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절메시지 2012.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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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절메시지 2012.12.252018-12-03T20:06:1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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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탄절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날입니다. 즉 영으로 존재하시던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신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이 세상에 오실 때에 그냥 하늘에서 뚝 떨어지신 것이 아니라, 마리아를 통해서 오셨기 때문에 기독교에서 마리아는 무시할 수 없는 여인임에는 틀림이 없습니다. 그런데 같은 기독교이지만 카톨릭과 개신교가 마리아를 대하는 태도가 전혀 다릅니다. 카톨릭에서는 마리아를 너무 높여서 경배와 숭배의 대상으로 보려는 경향이 짙습니다. 그래서 ‘성모 마리아’라고 부르기도 하고, ‘영원한 동정녀’라고 하기도 하고, 심지어 ‘마리아의 승천설’까지 말하기도 합니다. 또 어떤 경우는 기도를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자리’까지 올려다 놓기도 합니다. ‘쟈니’라는 소년이 자전거를 몹시 갖고 싶어서 엄마에게 자전거를 사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러자 엄마는 성모 마리아님께 간절히 기도해보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이 어린이는 잠자리에 들기 전, 종이 위에다가 다음과 같이 기도 내용을 적고 열심히 기도했습니다. “성모 마리아님, 제 친구들은 자전거를 다 가지고 있는데 저만 없어요. 제가 얼마나 자전거를 갖고 싶은지 잘 아시지요? 아멘.” 그리고 기도 내용을 적은 종이를 성모 마리아 상 바로 옆에다 두고 잠을 잤습니다. 그러나 이튿날 아침에 일어나 보았지만 자전거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래도 실망하지 않고 한 주간 내내 똑같은 과정을 되풀이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마찬가지였습니다. 참다못한 소년은 성모 마리아 상을 수건으로 둘둘 말아서 옷장 서랍에 처박아 쑤셔 넣고서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예수님!, 당신 어머니를 다시 보기 원하시면 저에게 자전거를 하나 주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반면에 우리 개신교에서는 마리아를 어떻게 대합니까? 평범한 여인으로 대합니다. 그녀 역시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죄인이고 예수를 믿지 않으면 지옥에 던져져야 할 인간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인정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녀는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고의 은혜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그녀와 똑같은 은혜를 받을 수 없지만 어떻게 하면 우리도 그와 같은 은혜를 받을 수 있을지에 대하여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어떻게 주님의 은혜를 받았는지를 알기 전,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첫째로, 과연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성경은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고 동침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요셉과 마리아가 성적으로 관계를 맺지 않고서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자가 아이를 낳을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떻게 처녀가 아이를 낳을 수 있느냐는 것은 인간 수준에서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이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기록한 성경에는 처녀가 아이를 낳았다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90세가 된 할머니가 아이를 낳은 이야기,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썩은 냄새를 풍기던 시체가 살아난 이야기, 나면서부터 앉은뱅이가 일어난 이야기, 바다를 건너고 물위를 걸은 이야기 등 수없이 많은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간의 생각으로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일을 보면서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지’라고 의문을 품는 것은 모두 과학적 사고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인생이 모두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요? 천만의 말씀입니다. 남녀 간의 미묘한 사랑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자식을 위하여 목숨을 내어던지는 어머니의 사랑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생명의 신비를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설명할 수 없기에 인간은 생명을 만들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부글부글 끓어오르는 욕망과 시기와 질투심을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까? 설명이 안 되기에 사울 왕이 정권에 눈이 어두워 자기 사위를 죽이려고 10여 년간을 좇아다녔고, 다윗과 같은 성군도 욕정을 다스리지 못하고 부하를 죽이고 그의 아내를 탐하고 자기의 아내로 만든 것입니다. 사실 과학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법칙 가운데 인간이 발견한 지극히 작은 영역에 불과한 것입니다. 인간이 발견하지 못한 하나님의 법칙은 아직도 무궁무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닌 것입니다. 혹 오늘 교회에 첫 걸음을 내디디셨는데 예수께서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는 말에 한 분도 실족하시는 분이 없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왜 하나님께서 수많은 여인들 중에 ‘나사렛 마리아’를 선택하셨느냐는 것입니다. 본문을 읽어서 알고 있지만 성경이 마리아를 소개하면서 그녀가 살고 있는 동네를 갈릴리 나사렛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26-27절). 왜 성경이 마리아의 고향을 나사렛이라고 굳이 밝히고 있을까요? 그것은 ‘나사렛’이라는 동네에 사는 여인의 몸에서 메시야가 탄생한다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일임을 밝히기 위해서입니다. 당시 나사렛은 예루살렘에서 두로, 시돈으로 가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한 마을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을 점령한 로마 군대나 장사를 하는 희랍의 상인들은 반드시 나사렛을 통과해야만 했습니다. 이렇게 군인들과 상인들이 많이 지나다니게 되니까, 자연적으로 여러 가지 타락된 문화가 이 마을에 들어왔기 때문에 평판이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나사렛은 ‘경멸, 멸시’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빌립이 나다나엘에게 전도할 때 “모세가 율법에 기록하였고, 여러 선지자가 기록한 그 이를 우리가 만났는데, 그가 바로 나사렛 예수다”라고 했을 때, 나다나엘이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하필이면 나사렛에 사는 마리아를 통하여 아기예수를 이 땅에 오시게 하셨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당시 세계를 정복한 로마에는 학식으로나 가문으로나 외모로 볼 때에 마리아를 능가할 만한 여인들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 이스라엘나라에도 유대교의 엄격한 규율에 따라 훈련받은 경건한 여인들이 수없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찾지 않고 사람들에게 멸시받고 천대받는 나사렛 동네에 사는 처녀 마리아를 선택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 그렇게 하셨을까요? 아무런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굳이 이유를 대라고 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즉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원래 ‘은혜’라는 뜻은 ‘멸망 받아야 마땅한 죄인에게 베풀어지는 하나님의 호의’입니다. 그렇습니다. 나사렛 동네에 사는 마리아가 메시아를 낳은 친 어머니로 선택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그래서 천사 가브리엘이 마리아를 만나 첫 번째로 한 말이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라고 말한 것입니다. 금번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저와 여러분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적으로 볼 때에는 갖춘 것도 없고 잘하는 것도 없지만,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세워주시고 복을 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죄가운데 있고 시험에 들어있지만 주님께서 일방적으로 찾아오셔서 건져주시고 새 길을 열어주시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특별히 오늘 교회에 처음 나오신 가운데 구원의 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아기예수를 낳은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하나님께서 마리아에게 은혜를 베푸실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마리아에게서 본받아야 할 신앙인 것입니다.

      첫째로, 마리아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엘리사벳이 임신한 사실을 말하고 마리아에게 수태고지를 전하며, “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고 하자, 마리아는 “주의 계집 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고 하며 천사가 전해 준 말이 그대로 이뤄지기를 기도했습니다. 즉 마리아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면 무엇이든지 가능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주님께서 바로 이 믿음을 귀히 보시고 그녀에게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입니다(45절).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믿음과 비례합니다. 성경을 보십시오. 주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응답을 받은 것은 모두 믿음때문이었습니다. 저는 성경을 읽을 때마다 백부장의 믿음을 보면 큰 감동을 받습니다. 백부장은 백명을 지휘하는 로마군대의 지휘관입니다. 어떤 연유로 백부장의 종이 죽을 병에 걸렸는지 모르지만 사랑하는 종을 살리기 위해 장로를 보내어 예수님을 초청했습니다. 장로의 간청을 들으신 예수께서 백부장의 집에 거의 도착하실 즈음에 다시 친구들을 보내어 자신의 집에 들어오심을 감당치 못하겠으니 말씀만 하시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그렇게 말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군 생활을 하면서 하급자에게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하고 저것을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습니다. 또 자신도 위 상관이 이것을 하라고 하면 하고 저것을 하지 말라고 하면 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 백부장의 믿음을 기이히 여기시고 이스라엘 중에서도 이만한 믿음은 만나지 못하였노라고 하시고 “네 믿은대로 될찌어다”라고 하시고 원래대로 회복을 시켜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은 믿음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배운 것이 많고, 외모가 특출하고, 인격이 훌륭하고, 헌금을 많이 드리고, 착하게 산다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어려운 상황에서도 믿음으로 나아갈 때에 그 믿음을 보시고 은혜를 베푸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주의 은혜를 입기 위해서는 오직 믿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로, 마리아는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수태고지를 하자 마리아는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마리아가 자신을 ‘주의 계집종’이라고 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종이란 주인과의 관계에서 절대 복종의 관계에 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스스로를 일컬어 ‘하나님의 계집종’이라고 한 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순종하겠다는 의지적인 표현입니다. 또한 “내게 이루어지이다”란 이 말은 헬라어로 ‘게노이토‘라고 하는데, 이 단어는 ‘마음의 간절한 소망’을 나타낼 때 쓰는 단어입니다. 즉 마리아는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그 일이 자신을 통해 이루어지길 간절히 사모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리아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닙니다. 지금은 성이 개방되어서 혼전 성경험이 있어도 결혼하는데 큰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당시는 그런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아이를 배면 어떤 고통을 당해야 할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요셉이 당장 정혼한 것을 파혼하자고 할 것이고, 돌에 맞아 죽든지, 평생을 부정한 여인으로 찍혀서 비참한 인생을 살아야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대로 이뤄지기를 간구한 것입니다. 마리아가 그렇게 한 것은 잠시 뿐인 세상에서의 평안을 생각하지 않고, 주님의 뜻이 이뤄지는 도구로 쓰임 받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런 자세를 주님께서 기뻐하시고 그녀의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결국 마리아는 주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고 대가를 지불함으로 예수를 낳았고 ‘테오토코스’,‘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얻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기 때문에 그분에게 어머니가 있다는 말은 어불성설이지만 육신으로 오신 예수께서 곧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런 표현이 가능한 것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어머니’라는 칭호를 얻는 것보다 더 영광스러운 일이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그 영광은 거저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과 순종 때문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여 헌신의 삶을 살아가는 자들에게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은혜를 베푸십니다.

      감동적인 실화 하나만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이 이야기는 캐나다 몬테리오에 있는 크리스챤 초등학교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입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학교에서 성탄 연극을 하기로 결정하고 배역을 맡을 어린이들을 뽑고 있었습니다. 랄프라고 하는 4학년 어린이가 너무 연극을 하고 싶어서 신청을 했지만, 정서 장애를 갖고 있어 말을 더듬고 생각이 민첩하지 못하기 때문에 학교에서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크리스챤 선생님이 어떻게 해서라도 랄프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배역을 하나 맡겼습니다. 대사가 많은 배역은 맡길 수 없어서 가장 적은 여관집 주인의 역을 맡겼습니다. 요셉이 아기를 밴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의 문을 두들길 때 ‘방이 없어요.’라는 말만 하면 되는 아주 단순한 역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열심히 연극 연습을 시켰습니다. 정성스럽게 또박 또박 발음 연습을 시켰습니다. 드디어 연극을 하는 날이 되었습니다. 연극을 지도했던 선생님과 모든 사람들이 숨을 죽이고 랄프가 어떻게 역할을 감당할지를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요셉이 마리아를 데리고 여관 앞에 도착합니다. 여관 문을 두드립니다. 방이 있느냐는 요셉의 말에 주인인 랄프가 나오더니 또박 또박 연습한 대로 ‘방이 없어요’라고 말합니다. 요셉은 가지 않고 한 번 더 매달립니다. ‘큰일 났어요. 제 아내가 곧 아기를 낳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저희에게 방을 줄 수가 없나요? 그러자 또 랄프는 ‘방이 없어요’라고 대답합니다. 이제 한번만 더 하면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요셉이 다시 사정을 합니다. ‘이 추운데 어디로 가란 말입니까? 곧 아기가 나올 것 같습니다. 아무 곳이라도 좋으니 제발 방을 주세요’ 이 이야기를 듣더니 갑자기 랄프의 눈에 눈물이 글썽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더니 큰 소리로 이렇게 외쳤습니다. ‘그러면요, 제 방으로 오세요!!’

      주님은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내 은혜를 받을 방을 준비했느냐?”고 물으십니다. 믿음의 방, 사랑의 방, 순종의 방이 있냐고 물으십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대답하시렵니까? “없다”고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제방으로 오세요”라고 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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