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찬을 꿰뚫다 눅22:14-20 2014.4.13

//성찬을 꿰뚫다 눅22:14-20 2014.4.13
성찬을 꿰뚫다 눅22:14-20 2014.4.132018-12-03T21:18:03+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성찬을 꿰뚫다 눅22:14-20 2014.4.13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49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라고 명하신 거룩한 예식은 두 가지입니다. 세례와 성찬입니다. 지난주에 세례에 대하여 말씀드렸기 때문에 오늘은 성찬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지난주처럼 성찬과 관련하여 네 가지 질문을 던지고, 이에 대해 답을 하는 형식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성찬에 대한 이해가 더욱 더 깊어져서 신앙생활을 행복하고 건강하게 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첫 번째 질문, 왜 예수께서 유월절에성찬식을 제정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읽어서 알고 있듯이 예수께서 마지막 만찬, 즉 성찬을 유월절에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의도적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15절에 보면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월절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에서 400년간 종살이를 하다가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굳이 성찬식을 유월절에 제정하셨을까요? 그것은 유월절 첫 날에 무엇을 하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유월절은 7일간 진행되는데 성찬식을 제정하신 때는 무교절의 첫날, 곧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이었습니다. 본래 유월절 양은 오후 세 시에서 다섯 시 사이에 잡도록 되어 있었고 반드시 성전에서 제사장들만 잡을 수 있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해마다 대략 이십오만 마리의 유월절 양이 죽임을 당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양을 잡는 유월절 첫 날에 떡을 떼어주시고 잔을 주신 것은 자신이 바로 속제 제물인 어린양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유월절에 성찬식을 제정하신 것은 자신이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이 세상에 오신 어린 양이심을 가르쳐 주시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은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고 말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오늘 성찬에 참여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할 것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시기 위해 희생제물이 되신 어린양으로 믿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어린 양이심을 믿지 않는다면 예수님과 우리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오늘 성찬을 통하여 예수께서 자신의 죄를 해결해주시기 위해 대속의 죽음을 당하신 어린 양이심을 믿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유월절에 성찬식을 베푸신 것과 관련하여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성찬식을 유월절에 베푸셨는데, 왜 오늘날 교회는 유월절을 지키지도 않고 유월절에 성찬식을 베풀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바로 이 문제를 가지고 우리를 공격하는 기독교이단이 있는데 그들이 바로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그들은 예수께서 친히 유월절을 지키셨기 때문에 우리도 유월절을 지켜야 하고 유월절에 성찬식을 제정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유월절에 성찬식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언뜻 보면 그들의 주장에 타당성이 있는 것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유월절에 성찬식을 제정하신 것은 자신이 유월절 어린양이심을 계시하시기 위해서 하신 것이지 우리에게 유월절을 지키고 또 유월절에 떡을 떼고 잔을 나누라고 명령하신 것이 아닙니다. 더군다나 우리가 유월절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친히 유월절 어린양으로 희생제물이 되셨기 때문에 어린양을 제물로 드리는 제사를 더 이상 드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유월절을 지키지도 않았을 뿐더러, 성찬식을 유월절에 하지 않고, 모일 때마다 했습니다. 혹 여러분에게 누군가가 접근해서 유월절을 지키지 않는 교회는 바른 교회가 아니라고 말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교회에서 나온 자인 줄 알고 꾐에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두 번째 질문, 예수께서 떡을 떼어주시고 잔을 나누어주신 것은 무엇을 의미하냐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먼저 떡을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떡을 주시면서 이는 너희를 위하여 주는 내 몸이라고 하신 것은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어주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단지 우리의 죄만 해결해주시기 위해 자신의 몸을 내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사야 535절을 통하여 또 다른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무슨 말씀입니까? 예수께서 자신의 몸을 내어주심으로 우리가 죄와 허물을 용서받았고,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게 되었고, 나음을 입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주신 것은 단지 우리의 죄 문제만 해결해주시기 위한 것이 아니라 병도 낫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믿으면 단지 죄 문제만 해결 받는 것이 아니라, 모든 질병도 고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기자는 예수께서 모든 병자들을 고치셨을 때에 이는 선지자 이사야를 통하여 하신 말씀에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8:17)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음을 입었다고 말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믿지 않는다면 우리에게 치유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습니까? 예수께서 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모든 병을 고침 받았음을 믿으면 실제로 고침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찬을 통하여 예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음을 입었다는 말씀을 믿음으로 치유의 기적을 맛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또 예수께서 잔을 주시면서 이는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잔을 주시면서 그것은 자신의 피며 그 피로 새 언약을 세운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새 언약에 대하여 주목해야 합니다. 새 언약이 있다는 말은 옛 언약이 있다는 말입니다. 옛 언약이란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이스라엘백성과 맺은 언약을 말합니다. 이스라엘백성들은 이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고,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그들은 율법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계속해서 우상을 섬기고 온갖 불법들을 행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옛 언약이 파기되었음을 선포하시고, 새로운 언약을 세워 주실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31:33). 그러나 그 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31:33).”

       예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약속하신 대로 자신의 피로 세우신 언약이 바로 새 언약인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새 언약은 우리가 언약을 지킴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니라 지키지 못할지라도 예수께서 대신하여 피 흘리심으로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주님의 백성으로 삼아주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잔을 가지고 감사하신 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이것은 죄 사함을 얻게 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26:28).”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죄 문제를 해결 받을 수 없기에 예수께서 대신 죄 값을 치러주시고 죄 문제를 영원히 해결해 주셨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의로운 행실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아직까지도 자신이 뭔가 착한 일을 해야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오늘 여러분이 잔을 받으실 때에 자신의 의로운 행실이 아니라 예수께서 흘리신 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는다는 것을 더욱 더 깊이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로, 왜 예수께서 성찬을 통하여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고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그냥 자신의 죽음을 기념하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떡을 떼어주시고 잔을 나눠주심으로 예수님을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기념하라는 헬라어로 아남네신이라고 하는데, 이는 기억하라는 뜻을 가장 크게 내포하고 있습니다. 즉 성찬을 행할 때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몸 찢기시고 돌아가신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하라는 것입니다. 왜 예수께서 성찬을 통하여주님의 죽으심을 기억하라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떡을 떼고 잔을 나눔으로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채찍에 맞음으로 살 찢기시고 피 흘리신 사건에 동참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직접 보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성찬을 통하여 2000년 전의 사건을 지금의 사건으로, 그리고 자신의 사건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설교는 크게 듣는 설교와 보는 설교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강단위에서 말로 하는 설교는 듣는 설교이고 성찬을 통하여 하는 설교는 보는 설교입니다. 그런데 듣는 설교와 보는 설교 중 어느 설교가 더 효과적인지 아십니까? 당연히 보는 설교가 더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실험에 의하면 사람은 읽는 것의 10%, 듣는 것의 20%, 보는 것의 30%기억한다고 합니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는 말이 있지 않습니까? 백번 들어도 한 번 보는 것만 못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다는 것을 아무리 들어도 성찬에 참여하여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것보다는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몸 찢기시고 돌아가신 것을 두 눈으로 보게 하심으로 주의 죽으심을 기억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떡을 떼고 잔을 나누는 성찬에 참여함으로 예수께서 2000년 전, 유대 땅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건이 바로 자신의 죄 때문에 일어난 사건으로 믿는 은혜가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 하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예수의 십자가를 망각하는 순간 영적으로 파경을 맞이하기 때문입니다. 십자가 없이는 죄 사함도 구원도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나의 죄를 대신하여 돌아가신 예수 그리스도를 잊어보십시오. 어떻게 죄 사함 받은 감격과 기쁨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십자가를 잊는 순간 죄의 무거운 짐에 눌려 절망의 늪에서 헤어 나올 수 없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의 십자가를 기억해야 구원 받은 감격과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인생의 모든 무거운 짐이 벗겨지고 염려와 근심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지금 아무리 큰 어려움에 직면해 있더라도 죄 사함 받은 것을 확신하면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인생에 있어서 죄보다 더 크고 시급한 문제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죄보다 더 무거운 짐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죄 사함을 받은 것을 확신하면 그 어떤 시험도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부모와 스승의 은혜를 잊을지라도 예수께서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를 죄에서 건져주신 은혜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 성찬식을 통하여 그동안 잃어버렸던 주님의 은혜를 회복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넷째로, 어떻게 예수께서 죽음을 앞두고 감사기도를 하실 수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기도에는 크게 네 가지 요소가 있습니다. 영어로 기도의 4요소를 ‘ACTS’라고 표현하는데, A는 찬양(Adoration), C는 고백(Confession), T는 감사(Thanksgiving), S는 간구(Supplication입니다. 따라서 기도에는 반드시 감사가 들어가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재료를 갖고 음식을 만들어도 양념을 넣지 않으면 음식의 맛을 낼 수 없듯이 기도에도 감사가 빠지면 참된 기도가 될 수 없습니다. 감사가 없는 기도는 앙꼬 없는 진빵과 같습니다. 따라서 기도에 감사가 들어가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유월절 만찬에서 감사기도를 하신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당시 예수께서는 죽음을 앞에 두고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잠시 후면 종교지도자들이 보낸 하속들에게 체포를 당하시고 심문을 받으시고 그 다음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런 상황에서 감사기도를 드리실 수 있었을까요? 저는 크게 두 가지로 생각했습니다. 첫째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지만 곧 부활하실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죽음 앞에서 절망하는 것은 죽으면 모든 것이 끝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곧 다시 살아나실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그런 상황에서도 감사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부활의 신앙을 가지면 어떤 절망 앞에서도 감사할 수 있습니다. 둘째로,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모든 인류가 죄 사함을 받고 구원 받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알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한 생명을 내어던지는 죽음이 아니라 모든 인류를 죄에서 해방시키는 죽음임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지금 하는 일이 가치 있고 의미 있는 일이라는 확신한다면 어떤 고난을 당해도 감사합니다. 우리가 자식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면서도 감사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바울도 이 비밀을 알고 있었기에 그토록 극심한 고난 중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속하시기 위해 유월절 희생제물이 되신 어린 양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몸 찢기시고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죄에서 건져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단지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자신의 질병도 고치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장차 더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을 믿고 감사하며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 내일부터 고난주간입니다. 한 주간동안 고난주간 특새를 통하여 주님의 고난에 깊이 동참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자신의 몸에 채우는 실천적인 삶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