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언약아래 있습니까? 히10:15-18절 2013.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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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언약아래 있습니까? 히10:15-18절 2013.11.32018-12-03T20:58:0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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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가 지난 주에 요셉을 통해서 세 가지 질문에 답하다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 중에 마지막으로 던진 질문이 요셉이 고난을 당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셨는가?” 였습니다. 제가 이 질문을 던지고 어떻게 대답을 했습니까? 요셉이 형들에게 배신당하여 팔리고 애굽에 가서 종살이 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를 떠나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그를 애굽의 총리로 세우시기 위해 준비하고 계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지난 주에 이 말씀에 많은 분들이 은혜를 받으셨나 봅니다. 전화도 주시고 문자도 보내주시고, 제자훈련팀마다 그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분들이 은혜를 받았다고 고백하며 대화의 말미에 덧붙인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말씀으로 위로 받기에 힘이 생기고 어려움을 잘 이기고 있습니다.”그렇습니다. 신앙생활은 말씀으로 위로를 받아야 어려운 가운데서도 승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말씀을 통하여 위로를 받으시고 힘든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그 날 이후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겠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구약성경 예레미야 3133-34절 말씀을 히브리서 기자가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그 날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를 말합니다. 따라서 예수께서 오시기 전에 하나님과 맺은 언약은 옛 언약이라고 하고, 예수께서 오심으로 맺어진 언약은 새 언약이라고 합니다. 옛 언약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과 시내산에서 맺었기 때문에 시내산 언약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백성들에게 십계명을 비롯한 율법을 주시면서(20-23)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될 것이라!”(19:5-6). 그러자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습니까?“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24:3). 이렇게 하여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들 사이에 첫 언약이 맺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언약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지켜야 할 조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은 하나님대로, 이스라엘백성들은 이스라엘백성들대로 서로 약속을 지켜야 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거룩한 백성으로 여기시고 성막에 거하심으로 그들과 함께 하시고,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해 주시고, 광야에서 먹을 것과 마실 것 등을 공급해 주셨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스라엘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의 계명들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을 섬겼고, 온갖 불법을 자행하였습니다. 그래도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보내셔서 악행으로부터 떠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낸 모든 선지자들을 박해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들의 반역이 계속되자 결국 하나님께서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옛 언약 즉시내산 언약을 파기하겠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이로 인해서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던 솔로몬 성전은 훼파되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방에 포로가 되어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서 다시 새로운 언약을 맺을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새 언약인 것입니다. 저는 오늘 그 새 언약에 대해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언약하신 약속의 내용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로, 언약을 맺으시는데 돌판에 새기지 않고 마음에 새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16절을 다시 한 번 읽겠습니다.주께서 이르시되 그 날 후로는 그들과 맺을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그들의 마음에 두고 그들의 생각에 기록하리라 하신 후에우리가 알다시피 하나님께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은 돌판에 새겨주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새롭게 맺으시는 언약은 돌판이 아니라 마음판에 새겨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돌판에 새기지 않으시고 우리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하셨을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심지 않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마음에 하나님의 법을 새기신 것은 말씀대로 살도록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옛 계명은 돌판에 새겨 있었기 때문에 원수를 사랑하고 싶어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 있기 때문에 마음이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새 언약의 내용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13:34).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우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대로 서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자, 여기서 우리의 고민이 시작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고 살고 있는데 왜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에 순종하지 못하냐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의 자녀답게 용서하며 살지 못하고 마귀의 자녀처럼 미워하고 시기 질투가운데 살고 있을 때가 종종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새 언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새 언약아래 있지 않고 옛 언약아래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주신 이유를 제대로 모르기 때문입니다. 방금 말씀드렸지만 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 언약을 주셨습니까? 그것은 우리의 힘과 능력으로는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을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과 새 언약을 맺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힘으로 새 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이 할 수 없는 것을 주님께서 이미 이루셨음을 믿고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스리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돌아가심으로 심은 대로 거둔다는 율법의 법칙을 깨뜨려버렸습니다. 율법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한다는 사상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은 우리가 할 수 없기에 하나님께서 해주신다는 것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옛 언약처럼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하면 새 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을 의지하므로 원수까지 사랑한 예를 여기저기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스테반이 마지막으로 순교하는 장면을 보십시오. 그가 돌에 맞아 죽기 전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주여, 이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스테반은 자신을 향하여 돌을 던지는 자들을 용서했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자신을 죽이려고 돌을 던지는 자들을 위하여 이렇게 기도할 수 있었을까요? 성령께서 그의 마음을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공산치하의 루마니아에서 비오리카라고 하는 크리스천 소녀가 자기 친구들에게 교회에 같이 가자고 한 죄로 학교교장에게 심하게 매질을 당했습니다. 소녀가 매에 못 이겨 기절하자 구급차가 와서 그녀를 병원으로 데리고 갔습니다. 이틀이 지나서야 그녀는 의식을 회복했습니다. 그녀가 정신이 들자 옆에 있던 의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가엾은 애야 드디어 눈을 떴구나 그동안 나는 너를 이렇게 모질게 때린 너희 학교 교장 선생님을 생각하고 그를 증오하고 있었다. 할 수만 있다면 그 사람한테 복수를 하고 싶구나.”그러자 비오리카는 미소를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그분을 미워하지 마세요. 저는 눈을 뜨기 전에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었어요. 예수님이 저에게 아직도 아프냐고 물으시며 하늘나라에 오면 예수님을 위하여 고통 받은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마련해 둔 아름다운 왕관을 받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리고 나를 괴롭힌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고 그들을 사랑하라고 하셨어요.”어떻게 꼬마 아이가 이렇게 원수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품을 수 있었습니까? 성령께서 소녀의 마음을 주장하셨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중에는 방송을 통해 얼마 전, 구로구 가리봉동에 있는 이주민 지원 NGO지구촌사랑나눔센타에 화재가 발생한 것을 보셨을 것입니다. 불은 30분 만에 진화되었지만 1층 급식소를 전부 집어삼켰고, 쉼터에서 생활하던 이주 노동자 10명이 화상과 낙상과 질식 등으로 입원했고, 2억 원 가량의 재산 피해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불을 지른 사람은 다름 아닌 그곳에서 먹고 살면서 도움을 많이 받았던 자였습니다. 그는 1층 급식소에 불을 지른 후 화재를 피해 건물 3층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뛰어내리다가 머리를 크게 다쳐서 급히 구급차에 실려가 뇌수술을 받았지만 결국은 목숨을 잃게 되었습니다. 지구촌사랑나눔대표 김해성 목사도 처음에는 분노와 원망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래서어디 낯짝이나 한번 보자는 생각으로 방화범을 찾아 병원을 갔다고 합니다. 그런데 화재가 난 뒤 사흘쯤 지난 뒤였습니다. 기도하는 중에 자신이 늘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일곱 번씩 일흔 번도 용서하라고 매주 침을 튀겨 가며 설교했는데, 정작 자신이 그렇게 살지 못하고 있는 것을 깨닫고는 소스라치게 놀랐다고 합니다. 그래서 회개하자 그를 용서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의 병원비를 다 지불하고 죽은 후에 장례식까지 치러주었습니다. 어떻게 급식소에 불을 질러 막대한 피해를 입힌 자를 용서하고 병원비와 장례비까지 지불해줄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그의 마음을 율법이 주장하지 않고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맡겼기 때문입니다. 그가 율법에 따라 움직였다면 그를 용서하지 못하고 그의 잘못을 비판하고 심판만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 성령께서 일하시도록 하자 그를 용서하고 사랑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마음이 무엇에 의해 움직이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율법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는지, 성령께서 움직이시고 있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어야 하지만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우리가 돈이 많은들 그것이 하나님께 무슨 의미가 있겠고, 능력을 행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을 실천하는 자가 최고의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항상 우리의 마음을 성령이 다스리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리고 원수까지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둘째로, 그들의 죄와 불법을 다시 기억하시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이스라엘백성들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지 않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17). 여기서는 히브리어로 하타아(, 하마르티아)라고 하는데, 이는 화살을 쏘았는데 그 화살이 과녁을 벗어나거나, 목표에 미치지 못할 때에 사용하는 단어로 창조주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목표에 미치지 못하는 것을 뜻합니다. 불법은 아원‘(iniquity)라 하는데 이는 하나님의 기준을 왜곡하거나 탈선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즉 죄와 불법은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하는 것을 지칭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와 불법을 다시는 기억하시지 않겠다는 약속하시면서 그들에게 아무 것도 요구하신 것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법대로 집행을 하셔야 합니다. 죄를 지으면 당연히 대가를 지불해야 합니다. 첫 사람인 아담에게 죽음이 찾아온 것도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선악과를 먹으면 죽는다고 하셨는데 아담이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요”(6:23)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께서 스스로 정하신 대원칙을 깨뜨리시고 그들의 행위대로 갚지 않으시고 그들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시지 않겠다고 하셨느냐는 것입니다. 그것은 종두득두의 법칙, 즉 심은 대로 거두는 법칙을 깰 수 있는 아주 큰 사건이 일어났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건입니까? 그것은 죄 없으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모든 죄를 대신 사해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마리아도 죄인인데 어떻게 죄인의 몸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의인이라고 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카톨릭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어떤 개념을 도입합니까? 마리아를 그냥 마리아라고 말하지 않고 성모마리아라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다시피 마리아는 부모의 성적결합을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아담의 죄를 이어받았으므로 결코 의인이 될 수 없습니다. 카톨릭에서 마리아를 성모 마리아라고 부른다고 그녀가 의인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면 어떤 근거로 죄인인 마리아의 몸에서 태어나신 예수님을 의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을 알기 위해서 우리는 에덴동산으로 가서 하나님께서 인간과 처음 맺은 언약을 살펴보아야 합니다.하나님께서 인간과 최초로 맺으신 언약이 창세기 216-17절에 나옵니다.“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하나님께서 처음으로 언약을 맺으셨는데 그 상대가 누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까?‘그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아담을 가리킵니다. 즉 언약의 상대는 아담과 하와가 아니라 아담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하와가 선악과를 먹었어도 아담이 먹지 않았다면 인류는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도 죄인이 되지 않습니다. 사람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느냐 태어나지 않느냐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한 사람 아담의 혈통으로 태어나게 하셨기 때문에 모든 사람은 죄인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아담의 후손으로 태어나시지 않고 성령으로 태어나셨기 때문에 비록 죄인인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어도 죄인이 아니라 의인이신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께서 의인이시므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실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믿을 때에 그 믿음을 보시고 우리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신 사실, 즉 복음을 믿으면 모든 죄를 사함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교우들에게 이런 은혜가 있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그런데 만일 우리가 복음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았는데 혹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될까요? 여러분 중에도 이 문제를 가지고 고민하는 분들이 계실 것입니다. 그 부분에 대하여 오늘 읽은 본문은 정확히 대답하고 있습니다. 18절을 읽어보시겠습니다.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 이 말씀이 무슨 말인지 아십니까? 혹 우리가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예수께서 우리를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다시 십자가에 다시 못 박혀 돌아가실 필요가 없다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단 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셨기 때문입니다. 즉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과거에 지은 죄, 현재 짓고 있는 죄, 미래에 지을 죄까지 다 용서를 받은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을 믿음으로 죄 사함을 받았다면 이제는 죄와는 영원히 상관이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즉 과거와 현재와 미래에 지을 죄까지 다 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죄 때문에 지옥에는 가지 않습니다. 그런데 안타까운 사실은 성경은 이렇게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영원히 우리의 죄와 불법을 기억하시지 않겠다고 말씀하고 있어도 이 사실을 믿지 않는 분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나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의 죄가 사해지는 장소가 어디인지 정확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사실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는다고 말할 때에 우리의 죄가 없어지는 곳이 어디라고 생각합니까? 여러분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생각합니까? 더 쉽게 말씀드리면 죄 용서를 받을 자의 마음에서 죄 문제가 해결되느냐? 아니면 죄 용서를 해 주시는 하나님의 마음에서 해결되느냐는 것입니다. 죄가 사해지는 장소는 죄를 용서 받는 자의 마음이 아니라 용서해 주는 자의 마음입니다. 가령, 제가 화가 나서 저의 딸이 특별히 잘못한 것도 없는데 때렸다고 합시다. 그런데 때리고 나서 저는 그 일을 쉽게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제 딸은 잘못도 없는데 아빠가 나를 때렸다고 생각하고 마음에 분을 품습니다. 저와 딸과의 사이가 해결되려면 누가 용서를 해야 합니까? 잘못한 제가 아니라 잘못이 없는 딸입니다. 우리가 죄 사함을 받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그것을 잊는다고 죄 문제가 해결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와 불법을 용서해주셔야 사함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사실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기억조차 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믿으면 모든 죄가 사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해서 우리 죄를 사()하셨다고 말씀하셨으면 사해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기억하시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으면 기억하시지 않을 것을 믿어야 합니다. 혹 여러분 가운데 아직도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추궁하실 것을 두려워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혹 자신이 뭔가 착한 행동을 해야 죄의 형량이 감해진다고 생각하시는 분이 있습니까? 그것은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시는 마음이 아니라 마귀가 주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기억하시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약속을 온전히 믿고 죄 사함 받은 기쁨과 감격으로 살아가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와 모든 불법을 사하시고 기억지 아니하신다는 것을 굳게 믿어야 할까요? 그것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지 않으면 죄 사함 받은 감격을 누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죄 사함 받은 감격이 없이 신앙생활을 하면 행복할 없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이 세상에서 최고의 기쁨은 죄 사함을 받은 것에서 오는 기쁨입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이 기쁨이 없다면 얼마나 불행한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다 사해주셨다고 확신해야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갈 수 있고, 문제가 생기면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고,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죄 사함의 확신에 비례합니다. 행복하고 건강하게 신앙생활을 하기 원하신다면 반드시 사죄의 확신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 아래 사는 자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새 계명을 새겨놓으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마음을 율법이 움직이게 하지 말고 성령께서 움직이시도록 하므로 용서할 수 없는 사람을 용서하고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예수께서 단 번에 영원한 속죄 제사를 드리심으로 우리의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죄까지 도말해주신 것을 깨닫고 혹 죄를 지었다 할지라도 이미 죄 문제는 끝났다고 믿고 항상 하나님께 담대히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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