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눅16장 14-18절 2017.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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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게 보이려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눅16장 14-18절 2017.7.302018-12-03T23:30:36+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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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문 누가복음 16장 14-18절 사람에게 보이려고 신앙생활하지 마세요 2017.7.30
    본문은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바리새는 ‘분리된 자’, ‘거룩한 자’라는 뜻으로 율법을 철저히 지키고 불결하고 부정한 것으로부터 분리해 나온 무리라는 의미로 바리새인 또는 바리새파라고 불렸습니다. 따라서 그런 자들이 돈을 좋아했다는 것은 언뜻 보면 이해하기 쉽지 않습니다. 이는 마치 기독교의 목회자나 불교의 중이 돈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왜냐하면 목회자나 중은 이 세상과는 다소 분리된 삶을 살아가기로 작정한 자들인데 그들이 돈을 좋아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게 된 이유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왜 세상과 구분된 자로 살겠다고 했던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바리새인들이 율법을 잘 지키는 것과 부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즉 바리새인들은 부(富)를 율법을 잘 지키는 데 대한 정당한 보상으로 여기고 있었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율법을 잘 지키는 자라고 인정받기 위해서는 돈이 있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돈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가난한 자들에게 구제할 것을 명령하고 있기 때문에 그들이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면 그들로부터 율법을 잘 지키는 자라는 말을 들을 수 있었고, 또한 구제를 하기 위해서는 돈이 필요했기 때문에 바리새인들이 돈을 좋아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바리새인에게 일어난 현상이 우리에게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또한 성도가 되었습니다. 성도는 거룩한 무리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세상 사람들과는 구분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증거로 생각하고 세상에서 성공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데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정말 ‘이 세상에서의 성공’이 우리가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고 있다는 유일한 증거일까요? 정말 우리가 이 세상에서 돈을 잘 벌고, 좋은 직장에 다니고, 명예를 얻으면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것은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간 것입니다. 성경 어느 곳에도 신앙생활을 잘하면 이 세상에서 성공한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100% 하나님께 순종하셨지만 33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시는 동안 머리 둘 곳이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이렇게 사셨다고 예수님을 실패했다고 말한다면 그는 미치광이거나 정신병자일 것입니다.
    이 세상의 성공과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과는 전혀 관계가 없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데에 온갖 관심을 쏟아야 합니다. 우리의 성공은 이 세상에서의 성공과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느냐에 의해 결정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데 어려움을 당하고 있다면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신앙생활을 잘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있지 않은데 형통하다면 신앙생활을 잘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어떻게 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14절을 다시 읽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들이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 성경은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비웃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이 모든 말씀’이란 무엇을 뜻할까요? 넓게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여러 비유를 비롯해서 지난주에 말씀드린 16장의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를 모두 포함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좁게는 ‘옳지 않은 청지기 비유’를 말씀하시면서 결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 결론 부분의 말씀만으로도 그들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결론으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3절입니다. 함께 읽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3절). 지난주에 예수께서 이 말씀을 누구에게 하셨다고 말씀을 드렸습니까? 제자들과 바리새인들이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즉 제자들에게는 하나님과 겸하여 재물을 섬기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치신 것이고, 바리새인들에게는 그들이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고 있는 것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당시 바리새인들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자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고 큰 자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에게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돈을 섬기고 있다고 비판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비웃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당시 바리새인들의 영적상태가 어떠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그들은 영적으로 교만한 상태에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그들의 내면에 대해 말씀을 하셨으면 혹 예수께서 선지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자신을 돌아보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이 예수님을 비웃었다는 것은 그들은 교만했다는 증거입니다. 사람이 교만한지 겸손한 지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태도를 취하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겉으로 겸손한척 한다고 겸손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회개하면 겸손하다는 증거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만 회개하지 않는 것은 교만하다는 증거입니다. 어쩌면 바리새인들이 가난한 자를 구제하는 것은 사람의 눈에는 겸손하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그들을 그렇게 평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왕이었지만 자기 신하인 우리아 장군의 아내와 부정한 관계를 맺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나단이 다윗을 찾아가 그의 잘못을 지적하자 그가 어떻게 했습니까? 한마디로 회개했습니다. 그가 어떻게 회개했는지는 시편 51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는 영혼 깊숙이 숨어있는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며 간절히 회개했습니다. 그가 이처럼 회개했다는 것은 그가 얼마나 겸손한 왕인지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까? 영혼 깊은 곳에서 회개가 나오고 있습니까? 아니면 회개는커녕 그 말씀으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있습니까? 우리는 바리새인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다윗처럼 즉시 회개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그들의 비웃음에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먼저 15절을 읽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는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는 자들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내용이 무엇입니까? 그들이 사람 앞에서 스스로 옳다 하고, 사람 중에 높임을 받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왜 바리새인들이 이렇게 했을까요?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보지 않고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자신을 보았더라면 이렇게 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는 자가 스스로 옳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보는 자가 사람 중에 높임을 받을 생각을 하겠습니까? 하나님 앞에 서지 않기 때문에 이런 일이 발생하는 것입니다.
    금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입니다. 종교개혁을 한지 500년이 지났는데 교회는 개혁 전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신교가 구교보다 더 부패해있습니다. 개신교가 얼마나 부패해있는지 아십니까? 세상이 교회를 걱정할 정도로 부패해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현상이 빚어졌을까요? 종교개혁자들은 한결같이 ‘코람데오’의 삶을 살았지만 우리는 하나님과 멀리의 삶을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 앞에서 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할 때에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기에 겸손히 낮아져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살피지 않기 때문에 자신을 옳다고 생각하고 교만한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왜 우리가 조금만 무시당했다고 생각하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자신을 무시한 자와 다툽니까? 왜 목회자들이 노회에 모여서 시시한 일로 언성을 높이고 멱살을 잡고 싸웁니까? 그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돌아보는 자는 자신이 얼마나 큰 죄인인지를 알기에 스스로 옳다고 생각하지 않고 다른 사람보다 자신이 높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후 덧붙인 말씀이 무엇입니까? 16절을 봅니다. “율법과 선지자는 요한의 때까지요 그 후부터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이 전파되어 사람마다 그리로 침입하느니라.” 이 말씀은 요한 이전에는 율법과 선지자의 가르침에 따르는 시대였지만 세례요한 이후는 전혀 다른 가르침에 따라야 하는 시대라는 것입니다. 즉 요한 이전에는 율법에 의해 가르침을 받았지만 요한 이후로는 복음의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시대가 전혀 다르게 바뀌었기 때문에 전혀 다른 교훈으로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바리새인들은 시대가 바뀌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세례요한 이전처럼 율법의 가르침에 따라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즉 예수께서는 친히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시고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살아가도록 하기 위해서 이 세상에 육신으로 오셨는데 그들은 여전히 율법에 붙잡혀서 형식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니 이를 바라보시는 예수께서는 너무 답답하셨을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어떤 시기에 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지금은 ‘말세지말’입니다. ‘말세지말’은 어떤 시기입니까? 마지막 심판이 문 앞에 성큼 다가와 있는 시기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자다가 깨어야 합니다. 지금은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고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신앙생활을 바르게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지 않으면 이 땅에 성을 더 쌓으려고 하기 때문에 종말론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거듭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는 자가 되었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율법과 복음의 관계에 대해 말씀하시면서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17절입니다. “그러나 율법의 한 획이 떨어짐보다 천지가 없어짐이 쉬우리라.” 이 말씀은 율법은 어느 하나라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것을 말씀하신 것은 종전에 말씀하신 16절의 말씀을 곡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즉 지금 복음의 시대가 열렸다고 율법을 무시해도 된다는 뜻으로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복음의 시대가 활짝 열렸을지라도 율법을 폐기해서는 안 됩니다. 폐기되어야 할 것은 율법이 아니라 바리새인들의 잘못된 율법 해석입니다. 그렇습니다. 율법은 복음에 의해 조명되고 재해석되어야 할 하나님의 말씀이지 쓸모없기에 폐기처분할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우리는 율법 폐기론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율법은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주어진 제사법 또는 의식법입니다. 둘째로, 인간과 인간의 사이에서 발생하는 각종 분쟁이나 문제들을 다룬 민법, 그리고 셋째, 인간이 세상살이에서 지켜야 할 것을 다룬 도덕법입니다. 그런데 제사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으로 완성되었기 때문에 이를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민법과 도덕법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따라서 제사법을 제외하고는 율법의 가르침을 폐기해서는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십계명은 제사법이 아니므로 복음시대에 살고 있지만 여전히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이 세상의 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뿐 아니라 우리나라의 법도 지켜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그들은 사람에게는 칭찬을 받았지만 예수님께는 비판을 받았습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어떻게 평가하시는지가 중요한 것입니다. 주님께 칭찬받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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