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께서 오신 이유가 있습니다. 행 2장 1-4절 2018년 10월 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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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께서 오신 이유가 있습니다. 행 2장 1-4절 2018년 10월 7일2018-12-03T23:57:2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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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은 성령강림절에 단골로 등장합니다. 본문은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 사건을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제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는지를 살펴보고, 두 번째로 강림하실 때에 어떤 현상이 나타났고, 세 번째로 오순절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것이 어떤 의미를 갖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제자들이 무엇을 하고 있을 때에 성령께서 강림하셨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절을 읽습니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그들이 다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본문은 그들이 한 곳에 모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곳’은 마가의 다락방이라는 데에 모든 사람의 의견이 일치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그들이 그곳에 모였을까요? 당시는 오늘날처럼 주일 예배라든지 새벽예배나 수요기도회나 금요기도회의 형식으로 모이는 공적예배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누가 모이라고 강권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렇게 모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령의 세례를 받으리라는 약속을 믿고 그것을 받기 위해서입니다. 그들이 모여서 기도하고 있을 때에 오순절을 맞이하게 되었고 바로 그 날에 성령께서 오신 것입니다. 따라서 오순절에 성령이 오셨을 때에 그들이 무엇을 하고 있었습니까? 성령의 세례를 받기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모여서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은 사모하는 자에게 임하십니다. 당시 모든 그리스도인이 성령의 충만을 받은 것이 아니라 마가의 다박방에 모여 성령을 사모하며 기도한 120여명만 받았습니다. 그래서 시편기자는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 107:9)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에 보면 사모하는 마음으로 준비를 잘해서 성령의 충만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그는 고넬료입니다. 고넬료는 로마 군인으로 백부장이었습니다. 성경은 그가 아주 신실한 신앙인이고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가 항상 기도를 힘쓰던 중 하루는 제9시 기도시간에 환상 중에 “욥바에 있는 베드로를 청하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신하를 욥바에 있는 베드로에게 보냈습니다. 마침 성령께서 베드로에게 “두 사람이 찾아올 것이니 의심하지 말고 따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고넬료가 보낸 두 사람을 따라갔습니다. 베드로가 고낼료의 집에 도착하여 “왜 나를 초청하였느냐”하고 물었습니다. 이에 고넬료는 베드로를 초청한 이유를 말했습니다. 그것은 사도행전 10장 30-33절에 상세히 나와 있습니다. “내가 나흘 전 이맘때까지 내 집에서 제 구시 기도를 하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빛난 옷을 입고 내 앞에 서서 말하되 고넬료야 하나님이 네 기도를 들으시고 네 구제를 기억하셨으니 사람을 욥바에 보내어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그가 바닷가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유숙하느니라 하시기로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는데 오셨으니 잘 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 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행 10:30-33). 베드로는 고넬료의 말을 듣고 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각 사람에게 임하셔서 성령의 충만을 받았습니다. 즉 고넬료가 성령의 충만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주실 은혜를 사모하고 준비하였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오순절 성령 강림시 어떤 현상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본문 사도행전 2장 2-4절을 다시 읽습니다.
    첫째로, 성령께서 ‘홀연히’ 임하셨습니다. 홀연히는‘미처 생각지도 못한 사이에 갑작스럽게’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께서“몇 날이 못 되어”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고 말씀하셨지만 아무도 그 때를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예루살렘은 오순절 절기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온통 절기에만 마음을 빼앗겼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바로 그런 상황에서 오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는 사람들이 전혀 생각지 않은 때에 오십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이렇게 홀연히 오신 것을 통하여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마지막 때에 이와 같이 임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런즉 깨어 있으라 너희는 그 날과 그 때를 알지 못하느니라”(마 25:13)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 날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깨어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급하고 강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는 현상’과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보이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성령께서 임하실 때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냥 우연히 일어났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그 이유를 성경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실 때에‘바람의 소리’와 ‘불의 임재 ’를 동반한 경우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구약은 시편 104장 4절입니다. “바람으로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며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신약은 히브리서 1장 7절입니다. “또 천사들에 관해서는 그는 그의 천사들을 바람으로 그의 사역자들을 불꽃으로 삼으시니라.” 따라서 구약성경에 익숙해 있었던 제자들은 성령께서 강림하실 때에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성령께서 하나님께서 보내신 영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께서 오순절에 바람소리 현상과 불의 현상으로 임하신 것은 성령께서 곧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셋째로,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들이 ‘각 사람 위에 하나씩 임한 것이 보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성령께서 임하실 때에 바람 같은 소리가 그들이 앉은 온 집에 가득하였고,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 위에 임한 것이 보였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4절을 자세히 읽으면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그들이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 성령께서 임하실 때에 바람같은 소리가 온 집에 가득했다는 것은 곧 성령을 받되 충만히 받을 것에 대한 예표이고, 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각 사람이 위에 하나씩 임한 것은 그곳에 참석한 모든 사람이 성령받을 것을 예표한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첫째로, 성령은 누구나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충만은 특별한 사람만 받는 것이 아닙니다. 새신지나 기신자나 목회자나 평신도나 똑같이 받아야 합니다. 또한 성령을 충만히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을 조금 받으면 성령의 지배를 받지 않고 자기 생각대로 살아갑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으려면 반드시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넷째로, 성령의 충만을 받고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들이 성령의 충만을 받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왜 성령의 충만을 받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르게 되었는지를 생각해야 합니다. 그것은 성령의 충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알면 알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성령 충만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습니까? 몸이 뜨거워지는 것일까요? 아니면 병든 자를 위해 기도하면 벌떡 벌떡 일어나고 귀신들린 자를 치유하는 것일까요? 물론 성령께서 충만하면 이런 현상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이 일어났다고 해서 모두 성령이 충만한 것은 아닙니다. 성령충만은 성령께서 온전히 지배하시는 상태를 일컫습니다. 그렇게 때문에 성령의 충만을 받자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들로 말하기를 시작한 것입니다. 따라서 성령의 지배를 받기를 원한다면 성령의 충만을 받아야 합니다.
    여기서 잠시 성령 충만과 관련하여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먼저 성령충만과 방언과의 관계입니다. 오순절 계통에서는 오순절에 성령께서 임하시므로 성령의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언어를 말한 것을 근거로 방언을 성령 충만의 증거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렇게 생각하는 것은 성경을 균형 있게 보지 못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방언을 성령 충만의 결과로 보지 않고 성령의 은사로 보기 때문입니다. 고전 12장 29-30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교사겠느냐 다 능력을 행하는 자겠느냐 다 병 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 겠느.냐.” 그렇습니다. 방언은 성령의 은사중 하나이지, 성령의 충만의 필연적인 결과는 아닙니다. 따라서 성령충만과 방언을 동일선상에 놓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오순절날 마가의 다락방에 임한 성령의 세례는 한 번만 일어나는‘단회적인 사건’인가, 아니면 계속적으로 일어나는‘다회적인 사건’인가 라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순복음 계통에서는 오늘날도 우리가 기도하면 또 다른 오순절을 경험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즉 마가의 다락방에 성령께서 역사하신 것처럼 지금도 그러한 역사가 일어난다고 주장합니다. 반면에 일반적으로 장로교 계통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아직도 장로교 교단 중에는 성령의 충만을 받기 위해 기도하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 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은 단회적인가 다회적인가 흑백논리로 풀면 안 됩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이중적인 접근 방법을 취해야 합니다. 먼저 성령의 충만을 구속사적인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이 관점으로 보면 성령충만은 단회적입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으로 볼 때에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신 것은 예수님을 대신하여 성령이 전적으로 역사하실 것을 알리는 일종의 취임식이기 때문입니다. 즉 오순절에 성령이 임하신 것은 이제는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음을 알리는 나팔소리인 것입니다. 어떤 직위에 있든지 취임식을 한 번만 합니다. 목사의 안수도 한 번만 받고, 대통령의 취임식도 한 번만 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세례를 성령의 주도적인 시대가 도래하는 것을 알리는 취임식으로 생각하면 그것은 단회적인 사건입니다. 그러나 성령의 충만을 왜 주셨는가라는 차원에서 보면 다회적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성령의 충만을 왜 주셨습니까?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성령이 임하시면 너희가 능력을 받고 예루살렘과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신대로 능력있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입니다. 능력은 사용하면 없어집니다. 그래서 계속 받아야 합니다. 따라서 성령의 충만은 반복해서 받아야 합니다(행 11:15-16). 지금도 성령의 충만은 계속되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은 에베소교회의 성도들에게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계속해서 받으라고 권면한 것입니다(엡 5:18).

    3.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신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첫째로, 본격적인 성령의 시대가 도래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이 수면위에 운행하시더라”(창 1:2)는 기사를 통하여 성령께서 창세전부터 계신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이 성령께서 강림하셨다는 것은 무슨 의미입니까? 성령시대가 개막된 것을 알리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구원계획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마치시고 약속하신 대로 다른 보혜사를 보내주셔서 성령시대, 이른바 적용의 시대를 여신 것입니다. 그런데 성령시대를 여시는데 있어서 가시적인 인증이 필요했는데 그것이 오순절 성령강림사건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성령의 충만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둘째로, 주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하셨습니다. 어떤 약속입니까? 하나는 “너희가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세례를 받으리라”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주님의 첫 번째 약속을 기다리며 다락방에 모여서 오로지 기도하는 일에만 힘을 썼습니다. 그러자 오순절이 이르자 주님께서 하신 대로 성령께서 오셨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주님께서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지키십니다. 성경에 주님과 관련하여 약속하신 것이 300여개나 되는데 그 중에서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은 재림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도 반드시 성취됩니다. 초대교회가 당시 주님께서 재림하실 것을 굳게 믿었던 것은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성령을 보내주신 것처럼 예수께서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는 약속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오순절에 약속하신 대로 성령께서 임하신 것을 보면서 마지막에 예수께서 반드시 재림하실 것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셋째로, 복음을 성령의 능력으로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성령의 보내주시기 전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행 1:8).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이 각 사람에게 임하였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성령의 능력으로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 전도는 언행과 성령의 능력으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오순절에 성령께서 오셨기 때문에 단지 우리의 언행으로만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을 증거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무슨 이유로 성령을 구하고 있습니까? 은사사역이나 치유사역을 위해서 구하고 있습니다. 성령집회라는 명목으로 모여서 성령의 능력을 구하지만 세상에 나가서 전도하지 않습니다. 몇 해 동안 선한목자교회에서 손기철 장로님이 집회를 인도하였습니다. 매주 월요일 2-3천명이 모였습니다. 성령께서 일하심으로 수없이 많은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그들의 삶은 변하지 않고 복음을 증거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갓피플 직원이 이 문제로 저와 깊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초대교회는 오늘날 성공의 필수적인 요소라고 생각되는 것들, 즉 돈, 건물, 정치적 영향, 사회적 지위 등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세상을 뒤집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떤 자들이었습니까? 그들은 거의다가 갈릴리 바다에서 고기나 잡아먹고 비린내나 풍기던 자들이었습니다. 또한 예수님 밑에서 3년간이나 제자훈련을 받았지만 목숨이 아까워 스승을 배반하고 도망을 간 자들이었습니다. 더군다나 그들이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고기를 잡으러 가자고 한 것은 예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요 21:3) 그런데 그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는 자로 바뀌게 된 것은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서 함께 모여서 기도함으로 성령의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면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뀝니다. 겁 많던 자가 담대해집니다. 약한 자가 강해집니다. 부정적인 자가 긍정적으로 바뀝니다. 밴스 헤브너라는 유명한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움직이게 되는 것은 세상에 대한 비판이나 또는 순종에 의해서가 아니라 성령에 의해서 점화된 삶을 세상 속에서 연소시킴으로서이다.” 그렇습니다. 세상이 감당치 못할 만한 삶을 살았던 사람들은 모두 성령에 의하여 점화를 받았던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으므로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아가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을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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