리아의 마음을 움직이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미가서 52절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을 찾으려면 시간이 걸리니까 교독문을 보시겠습니다. 3째 줄입니다. 한 번 읽어보시겠습니다.“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그의 근본은 상고에, 영원에 있느니라.”무슨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수백 년 전에 미가 선지자를 통하여 예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하셨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약속을 성취시키시기 위해서 가이사 아구스도의 마음을 움직이셔서 호적을 명하게 하셨고, 또 요셉이 임신한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으로 올라가도록 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것은 역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세상 권세자들이 자기 마음대로 역사를 좌지우지하는 것 같아도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감독이시고 모든 인생들은 연기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역사는 크게 세속사와 구속사로 구분을 합니다. 세속사가 바다 위에 출렁이는 물결이라면, 구속사는 바다 밑을 도도히 흐리는 힘찬 저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계사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에는 이런 일 저런 일, 큰일 작은 일들이 많이 벌어지는데 그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구원 역사를 이루기 위해 너풀거리는 것입니다. 위성으로 태풍을 보면 그 가운데에 태풍의 눈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눈 주변에는 소용돌이치는 구름과 거친 비바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 사건은 태풍의 눈과도 같은 것입니다. 예수님을 중심으로 한 구원 역사는 조용히 움직이지만 세상의 역사는 이를 중심으로 따라오며 거칠게 소용돌이치는 것입니다. 우리는 종종 역사를 거스를 수 없다는 말을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구원을 이루기 위한 구속 사역은 그 누구도 조작하거나 거스릴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속사를 위해 세속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시는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것을 믿을 때 모든 사건을 구속사 중심으로 해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역사는 사건 그 자체보다는 해석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날의 세계상황이나 우리나라의 정치경제 상황을 보고 한 숨 지을 필요가 없습니다. 주님께서 역사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그분의 계획에 따라 움직이십니다. 혹자는 미국을 싫어하고, 또 현 정부에 대해서 불만을 표출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현실을 너무 부정적으로 보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는 속상할지라도 그 배후에는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을 보는 눈을 갖고 긍정적인 눈으로 바라볼 줄 알아야 합니다. 역사를 이렇게 바라볼 때 희망이 생기고 힘이 솟는 것입니다. 본서의 저자 누가는 이렇게 역사를 해석했기 때문에 비록 아기 예수가 구유에 뉘여 있어도 힘차게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해산할 날이 다 된 마리아와 함께 베들레헴에 이르자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6-7절을 보십시오.“거기 있을 그 때에 해산할 날이 차서 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마리아가 첫 아들을 낳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요셉과 마리아는 성적인 관계를 가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임신을 해서 베들레헴에서 아이를 낳았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탄생하신 것을 아무 의심 없이 받아들이지만 이것은 오늘 처음 들으시는 분들은 믿지 못하실 것입니다. 어떻게 남녀가 잠자리를 함께 하지 않았는데 임신할 수 있단 말입니까? 옛날 속담에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나느냐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있는 것이지 원인이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즉 어떤 결과는 그에 상응하는 원인이 선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의 탄생은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가 난 것입니다. 원인이 없는 결과가 생긴 것입니다. 당장이라도 하나님께 여쭤봐야 할 일입니다. 설교시간에 전화벨이 울렸습니다. 설교를 하던 목사님이 조용한 목소리로 전화기를 꺼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조금 후에 또 전화가 울렸습니다. 조금 짜증 섞인 음성으로 예배시간에는 전화기를 끄는 것이 예배자의 예의입니다.”라고 지적을 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또 전화가 울렸는데 이번에는 설교하는 목사의 주머니에서 울리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당황하던 목사는 곧 태연하게 전화기를 꺼내더니 여보세요, 아 하나님이세요, 지금 예배중이기 때문에 끝나는 대로 전화 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하고 끊더랍니다. 우스개 이야기지만 가끔씩은 하나님과 직통으로 전화를 해서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을 물어봤으면 좋을 때가 있습니다. 그중의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예수님의 동정녀 탄생사건입니다. 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것은 정말 이해하기 힘든 것입니다. 저는 이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전도를 했지만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이것이 믿어졌습니다. 어떻게 믿어졌는지 아십니까? 예수님을 만나니까 아무 의심 없이 믿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난다는 것은 곧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이 세상을 말씀 한 마디로 만드신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시기 때문에 그분에게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물위를 걷기도 하시고,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이나 먹이기도 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에 대하여는 질문하는 방법을 바꾸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이해가 안 되는 문제에 대해서 주로어떻게라는 의문부사를 사용했습니다.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지”,“어떻게 그런 기적이 일어나지”, “어떻게 죽은 자가 살아날 수 있지?”,“어떻게 불치병을 치료하실 수 있지?”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에는 어떻게 라는 의문부사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분은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어떻게를 사용하지 말고라는 의문부사를 사용해야 합니다. 즉 예수께서 왜 남녀의 성적인 관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시지 않고 처녀의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 나오셨는지를 물어야 합니다.

    왜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오셨을까요? 그것은 예수님의 이름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이름을 언급하면서 그 뜻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1:21).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신 것은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 예수께서 왜 우리를 죄로부터 구원해주시기 위해서 아기예수로 이 세상에 오셔야만 할까요?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대신하여 죽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람 중에는 단 한 사람도 의인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첫 사람 아담이 금지된 선악과를 먹음으로 죄인이 되었는데 우리 모두가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는 유일한 방법은 아담의 씨를 이어받지 않고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야 의인으로서 다른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죽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아담의 씨를 받지 아니한 두 번째 사람을 만드셨는데 그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아담의 피를 이어받지 않아 의인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아기로 탄생하신 것은 바로 저와 여러분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성탄절에 축하 받아야 할 자는 예수님이 아니라 우리 자신인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낳아 어디에 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7절을 함께 읽겠습니다.“첫아들을 낳아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었으니 이는 여관에 있을 곳이 없음이러라탄생한 아기 예수를 강보로 싸서 구유에 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유는 소나 말 따위의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입니다. 흔히 큰 나무토막이나 큰 돌을 길쭉하게 파내어 만듭니다. 그런데 왜 아기 예수께서 구유에 뉘이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여관에 있을 곳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당시 베들레헴에는 호적 하러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렸기 때문에 숙소를 얻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겉으로 보이는 이유이고 아기 예수께서 구유에 뉘이신 데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본문 11,12절을 보시기 바랍니다.“오늘 다윗의 동네에 너희를 위하여 구주가 나셨으니 곧 그리스도 주시니라 너희가 가서 강보에 싸여 구유에 뉘어 있는 아기를 보리니 이것이 너희에게 표적이니라 하더니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구유에 뉘이신 아기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즉 아기예수를 짐승의 먹이통인 구유에 뉘인 진짜 이유는 사람이 많아서 여관을 구하지 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구유에 뉘인 것을 통하여 아기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도록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당시 목자들은 천사가 전해 준 말을 듣고 다윗의 동네인 베들레헴으로 가서 구유에 누이신 아기 예수를 보고 그가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실 때에는 구유에 누이신 것을 통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었지만 이 시대에는 어떻게 예수께서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신 것을 알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방금 말씀을 드린 대로 예수께서 탄생하실 당시에는 예수께서 구유에 뉘이신 것을 통하여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계속해서 구유에 뉘여 있을 수는 없기 때문에 그 방법으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알 수 없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렇게 3년동안 예수님을 좇아다녔지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것 같자 저주하며 부인했던 것입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탄생하신 이후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신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통하여 알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평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나는 너희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다. 그런데 죽은 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다.”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그가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거짓 메시아가 아니라 진짜 메시아이신 것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통하여 예수께서 그리스도, 즉 구원자이심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4대 성인 중의 한 분이십니까? 아니면 여러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대신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이십니까? 성탄절은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친히 인간의 몸으로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성탄절 예배를 드리지만 예수께서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심을 깨닫고 그분을 마음에 모셔 들이지 않으면 성탄절은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요즈음에안녕하십니까?’대자보 신드롬이 계속 확산되고 있습니다. 지난 10일 고려대 경영학과 주현우 씨(27)가 철도 파업, 밀양 송전탑 문제 등과 같은 사회적 이슈에 대한 대학생들의 참여를 촉구하는 대자보를 게재한 것이 발단이 되었는데, 주 씨의 대자보가 각종 SNS를 통해 급속도로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대자보를 게재한 지 일주일도 지나지 않아 전국 대학생들은 물론 고교생들과 아이돌 스타들까지 자신들의 목소리를 담은 대자보를 게시하는 등 대자보 신드롬이 확산되고 있습니다. 이것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는 것은 국민들이 안녕하지 못하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어떤 상태에 있어야안녕하십니까?’라는 질문에안녕하다고 대답할 수 있을까요? 현실 문제가 해결되면 안녕할 수 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철도 민영화를 법적으로 금지하고 밀양 송전탑을 철거하면 안녕할 수 있을까요? 사람은 문제가 해결된다고 안녕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사람이 안녕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좋아야 합니다. 모든 문제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의 관계가 삐뚤어졌기 때문에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자신의 죄 문제를 해결 받아야합니다. 이 문제를 해결 받지 못한 사람은 그 어느 누구도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안녕하고 싶다면 여러분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이 땅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에 모셔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예수님은 구원자이십니다. 여러분이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것을 믿기만 하면 누구든지 죄 사함을 받아 구원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좋은 관계를 맺음으로 평안을 누리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예수님을 마음에 모셔드림으로 구원을 받으시고 참 평안을 누리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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