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명이 목숨보다 우선입니다 눅13:31-35절 2017.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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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명이 목숨보다 우선입니다 눅13:31-35절 2017.5.142018-12-03T23:26:13+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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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누가복음 13:31~35 예수께서 굳이 예루살렘으로 가신 이유가 있습니다 2017.5.14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여 가시는 길에 어떤 바리새인과 나누신 대화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31절을 봅니다. 어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께 찾아와 말합니다. “여기를 떠나십시오. 헤롯 왕이 당신을 죽이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어떻게 그런 사실을 알고 예수님께 전했을까요? 여기에 등장하는 헤롯은 갈릴리의 분봉왕 입니다. 그는 세례 요한의 목을 베어 죽인 자입니다. 그는 예수께서 각 마을에 두루 다니며 곳곳에 복음을 전파하며 병든 자를 고치시고 귀신을 쫓아낸다는 소문을 듣고서는 자기가 죽인 세례요한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다시 살아나서 그렇게 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일종의 두려움이 느껴졌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죽일 계획을 세웠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알려졌기 때문에 그들이 이를 듣고서 예수님께 전한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예수님과 바리새인은 어떤 관계에 있었습니까? 한마디로 예수님과 그들의 관계는 견원지간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잘못을 신랄하게 비판하셨고 화가 있을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으셨기에,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래시인들 중에 몇 사람이 예수님께 찾아와서 헤롯의 계획을 전하면서 예루살렘을 빨리 떠나라고 간청했습니다. 우리는 바리새인을 떠올리면 예수님을 대적하고 비판한 자들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리새인 중에 예수님께 호의적인 사람들도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바리새인들 가운데 이런 자들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께서 행하신 일들을 보고서 그를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일을 자주 듣다보면 예수님께 대한 생각이 바뀝니다. 따라서 우리는 포기하지 말고 전도대상자를 찾아가서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는 사람을 바꿀 수 없습니다. 우리가 잔소리한다고 배우자가 바뀌지 않고 자녀들이 바뀌지 않습니다. 그러나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면 바뀝니다. 여러분 중에는 모태로부터 예수님을 믿은 사람도 있지만 저처럼 중간에 예수님을 믿은 사람도 있습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 믿는 자들을 우습게 생각하고 부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기 위해 전 세계를 다닐 수 있었던 이유가 무엇입니까? 저에게 복음을 전해준 분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이 바로 강릉에 계신 김대기 장로님입니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바뀔 수 있다고 생각하고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그리스도께 인도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어떤 바리새인들의 간청에 어떻게 대처하셨습니까? 32-33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이르시되 너희는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하라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
    예수께서는 헤롯을 여우라고 칭했습니다. 예수께서 헤롯을 그렇게 부른 것은 헤롯이 왕좌를 유지하기 위해 기회를 엿보고 온갖 악을 자행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헤롯을 여우라고 지칭하면서 그에게 가서 다음과 같이 말을 전하라고 했습니다.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다가 제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
    이 본문은 예수께서 호세야 6장 2절 말씀(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 앞에서 살리라)을 인용한 것입니다. 여기서 “오늘과 내일은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고치겠다”고 하신 것은 지금까지 예수께서 해 오신 대로 그 길을 계속해서 걸으시겠다는 뜻이고, “제삼 일에는 완전하여지리라”는 말씀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심으로 구속사역을 완성하시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바리새인에게 헤롯에게 이 말을 전하라고 했을까요? 정말 말 그대로 헤롯에게 전하라고 이것을 말씀하셨을까요? 언뜻 보면 이 말씀을 헤롯에게 전하라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이 헤롯에게 이 말을 전해도 헤롯이 무슨 말인지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헤롯이 자기를 죽이려고 할지라도 자신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맡겨주신 길을 끝까지 걸어가시겠다는 것을 강조하시기 위해서 그들에게 하신 것입니다. 즉 헤롯이 죽이려고 할지라도 평소에 예수께서 늘 하시던 대로 귀신을 내쫓고 각색 질병을 고치시다고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부활하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완성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곧 이어 “그러나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 것을 통하여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예수께서는 자신의 목숨보다 사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건지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리고 사명을 완수하시기 위해 친히 자신의 목숨까지 십자가에 기꺼이 내어주셨습니다. 원래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좇아가는 자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주님께서 가신 그 길을 좇아가야 합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에베소를 떠나면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 모으고 한 말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20장 22-24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보라 이제 나는 성령에 매여 예루살렘으로 가는데 거기서 무슨 일을 당할는지 알지 못하노라 오직 성령이 각 성에서 내게 증언하여 결박과 환난이 나를 기다린다 하시나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행 20:22-24).
    그런데 이와 같은 고백은 단지 바울의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의 고백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 우연히 온 자들이 아니라 사명을 가지고 온 자들입니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마라톤에서 남아공의 ‘조시아 투과니’ 선수가 2시간 12분 36초로 우승했고, 불과 3초 차이로 우리나라 이봉주 선수가 은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이 마라톤 경기에 모두 122명이 출전해서 111명이 끝까지 완주했습니다. 마라톤 경기가 끝나고 메달 시상식이 끝나자 관중들이 하나 둘 자리를 뜨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올림픽 경기의 폐회식을 준비하기 위해 관악대가 리허설을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런데 110번째 선수가 들어온 지 1시간 30분이 지나서 111번째 선수가 트랙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그는 아프가니스탄의 ‘압둘 베사르 와시키’ 선수였습니다. 그는 왼쪽 허벅지와 종아리를 압박붕대로 동여맨 채 절룩거리면서 경기장에 들어섰습니다. 그는 4시간 24분 17초로 올림픽 사상 가장 늦은 기록을 이루었고, 1등과는 무려 2시간 11분 11초나 차이가 나는 형편없는 기록이었지만, 와시키 선수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완주하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일어나 우레와 같은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비록 최하위 기록을 세웠지만 애틀랜타 올림픽에서 가장 감동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우리도 주께서 맡겨주신 사명의 길을 끝까지 가야 합니다. 우리가 도중에 마귀의 공격을 받아 때로는 쓰러지고 늪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그 길을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 보좌에 앉아계시던 주님께서 일어나셔서 환영해주실 것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포기하지 않고 우리의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오늘과 내일과 모레는 내가 갈 길을 가야 하리니”라고 말씀하시고 곧 이어서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그렇게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서 말하는 예루살렘은 꼭 지리적으로 예루살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세례 요한도 예루살렘 밖의 ‘마케루’(Machaerus)에서 순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선지자가 예루살렘 밖에서는 죽는 법이 없다고 말씀하신 것은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이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비판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원래 예루살렘은 ‘평화의 도시’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곳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는 선지자들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나봇과 스가랴 선지자가 죽임을 당하고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한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이 회집하여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계획하고 결정하고 죽인 곳이 예루살렘입니다.
    원래 예루살렘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의 말을 듣고 하나님과 화평의 관계를 맺어야 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정 반대의 일이 벌어졌습니다. 가장 평화스러워야 할 예루살렘이 가장 많이 피를 흘린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이름값을 하지 못하는 도시가 바로 예루살렘입니다.
    혹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우리 안에 온갖 죄악이 가득해있지는 아니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 안에 사랑과 공의와 거룩함이 넘쳐야 하는데 온갖 미움과 불공평과 죄악이 판을 치고 있지는 아니한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믿을 만한 존재가 아닙니다. 날마다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는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으면 우리의 마음이 예루살렘처럼 온갖 죄악의 온상이 될 수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이 어제 큐티를 읽어서 알겠지만 솔로몬이 두로왕 히람에게 성전건축에 함께 할 것을 요청하면서 그에게 자신이 성전을 건축하는 이유를 설명한 말씀을 가지고 나누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아버지 다윗에게 하신 말씀에 내가 너를 이어 네 자리에 오르게 할 네 아들 그가 내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리라 하신 대로 내가 내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려 하오니”(왕상 5:5절) 솔로몬은 다윗이 성전을 건축하려고 했지만 그 뜻을 이루지 못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성전을 건축하겠다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솔로몬은 성전을 건축하는 이유를 ‘아버지의 뜻’과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위하여’라고 밝혔습니다. 저는 그 본문을 읽으면서 “나는 과연 무엇을 위하여 열심히 사역을 하는가?”라는 질문을 던졌습니다. 그 때에 입으로는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실제로는 다른 이유도 있다는 것을 부인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솔로몬은 나이도 저보다 어렸고 하나님을 많이 경험하지 못했어도 오직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 성전을 지었는데, 나이를 먹을 만큼 먹었고 하나님을 수없이 경험했어도 오직 하나님의 이름만 드러내지 못하는 자신을 보면서 안타까웠습니다. 우리가 입으로는 주님을 위하여 헌금을 드리고 이것저것을 한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우리 안에 바벨탑을 쌓을 수 있음을 알고 날마다 우리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고 예루살렘을 바라보시면서 슬픈 탄식을 쏟아내셨습니다. 34절입니다.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선지자들을 죽이고 네게 파송된 자들을 돌로 치는 자여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에 모음 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냐 그러나 너희가 원하지 아니하였도다.” 예수께서는 먼저 암탉이 제 새끼를 날개 아래 품듯이 자신이 예루살렘의 자녀들을 몇 번이고 당신의 날개 아래 품으려 하셨지만 거절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계속해서 선지자들을 통해 회개하고 돌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유대인들에게만 적용되는 말씀이 아님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계속해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지만 그 말씀을 순종하지 않고 자신 안에서 죽이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면서 차일피일 미루고 있는 것이 너무 많습니다. 주님께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으로 제자를 삼으라”고 하셨지만 이 말씀에 순종하는 그리스도인을 찾아보기란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우리가 다른 것은 지키지 않아도 이 명령에는 순종해야 합니다(박 목사와의 대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35절을 읽겠습니다.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를 찬송하리로다 할 때까지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하시니라(35)”
    “보라 너희 집이 황폐하여 버린 바 되리라”라는 말씀이 무슨 의미입니까? 예수께서는 암탉이 제 새끼를 품기를 원했지만 그들이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루살렘을 멸망시키시겠다는 것입니다. 즉 그들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절하였기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심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 말씀대로 예루살렘성은 기원 후 70년경 로마의 디도 장군을 통하여 돌 위에 돌 하나 남지 않고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은 끝이 없지만 계속해서 이를 거절하는 자들에게는 사랑하신 만큼 심판으로 갚아주신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하나님의 끊임없는 사랑을 받는 자로 살아갈 것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사랑을 계속해서 받아들이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자초할 것인지를 선택해야 합니다. 주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우리 안에 주의 은혜와 사랑이 풍성하게 넘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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