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공의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창세기 19:1-11 2014.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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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공의 방향을 바로 잡아야 합니다. 창세기 19:1-11 2014.9.282018-12-03T22:32:11+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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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난주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 길을 멀리 돌아가게 하시는 이유를 살펴보았습니다. 한 마디로 더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 훈련하시는 것이라고 말씀을 드리면서 소원하지만 빨리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한 주 동안 어떻게 살았습니까? 빨리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감사하며 살았습니까? 우리 교회에 올라오려면 반드시 읽어야 할 말씀이 있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을 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떤 일이 있어도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빨리 선교센터를 건축하게 해달라고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빨리 이루시지 않고 다소 시간을 끌고 계신 것을 감사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더 좋은 것을 주실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지난주에 그럴 가능성을 살짝 엿볼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도 머지않은 장래에 그 이유를 알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는 롯이 두 천사를 대접하는 과정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먼저 1절은 두 천사가 저녁때에 롯이 거하고 있는 소돔성에 도착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두 천사가 롯이 살고 있는 소돔성에 도착했을까요? 그것은 창세기 1820-21절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또 이르되 소돔과 고모라에 대한 부르짖음이 크고 그 죄악이 심히 무거우니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 우리는 이 본문에서 내가 이제 내려가서 그 모든 행한 것이 과연 내게 들린 부르짖음과 같은지 그렇지 않은지 내가 보고 알려 하노라라는 말씀에 주목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두 천사를 보내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소돔 성의 죄악을 확인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 천사를 하나만 보내시지 않고 둘을 보내셨을까요? 그것은 모세의 율법을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율법에 의하면, 죄가 사형에 해당하는 경우 최소한 두 명의 증인이 필요합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사람으로 말하면 사형에 해당되는 한 도시를 파멸하시기전 두 천사를 소돔에 보내어 그곳의 상황이 사실인지를 알아보게 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통해서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심판을 아무렇게나 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분이십니까? 모든 것을 말씀대로 하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심판을 감정적으로 하시지 않았습니다. 율법이 규정하고 있는 대로 먼저 두 천사를 보내서 사실과 부합하는지 확인을 하게 하셨습니다. 즉 말씀에 따라 심판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다보면 원하지 않지만 원수관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리고 그런 자를 직접 심판하고 싶은 마음을 가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오늘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전능하심에도 불구하고 두 천사를 보내 사실을 확인하신 후에야 심판을 내리셨듯이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 즉각적으로 반응하지 말고 사실을 좀 더 알기 까지 침묵해야 합니다. 사실을 확인하고 난 후에 입을 열어도 늦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헌법이 삼심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판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합니다. 혹 여러분이 분노하고 있는 사건이나 대상이 있습니까? 그것이 과연 사실에 근거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사실이 아닌 것에 분노하고 그에 따른 행동을 취하면 그야말로 엄청난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고재봉의 살인사건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재봉은 도끼로 이득주 중령 일가족 5명을 포함하여 6명을 무참히 살해했습니다. 그런데 왜 그가 이득주 중령 일가족을 살해했는지 아십니까? 고재봉이 군복무시절에 박모(朴某) 중령 관사에서 근무했는데 어느 날 그 집에서 물건을 가지고 나가다가 가정부에게 발각이 되어 6개월 징역을 살았습니다. 그는 옥살이를 하면서 보복하겠다고 칼을 갈고 있다가 출소하자마자 박중령의 집으로 가서 살해한 것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박중령은 한 달 전에 이사를 가고 당시는 이득주 중령이 살고 있다가 참변을 당한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큰 실수입니까? 우리가 사람을 실제로 죽이지는 않지만 얼마든지 고재봉처럼 잘못 알고서 말로 죽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함부로 심판의 말을 쏟아내지 말아야 합니다. 들은 말이 사실인지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두 천사가 소돔성에 도착했을 때에 그들을 반갑게 맞이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가 누구입니까? 롯입니다. 그런데 롯이 두 천사를 맞이한 장소가 어디였다고 말하고 있습니까? 1절을 다시 읽겠습니다. 저녁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롯이 성문에 앉아있을 때였습니다. ‘성문에 앉았다는 말은 오늘날 이해하기 어려운 표현이지만 당시는 일생 태어나 성문 밖 세상을 구경 한 번 해보지 못하고 살다가 죽는 예가 허다한 때였기 때문에 성문에 앉았다는 말은 영광의 자리에 앉았다는 것을 뜻합니다. 또한 성문에 앉았다는 것은 그가 재판관이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당시 성읍의 장로들은 성문에 있는 벤치에 앉아 중요한 재판을 담당했습니다. 그들은 사형까지 결정할 수도 있을 정도로 상당한 권한이 있었습니다(21:18-21; 22:15,24). 따라서 당시 롯은 소돔성에서 권력과 재력을 거머쥐고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가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소돔성에서 찾아온 두 천사를 보고 일어나 엎드려 영접을 했습니다. 당시 소돔성에 도착한 두 천사는 여행 중이었기 때문에 옷은 먼지와 땀으로 뒤범벅이 되었을 것이고 지친 모습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대접하고 싶은 매력을 느끼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그들을 간청해서 융숭히 대접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사회적으로 높은 자리에 있는데 어느 날 남루한 사람이 찾아왔다고 합시다. 그들을 여러분의 집으로 데리고 가서 대접할 사람이 있겠습니까? 아마도 그럴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롯은 그렇게 했습니다. 물론 당시 지중해 주변 지역에서 나그네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은 좋은 전통이었습니다. 유대인들도 같은 지역에 있었기 때문에 그러한 전통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낯선 사람이 마을에 오면 일일이 돌아가면서 대접했습니다.

       우리는 유대인들이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하는 좋은 전통을 가진 것을 통하여 깨달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여기에는 매우 중요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께서 사람을 외모로 취하시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님의 신앙과 삶과 사역을 본 받아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 3년간의 공생애를 사셨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당시 종교지도자들인 바리새인과 서기관과는 전혀 다른 삶을 사셨습니다. 당시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세리를 죄인같이 취급하고 그들과 상대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하셔서 친구가 되어주셨고 그들 중 마태를 자신의 제자로 선택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사람들이 보기에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된 자들을 극진히 섬겨야 합니다. 저는 필리핀 사역을 하면서 주님께서 우리의 사역을 기뻐하시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찾아간 지역은 도심지임에도 불구하고 나무 사이에 지붕을 설치하고 그 밑에서 가난하게 살아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찾아가 복음을 전하고 그들의 필요를 채워주는 것은 주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입니다. 앞으로 예수께서 가난한 자들을 돌보셨듯이 더 많이 어려운 사람을 찾아가서 복음을 전하고 돌볼 것입니다.

    둘째로, 주님께서 종종 하찮은 사람의 모습으로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본문을 통해서 알 수 있지만 롯에게 찾아온 두 천사는 남루한 옷을 입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전혀 그들이 하나님과는 전혀 무관한 자로 생각되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찾아오실 때에 하나님처럼 나타나시지 않습니다. 만일 하나님처럼 나타나신다면 누가 거절하겠습니까? 예수께서도 마굿간에서 탄생하셨기에 배척을 당하신 것입니다. 예수님 자신도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비유를 통하여 이런 사실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비유의 서두에서 마지막 때에 목자가 양과 염소로 구분하시듯이 천국을 상속 받을 자와 그렇지 않을 자를 구분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어떤 자들에게 천국을 상속 받게 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께서 주리실 때에 먹을 것을 드리고, 목마르실 때에 마실 것을 드리고, 나그네 되셨을 때에 영접하고, 헐벗으셨을 때에 옷을 입히고, 병드셨을 때에 돌아보고, 옥에 갇히셨을 때에 와서 본 자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의인들이 뭐라고 말을 합니까? “언제 우리가 주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음식을 대접하였고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시게 하였고, 헐벗으신 것을 보고 옷 입혔고. 어느 때에 나그네 된 것을 것을 보고 영접하였고 헐벗은 것을 보고 옷 입혔습니까?” 그러자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25:40).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보잘 것 없는 자로 우리 곁에 찾아오십니다. 따라서 그런 자를 잘 대접하는 것은 곧 예수님을 잘 대접하는 것이고 그런 자를 문전박대하는 것은 곧 주님을 문전박대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제가 힘없고 가난한 자들에게 더욱 관심을 갖는 것은 바로 여기에 기초합니다. 예수님께서 종종 힘없고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우리를 찾아오시는 경우가 있음을 알기 때문입니다. 제가 우리가하나되는교회에서 목회할 때에 교인 중에 척추장애를 앓고 있는 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저를 처음 만났을 때는 걸음을 제대로 걷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나이가 드셨어도 더 잘 걷고 계십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분이 교회를 떠나는 자들과 함께 떠났습니다. 그때에 저는 깊은 배신감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얼마 전 저와 이경옥 권사님을 만나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고 음모를 꾸미고 있는 사람들이 있으니 그들이 모르는 지역으로 자신을 옮겨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이 좋은 곳으로 모셔다 드리고 매달 제 통장에서 임대료 33만 원과 전화 사용료를 지불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또 우리에게 좋지 않은 말을 하신다는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순간 화가 치솟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그렇게 하는 것은 치매 증세가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고 생각하자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었습니다. 주변에서는 그에게 도움을 베풀지 말고 단절해야 한다고 하지만 저는 그분이 돌아가실 때까지 책임을 지겠다고 선포했습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주님께서 종종 이런 모습으로 우리에게 찾아오시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13:2).

     

       그런데 롯이 두 손님을 대접한 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습니다. 롯의 집에 두 사람이 왔다는 소식이 알려지자 소돔백성들이 롯의 집을 둘러싸고서 손님을 끌어내라면서 그들과 상관하겠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상관하겠다는 말은 한 마디로 동성간에 성행위를 하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통해서 당시 소돔성이 얼마나 성적으로 타락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심판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죄가 관영하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동네사람들이 계속해서 두 손님을 내놓으라고 협박을 하자 롯이 그의 두 딸을 내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이 말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어떻게 처음 보는 사람을 위해 자신의 딸을 성적 노리개로 내주겠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더군다나 당시 롯의 딸들은 결혼하기로 이미 약속한 남자들이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학자들은 롯이 두 딸을 내어주겠다고 한 것에 대해 두 가지 해석을 내놓고 있습니다. 하나는, 롯이 타락한 땅에 살면서 가치관에 혼돈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당시 소돔성은 성적으로 매우 문란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동성끼리의 섹스가 공개적으로 자행되고 있을 정도였습니다. 롯이 그런 사회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력이 흐려졌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살다보면 세상의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세상의 풍속도가 교회의 풍속도를 바꾸고 있지 않습니까? 과거에는 동성애자를 보면 돌을 던졌지만 지금은 큰 거부감이 없이 그냥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 지역 사람들이 두 딸들이 약혼한 상태에 있는 것을 모두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슨 말이냐 하면 당시 법리상 약혼한 여인을 폭행하는 것은 사형에 해당했기 때문에 그가 이렇게 말하면 그들이 자신의 딸과 관계를 가지지 않을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해석은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그러나 저는 롯이 딸을 내어주겠다고 말한 이유를 다른 측면에서 살펴보았습니다. 그것을 풀 수 있는 키를 그가 성문에 앉은 것에서 찾았습니다. 종전에 살펴본 대로 롯이 성문에 앉아 있었다는 것은 그가 소돔지역에서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는 그 자리에[ 오르기까지 많은 수고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성공을 위해 모든 것을 수단으로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즉 성공을 위해서라면 가족의 희생 따위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오직 성공을 꿈꾸는 자들은 세상의 모든 것을 성공의 수단으로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는 안중에도 없습니다. 한동안 우리나라가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습니까? 그래서 얻은 결과가 무엇입니까? 경제는 부흥했지만 많은 부작용을 낳았습니다. 독재가 정당화되었고 국민의 인권이 유린당했습니다. 대부분의 가정에서 자녀들은 독립적인 인격체로 여기지 않고 부모의 소유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서 부모는 자식들을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지 않으면 분노하고 관계를 단절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았습니다. 그렇습니다. 롯이 두 손님을 보호하겠다는 명목 하에 두 딸을 내놓겠다고 말한 것은 바로 성공주의가 불러온 부작용인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과연 롯이 소돔 땅에서 그토록 소중히 여기고 추구하였던 성공이 무슨 의미가 있었냐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으로 인하여 불과 유황으로 멸망 당했습니다. 한 마디로 롯이 얻으려고 노력한 성공은 파멸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롯이 추구한 성공이 파멸로 나아간 것을 보면서 무엇을 추구해야 진정한 인생의 성공자가 될 수 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세상에서의 성공을 추구하지 말고 천국에서의 성공을 추구해야 하다는 것입니다.  사실 롯은 자신이 살고 있는 곳이 어떻게 될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롯이 천사로부터 곧 소돔성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알게 된 것은 이 사건이 일어난 후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장차 이 세상이 어떻게 될지를 알고 있습니다. 주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세상을 심판하기기전, 하늘의 일월성신이 떨어지고 불로 태워질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가 정말 믿는다면 우리가 어디서 성공해야 할지 답이 나와 있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목숨을 걸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에서 성공하기 위해 도전장을 내밀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이 세상에서 돈을 벌 계획을 하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돈을 벌되 자신의 영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벌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벧후 3:12-13).

       이제 같은 그리스도인일지라도 크게 두 부류로 나눠질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추구하다가 환난을 당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자와 하나님 나라에서의 성공을 추구하기에 잠시 고난을 당하지만 건짐을 받고 천국에서 왕 노릇 하는 자들이 있을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후자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 길을 걷는 자가 가장 지혜로운 인생을 살아가는 자입니다. 롯이 거하던 소돔성이 불과 유황으로 멸망을 당하는 것을 보면서도 오직 세상의 성공만을 추구하며 살아가겠다고 고집한다면 그는 가장 어리석은 자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롯이 위기상황에 처했을 때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하셨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0-11절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롯이 처한 상황은 위기일발의 상황이었습니다. 롯과 그의 가족들과 그의 집에 찾아온 두 사람에게 어떤 악이 행해질지 아무도 모르는 위기상황이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개입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여 더 이상 롯과 그의 집에 들어온 두 사람에게 해를 가하지 못하게 하셨습니다. 이 일을 통하여 우리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개입하신다는 사실입니다. 즉 인간의 마지막이 하나님의 시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직접 개입하시기 때문에 절망적인 상황은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때임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위기상황에서는 절망하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롯의 문제에 어떻게개입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소돔 백성들의 눈을 어둡게 해서 그들을 헤매게 만들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롯과 두 사람을 그들로부터 건져내기만 하셔도 되는데 그들의 눈을 어둡게 하여 헤매게 만드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롯과 소돔백성들에게 동시에 전하시고 싶은 메시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나는 구원자인 동시에 심판자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롯과 그 집에 온 손님들은 소돔백성들의 위협에서 건져주셨고, 롯과 두 사람에게 성추행을 한 소돔백성들은 심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을 베풀기도 하시고 심판을 행하기도 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제 구원 받은 후, 우리가 계속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맛보고 사느냐, 심판으로 나아가느냐는 것은 전적으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어려운 상황에서 간구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구원을 계속해서 맛볼 것이고 하나님의 뜻을 멸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살아가는 자들은 심판을 맛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을 받는 자가 아니라 구원을 받는 자가 되도록 힘써야 합니다. 우리 함께 외쳐봅시다. 나는 구원 받는 자가 되리라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오늘 롯이 살고 있던 소돔성에서 일어난 사건을 통하여 주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 소돔성을 심판하시기전 두 사람을 먼저 보내어 사실을 확인하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일에 신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째로, 롯이 나그네를 극진히 대접한 것처럼 종종 별 볼일 없게 보이는 사람을 잘 대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셋째로, 이 세상은 곧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대상이기 때문에 오직 세상에서의 성공을 추구하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에서의 성공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이미 구원을 받은 자로서 계속해서 구원을 누리며 살아야지 심판을 받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오늘 꼭 가슴에 새겨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의 성공보다는  천국에서의 성공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주님께서 마지막으로 우리에게 주신 사명 즉, ‘가서 제자 삼으라’는 명령에 순종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하나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천국에서 별과 같이 영원히 빛나는 자가 되게 하실 것입니다. 롯의 사건을 통하여 들려주신 음성 앞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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