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벽재건을 통한 영적 교훈 느3:1-32 2014.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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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벽재건을 통한 영적 교훈 느3:1-32 2014.3.302018-12-03T21:17:0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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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주 느헤미야가 왜 예루살렘으로 가서 3일간 아무 것도 하지 않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은 먼 여행으로 피곤해서가 아니라 주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의 힘과 열심으로 살아가는 자들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에 무엇을 하든지 주님의 인도를 받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절망과 패배의식에 빠졌던 사람들이 성벽재건에 동참하게 하게 되었던 것은 느헤미야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말했기 때문이므로 평신도가 하나님을 만난 경험을 간증하면 사람을 움직일 수 있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또한 반대자들의 위협과 협박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했기 때문에 성벽재건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처럼 우리가 장애를 극복하고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확신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본문 느헤미야 3장은 예루살렘 성벽의 중수, 즉 보수공사에 관한 기록입니다. 공사는 크게 양문을 비롯한 10개의 문과 함메아 망대를 비롯한 4개의 망대를 건설하고 성벽을 연결하는 공사입니다. 겉으로 볼 때는 단순한 성벽재건공사로 보이지만 공사과정을 자세히 살펴보면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어떻게 해야 할지에 대한 몇 가지 사역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시간관계상 크게 4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느헤미야는 성벽 재건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했습니다. 성벽재건 공사 과정을 보면 41개의 작업 현장에서 일제히 이루어졌고, 각 사람의 특성과 형편에 따라 적절하게 배치되었고, 또한 공사에 동원된 그룹이 매우 다양했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느헤미야가 성벽공사를 시작하기 전에 얼마나 철저히 준비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에 사전에 철저히 준비해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 하는 일도 철저히 준비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하는 일을 제대로 준비 하지 않으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준비 없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경우가 부지기수입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준비 없이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배는 단지 이곳에 와서 예배시간에 드리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온전히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준비하는 과정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곳, 즉 예루살렘 성전에서만 예배를 드리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집에서 나와 그곳 까지 가는 길이 예배를 준비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먼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을 먼저 생각하고 사모하는 것입니다. 제가 이왕 드리는 예배 10분 전에 와서 드리자고 매주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왜 이 운동을 벌이는지 아십니까? 여러분이 준비된 예배를 드림으로 은혜를 받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예배 시간보다 일찍 와서 기도로 준비하고 드리는 예배와 정시보다 늦게 와서 허둥지둥 드리는 예배가 같은 예배가 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의 모임에는 일찍 가도 별로 큰 유익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는 일찍 준비한 만큼 은혜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외모로 보시지 않고 중심으로 보시기 때문에 우리가 진심으로 예배를 드릴 때에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을 진심으로 사모하는 사람은 결코 예배에 늦지 않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기다립니다.

    우리 교회 장로님이 잘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염 장로님을 비롯한 몇몇 장로님들과 강찬성 집사님은 예배 1시간 전부터 교회에 오셔서 기도로 준비하고 교회를 두루 살펴보십니다. 우리 교회 2목장에 서복남 집사님이 계십니다. 지난주에 특별 심방 기간 중에 그분과 대화를 나누던 중에 제가 생각지 않은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분은 몇 년 전, 뇌병변으로 쓰러지신 후 현재 몸이 자유롭지 못한 상태에 있습니다. 그래서 한 곳에 오래 앉아 있을 수도 없고 제대로 걸을 수도 없어서 예배 후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싶어도 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제가 그 말을 들을 때 너무 마음이 아팠습니다. 그런데 그 후의 말이 제게 은혜가 되었습니다.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어서 매주 주일 낮 2부 예배에 나오기 위해서 2-3시간이나 준비한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한 시간 예배를 위해 매주 예배를 위해 2-3시간을 준비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어디 예배만 준비해야 합니까? 주님 앞에서 하는 일은 모두 치밀하게 준비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교사로 봉사하든, 찬양으로 봉사하든, 평신도사역자로 사역을 하든, 목자와 부목자로 사역을 하든 준비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가장 잘 준비를 잘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주님의 인도를 받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인도를 받으면 주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기 때문에 최고로 준비를 잘할 수 있습니다. 느헤미야가 성벽 재건을 위해 치밀하게 준비할 수 있었던 것도 그가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러 왔지만 주님의 인도를 받기 위해 3일 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기다렸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지도자부터 참여했습니다(3:1). 성벽공사에 함께 한 그룹은 크게 6그룹입니다. 제사장 그룹, 성벽 재건의 소식을 듣고 각성에서 모인 사람들, 오늘날의 세공업자인 금장색, 각성의 관리들, 여인들, 상인들이 참여하였습니다. 그런데 그중에서 가장 앞장섰던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1절에 기록된 바와 같이 대제사장과 그 형제 제사장들이었습니다. 즉 지도자들이 앞장을 섰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 일은 중직자들이 앞장서야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래야 신앙의 새내기들이 본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중직자들이 새가족을 친절하게 대하고, 성도들을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십일조를 온전히 드리고, 주일 성수를 온전히 하면 새내기들도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본을 받습니다. 그러나 중직자임에도 불구하고 공예배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권위적으로 사람을 대하면 신앙생활을 그렇게 하는 것으로 알고 그것을 본받게 됩니다. 가정에서 형제 자매들의 영향을 받듯이, 교회에서도 중직자들의 영향을 받습니다. 중직자들이 좋은 본을 보여줄 때에 새 가족들이 그것을 본받아 교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먼저 주님을 본받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본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전 11:1).

       어느 날 어떤 집사님이 제게 와서 이렇게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 왜 우리 교회 장로님들은 금요성령집회나 새벽예배나 수요저녁예배에 다 참석을 하시지 않죠?” 제가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이른 새벽에 일하러 나가는 분들도 있고, 집이 먼 분도 있고, 직장 때문에 외지에 나가계신 분도 있고, 건강이 좋지 않아서 나오시지 못하는 분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이렇게 대답하면서도 사실은 마음 한편으로는 불편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실은 제가 열거한 사항에 관련되어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새벽예배나 수요저녁예배나 금요성령집회에 참석하지 않는 분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중직자 여러분! 오늘 말씀을 듣고 예배와 전도와 섬김에 본을 보이시기로 굳게 다짐하시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부탁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다. “가서 제자 삼으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가운데 세상에 나가서 비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그들을 말씀으로 가르쳐서 제자를 삼는 분이 있습니까?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이 주님의 지상명령인데 왜 이 명령에 순종하는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든 것일까요? 우리가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몰라서 그럴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렇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을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즉 제자 삼는 삶의 본을 보여주는 믿음의 선배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금까지 믿음의 선배들이 우리에게 보여준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일성수를 하고, 담임목사의 말에 순종하고, 십일조를 드리고, 교회에 봉사하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이런 본을 보여주는 것은 매우 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믿음의 선배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서울에서 이 정도의 건물을 소유할 수 있었던 것도 어려운 상황에서도 주님께 뜨겁게 사랑하고 헌신하는 분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것보다 본을 보여주어야 할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명령하신 대로 세상에 나가 복음을 전하고 제자 삼는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이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기 때문에 제자 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제가 평신도를 단기간에 훈련하여 사역자로 세워서 사역을 하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무엇보다도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새 가족이 와서 평신도들의 사역을 보면서 나도 빨리 훈련 받고 저렇게 사역을 해야지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가 이 일에 본을 보임으로 모든 교회들이 따라오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교회 안에 주님이 가장 원하시는 제자 삼는 삶을 보여주는 믿음의 사람들이 더 많아지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셋째로, 다함께 연합했습니다. 여러분이 다 함께 읽으셔서 아시겠지만 오늘 읽은 본문에 가장 많이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단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그 다음은입니다. “그 다음은 누가 중수하였고 라는 형식으로 무려 31번이나 나옵니다. 이처럼 그 다음은 누가 중수하였고라는 문장이 자주 등장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성벽재건에 참가한 75명이 다른 사람과 보조를 맞추어 공사를 이어갔다는 뜻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의 일은 다른 사람과 연합해야 합니다. 신앙생활에는 개인생활과 교회생활이 있습니다. 개인생활은 혼자서 기도하고, 말씀을 읽고, 찬송하면 됩니다. 그러나 교회생활은 반드시 다른 사람과 함께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 연합하지 않는 교회생활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처럼 교회생활의 본질이 연합인데 어떻게 하면 생각과 뜻이 다른 사람과 연합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답을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서 찾아야 합니다. 성벽공사에 참여한 사람들이 한 마음을 품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성벽을 재건하여 더 이상 수치를 당하지 않겠다는 공동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동일한 비전을 가지고 얼마든지 연합할 수 있습니다. 교회에 사람이 많아도 연합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 교회의 목회비전이 무엇입니까? ‘평신도사역형교회의 전환도우미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운영입니다. 특별히 평신도사역형교회 전환도우미의 목회비전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비전에 한 마음을 품을 때에 함께 연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성벽재건에 참여하지 않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드고아 사람들 중에 귀족들은 공사를 분담하지 않았습니다(3:5). 왜 귀족들은 동참하지 않았을까요? 당시 성벽재건은 육체적인 노동을 하는 아주 힘든 일이었기 때문에 자신들은 그런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신분의 귀천이 없습니다. 결코 교회 안에서는 귀족처럼 행동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교회에서는 세상의 계급장을 다 떼어야 합니다. 세상에서 대통령이든, 국무위원이든, 국회의위원이든 교회에서는 모두 다 같은 형제자매임을 알아야 합니다. 세상에서도 노블리스 오브리제를 이행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데 하물며 교회에서 받은 직분을 계급으로 알고 자신들만의 성을 쌓으려한다면 되겠습니까?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드고아의 귀족들이 헌신하지 않았어도 성벽재건은 멈추지 않고 완성되었다는 것입니다. 양문부터 시작된 공사는 시계 반대 방향으로 돌아서 다시 양문까지 이르러 완성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52일이라는 아주 짧은 기간에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의 일은 자신이 동참하지 않아도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을 통해서라도 완성하신다는 것입니다. 유대민족이 위기에 닥쳤을 때에 모르드개가 에스더에게 한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이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때를 위함인지 누가 아느냐?”(4:14).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동참하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런 기회를 놓치면 영원히 돌아오지 않기 때문에 결코 놓쳐서는 안 됩니다. 에서는 장자명분을 팥죽 한 그릇에 판 것을 후회하고 취소하려고 했지만 기회를 다시 얻지 못했다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습니다. 헌신의 기회를 다른 사람에게 빼앗기는 것은 불행한 일입니다. 주님보다 돈과 명예를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께 쓰임 받을 기회를 놓치는 분이 한 분도 없기를 바랍니다.

     

       넷째로, 힘든 일도 즐거움으로 감당했습니다. 성벽재건은 41개 부문에서 진행되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서 어떤 공사가 가장 힘들었을까요? 저는 14절에 언급된 ()을 중수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분문은 예루살렘에서 나오는 모든 쓰레기와 오물을 버리는 곳이기 때문에 가장 더럽고 각종 악취가 진동하는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분문을 공사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벧학게렘 지방을 다스리는 레갑의 아들 말기야 입니다. 그가 어떻게 힘든 분문공사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나라의 핵심가치가 희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할 때에 이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일을 하면서 희생정신을 갖지 않는다면 하는 일마다 다투게 됩니다. 왜 여전도회나 남전도회 사업을 하면서 다투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납니까? 그것은 희생정신을 잃어버리고 자기 유익을 쫓기 때문입니다. 희생정신을 잃어버리는 순간 교회는 세상 단체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이 말처럼 쉽습니까? 어려운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기에 주님 앞에 엎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에 매주 화장실을 깨끗하게 청소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분은 현직 대학교 교수이고, 모 기업 상무이사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왜 매주 토요일 화장실 청소를 하는지 아십니까? 기독교의 핵심가치가 희생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교회를 섬길 때에 이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의 일을 세상의 가치 기준으로 하려면 안 됩니다. 자신을 희생함으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는 자세로 봉사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이시지만 사람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그 성육신의 정신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자세를 가질 때에 교회에서 무슨 일을 하든지 다투지 않고 시험에 들지 않게 되는 것입니다. 혹 주방에서 봉사하는 일로 짜증이 나십니까? 여러분의 희생으로 많은 분들이 매주 맛있게 식사하는 모습을 그려보시기 바랍니다. 혹 넓은 본당을 청소하느라고 힘들고 어려워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들 때가 있습니까? 여러분이 땀 흘려 희생하기 때문에 이렇게 쾌적한 환경에서 많은 분들이 예배를 드릴 수 있음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힘든 일을 할 때는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즐거운 마음으로 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지로 하거나 즐겁지 않은 마음으로 하는 헌신은 받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지 않는 헌신은 유익하지 않습니다. 힘들고 어려울지라도 즐거운 마음으로 섬기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고 상을 베풀어주십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공짜가 없습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헌신한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반드시 보상해주십니다.

     

       마지막으로 성벽재건공사와 관련하여 매우 중요한 것을 말씀드리고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왜 느헤미야가 아닥삭스다 왕의 술관원으로 부귀와 영화를 누리고 있었는데 약 1600km나 되는 먼 길을 달려와서 성벽을 중수했는지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유대로부터 온 하나니 형제로부터 예루살렘 성읍이 황폐하였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느헤미야가 단지 예루살렘 성벽이 황폐하였다는 이유로 성벽재건 공사에 뛰어들었을까요? 겉으로 볼 때는 그렇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느헤미야가 성벽복원이 매우 중요한 영적인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당시 예루살렘 성안에는 스룹바벨 성전이 있었습니다. 스룹바벨 성전은 이스라엘이 바벨론에게 멸망을 당한 후 스룹바벨이 1차로 귀환하여 지은 성전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스룹바벨 성전을 중심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스룹바벨이 성전을 짓고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지만 그들의 삶이 어떠했습니까? 환난을 당하고 능욕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느헤미야는 유대로부터 온 하나니 형제로부터 그 소식을 듣고 충격에 빠졌습니다. 왜냐하면 성전만 잘 건축하면 모든 것이 잘 될 줄 알았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 느헤미야가 깨달은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성벽이 없는 성전의 삶은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 즉 성벽이 없으면 성전의 삶은 보호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온전히 섬기기 위해서는 그것을 방해하는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성벽을 든든히 쌓아야 합니다. 마귀의 공격을 막지 않는 채로 하나님을 온전히 예배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가 마귀의 공격을 막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말씀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무장하지 않으면 아무리 성전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하고, 기도를 해도 하루아침에 하찮은 일로 시험에 들어 무너지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성벽은 어떻습니까? 마귀의 공격에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로 든든합니까? 우리는 영적성벽을 든든히 하기 위해 자주 말씀을 읽고 말씀훈련을 받아야 합니다. 말씀으로 영적성벽을 재건하므로 자주 시험에 들고 넘어졌던 자리에서 일어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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