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마 28:1-10 2012.4.8(2,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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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습니까? 마 28:1-10 2012.4.8(2,3부)2018-12-03T19:14:38+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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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마을에 꽃을 파는 할머니가 있었습니다. 그 할머니는 가난했고 복장은 허름했으며 얼굴에 주름이 깊게 패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할머니의 얼굴에는 항상 행복한 웃음꽃이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할머니를 ‘행복한 할머니’라고 불렀습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그 할머니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습니다. “할머니는 늘 좋은 일이 있나 보지요?” 그러자 할머니는 특유의 밝은 웃음을 지으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나이에 어찌 좋은 일만 있겠소. 하지만 나는 고통을 당할 때마다 예수님을 생각합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사흘 만에 부활하셨잖아요. 그래서 저도 고난이 다가올 때마다 마음 속으로 `사흘만 기다리자’고 다짐합니다. 그때부터 제 삶이 한결 행복해졌습니다.” 그렇습니다. 고난을 이기는 비결은 부활하신 주님을 생각하고 ‘고난은 기껏해야 사흘뿐이야!’라고 생각하며 사는 것입니다. 우리 함께 옆 사람과 인사합시다. “사흘만 기다립시다!”

    오늘 본문에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안식일이 지나자마자 새벽녘에 예수님의 시신이 묻힌 무덤으로 찾아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본문에는 여인들이 단순히 무덤을 보기위해서 갔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이와 동일한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다른 복음서를 보면 여인들이 무엇 때문에 무덤에 갔는지를 정확히 알 수 있습니다. 한 번 마가복음 16장 1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안식일이 지나매 막달라 마리아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가서 예수께 바르기 위하여 향품을 사다 두었다가” 즉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넣기 위해서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장례를 치룰 때에 시신에 향품을 함께 넣습니다(요 19:40). 그런데 이미 장례식이 끝나고 나서 무덤에 안장되셨는데, 왜 여인들이 향품을 준비해서 무덤에 찾아갔을까요? 그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심으로 향품조차 넣지 못하고 무덤에 안치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인들이 예수님의 무덤을 찾아갔을 때에 어떤 일이 벌어졌습니까? 시신은 없고 무덤이 텅 비어 있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무덤의 입구가 큰 돌로 막혀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의 무덤은 우리의 무덤과 좀 다릅니다. 굴을 파고 굴의 입구를 돌로 막아 무덤으로 사용하였습니다. 그래서 유대인의 장례법대로 예수님의 시신도 굴에 넣고 그 입구를 바위 돌로 막았습니다. 더군다나 무덤의 입구를 로마제국의 경비병들이 굳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었던 사람의 시체가 없어지고 무덤이 텅 비어있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말이 안 되는 사건이 벌어졌습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혹자는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는데 제자들이 시체를 감추고 예수께서 부활 하셨다고 거짓말을 했다고 합니다. 정말 그럴까요? 당시 예수님의 무덤을 지키고 있던 자들은 세계 최강인 로마제국의 경비병입니다. 그들을 힘으로 물리치려면 그들보다 강한 군대의 힘을 빌려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의 부활이 거짓이라면 제자들이 그것을 증언하다가 순교를 당하지 않습니다. 몇 해 전에 ‘마이클 베이전트’라는 사람이 ‘지저스 페이퍼’라는 책을 냈습니다. 그 책의 핵심은 “예수의 십자가 처형은 조작된 것이며, 실제로 예수는 십자가에서 죽지 않았고, 그 후에도 계속해서 생존하면서 자신의 종교운동을 이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주장은 철저히 상상력에 기초한 것입니다. 그는 ‘다빈치코드’를 쓴 ‘댄 브라운’과 같이 풍부한 상상력으로 사탄의 사주를 받아 기독교의 근본진리를 무너뜨리는 일에 쓰임을 받고 있을 뿐입니다.

    인도선교사 스텐리 존스의 이야기입니다. 그가 인도에서 사역할 때에 예배 중 설교하고 있었습니다. 한 사람이 설교 도중 일어나더니 이런 질문을 던졌습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에 가면 마호멧이 있었다는 증거가 있고, 인도의 능수해안에 가면 석가모니가 있었다는 확실한 증거가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가 활동했던 예루살렘에 가면 빈 무덤밖에 없는데 과연 예수가 정말 이 땅에 있었다는 증거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자 스텐리 존스가 이렇게 대답하였다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바로 그것이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확실히 다른 점입니다. 우리 주님은 무덤에 들어갔다가 부활하셔서 승천하셨고,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시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예수님의 시신이 있는 무덤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다른 종교 지도자들의 무덤은 지금까지도 보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숭배의 대상이 되고 있지만 예수님은 부활하셨기에 무덤이 없습니다. 그래서 기독교만이 생명의 종교인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언제’ 부활하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까? 마태복음 28장 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안식 후 첫날’입니다. 즉 오늘날로 말하면 일요일에 주님이 부활하셨습니다. 왜 예수께서 죽으신 다음 바로 부활하시지 않고 안식일이 지나기를 기다렸다가 새 날이 되려는 찰나에 부활을 하셨을까요? 여기에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에 7가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 중에서 6번째 하신 말씀이 ‘다 이루었다’는 말입니다. ‘다 이루었다’는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속사역을 완성하셨다는 말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창조사역을 마치신 후 쉬셨듯이, 예수께서도 구속사역을 마치시고 쉬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예수께서는 철저히 율법을 지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율법을 철저히 지키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실 때에도 율법을 좇아 할례와 정결예식을 행하셨고,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대신하여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자가 되어 십자가에 죽으셨고, 구속사역을 다하신 후 안식일에 안식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예수님이 이토록 율법을 철저히 지키셨을까요? 그것은 율법아래 있는 모든 인간을 구속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께서 철저히 율법을 지키심으로 율법의 요구하는 바를 이루시고 모든 사람에게 율법에서 벗어나는 길을 열어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율법아래 있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 아십니까? 우리가 저주가운데 있다는 말입니다. 어떤 저주입니까? 죄와 사망의 법에 매여 종살이를 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죄 때문에 죽어야만 되고 죽은 후 심판을 받아 지옥에 던져져 영원히 고통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즉 율법의 저주 아래 있다는 말은 잘되려고 해도 잘 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대신 율법을 지키심으로 우리가 율법을 지키지 않아도 죽지 않고 영원히 잘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예수께서 못 박혀 돌아가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을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덤에 찾아간 여인들에게 천사가 나타나서 뭐라고 했습니까? 6절을 다시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그가 여기 계시지 않고 그의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느니라’입니다. 천사가 ‘그냥’ 살아나셨다고 말하지 않고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는 말에 주목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살아나시되 그냥 살아나시지 않고 말씀하시던 대로 살아나셨다는 말은 예수의 부활이 돌발적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이미 예언된 사건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이미 예언된 사건이었습니다. 구약에 이미 예언되어 있었고, 특히 예수님은 평소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만 삼일 만에 다시 살아나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신 것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부활은 그가 하신 모든 말과 행동이 모두 옳았다는 것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즉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바로 우리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증명하신 것입니다. 만일 예수께서 부활하시지 않았다면 그분이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것은 우리와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다시 살아나셨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죄 문제를 해결 받게 된 것입니다. 또한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죽은 자가 살아난다는 것이 말이 됩니까? 말이 안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고 인생이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어찌 그말씀하신 바를 행하지 않으시며 하신 말씀을 실행하지 않으시랴”(민 23:19). 이제 우리는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살아야 합니다. 특별히 반드시 재림하신다는 약속을 붙잡고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천사는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어떻게 전하라고 했습니까? 그 사실을 ‘빨리 전하라’고 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 하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일렀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천사가 예수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사실을 ‘빨리’ 전하라고 말한 것에 주목해야 합니다. 이 말은 절박감을 가지고 복음을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 전도는 게으르면 안 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복음을 빨리 증거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6월 3일 ‘D3행복축제’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왜 우리가 이 행사를 합니까? 빨리 복음을 전하라는 명령에 순종하기 위해서입니다. 몇몇 사람이 복음을 전하는 것보다 여러분 모두가 전도를 한다면 그만큼 복음은 빨리 전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자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복음을 빨리 전하라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전도는 특정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평신도사역자나 젊고 건강한 사람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이와 은사와 학력과 신앙의 경력에 상관없이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든지 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마지막 승천하시기전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부활의 아침, 우리 모두 성령의 충만을 받아 우리가 만난 예수님을 증언하는 삶을 살게 되기로 다짐하는 은혜가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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