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다 마 1:18-23 2016.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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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탄의 의미를 새롭게 깨닫다 마 1:18-23 2016.12.152018-12-03T23:18:00+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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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매년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데 전 세계가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동방정교는 매년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키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탄절이 다른 이유는 개신교와 천주교는 그레고리우스 13세가 제정한 ‘그레고리우스력’을 사용하지만, 동방정교는 로마 황제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제정한 ‘율리우스력’에 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성탄절이 다르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그것은 오늘이 정말 예수께서 이 땅에 육신을 입고 오신 날인지 아닌지를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아무도 성탄절이 정확히 언제 인지 모릅니다. 그런데 왜 매년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킬까요? 여러 가지 학설이 있지만 가장 유력한 설은 로마의 주교가 기독교가 이교도들을 정복했다는 의미를 부여하기 위해 당시 이교도들이 태양신 숭배일로 지키고 있는 동지절을 그리스도의 탄생일로 바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독교 이단 중에 여호와의 증인들이 성탄절을 지켜서는 안 된다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입니다.
    사실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듯이 초대교회도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왜 초대교회가 성탄절을 지키지 않았을까요? 그들이 예수님의 생일을 몰랐기 때문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당시 예수께서 탄생하신 것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예수님의 가족뿐 아니라 목자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생일을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연스레 제자들도 이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초대교회가 성탄절을 지키지 않은 것은 예수께서 성탄절을 지키라고 명령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자기의 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대대로 행하라고 명령하신 것은 ‘세례와 성찬’입니다.
    저는 우리 교회의 비전이 초대교회를 복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매년 12월 25일을 성탄절로 지키는 것에 대해서는 크게 의미를 부여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오늘 성탄축하예배를 드리고 있을까요? 그것은 오늘이 예수께서 탄생하신 날이기 때문이 아니라 단 하루라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의미를 되새기기 위해서입니다.

    지난주 월요일 인천공항에서 탑승을 기다리면서 이번 성탄절에 어떤 메시지를 전할지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저에게 떠오른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과정이 사람이 이 세상에 오는 과정과 전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은 100% 사람이십니다. 예수께서 사람이신 것은 그분께서 여자의 몸에서 나오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여자의 몸에서 나왔기 때문에 예수님과 똑같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과정과 사람이 이 세상에 오는 과정은 전혀 다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서 볼 때에 크게 세 가지가 다릅니다.
    첫째로, 예수께서는 남녀의 성적인 결합이 아니라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18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나심은 이러하니날 그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약혼하고 동거하기 전에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 나타났더니”(18절). 모든 사람은 남녀의 성적결합으로 잉태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요셉과 머리아의 동침으로 잉태되지 않고 성령으로 잉태되셨습니다. 예수께서 다른 사람들과 이 세상에 오는 것과 관련해서 가장 크게 구별되는 것은 마리아의 동정녀 탄생입니다. 예수께서 왜 사람과 전혀 다른 방법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까요? 그 이유는 예수께서 보통 사람들처럼 요셉과 마리아의 동침으로 잉태되셨다면 예수님 역시 아담의 후손으로 죄인이므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실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수 있었던 것은 우리와 똑같이 남녀의 성적인 결합으로 오시지 않고 성령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이름이 초자연적인 방법으로 그의 탄생 전에 결정되었습니다. 20-21절입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도니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일반적으로 사람의 이름은 누가 짓습니까? 부모나 조부모가 짓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이름은 어떻게 지어졌습니까? 주의 사자가 요셉의 꿈에 나타나서 ‘예수’라고 하라고 해서 지어졌습니다. 부모나 조부모의 생각이 전혀 개입이 되지 않았습니다. 또 사람들은 아이의 이름을 언제 짓습니까? 태어나기 한두 달 전이나 태어나자마자 짓습니다. 어제 사역자훈련교재의 디자인 문제로 광주에 가서 디자이너와 미팅을 했는데, 내년 1월 12일이 출산 예정일인데도 아직 이름을 결정하지 못한 것을 보았습니다. 우리에게 이름을 부탁해서 잡을 ‘나’, 임할 ‘임’, 즉 성령의 임재를 붙잡는다는 뜻으로 ‘라임’이라고 지으라고 했더니, 박근혜 대통령이 병원에 사용한 이름이 ‘길라임’이라 어감이 비슷하다며 머뭇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이름은 언제 지어졌습니까? 요셉이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알고서 그녀와 정혼한 것을 파혼하려고 할 때였습니다. 임신한 사실을 안다는 것은 임신한 지 두 달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출산 8개월 전에 그의 이름이 지어졌습니다. 그런데 예수라는 이름의 뜻이 무엇입니까? 구원자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아들이 태어나면 로마제국으로부터 구원하는 사람이 되라는 뜻에서 ‘예수’라고 지었는데, 예수님은 구원자라는 의미에 ‘죄에서 구원하는 자’라는 의미를 부여하셨습니다. 어느 누가 다른 사람의 죄에서 구원할 수 있습니까? 예수님의 이름이 이처럼 사람들의 이름과 뜻이 전혀 다르다는 것은 예수님의 구원방법이 전혀 사람의 생각과 다름을 드러낸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실 것이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22-23절입니다. “이 모든 일이 된 것은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니 이르시되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마태는 예수께서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대로 이 땅에 오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기원전 700여 년경에 활동하던 선지자입니다. 그런데 이사야 선지자만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지 않았습니다. 동시대에 예언활동을 한 미가선지자도 예수께서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실 것을 예언했습니다(미가 5:2-4). 그런데 성경에 이보다 훨씬 먼저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고 있는 곳이 있습니다. 어느 성경일까요? 창세기 3장 15절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구절을 ‘원시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이 예언대로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오래전부터 예언하신 대로 탄생하신 것은 우리와 전혀 다르게 이 세상에 오신 것을 증명한 것입니다.

    그런데 왜 제가 예수께서 우리와 다르게 이 세상에 오신 것에 대해 이렇게 장황하게 설명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이 우리의 생각과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과정이 전혀 다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방법도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당시 이스라엘백성들은 로마의 억압아래서 정치와 경제적으로 구원받기를 갈망했지만, 예수께서는 먼저 그들의 죄 문제를 해결해주시기를 원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떻게 해야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까? 뭔가 선을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친히 자신이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우리를 구원해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받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은 단지 우리를 죄에서 해방시켜서 주시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구원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구원을 베푸십니다. 제가 이렇게 삶속에서 구원을 베푸시는 것을 무엇이라고 했죠? ‘현재적 구원’ 또는 ‘경험적 구원’이라고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현재적 구원’도 우리의 생각대로 베푸시지 않고 하나님의 뜻대로 베푸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선행으로 구원하시지 않고 친히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죽으심으로 구원하신 것처럼, 구원을 받은 후에도 계속해서 주님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구원을 베푸십니다.
    우리 교회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주님의 지상명령에 순종하는 교회를 만들겠다는 비전을 갖고 시작했지만 그 배후에는 도네이션에 대한 기대가 있었습니다. 도네이션에 의해 D3왕의사역 온 세계로 퍼져나가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우리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습니다. 도네이션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즉 여러분의 헌신으로 되어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뜨거운 헌신으로 한 달에 두 번씩이나 자비량으로 해외에 나가서 사역하고 있고, 미자립교회들은 전액 무료로 집회를 인도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매달 일정금액 선교비도 국내외에 후원할 것입니다. 도네이션도 장차 때가 되면 주님의 때에 주님의 방법으로 이루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께서 구원을 베푸시는 데 우리의 예상과는 전혀 다르게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방법에 따라 베풀어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계속해서 삶 속에서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이 바뀌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는 사람들을 향하여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주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육신의 일을 먼저 하지 말고 하나님의 일을 먼저 해야 합니다. 손에 쥐고 있는 돈으로 하지 말고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자신을 따르는 제자들을 향하여 “누구든지 나를 따르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자기를 부인하라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자기의 생각을 죽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의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우리의 생각을 내려놓고 하나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나아가야 합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을 베푸시기로 작정하시고 시작하신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구원을 베푸실 것입니다. 그 구원을 계속해서 누리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구원 방법과 우리의 생각이 전혀 다름을 새롭게 깨닫고 오직 주님의 생각과 뜻을 좇기로 결단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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