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감사, 이렇게 하세요. 누가복음17장 11-19절 2012. 7.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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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반기 감사, 이렇게 하세요. 누가복음17장 11-19절 2012. 7. 82018-12-03T19:22:54+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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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 술을 좋아하던 분이 처음으로 교회를 나오게 되었는데, 마침 그 주에 맥추절 예배를 드리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깜짝 놀라면서 자기를 교회에 인도한 사람의 옆구리를 찌르면서 “아니, 교회에서도 맥주 먹는 것을 감사하는 예배를 드려!”라고 했다고 합니다. 그 사람은 ‘맥추감사절’을 ‘맥주감사절’로 잘못 알고서 그렇게 말했지만 사실은 ‘맥추감사절’이나 ‘맥주’나 모두 보리와 관련되어 있어 있기 때문에 둘이 전혀 무관하지는 않습니다. 맥추절은 이스라엘백성들이 애굽의 종살이에서 벗어나 가나안 땅에 들어와 풍요로운 결실을 맺게 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첫 열매를 드리는 절기입니다(첫 수확한 보리 한 단을 하나님께 요제로 드리는 안식일 이튿날부터 계산하여 50일째 되는 날 지켰기 때문에 ‘오순절’이라고 하기도 하고, 밀의 첫 곡식을 바치는 절기이므로 ‘초실절’이라고도 합니다(출 23:16)). 사실 이스라엘백성들에게 맥추절은 굉장한 의미가 있습니다. 400년간 종살이를 하다가 40년 광야를 거쳐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첫 추수를 감사하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나 지금은 대부분 농사를 짓는 농경시대에 살지 않기 때문에 보리를 수확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맥추절은 첫 열매를 주신 것에 대한 감사하는 절기이기 때문에 우리가 상반기 감사의 날로 정하여 이렇게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감사와 관련하여 자주 사용하는 본문이기 때문에 여러분도 본문의 내용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어느 날 사마리아와 갈릴리 사이로 지나가시다가 한 촌에 들어가셨습니다. 성경은 그 마을이 정확히 어떤 마을인지를 밝히고 있지 않지만 10명의 나병환자들이 모여 있었을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 ‘멀리 서서’ 간청한 것으로 보아 나병환자만 함께 모여 사는 마을로 추정이 됩니다. 나병환자들은 평소 예수님에 대한 소문을 들어 예수께서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있었기 때문에 가만히 있지를 않았습니다. 멀리서서 소리를 높여 “예수 선생님이여, 우리를 긍휼히 여기소서”라고 간청을 했습니다.

    그러자 예수께서 어떻게 하셨습니까?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14절)고 말씀하셨습니다. 당시 나병환자가 병이 나으면 제사장에게 가서 그것을 확인하도록 모세의 율법이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병환자들은 아직 낫지도 않았는데 예수께서 먼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고 말씀하시자 그 말씀에 순종하여 제사장을 만나러 가다가 도중에 고침을 받았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나병환자들이 낫지도 않았는데 그들이 제사장에게 그들의 몸을 보이라는 말에 순종했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들이 고침을 받지도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한 것은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믿음은 보통 믿음이 아닙니다. 만일 여러분이 불치병에 걸렸는데 낫지도 않은 상황에서 나은 증거가 있어야지만 할 수 있는 행동을 지금 당장 하라면 어떻게 하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10명의 나병환자들은 그렇게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런 믿음을 보시고 나병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을 보이는 곳에는 기적이 일어납니다. 우리가 얼마나 믿었는지 그 기간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새신자든 기신자든 상관없이 하나님 앞에 믿음을 보이면 기적을 베풀어주십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기적을 맛보기를 원한다면 하나님 앞에서 믿음을 보여야 합니다.

    그런데 10명의 나병환자가 믿음으로 고침을 받았지만 주님께 돌아와 감사한 사람은 사마리아인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나병은 불치병입니다. 그 병에 걸리면 가족과도 떨어져 살아야 하고 평생을 저주 받은 사람으로 취급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 병에서 고침을 받았으면 감사해야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그 중에 감사한 사람은 단 한 사람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을 통하여 우리가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두 가지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첫째로, 믿음이 있다고 감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살펴본 대로 나병환자들은 큰 믿음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그들은 기적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 모두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영역과 감사의 영역이 다름을 알고 믿음을 키우기 위해 노력하듯이 감사하는 삶을 위해 더 노력해야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좋은 일이 있다고 감사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저주의 상징인 나병을 치료받았으니 이 보다 좋은 일이 어디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생애에 이 정도의 일이 일어났다면 단연 그것을 최고로 좋은 일이라고 손꼽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토록 손꼽힐 정도로 좋은 일이 일어났지만 감사를 한 자는 단 한 명에 불과했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좋은 일이 있다고 자동적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믿음이 있고 좋은 일이 있어도 감사하지 못하는 것을 보면서 무엇을 깨달을 수 있습니까? 감사는 쉬운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왜 감사를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일까요? 우리의 배후에 감사하지 못하게 하는 세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세력이 무엇입니까? 마귀입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여러분이 감사하면 어떤 일이 일어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감사를 하지 못하도록 방해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따라서 감사하기 위해서는 마귀의 공격을 물리쳐야 합니다. 또 한 가지는 모든 사람이 교만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교만과 감사는 반비례합니다. 교만한 만큼 감사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에게 감사한 일이 많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큼 겸손하다는 것이고 감사할 일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만큼 교만하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감사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마음을 낮추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마음이 높아지면 기적이 일어나고 좋은 일이 일어나도 감사하지 않습니다. 저는 이번 임직자 투표의 결과를 통해서도 그런 것을 목도했습니다. 임직자 투표를 앞두고 사람들은 금번 선거에서 장로, 안수집사, 권사 모두 합하여 적으면 서너 사람이고 많으면 대여섯 사람이 당선이 되고 나머지는 안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런데 그 예상을 뒤엎고 임직자 전원이 합격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면 모두가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모든 사람이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혹자는 투표율이 생각보다 적게 나왔다고 불평하고 원망을 했습니다.

    제가 지난 주 어느 성도님의 가정에 심방을 갔습니다. 그런데 설교를 마치고 기도를 하는데 성령께서 갑자기 그분에게 ‘감사할 조건이 많은데 감사하지 못하고 불평과 원망을 하고 있는 것을 회개하라’고 전하라고 감동을 주셔서 그대로 전했습니다. 사실 그 집사님은 감사할 조건이 너무 많았습니다. 아내가 곁에서 오직 그분을 위해 온갖 수고를 다합니다. 식사는 기본이고 잔심부름까지 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자녀들이 거의 매주 마다 찾아올 정도로 효도를 잘하고 있습니다. 저는 아직까지도 노후를 그렇게 보내시는 분을 한 번도 보지 못했고 그런 분이 계시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몇 가지 감사할 조건을 말씀드리며 감사하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사실 몰라서 그렇지 우리가 감사할 것이 얼마나 많습니까? 지옥에 가서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데 구원을 받았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병원마다 입원실이 모자랄 정도로 환자들이 많은데 우리는 이렇게 예배당에 나와 예배를 드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지금도 예수님을 믿으면 핍박을 당하고 심지어 처형당하는 곳이 부지기수입니다. 특별히 우리와 한 피를 이어받은 북한에서는 예수를 믿다가 발각이 되면 처형당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토록 마음껏 주님을 섬길 수 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지금 지구촌에 굶어죽는 사람이 1년에 1,800만 여명이나 됩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작년 한 해 음식물로 버려지는 쓰레기만 15조가 넘었습니다. 또 지구촌에는 물을 마시지 못하거나 오염된 물로 죽어가는 사람이 2천 2백만 여명이나 되지만 우리는 마음껏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따라서 우리는 감사할 조건을 찾아서 감사해야 합니다.

    이제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 감사를 한 나병환자에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어떻게 10명 중 한 사람만 감사할 수 있었을까요?

    첫째로, 과거의 비참함을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당시 나병은 저주를 상징하는 병입니다. 그래서 그 병에 걸리면 사회로부터 격리되어야 했고 어느 정도 진행이 되면 살이 문드러져서 털, 여린 귀, 코 등이 떨어져 나갑니다. 고침을 받은 사람이 주님께 나아와 감사한 것은 바로 과거 자신이 얼마나 비참했는지를 기억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도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비참한 존재였는지를 기억하면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현재의 영광만 보고 비참한 과거를 기억하지 않는 사람은 감사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과거에 어떤 자였습니까? 마귀의 자녀로서 죄와 사망과 심판과 지옥의 법에 매여 어둠속에 살았고 천국에 대한 소망이 없었던 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얼마나 감사합니까?

    둘째로, 곧바로 감사했기 때문입니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돌아와 예수의 발 아래에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15-16). 본문은 나병환자가 자신이 나은 것을 보고서 즉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려 감사를 하였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나병환자가 “자기가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감사는 감사할 일이 생겼을 때 즉시 해야 합니다. 포도주는 시간이 흐를수록 맛이 깊어지지만 감사는 시간이 지날수록 사라집니다. 모든 음식에는 맛있는 온도가 있습니다. 감사는 식기 전, 따끈따뜬할 때에 해야 맛이 있습니다. 옆의 분과 감사의 인사를 나눕시다. “당신과 함께 예배를 드리게 되어 감사합니다.”

    셋째로, 감사한 마음을 밖으로 표현했기 때문입니다. 본문 16절 “예수의 발 아래 엎드리어 감사하니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라” 이 사마리아 사람은 자신이 치유 받은 것을 깨닫고 그 기쁨을 자신 안에만 가두어두지 않았습니다. 예수께 찾아와 그 기쁨을 감사로 표현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표현되어야 합니다. 사실 고침 받은 아홉 명도 왜 감사하는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들은 그 감사를 밖으로 표현하지 않았습니다.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말이 있듯이 아무리 마음속으로 감사한다고 해도 그것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으면 진정한 감사가 될 수 없습니다. 감사를 마음의 감옥에 가두어 두지 마시고 밖으로 표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표현이 약한데 특별히 경상도 남자들이 그렇습니다. 어느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가 예수님을 믿고 나서 교회에서 ‘행복한 가정 만들기’라는 프로그램에 참여해서 훈련을 받았는데 하루는 훈련자가 아내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하라는 숙제를 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못하겠다고 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졸업을 할 수 없다고 하자 고민하다가 그렇게 하기로 결심을 했습니다. 집에 들어가 보니 아내가 저녁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려고 했지만 한 번도 한 적이 없어서 아내 뒤에서 머뭇머뭇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뒤에 누군가 있다는 느낌이 들어 뒤를 돌아보자 그 순간 아내를 확 끌어안으면서 떨리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랑한 데이”. 그러자 깜짝 놀란 아내가 “뭐꼬~”라고 하자 방으로 도망가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늘 숙제다~ …내 참,,,,,” 우리 안에 숨어있는 감사를 끄집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이렇게 감사를 하자 나병환자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더라.”(19절) 여기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는 말은 구원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모르는 나병환자들은 육체적인 구원을 받은 것으로 끝났지만 감사를 한 한 명의 나병환자는 영혼 구원이라는 더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하는 자에게 하나님께서는 더 큰 구원을 베풀어주십니다. 시편기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그의 행위를 옳게 하는 자에게 내가 하나님의 구원을 보이리라”(시 50:23). 감사하는 자에게는 계속해서 좋은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감사를 멈추지 말아야 합니다. 감사를 멈추지 않을 때에 하나님의 구원도 멈추지 않습니다. 우리가 작은 것에 감사할 때에 큰 것을 얻게 되고, 부족할 때 감사하면 넘치는 역사가 일어나고, 고통 중에 감사하면 문제가 해결되고, 있는 중에 감사하면 누리며 사는 축복을 받습니다.

    몇 해 전에 ‘평생감사’가 출간되었습니다. 그 책은 40 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입니다. 그 책의 저자인 전광목사가 저와 친분이 있기 때문에 저에게 선물을 주어 읽은 적이 있습니다. 그는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나누고 29개의 소제목으로 나누어 평생감사를 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감사는 행사가 아니라 평생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한 청교도 농부가 하루는 늘 무신론을 주장하는 어떤 지식인을 식사에 초대했습니다. 식사를 하기 전에 농부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식사 감사 기도를 하자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그 지식인이 농담조로 그것은 18세기 인간들의 낡은 유물이니까 내버리는 것이 어떠냐고 응수했습니다. 농부는 하는 수 없이 혼자 기도한 다음 “우리 집에도 당신 같은 식구가 하나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그 지식인이 “그것 참 다행이군요. 내 동료가 있어 기쁩니다. 그런데 나와 같은 식구가 누군가요? 대학에 다니는 자제분인가요?”하고 묻자 농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니오, 우리 집 돼지들이지요.” 그렇습니다.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은 돼지와 다를 바 없습니다. 2012년 상반기 동안 하나님께서 베푸신 감사의 조건을 찾아 감사하므로 2012년 하반기를 큰 기대와 소망가운데 출발하시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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