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득해서 복음을 믿게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14-36절 2018년 10월 21일

//설득해서 복음을 믿게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14-36절 2018년 10월 21일
설득해서 복음을 믿게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14-36절 2018년 10월 21일2018-12-03T23:58:11+09:00

Home 게시판 주일설교 설득해서 복음을 믿게 해야 합니다. 사도행전 2장 14-36절 2018년 10월 21일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글쓴이
  • thechurch
    키 마스터
    Post count: 356

    우리는 지난 주 성령께서 오순절에 강림하심으로 제자들이 각 나라 언어로 말하자, 어떤 반응이 일어났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이들은 신기하게 생각했고, 어떤 자들은 새 술에 취했다고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보아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엄청난 기적을 경험했어도 구원받은 자는 하나도 없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기적을 체험한다고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기적이 구원을 받는데 도움을 줄 수는 있지만 그것이 곧 구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여러분이 읽어서 알 수 있듯이 오늘 본문은 오순절 방언사건을 보고 “이 일이 어찌 된 일이냐”며 의아해하는 자들에게 베드로가 대답한 것입니다. 따라서 겉으로 본문을 보면 마치 제들이 오순절에 어떻게 15개국 언어로 말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한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습니다. 베드로가 기적 자체로는 유대인들이 구원받을 수 없음을 알고 오순절 방언사건을 설명하는 것을 통하여 복음을 증거한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베드로의 설교를 성경에 최초로 등장하는 복음전도 설교라고 생각합니다. 그럼 구체적으로 베드로가 어떻게 복음을 증거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베드로는 자신들이 오순절에 각 나라 말로 말한 것이 왜 술에 취해서 한 것이 아닌지를 설명합니다. 먼저 14-15절을 읽습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때가 제 삼 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제자들은 자신들이 방언을 한 시간이 제 삼시이기 때문에 술에 취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유대 시간은 우리보다 6시간 빠르기 때문에 본문의 제3시는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를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저녁에만 정찬으로 육식과 함께 포도주를 마시고 오전에는 절대로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요즘에는 낮술이라는 말도 등장했지만 일반적으로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에 돌아가 술을 마시지 대낮부터 술을 마시는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혹 어떤 사람이 대낮부터 술을 마신다면 그는 알코올 중독자일 가능성이 매우 높습니다. 즉 술을 오전 9시부터 마셔서 취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에 자신들이 각국의 언어로 말한 것은 술 취했기 때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베드로가 그들을 믿도록 설득하는 과정에서 오순절 방언 사건을 유대인의 생활 풍습, 즉 일상적인 것으로 설명한 것을 통하여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이성적으로 기적을 설명해도 상대방을 설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기적은 이성적으로 설명하면 상대방이 쉽게 믿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마리아의 동정녀 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할 때에 가장 믿기 힘들어 하는 것은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탄생하셨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도 처음에 이를 믿지 못해서 예수님을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해서 탄생하신 것은 조그만 이성적으로 생각하면 얼마든지 믿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상대방을 죄인이라고 설득할 때에 가장 먼저 주장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대표성의 원리’입니다. 즉 아담의 후손이기 때문에 그의 후손으로 태어난 사람은 모두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만일 예수께서 다른 사람처럼 아담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오셨다면 예수님 역시 죄인이시기 때문에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실 수 없습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는 것은 매우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것입니다. 예수님을 무조건적으로 믿으라고 말하는 것은 바람직한 전도방법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총동원해서 설득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에게 주신 이성과 논리를 사용하여 그들을 잘 설득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른 차원에서 제자들이 오순절에 15개국의 언어로 말한 것을 설명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구약 성경의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16-21절을 읽습니다. “이는 곧 선지자 요엘을 통하여 말씀하신 것이니 일렀으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말세에 내가 내 영을 모든 육체에 부어 주리니 너희의 자녀들은 예언할 것이요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 때에 내가 내 영을 내 남종과 여종들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예언할 것이요 또 내가 위로 하늘에서는 기사를 아래로 땅에서는 징조를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로다 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
    본문은 한마디로 요엘 선지자가 말세에 하나님께서 영을 부어주심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이 예언하고, 젊은이들이 환상을 보고, 늙은이들은 꿈을 꾼다고 예언을 했는데, 그 예언대로 오순절에 성령이 강림하셔서 방언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오순절 방언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언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즉 베드로는 오순절 방언 사건을 성경으로 해석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무엇을 깨달아야 합니까? 모든 것을 성경으로 해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인간의 모든 문제의 해결책이 담겨져 있습니다. 따라서 어떤 문제를 만나도 성경에서 그 답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교회들이 갈수록 침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합니까? 당연히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교회가 부흥이 안 되는 이유는 다양합니다. 그러나 가장 주된 이유는 마지막 명령에 순종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제가 성경을 읽던 중 빌립과 스테반이 가서 제자 삼는 것을 보면서 초대교회의 지도자들이 평신도들을 훈련한 방법을 알려주는 성경구절을 찾았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사도행전 5장 42절입니다. “그들이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니라.” 여기에는 세 가지 훈련 방법이 있습니다. 반복. 집중, 시연입니다. 그래서 이 방법대로 목회자와 평신도들을 훈련하니까 죽은 교회가 살아나고 부흥하는 것을 목도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모든 문제의 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무슨 일을 만나도 그것을 해결하려면 말씀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에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베드로가 오순절 사건을 요엘 선지자의 예언의 성취라고 말하면서 덧붙인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것이 22-32절에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유대인들이 예수를 죽였지만 성경의 예언대로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고 그 일에 그들이 증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유대인들은 나사렛 예수에 대하여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요셉이고 그의 어머니는 마리아인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도 큰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행하셨던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천명이나 먹이시고,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고, 물위를 걸으시고, 수많은 병자들을 고치시고, 귀신을 좇아내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또한 그가 거짓 메시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모르는 것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사실입니다. 즉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께서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즉 베드로가 전한 메시지의 핵심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 즉 복음입니다.
    그런데 베드로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어떻게 설명하였습니까? 25-31절을 읽습니다. “다윗이 그를 가리켜 이르되 내가 항상 내 앞에 계신 주를 뵈었음이여 나로 요동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그가 내 우편에 계시도다 그러므로 내 마음이 기뻐하였고 내 혀도 즐거워하였으며 육체도 희망에 거하리니 이는 내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임이로다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셨으니 주 앞에서 내게 기쁨이 충만하게 하시리로다 하였으므로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그는 선지자라 하나님이 이미 맹세하사 그 자손 중에서 한 사람을 그 위에 앉게 하리라 하심을 알고 미리 본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하되 그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그의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이것은 베드로가 구약성경 시편 16편 8절 이하의 말씀을 인용하여 말한 것입니다. 즉 베드로가 구약성경을 가지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것을 설명했다는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베드로가 성경에 능통했다는 것입니다. 즉 구약성경을 익히 알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복음을 증거하려면 신구약 성경에 정통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성경을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유대인들은 어려서부터 성경을 가까이 습관이 몸에 배였기 때문에 성경을 거의 다 암송했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기 때문에 암송하는 성경구절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초대교회의 성도들처럼 말씀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알다시피 성경은 한 가지 주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즉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계속해서 가르치는 내용이 예수는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온전히 깨달으면 성경의 각 구절을 몰라도 얼마든지 복음을 증거할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도 이런 비밀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사도들이 성전에 있는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시라고 반복해서 훈련한 것입니다. 제가 전 세계에 다니면서 3분복음메시지를 날마다 10번씩 암송하게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것이 다윗의 예언의 성취라고 말하면서 덧붙이 말이 있습니다. 33절입니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가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베드로는 예수께서 하나님께로부터 성령을 받아서 그들에게 부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성령을 보내신 분이 전혀 다릅니다. 예수님과 하나님 중에서 한 분이 보내셨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고, 하나님과 예수님께서 같이 보내셨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전자는 ‘단순발출설’을 주장하고, 혹자는 ‘이중발출설’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중발출설’을 주장합니다. 그 이유는 ‘이중발출설’을 주장해야 하나님과 예수님이 동등하신 분이시고 또 두 분께서 성령을 보내셨기 때문에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께서 한 분이심을 주장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여호와의 증인이 삼위일체를 믿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들이 왜 삼위일체론을 믿지 않을까요? 많은 이유가 있지만 바로 본문에서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부어주셨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님이 인격체라면 어떻게 예수께서 이를 받아서 부어주셨다고 말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사실 이 구절만 보면 그들의 주장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더 많은 곳에서 성령께서 하나님과 동일한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씀하므로 성령께서 단순한 능력이나 아니라 인격적인 존재임을 알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34절-36절입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친히 말하여 이르되 주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하였으니 그런즉 이스라엘 온 집은 확실히 알지니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하니라.” 베드로는 다윗이 말한 것을 인용하여 예수께서 그들의 주와 그리스도시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시편 110편 1절 말씀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한번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는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그런데 그들은 이 본문에서 ‘내 주’가 정확히 누구신지를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그들에게 본문의 ‘내 주’가 예수님이시라고 가르쳐 준 것입니다. 당시 ‘주’는 크게 2가지 의미로 사용되고 있었습니다. 하나는 정치적인 의미로 지배자, 즉 로마황제를 주라고 했고, 다른 하나는 종교적인 의미로 ‘하나님’을 주라고 했습니다. 반면에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하나님께 저주를 받아 십자가에 처형당한 거짓 메시아로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라고 말하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로마제국에게 발견되면 죽임을 당하게 되고 유대교에서는 쫓겨나게 됩니다. 그럼에도 베드로는 담대히 그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선포했던 것입니다. 어떻게 죽음을 두려워하던 베드로가 이렇게 담대히 예수님을 그리스도와 주시라고 외칠 수 있었을까요? 오순절에 강림하신 성령의 충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혹 이런저런 일로 염려와 걱정이 있습니까? 그것은 성령충만하지 않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우리의 ‘그리스도와 주’가 되신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리스도’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주’는 주인이라는 뜻입니다. 즉 예수께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고 주인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해주셨을 뿐 아니라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까? 대부분 그리스도인들이 예수님을 구원자로만 믿지만 삶에서 주인으로는 모시고 살아가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우리가 기일이 되면 제사를 지내지만 평소에는 부모님을 잊어버리고 그분의 뜻대로 살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단지 구원자로 믿기만 해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 우리의 주인이시므로 주인의 뜻대로 살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가라’고 하면 가야하고, ‘오라’고 하면 와야 합니다. 제가 동신교회에서 사역할 때였습니다. 새벽예배 설교를 마치고 개인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성령께서 저에게 이런 감동을 주셨습니다. “나보다 앞서지 마라.” 그 순간 열심히 주의 일을 일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그분의 뜻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열심히 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우리의 주인이시기 때문입니다. 남은 생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글 보임 - 1 에서 1 까지 (총 1 중에서)
  • 답변은 로그인 후 가능합니다.
책주문

게시판

최근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