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교제, 해야 할 이유 있습니다. 고전 12^21-27 2013.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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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교제, 해야 할 이유 있습니다. 고전 12^21-27 2013.2.172018-12-03T20:22:4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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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구나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면 교회라고 하는 신앙생활공동체에 소속이 됩니다. 이는 마치 갓난아이가 태어나면 한 가정에 소속이 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교회에는 크게 다섯 가지 활동 분야 즉, 예배, 전도, 교육, 교제, 봉사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앙생활을 건강하게 하기 위해서는 이 다섯 가지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대부분의 성도들이 ‘예배’만 중요하게 생각하고 다른 분야에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물론 신앙생활에 있어서 예배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구원 받은 성도가 하나님께 감사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을 예배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어느 한쪽으로만 치우쳐 균형 잡힌 신앙생활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즈음 건강하게 성장하는 교회들은 과거에 힘을 쏟지 않았던 성도들의 교제에 관심을 많이 갖고 소그룹활동을 적극적으로 하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가 8교구 32구역으로 나누고 구역활성화에 온갖 힘을 쏟고 있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저는 오늘 구체적으로 왜 성도 간에 교제를 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합니다. 오늘 말씀을 들으시고 그동안 예배만 끝나면 부리나케 교회 문을 떠나셨던 분들이 구역모임도 참여하고 성도간의 교제에 적극적으로 동참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로, 교회는 교제하도록 만들어진 공동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서 아담을 만드신 후 그가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게 보여서 그에게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런데 돕는 배필은 단순히 돕는 자가 아니라 ‘서로 마음이 통하는 자, 잘 맞는 자’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돕는 배필로 주신 것은 교제의 대상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서로 교제하지 않고서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입니다. 더군다나 교회는 두 사람 이상이 모인 단체이기 때문에 교제는 더욱 더 본질적인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읽은 본문은 교회를 어떻게 표현하고 있습니까?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고전 12:27).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고 성도는 그 몸의 지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이렇게 표현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교회가 서로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에 교제가 불가피하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와 연합하고 성도와 성도가 서로 연합되어 있기 때문에 교제를 해야 합니다. 주님과 교제할 뿐만 아니라 성도와 성도끼리 교제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성도에게 교제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필수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날마다 사도신경으로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을 믿는다고 신앙을 고백하지만 실제의 삶속에서 성도와 서로 교통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지만 성도간에 교제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마치 몸은 건장하지만 허리를 다친 사람과 같이 됩니다. 허리를 다쳐보신 분은 다 아시겠지만 아무리 건강해도 허리에 문제가 생기면 전혀 힘을 쓰지 못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를 아무리 많이 드려도 성도간의 교제가 없으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데 이 은혜를 삶으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처야 할 과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받은 은혜를 먼저 내 것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수없이 드리지만 변화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은 은혜를 받지만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않고 쉽게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하면 받은 은혜를 잊지 않고 자신의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예배를 통하여 받은 은혜를 성도들과 함께 나누면, 즉 말씀의 교제를 하면 그 은혜가 내 것이 되어 생각을 바꾸고 결국은 삶을 바꾸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말씀을 깨달았다고 삶이 바뀌는 것이 아닙니다. 깨달은 말씀이 내 것이 되어야 그것이 나의 생각을 바꾸어서 삶을 바꾸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받은 은혜를 잊지 않도록 반복해서 성도 간에 말씀의 교제를 나눔으로 우리의 마음판에 새겨야하는 것입니다. 제가 자동차에 대해 아는 것이 별로 없지만 변속장치와 바퀴를 연결하는 부분을 ‘디스크’라고도 하고, ‘삼발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운전이 미숙한 운전자는 반 클러치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에 디스크가 금방 마모됩니다. 그래서 디스크가 많이 마모된 상태에서는 액셀러레이터를 세게 밟아도 바퀴 쪽으로 동력이 전달이 되지를 않아 소리만 요란하게 날뿐 자동차가 제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성도의 교제는 마치 변속장치와 바퀴를 연결해주는 디스크와 같습니다. 아무리 페달을 밟아도 디스크에 문제가 있으면 동력이 전달되지 않아 바퀴를 굴러가게 할 수 없듯이, 아무리 예배를 통하여 은혜를 받아도 성도간의 교제가 없으면 믿음을 삶에 연결시킬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수 없습니다. 성도간의 교제는 신앙의 기본입니다. 동신교회 성도님들은 한 분도 예외 없이 성도간의 교제에 성공하여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로, 성도들의 사정을 알고 도와주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교회에 등록한 성도들을 한 가족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형편과 사정을 모르면서 한 가족이라고 말하는 것은 입에 붙은 말에 불과합니다. 적어도 한 가족이라고 말하려면 성도들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알고 있어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성도들의 형편과 처지를 잘 알 수 있을까요? 교제를 통해서입니다. 물론 성령께서는 초월적 방법으로 성도들의 형편을 알게 하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시는 것은 일상적인 것이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상황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하십니다. 제가 잠실의 화광교회에서 부교역자로 사역할 때였습니다. 제가 고등부를 맡았는데 출석하는 학생들이 수백 명에 달했기 때문에 교사들이 꽤 많았습니다. 그중에 시사영어사에 다니는 김영자 집사라는 노처녀 있었습니다. 그 교사가 뇌 암에 걸려 고통을 당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를 위하여 기도도 많이 하고 사랑을 많이 쏟았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새벽기도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는데 이상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새벽에 나갈 때만해도 어항 속에서 뛰놀던 물고기들이 모두 죽어서 물위에 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성령께서 제 마음에 김영자 선생님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다고 말씀하시는 것같이 느껴졌습니다. 그래서 즉시 그분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향해 운전해 쏜살같이 달렸습니다. 문을 수차례 두드려도 열어주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열쇠수리공을 불러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거의 죽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급히 119를 불러 응급조치를 해서 살렸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성도의 형편을 알게 하시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것입니다. 대부분은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교제를 통하여 형편을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도간의 교제를 통하여 서로의 사정을 알고 서로 도우며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귐을 통하여 서로 돕고 살라고 하나님께서 육적인 가족뿐 아니라 영적인 가족관계를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현재 8교구 32구역으로 편성해서 소그룹을 운영하고 있는데 구역장님들이 매주 사역보고서를 작성하고 있습니다. 사역보고서에는 크게 세 가지를 기록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자기 관리사항과 구역원 관리사항과 출결사항입니다. 자기 관리사항에는 한 주간 본인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했는지를 적고, 가족 관리사항에는 어떻게 구역원의 영적인 삶을 관리했는지를 적습니다. 예를 들어 문자를 보냈는지, 전화를 했는지, 심방을 했는지를 기록해야 합니다. 그리고 출결사항에는 구역식구가 주일낮예배에 결석한 경우 그 이유가 무엇인지를 적어야 합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하는 줄 압니까? 성도들의 형편을 제대로 알아야 그들을 위해 기도할 수 있고 실제로 도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말로는 한 가족이라고 하지만 교제를 통하여 사정을 알지 못하고 서로 돕지 않는다면 남과 다를 것이 뭐가 있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성도들을 어느 선까지 도와야 할까요? 혹자는 성도는 영적인 가족이라 영적인 부분만 도와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말씀으로 권면해주고 기도만 해주면 되지 그 이상의 관심을 보이면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도가 물질적으로도 어려움을 만났을 경우는 실질적으로 도와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약 2:15-16). 사도행전 4장을 보면 아주 아름다운 장면이 나옵니다. 바나바가 자기의 밭을 팔아 성도들의 의식주 문제를 해결해 준 것입니다. 그런데 왜 바나바가 그렇게 했는지 아십니까? 그 당시는 예수님을 주와 그리스도로 고백하면 집안에서 쫓겨나고 유대교에서 출교를 당했기 때문에 오갈 데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말로만 걱정하고 기도만 해서는 그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집을 팔아 그들을 섬긴 것입니다. 제가 왜 노인복지신앙생활공동체를 꿈꾸고 있습니까? 어른들이 80세가 넘으면 치매에 걸리는 경우가 많은데 그 짐을 감당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돈이 있어도 오랜 동안 어려운 상황이 지속되면 누구나 감당하기 힘듭니다. 긴 병에 효자 없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돈을 받지 않고 성도들의 고통을 함께 지면 무거운 짐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교회는 서로의 짐을 덜어주는 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천국에서만 한 가족이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한 가족이기 때문에 육신적으로 어려움에 처한 경우에도 서로 도우며 살아가야 합니다.

     

       셋째로, 모난 성품이 다듬어지기 때문입니다. 교회에는 별의 별 사람이 다 들어옵니다. 학력, 성격, 연령, 인격, 성장배경이 다 다릅니다. 교회만큼 다양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은 지구상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서 함께 동일한 목적을 향해 나간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교제를 하다보면 때로는 말로다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우리가 상처를 받는 순간에는 분노하고 다투기도 하지만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과정에서 잘못을 깨닫고 또한 설교를 듣고 큐티하는 과정을 통하여 자신을 돌아봄으로 점점 주님의 성품을 닮아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우리의 모난 성품을 두리 뭉실하게 만들어 가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회생활을 오래 동안 하다보면 하도 많이 부딪혀서 마치 세상을 통달한 것처럼 성격이 원만해지는 것입니다. 이런 현상은 우리 가정에서도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자식을 키워서 아시지만 하나 둘 키운 자식보다 많은 자식들 틈에서 자란 자식들이 성품이 더 좋습니다. 혼자서 자란 아이들은 오직 자기만 알고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모르지만 여러 형제들 가운데서 자란 아이는 부딪히는 과정을 통하여 협동심과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길러서 사회생활에 잘 적응을 합니다. 마찬가지로 이런저런 성도들과 교제를 하면서 때로는 상처도 받고 시험에 들기도 하지만 연단을 받아 주님을 닮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것이 싫다고 성도간에 교제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서로 부딪힐 일은 없기 때문에 잠시 동안은 편할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진짜 복은 받을 수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잠시 사는 이 세상에 편하게 지내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천성을 바라보고 주님을 닮아가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혹자는 교회의 내부를 알면 시험에 들 일이 많기 때문에 교회에 깊숙이 들어가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마귀의 거짓에 속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제를 인하여 상처를 받고 아픔을 당할지라도 그 과정을 통하여 주님을 닮아가는 복을 받기 때문에 교회 깊숙이 들어와서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교제하는 과정에서 겪게 되는 상처와 아픔을 견딘다는 것은 결코 쉬운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을 이기지 못하고 시험에 들어 교회를 등지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오래 참는 것을 훈련해야 합니다. 어미의 뱃속에 있는 생명이 세상의 빛을 보기 위해서는 10개월을 기다려야 하듯이, 갓 믿은 성도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충만한 데까지 이르기 위해서는 인내해야 합니다. 우리가 길을 가다가 공사 중이면 어떻게 합니까? 돌아가든지 공사가 마칠 때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우리는 다 공사 중에 있습니다. 그래서 서로 주님을 온전히 닮아갈 때까지 오래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고린도교회가 은사의 문제로 인해 갈등을 겪고 있을 때에 바울이 어떻게 하라고 권면했습니까? 서로 사랑하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랑의 속성을 이야기하면서 가장 먼저 말한 것이 무엇입니까? ‘오래 참으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교제하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상처와 갈등을 해결하기 위해 오래 참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습니다. 오래 참다보면 상대방을 이해하게 되고 용납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오래 참아야 할까요? 입을 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됩니까? 벅차 오르는 감정을 누르면 됩니까? 만일 그렇게 하면 속으로 곪아터져 온 몸이 만신창이가 될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참아야 할까요?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상대방을 변화시켜주실 것을 믿고 참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힘으로는 자신도 바꿀 수 없고 다른 사람도 바꿀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만 바꾸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서 상대방을 변화시켜주실 것을 믿고 참고 기다려야 하는 것입니다.

     

       넷째로, 낙오자가 발생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을 한 마디로 정의한다면 천국을 향해 떠나는 여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천국을 향해 여행을 떠나지만 끝까지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중도에 그만 두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을 결정하는 요인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성도간의 교제입니다. 어려움을 당할 때에 곁에서 붙잡아 주는 사람이 있는 사람은 끝까지 가지만 도와줄 자가 없는 사람은 중도에 쓰러집니다. 그래서 성경은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라”(살전 5:14)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한 목사가 혼신의 힘을 다하여 목회를 해도 생각한 만큼 교회가 부흥이 되지 않자 스스로 비관하고 서재에 있는 책을 모두 태우고 목회를 접으려고 했습니다. 그때 사모가 이렇게 조언을 합니다. “당신이 책을 불태우는 것은 좋은데, 한 번만 하나님께 물어보고 태우세요. 당신이 정말 목회에 실패한 것인지 하나님께 물어보세요.” 그 말에 목사는 아내의 말이 옳다고 생각되어 성경을 펴들고 자신이 목회에 실패했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그는 마태복음 25장을 읽던 중 달란트 비유를 통하여 자신이 생각하는 목회의 성공과 성경이 말하는 목회의 성공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세상에서는 외적으로 크고 많은 것을 성공이라고 말하는데 성경은 그렇게 말씀하고 있지 않았습니다. 달란트 비유에는 5달란트, 2달란트, 1달란트 받은 사람이 등장하는데 결산할 날이 되어 5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5달란트를 남겼다고 주인에게 보고를 했고, 2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2달란트를 남겼다고 보고를 했습니다. 그런데 주인은 두 사람 모두에게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겠다”고 하였습니다. 숫자적으로 봐서는 2달란트보다 5섯 달란트를 남긴 사람에게 더 큰 상을 주어야 하는데 똑같이 상을 받는 것을 통하여 그는 하나님의 나라는 외적으로 많은 것이 성공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한 것이 성공임을 알고서 자신이 목회에 실패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만일 사모가 곁에서 그를 붙잡아 주지 않았다면 그는 목회의 낙오자가 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연약함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에 입성할 때까지 우리가 낙오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성도들간의 교제를 허락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성도의 교제를 통하여 서로 위로하고 붙들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활용하여 서로 돕고, 우리가 경험한 것으로 서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유도, 태권도, 축구, 야구, 배구, 농구, 복싱 할 것 없이 모든 스포츠는 혼자 연습하면 실력이 향상되지 않습니다. 반드시 연습 상대가 있어야 함께 성장합니다. 성도는 서로에게 연습상대입니다. 우리 말에 “백지장도 맞들면 낫다.”는 말이 있습니다. 아주 작은 일이라도 서로의 짐을 나누어진다면 서로 힘을 얻고 신앙에 낙오자가 되지 않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왜 성도들 간에 교제를 해야 하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예배만 드리는 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성도들 간에 교제하는 장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서로 교제하지 않으면 교제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고자 작정하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 구역모임에 참여하여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서로 나누고 함께 기도하고 돕고 위로함으로 큰 힘을 얻고 교회에 오는 것이 기다려지고 지금보다 더 행복하게 신앙생활을 하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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