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겔 2:8-3:3 행 10:30-33 2011.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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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 겔 2:8-3:3 행 10:30-33 2011.12.182018-12-03T18:55:27+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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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아이가 엘리베이터의 열림 단추를 누른 채 이렇게 소리를 쳤습니다. “엄마 빨리와, 엘리베이터가 기다려” 그런데 아이의 엄마가 빨리 엘리베에터를 타지 않자 함께 타고 있던 남자가 짜증이 났습니다. 잠시 뒤 아이의 엄마가 타고, 엘리베이터의 문이 닫히자 엄마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 그렇게 하지 말랬지?”하며 아이를 꾸중했습니다. 남자는 속으로 ‘그렇지, 잘못한 것은 혼을 내야지…’ 하며 만족해했습니다. 그런데 엄마가 이렇게 말을 했습니다. “엘리베이터가 뭐야, 자 따라해 봐, (혀를 굴리며)엘리베이러…” 옆에 분과 인사합시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오늘 저는 매우 중요한 말씀을 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제 설교에 귀를 기울이면 평생에 가장 큰 복을 받는 시간이 될 수 있습니다. 예배에는 찬양, 기도, 헌금, 성경봉독, 설교, 축도 등 많은 순서가 있습니다. 그런데 누가 뭐래도 예배의 꽃은 설교입니다. 왜냐하면 찬양과 기도와 헌금 등은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시간이지만, 설교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시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사역을 하십니다. 그래서 말씀 한 마디로 우주 만물을 만드셨습니다. 빛이 있으라고 하시매 빛이 있었고 궁창이 있으라 하시매 궁창이 있었고 바다가 있으라 하시매 바다가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도 말씀으로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어 시체가 썩어가고 있었지만 ‘나사로야 나오너라’라고 말씀하시자 무덤에서 걸어나오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백부장의 하인이 죽을 병에 걸려 있었지만 그곳으로 가지도 않으시고 말씀 한 마디로 고쳐주셨습니다. 거라사 지방의 귀신이 너무 힘이 강해서 아무나 쇠사슬로도 그를 매어 놓을 수 없었지만 예수께서 ‘더러운 귀신아 그 사람에게서 나오라’고 말씀하시자 더러운 즉시 귀신이 떠나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으로 사역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설교를 통해서 말씀을 하신다고 누구에게나 기적이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에 따라 그 결과는 엄청나게 차이가 납니다. 따라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태도를 바르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어떤 태도로 설교를 들어야 할까요?

    1)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합니다. 사도행전 10장에 보면 고넬료라는 사람이 등장합니다. 이 사람은 이탈리야 부대의 백부장이었습니다. 그는 평소에 하나님을 경외하고 항상 기도에 힘을 쓰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제9시에 기도하려고 하는데 환상 중에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습니다. ‘너는 지금 사람들을 욥바에 보내어 해변가에 있는 피장 시몬의 집에 우거하는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청하라’ 이 명령에 고넬료는 즉시 종을 보내어 베드로를 초청했습니다. 그러자 베드로가 그의 종들을 따라 고넬료에게 왔습니다. 그 때에 고넬료가 베드로를 보고 뭐라고 말했는지 아십니까? ‘내가 곧 당신에게 사람을 보내었더니 오셨으니 잘하였나이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당신에게 명하신 모든 것을 듣고자하여 다 하나님 앞에 있나이다’고 하였습니다. 이 말이 무슨 말입니까? 베드로의 설교를 사람의 말로 듣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겠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설교 시간은 개인의 의견을 듣는 시간이 아닙니다. 유명한 철학자의 강의를 듣는 시간도 아닙니다. 만담가의 만담을 듣는 시간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바르게 살라는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교훈을 듣는 시간도 아닙니다. 전능하시며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시간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강단에서 누가 말씀을 선포해도 그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목사를 흔히 ‘하나님의 종’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보면 사도 바울은 편지를 쓸 때마다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고 소개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왜 목사를 ‘하나님의 종’이라고 합니까? 하나님께서 시키는 일을 하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시키려고 목사를 자신의 종으로 세우셨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세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목사가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이 저를 하나님의 말씀의 전달자로 생각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저의 설교를 통하여 전혀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은혜는커녕 오히려 큰 시험에 들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여러분에게 말씀을 대언할 만큼 의로운 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를 자연인 안창천으로만 보면 은혜를 받을 수 없습니다. 기독교에서는 바울을 예수님 다음으로 가는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지만 그 역시 외모로 볼 때에는 형편이 없는 자였습니다. 키는 160센티미터도 안 되었고 머리는 곱슬머리라 고집이 세었고, 걸음은 팔자로 걸었습니다. 성격이 아주 강하고 급하고 거칠었습니다. 글은 잘 썼지만 말은 어눌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의 설교를 통하여 사람들이 감동을 받고 은혜를 받고 삶이 바뀐 것은 그가 전하는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의 설교를 들은 데살로니가 성도들을 향하여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라고 말한 것입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을 때 그 믿는 자 속에서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다윗이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를 취한 다음 그의 남편을 전쟁터로 보내 죽게 하였습니다. 그 일이 여호와 보시기에 너무 악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에게 나단 선지자를 보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한 성읍에 두 사람이 있는데 한 사람은 양과 소가 심히 많은 부자이고, 다른 사람은 사서 기르는 암양 새끼 한 마리 외에는 가진 것이 아무 것도 없는 가난한 자였습니다. 그 암양 새끼는 그의 가족과 함께 자라며 그와 함께 먹고 그의 품에 누우므로 그에게는 딸처럼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떤 행인이 그 부자에게 오자 부자가 자기에게 온 행인을 위하여 자기의 양과 소를 아껴 잡지 아니하고 가난한 사람의 양 새끼를 빼앗아다가 자기에게 온 사람을 위하여 잡았습니다.” 그러자 다윗이 분노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살아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이 일을 행한 그 사람은 마땅히 죽을 자라 그가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고 이런 일을 행하였으니 그 양 새끼를 네 배나 갚아 주어야 하리라.” 그러자 나단이 즉시 “당신이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러자 다윗이 어떻게 했습니까?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라고 했습니다. 왜 한 나라의 최고의 절대 권력자가 나단 선지자의 말을 듣고 “여호와께 죄를 범했다”고 했을까요? 그가 나단의 입에 나온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회개를 하고 변화하고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2)집중해서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 아무리 강력한 빛이라도 오목렌즈를 통과하면 빛이 분산하여 아무런 힘도 발휘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빛을 볼록렌즈로 받으면 빛이 모아져서 종이를 태울 만큼 강한 힘을 발휘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들어야 그 말씀으로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자주 듣지만 삶의 변화가 없고 기적을 경험하지 못하는 것은 집중해서 말씀을 듣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말씀을 들을 때에는 세상의 염려와 생각을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데만 마음을 쏟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아무리 오랜 시간 예배를 드려도 말씀에 집중하지 않으면 예배의 실패자가 됩니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흩어지게 하여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합니다. 예를 들어 예배를 드리면서도 잡생각을 갖게 합니다. 가스는 제대로 잠궜는지, 남편이 늦잠 자는 것을 보고 왔는데 지금은 일어나서 식사를 했는지, 예배 후에 교회에서 먹을 반찬은 맛있는지, 오늘 총여전도회 회장을 뽑는 날인데 누구를 뽑아야할지, 새로 오픈한 북카페의 바리스타는 누굴지.. 등등 오만가지 잡생각을 갖게 합니다. 또한 예배를 지루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그래서 예배가 언제나 끝나나 하고 시계를 들여다보게 합니다. 옆 사람과 잡담을 하게 합니다. 그래서 자신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조자 설교를 듣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예배시간에 졸게 합니다. 물론 우리가 피곤하면 예배시간에도 졸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잠을 제대로 잤는데도 설교시간에 조는 것은 100% 마귀의 역사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혹 그런 일이 있으면 저에게 예배 후에 안수를 받고 가시기 바랍니다. 제가 언젠가부터 이상하게 예배시간만 되면 졸음이 왔습니다. 그런데 작정하며 기도를 하던 중 그 이유가 피곤하기 때문이 아니라 영적으로 저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임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예배시간에 졸음을 가져다주는 더러운 귀신아 떠나가라”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자 그 후로는 예배시간에 졸지 않게 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0장에는 바울이 드로아에서 설교할 때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창문에서 떨어져 죽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왜 유두고라는 청년이 은혜와 축복을 받아야 할 설교시간에 창문에서 떨어져 죽었습니까? 그것은 설교에 집중하지 않고 바람도 쐴 겸 창에 걸터 앉았다가 그만 졸음을 이기지 못하고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즉 말씀을 듣는 일에 집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이 가르칠 때에 집중해서 듣는 학생이 공부를 잘하듯이 설교를 들을 때에 집중해서 듣는 사람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게 하는 모든 악한 세력을 물리치시고 말씀에 집중하셔서 말씀을 통해 큰 은혜와 축복을 받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요즈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통로가 많습니다. 케이블이나 라디오나 인터넷으로 얼마든지 편하게 설교를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설교의 소중함을 모르기 때문에 사모하는 마음이 점점 없어지고 있습니다. 우리 말에 시장이 반찬이라는 말이 있듯이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강단에서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은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했는지 하나님의 말씀이 송이꿀보다 더 달다고 했습니다(시 119:103).

    제가 신학박사학위 논문을 준비하던 중 아동발달심리학 책을 읽다가 영유아기에 ‘성장급등현상’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성장급등현상이란 영세에서 2세까지 인생에서 가장 빠르게 신체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이 기간에 몸무게는 4배로 키는2배로 성장을 합니다. 왜 영유아기에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영유아기에는 어미의 젖을 사모하여 먹기 때문입니다. 얼마나 사모하는지 하루에 8-10번을 먹는데 입에 젖꼭지를 대는 순간 젖꼭지가 아플 정도로 빨아 당깁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우리의 영적생명도 쑥쑥 자라가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갓난 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벧전 2:2)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갓난아이가 어미의 젖을 사모하여 젖꼭지를 갖다 대는 순간 무섭게 빨아 당기듯이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들어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주일강단 설교를 사모하는 마음을 갖고 들을 수 있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의 종을 통하여 지금 나에게 합당한 말씀을 주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일낮 강단에 주의 종을 세워서 말씀을 선포하시는 이유는 설교를 통하여 우리에게 들려주시기를 원하시는 말씀이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것을 믿기 때문에 설교를 준비하면서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당신의 백성들에게 꼭 들려주시고 싶은 말씀을 종에게 말씀하소서” 예수께서 “너희 진주를 돼지 앞에 던지지 말라.”(마 7:5)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돼지 앞에 진주를 던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돼지는 진주의 가치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보석이 땅에 떨어진 것을 보면 누가 가져갈새라 얼른 줍는 것은 진주의 가치를 알기 때문입니다. 주일 설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주일낮예배의 설교의 중요성을 잘 모르기 때문에 주일설교를 사모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가 설교의 소중함을 깨달으시고 설교를 사모하는 마음으로 들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말씀을 귀로만 듣지 말고 먹어야 합니다. 우리는 일반적으로 눈으로 보고 귀로 들어 지식을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단지 눈으로 보거나 귀로만 들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하면 말씀을 단순히 지식을 얻게 되어 교만하게 되기 때문입니다(고전 8:1). 그러나 교만하게 되면 잠언 16장 18절 말씀대로 망하게 됩니다. 교만은 죄 중의 죄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십니다. 하나님은 인류 역사 가운데 겸손한 자를 들어 사용하시고 교만한 자를 다 심판하시고 낮추셨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단지 눈으로 읽거나 귀로 듣기 때문에 영적으로 교만해져서 웬만한 설교로는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혹자는 이런 현상을 보고 현대 그리스도인의 귀가 당나귀 귀처럼 커져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을 그냥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을 받아야지 교만하여 망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까요? 눈으로 보거나 귀로만 듣지 말고 마음으로 먹어야 합니다. 책은 눈으로 보고 음식은 입으로 먹지만 말씀은 마음으로 먹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말씀을 보십시오. 이 본문 속에서 우리가 계속해서 보게 되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말씀을 먹으라’는 말입니다. 4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아이가 젖을 구경만 하지 않고 무섭게 빨아 먹듯이 우리도 영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을 구경만 하지 말고 마음으로 먹어야 합니다. 마음으로 말씀을 먹지 않으면 우리와 아무런 관계를 가지지 못합니다. 예를 들어, 제가 삼막골에 가서 음식을 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여러분에게 그 식당의 음식이 맛있다고 했다고 합시다. 그런데 여러분이 그 소리를 들었어도 가서 먹지 않으면 여러분과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음식을 먹어야 맛을 알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고 말씀을 들었어도 귀로만 듣고 행동으로 실천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복을 받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먹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말씀을 들을 때에 그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더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아멘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그냥 귀로만 들으면 그것은 말씀을 먹는 것이 아니라 듣는 것입니다. 들은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믿고 먹을 때 역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씀이 믿는 자속에서 역사하느니라’(살전 2:13)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예수께서 기적을 베푸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네가 ‘생각한 대로’ 역사가 일어난다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또한 네가 ‘들은 대로’ 역사가 일어난다고 하시지 않았습니다. 네 ‘믿음대로 될찌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수없이 많은 설교를 듣지만 믿음이 잘 자라지 않고, 영적인 힘이 없고, 삶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것은 말씀을 귀로만 듣고 마음으로 먹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을 때에 반드시 변화가 일어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레미야 23장 9절을 보십시오. “선지자들에 대한 말씀이라 내 중심이 상하며, 내 모든 뼈가 떨리며, 내가 취한 사람 같으며, 포도주에 잡힌 사람 같으니 이는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을 인함이라.내 중심이 상하고 모든 뼈가 떨리고 취한 사람 같고 포도주에 잡힌 사람같이 되었다는 것은 자신 안에 큰 변화가 일어났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일어났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여호와와 그 거룩한 말씀을 먹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불과 같고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와 같기 때문에 말씀을 먹으면 변화가 일어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여러분이 아주 어려운 상황에 있는데 제가 설교 중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아나니 재앙이 아니라 곧 평안이요 너희 장래에 소망을 주려하는 생각이라’(렘 29:11)는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단지 귀로만 들으면 곧 잊어버리게 되어 기적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마음으로 믿고 기도하면 그 말씀대로 이루어지는 기적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기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아는 사람에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순종하는 자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인생이 결정됩니다.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집중하여 듣고, 간절히 사모하고, 마음으로 먹으면 기적이 일어납니다. 말씀을 듣는 태도를 바꿈으로 말씀으로 힘을 얻고 기적을 맛보는 삶을 살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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